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뚱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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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보이기 시작한 남자
11기 [뚱냥이] 장성한
나는 꽃을 싫어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무관심하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무관심하다 보니 그냥 싫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꽃이 예쁘다고 말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꽃놀이를 간다는 것은 내 인생에 없다고 생각했다. 꽃이 주는 즐거움에 대해 역설하는 사람을 애써 외면하기도 했다.
꽃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진 내가 꽃을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여자는 보통 꽃에 비유된다. 맞다. 여자는 꽃이다. 나는 여자를 극도로 좋아한다. 그런데 꽃은 싫어한다? 일단 논리적으로 앞, 뒤가 맞지 않는다. 그런데 꽃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꽃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래, 일단 보자. 뭘 봐야 사랑을 하건 혐오를 하건 할 거 아냐!’
그래서 꽃을 보기 시작했다. 조금은 야릇(?)하게 보기로 했다. 왜? 꽃은 여자니까. 꽃을 유혹해 보기로 작심했다. 가만히 꽃을 보고 있는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꽃은 항상 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웃는 모습, 우는 모습 모두 지켜보았다. 나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꽃은 자기를 봐 달라고 나에게 항상 소리치고 있었다.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래 알았어. 그리고 미안해. 그래서 지금 보러 왔잖아.’ 꽃은 언제부터 나를 짝사랑하고 있었을까. 나를 언제부터 몰래 지켜보고 있었을까. 꽃은 나를 지켜보던 관음증 환자였다. 그 만큼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내가 계속 보고 있으니 기분이 많이 좋았나 보다. 가지를 강아지 꼬리처럼 흔들었다. 귀여웠다. 강아지들은 주인이 너무나 반가우면 소변을 지린다. 벚꽃나무도 강아지가 소변을 지리듯 꽃잎을 흘린다. 내가 그리 좋은가 보다. 벚꽃은 가부끼 화장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한 화장보다 거부감이 없고 자연스럽다. 개나리는 몸이 안 좋나 보다. 나보다 더 누렇게 떴다. 꽃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부끄러움이 많은 녀석인가보다. 얼굴이 붉게 홍조를 띤다. 아카시아껌 향이 난다. 아카시아는 5월이 개화라는데, 향이 나니 그냥 아카시아겠거니 하고 보았다. 내 귓속에 아카시아향 입김을 불어넣었다. 간지러웠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심한 애정행각은 풍기문란인데 다행히 꽃이랑 하니까 신고는 걱정되지 않았다.
꽃과의 달콤한 데이트 몇 번 했다고 바로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다. 한 여자를 만나 사랑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과 같다. 중요한 것은 관심이다. 사랑은 관심에서 시작한다. 이 사람이 무엇을 즐겨 먹는지, 무슨 옷을 입는지, 눈썹은 짙은 지, 콧망울은 둥근 지, 눈동자는 갈색인지, 입술은 붉은 지 열심히 관찰하고 궁금해 해야한다. 그리고 눈을 감아도 그 사람 얼굴이 떠올라야 한다. 살냄새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좋아하는 것을 선물하고,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꽃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꽃을 사랑하기 위해서. 꽃들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기분이 좋은 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보았다. 그리고 보였다. 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랑을 할 수 있는 기본조건은 갖춰진 셈이다. 그리고 언젠간 꽃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단, 조급해 하지 않을 것이다. 성급하게 막 사랑하지 않겠다. 지금의 관심이 그리고 바라봄이 자연스럽게 사랑이 되도록 할 것이다.
나는 행복해지는 것을 원한다. 행복해 지려면 과거의 나를 죽이고 변화해야 한다. 행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변화해야 된다고 말만 했다. 변화해야 된다고 생각만 했다. 물론 생각도 중요하다.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그런데 나의 변화는 과거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단지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만 변했다. 이것은 진정한 변화가 아니다. 과거에 내가 갖고 있던 사고도 변해야 한다. 미련없이, 과감하게 죽여야 한다. 그래서 사람을, 사물을, 세상을 보는 눈과 생각이 변화해야 한다. 이것이 나의 진정한 변화고, 행복해지는 길이다.
그 첫 번째 프로젝트가 바로 꽃을 사랑하는 것이다. 과거에 나는 꽃에 무관심하고 싫어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 위해 꽃을 사랑해 보련다. 단,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가식으로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꽃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꽃이 주는 즐거움을 끝내 모른다면 포기할 것이다. 일부러 하는 것은 진짜가 아니다. 그러나 왠지 자신이 있다. 꽃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이 든다. 왜냐하면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꽃의 유혹이 싫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나와 꽃은 생면부지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고 있었고, 항상 마주치고 있었다. 이것은 필연이고 운명이다. 그렇기에 꽃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제야 나는 꽃이 보이기 시작한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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