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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8일 00시 06분 등록

여러분은 생존기술이라고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나요? TV에 방영되는 ‘정글의 법칙’에서처럼 오지에서 살아남는 대단한 것이 연상되나요. 주연배우 김병만님은 놀랄만한 갖가지 재능을 발휘합니다. 불 피우기, 사냥, 나무 오르기. 야자수 따기 등. 프로그램을 위해 직접 스킨스쿠버, 집짓기 수강까지 섭렵했다고 하니 입이 벌어집니다.


생존(生存).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말 그대로 살아있음 또는 살아남음을 뜻합니다. 이 같은 생존에는 앞에서 언급된 어려운 것만이 있는 건 아닙니다.

마늘님에게 칭찬을 듣습니다.

“요사이 사람 구실 쫌 하네요.”

집안일을 열심히 할 때를 말함입니다. 경상도 남자의 한사람으로 어릴 적부터 귀하게 성장했습니다. 물 한 모금 손에 묻히지 않은 채 아니, 할 생각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의례히 남자와 여자의 할일을 구분하게 되었고 이는 그러려니라는 의식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결혼을 하고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맞벌이를 함에도 가사는 당연히 아내의 몫으로 여겼었죠. 비즈니스로 술판을 밤늦도록 몰두한다는(?) 명목으로 집에 와서는 대접받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었습니다.


명절을 앞둔 어느 해. 올해는 제사 음식을 시장에서 구입하자는 그녀의 말에 발끈하였습니다. 모쪼록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데 안 될 말이지요. 처음으로 팔을 걷어 붙였습니다. 전, 잡채, 탕국, 나물, 생선……. 도우미의 역할임에도 허리가 휘도록 아프고 다리가 저려옵니다. 거실 가득 잠긴 식용유 냄새와 개수대에 넘쳐나는 그릇과 접시들. 똑같이 힘든 돈벌이를 하면서 집안일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음을 그제야 깨닫습니다. 왜 아내가 그런 제안을 했는지 이해가 되고, 개과천선까지는 아니지만 이제부터라도 솔선수범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합니다. 그렇다고 요리를 직접 하는 건 아직은 아닙니다. 쌀을 씻어 밥을 하고 상추와 깻잎을 흐르는 물에 한 장 한 장 씻어냅니다. 전날 냉장고에 넣어둔 남은 음식이며 국을 데우고 식탁에 가지런히 정렬. 그리고 설거지. 무조건 퐁퐁만 많이 쓰면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환경을 생각한 물로 행구는 팁, 마치고나서의 깨끗한 물기 제거 등 정리 에티켓도 배웁니다. 쉬운 게 없습니다.


주말. 낮잠도 자고 한가로이 쉬고 싶지만 손놀림은 더욱 바빠집니다. 창문을 열어 환기와 함께 청소기를 돌립니다. 요와 이불도 바깥바람을 쐬어주어야겠죠. 성가시지만 해야 할 일. 한주를 거르면 집안 구색은 말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서 좋은 소리만 듣는 것은 아닙니다.

“창문틈새 먼지까지 제거해야지요.”

“바닥에 물걸레로 한 번씩은 닦아줘요.”

보이는 면만 임하는 어수룩한 남자의 행위가 미덥지 많은 않겠지요.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하였는데. 요구사항이 추가될시 부아가 치미기도 합니다.

화장실. 고무장갑으로 무장. 락스를 풀어 물때를 수세미로 박박 씻어냅니다. 예전 어르신 분들이 빨래 방망이로 두들겼던 심정이 이해가 되네요. 욕조, 타일, 세면대. 머리카락을 줍고(여인네들 머리카락은 어찌 그리 잘도 빠지는지요), 변기에 쌓인 분비물을 애써 닦다보면 한겨울임에도 이마에 땀이 홍건해집니다.

빨래 차례가 되었습니다. 20세기 문화를 바꾼 인간의 3대 발명품중 하나인 세탁기를 이용하는 것이지만 여기에도 절차와 구분이 필요합니다. 삶는 빨래와 일반 옷, 이불, 흰 색옷 등. 세재와 유연제를 넣고 버튼을 누른 후 돌아가는 기계음을 듣다보면 서울 상경해 자취 때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한겨울 뜨거운 물이 나오질 않음에도 찬물에 속옷이며 외이셔츠를 빨래판에 밀었었지요. 빨갛게 된 손을 입김으로 호호 불어가며. 세월의 생채기가 담긴 당시의 나무빨래판. 나름 고생한 상징물로 남겨두었었는데 흉하다고 어느새 내다버렸네요.

작업에 허리가 아파 하늘 향해 올려다보니 그리운 얼굴이 그려집니다. 생계를 책임졌음에도 집안일까지 해내신 어머니. 자식들이 거들지 않음에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괜한 죄송스러운 마음에 울컥 입니다.


최근 혼밥, 혼술의 유행과 독신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늘어납니다. 편리한 세상 인스턴트 용품으로 대신하기도 하지만 더불어 스스로 처리해야하는 독립의 중요성도 대두됩니다. 가사노동이 아닌 생존기술. 세상이 변해감에, 아내를 위해 아니, 나이 들어 눈칫밥을 먹지 않기 위해 자발적 일어서야하는 남성들의 시대입니다.


부부가 살다 한쪽 사별이후 남녀 생존기간에서 높은 비율은 여성이 차지합니다. 가벼이 여겼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생존기술을 평소에 습득하고 갈고 닦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음식 만들기, 청소, 설거지, 빨래 등. 튼튼한 기본 이것이 수반되지 않을시 겉멋만 들은 것들은 쉽게 무너집니다.

테스트를 하나 해볼까요. 흰 종이와 펜을 준비 집을 그려봅니다. 웬 뜬금없는 집 그림이냐고 하겠지만 그림 실력을 보고자함은 아닙니다. 어느 부분부터 그리셨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붕부터 손을 댑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실제로 그렇게 집을 지으면 사상누각(砂上樓閣)이 될 텐데 말입니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결과물이겠지요.

신영복님의 <담론>에는 노인 목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집 그리는 순서가 달랐는데 주춧돌부터 시작해서 지붕을 맨 나중에 그렸다고 합니다. 이에 저자는 엄청난 충격을 받아 ’일하는 사람은 집 그리는 순서와 집 짓는 순서가 같구나. 그런데 책을 통해서 생각을 키워온 나는 지붕부터 그리고 있구나. ‘라는 자각을 얻었다고 합니다.


생존기술. 특별한 능력이 요구됨은 아닙니다.

생활의 작은 훈련 그것입니다.


‘많은 손님들을 만나면서 깨달은 것은 남자 손님들 대부분이 우리나라 가부장제도의 피해자들이라는 점이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음식 만들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등의 ’생존기술‘을 배우는 것을 등한시하다 보니, 어머니나 아내 혹은 돌봐주는 여자가 없는 상황에 처하면 제대로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오로지 바깥일을 잘해서 돈만 잘 벌면 된다고 생각하여 살다가 치열한 경쟁에 부대껴 실패하고 좌절해 술과 도박에 빠지고, 가족에게 화풀이하다 결국 가정이 깨지고 아무도 받아주는 이 없이,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겨운 형편이 되는 것이다.’

- 서영남 <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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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7 08:47:16 *.145.103.48

생존기술.

형수님에 대한 애틋함과 등쌀 속에서 갈등하며 쌓아가는 생활 속 작은 훈련.

저는 간이 배 밖에 나온 수컷이라, 나중에 '밥'은 사먹을 작정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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