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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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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0일 09시 18분 등록

지난 토요일, 박사과정 첫수업이 있었습니다. 다시 만난 3월의 캠퍼스는 신입생 환영 플랭카드로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아직 쌀쌀한 날씨였지만 새로운 출발의 신선한 기운이 느껴져 설레였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들어간 박사과정 첫수업, 어땠을까요? 일하며 쉬엄쉬엄 공부했던 석사과정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일단 어마무시한 과제량에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3학점 짜리 3과목을 듣는데 1과목당 평균 과제가 3개 정도입니다. 발표 과제도 자주 있고 무엇보다 교재나 읽어야 할 자료들이 모두 영어로 쓰여있었습니다. 그래도 첫수업에서는 당황하지 않고 마음을 다잡으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문제는 주말에 과제를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2페이지 짜리 영문 자료를 읽는데 꼬박 이틀이 걸리더군요. 사실은 이틀동안 열심히 자료를 읽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첫수업 2개 과목에서 받은 7개의 1페이지 보고서를 어찌해야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영어도 문제지만 리더십이나 경영전략, 사회과학 조사방법론에 대한 기초 지식이 부족하니 영문 자료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자 깊은 낭패감이 몰려왔습니다. '학위는 돈과 시간만 있으면 할 수 있을거야' 생각한 저의 오만함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폐부를 깊이 찔렀습니다.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잘 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 속의 자신감이 바닥까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수학 문제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지요. 머리 속에 엉킨 실타래가 가득 들어있는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초보팀장 시절, 말 안듣는 부하직원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막막했던 그 감정이었습니다. 온 몸에서 힘이 서서히 빠져나가면서 바람 빠진 풍선이 된것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저의 본능은 '투쟁(fight) 또는 도피(flight)' 중 '도피'를 선택하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빨간 신호 앞에서 '자신없는 일은 일찍 포기하는게 낫지 않을까?'라는 말풍선이 떠오릅니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아주 잘 해내고 싶으니 잘 할 수 없는 일은 아예 안하려는 것입니다.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부여잡고 케이 코치님께 긴급 코칭을 요청했습니다. 놀란 코치님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첫수업 하루 듣고, 이틀 공부하고 박사 과정을 포기하려는건 아니죠? 그건 내가 알던 재키가 아닌데요." 코칭을 받으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3월 적응 기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해나갈 수 있으리라 되뇌었습니다.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정리해야 할 일들도 정했습니다. 무엇보다 완벽하게 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과정에서 지쳐 목적지에 탈진해 도달하면 안되니까요. 박사과정의 목적은 논문을 써서 학위를 받는 것입니다. 더 근본적인 목적은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이론적 배경이 탄탄한 멋진 책을 쓰는 것입니다. 반드시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있다면 잠시 쉴 수는 있어도 포기는 안됩니다.


내일이면 두번째 수업이 진행됩니다. 수강신청을 변경해 이번 학기에는 2개의 수업만 듣기로 했습니다. 피할 수 있는 시련은 피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는 빅터 프랭클 박사님의 조언을 받아들었습니다. 과제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습니다. 과제를 못해도 뻔뻔하게 웃으며 수업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도 이제 모범생 모드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지요. 과제는 예습의 의미이니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영어 자료도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시간이 걸리는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집니다. 수면 아래에서 물고 있던 빨대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며 숨쉬기도 수월해지네요. 저 이제 학자가 될 준비가 된건가요?


 

[알림1]박미옥 연구원이 운영하는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4기를 모집합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우면서도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고 있는 분이라면 용기를 내어 신청하세요. http://www.bhgoo.com/2011/index.php?mid=free&document_srl=817830  

 

[알림2]수희향 연구원이 운영하는 유로에니어그램연구소에서 <성격별 운명전환 90일 실행과정> 참여자를 모집합니다. 자신의 성격을 파악해 운명을 바꾸고 싶은 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http://www.bhgoo.com/2011/index.php?mid=free&document_srl=817707 


[알림3]김글리 연구원이 3월 <네이밍 워크샵>을 진행합니다. 자신의 약점을 통해 강점을 재발견하고 잠재력을 이끌어내 스스로를 재정의하고 싶은 분들은 놓치치 마세요. 새로운 인생을 찾게 될겁니다. http://www.bhgoo.com/2011/index.php?mid=free&document_srl=817647 



IP *.35.2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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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0 14:26:08 *.38.70.8

하모, 재키가 누군데!

그대야만의 전략을 잘 정비해서 많은걸 배우고 흡수하며 성장하는

의미있는 박사과정이 될거라 믿어. 아자!


박사공부 시작 추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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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6 22:41:14 *.35.229.12

언니, 고마워요!

논문이 나오는 그날까지 퐈이야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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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1 14:31:44 *.120.85.98

"수면 아래에서 물고 있던 빨대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며 숨쉬기도 수월해지네요."

이 글을 읽는데... 빨대를 물고 있는 유작가의 얼굴이 상상이 되네... 그려. ㅋ

프랭클형, 나도 좋아하는 형이야. 감방에서 고생을 되지게 해서... 인간이 됐어. 암튼 학자로서의 준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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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6 22:42:03 *.35.229.12

그런데 이번주 다시 힘들어졌다. ㅜㅜ

그래도 기운내서 끝까지 가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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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2 14:39:31 *.18.218.234

어머! 대표님, 동탄댁 김리아입니다. 기억하실런지? 변경연 11기 지원했다가 대표님 글을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너무 간만에 문자를 드렸더니 이미 다른 사람의 폰이더라구요. 안부인사 남겨요. 여전히 알차고 충실하게 사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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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6 22:42:51 *.35.229.12

어머, 그 김리아가 이 김리아였군요. 11기 연구원 합격 축하해요.

조만간 볼일이 있을겁니다. 곧 연락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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