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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3일 17시 28분 등록

흙신발 방랑자, ‘떠남과 만남의 저자 구본형을 여행하다.

 

여행은 선동되었다. ‘떠남과 만남을 읽으며 나 역시 남도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결국 옛 친구와 충동적으로 약속을 잡아 3 4일 남도 어딘가(아직 목적지는 정하지 않았다)걷기로했다. 충무공 이순신의 탄신일인 4/28, 나는 옛 친구를 만나’ 충무공의 숨결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는 남도로 떠날것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통해 많은 이들로 하여금 회사를 때려 치게 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렇게 또 하나의 독자를 남도로 보내고 만다.

 

흙수저의 대척점에 있는 신분은 금수저가 아니다. 흙신발이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그 귀한 흙을 밟으며 시간에 개의치 않고 걸을 수 있는 여행을 하는 자가 있다면 시간재벌에 팔자가 늘어진 한량이라 하겠다. 현대인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신분 아닐는지. ‘먹이를 주는 손을 뿌리치고 구두를 벗어 흙신발로 갈아 신은 저자는 인간이 만든 조직을 떠나 한국의 자연이 길러낸 위대한 정신을 만나고자 한달 반의 남도여행길에 나선다. 이렇게 홀로 자연 속을 느리게 걸으며 과거의 정신을 만나는 여행을 기획한 저자는 내면의 오지를 깊이 탐험하고 정신적 지평을 넓힐 것을 기대한다. 그의 첫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1998)의 시작점은 불 타는 갑판으로부터의 절박한 뛰어내림이었다. 반면 세 권의 책을 내고 퇴사 후 집필한 떠남과 만남’(2000)에서는 소의 발걸음처럼 느긋한 저자의 발걸음을 느낄 수 있다.  

 

외관상으로 보면 조용하고 얌전해 보이는 저자는 조용한 선동가의 기질이 있는 듯 하다. 가만히 서재에 앉아 차를 마시며 글만 읽고 쓸 것 같은 선비형의 자태이나 그 안에는 용암처럼 역마살과 방랑자의 피가 흐르는 모양이다. 그는 존재하지 않아도 그의 생각은 책으로 남아 여전히 독자를 선동한다. 조직에서의 떠남을 선동한 그는 이제 일상에서의 떠남을 통해 내면의 오지를 탐험할 것을 선동한다. 흙을 밟으며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내면의 오지를 여행한 기록. 떠나고 싶은 자, 선동되고 싶은 자, 그의 떠남과 만남과 함께 흙신발에로의 신분상승을 꿈꿔보자.

 

함께 빛나는 별자리 같은 친구, 윤광준

 

윤광준은 1998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통해 구본형의 영혼을 먼저 만나고, 9년이 지난 2007년에서야 현실에서 직접 만나 서로의 인생궤도를 함께 한다. 그들의 상호보완적 관계는 구본형이 세상을 떠나는 2013년까지 6년간 진하고 깊게 이어진다. 그들이 함께 한 결과 중 하나가 떠남과 만남개정판으로 윤광준은 이 책에서 사진을 담당한다.

 

사진작가 윤광준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회사를 그만둔 후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읽고 큰 충격과 자극을 받았다고 하니 아마 그가 매일같이 글을 쓰며 단련을 한 배경에는 구본형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로 인한 결과인지, 윤광준은 회사를 그만둔 후, 10여 년 동안 아홉 권의 책을 쓴다. 구본형이 매년 한 권의 책을 내는 것과 그 양상이 같다. 매일의 훈련을 통해 사진작가 윤광준은 글 쓰는 사진작가로 거듭날 수 있게 되었다.

 

조용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많은 구본형과 달리 윤광준은 좀 더 거침없이 인생을 즐기는 사람으로 보인다. 김정운 교수가 언급한 그에 대한 소개로 이를 짐작할 수 있겠다. ‘머리에는 특이한 모자, 얼굴에는 동그란 안경, 어깨에는 사진기 한 대 걸치고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전화하면 항상 지방 아니면 외국이다. 사진 찍으러 갔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놀러 다니는 게 분명하다.’(김정운, 남자의 물건, p. 132)

 

이 둘의 관계를 보자니 잘생긴 '작가 이상'과 곱사등이였던 화가 구본웅의 우정이 생각난다. 화가 구본웅은 글에 대한 재능과 애정이 있었지만 그림을 더 사랑했고, 그의 친구인 작가 이상은 그림에 대한 재능과 흥미가 있었지만 선을 넘지 않는다. 이렇게 각자의 재능을 존중하고 선을 넘지 않으며 이상은 구본웅에게 시를 써주고, 구본웅은 이상에게 초상화를 그려준다. 구본웅이 그린 친구의 초상'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상'의 초상화는 이렇게 탄생한다.

 

빛나는 재능으로 혼자만의 인생이 빛나는 것이 아니라 재능과 기질이 상호보완하여 함께 빛나는별자리 같은 우정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생에서 얼마나 큰 축복일까. 이렇게 멋진 관계의 결과물인 떠남과 만남개정판에는 구본형 지음, 윤광준 사진이라는 별자리 이름이 새겨져 있다.


구본웅 친구의 초상.jpg

 

<구본웅, 친구의 초상>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귀

 

4 자연 속에서 시간을 넘어 내가 만나고 싶은 것은 이미 이곳을 살다 간 사람들의 안으로 쌓여 넘쳐나는 마음이다. 그들의 이야기로부터 나의 이야기로 바뀌어가는 변곡점에 내가 있고 싶다. 그때 생각은 없어지고, 마음만 남을 것이다.

 

개정판 서문: 날마다 두려움 속을 걸었던 그때 그곳들

 

5 내 정신은 야성을 잃어버렸다.

야성이라는 말은 항상 나를 정신차리게 한다.

 

6 커다란 배낭을 메고 매일 25킬로미터 이상을 걸었다.

나도 계속 걷고 싶다. 정신의 해감이 이뤄질 것이다. 자연의 기운이 스며들 것이다. 조만간 걷자.

 

6 나는 비로소 낮술을 마실 수 있는 건달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나는 이미 입문했다. 다만 건달과 한량의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관건이다.

 

6 빈둥거리는 건달의 일상을 즐길 수 있는 시기는 지금밖에 없으니 이 좋은 시기를 절대 쉽게 놓치지 말라고 했다.

6 새로운 세상으로 나올 때는 새로운 마음으로 나와야 한다.

7 좀 배고프면 어떠냐.

좀 배고프면 어떠냐는 다소 약한 주문이다. 나의 주문은 죽기밖에 더하겠어

 

7 때마다 주어지는 밥이 사슬이지 않더냐. 굶주림을 두려워하면 들판의 이리가 되지 못한다. 이런 마음이 나를 지배할 때까지 나는 매일 걸었다.

그런 절박함, 헝그리 정신이 결여되어 현재의 나는 들판의 이리는 아니고....

 

7 나의 길을 묻는 순례길이었다.

산티아고 가고 싶지만 거기까지는 아니어도 일단 걷자.

 

9 미래를 너무 두려워하지 않도록 미리 두려움 속을 걸어두게 한 장소들이었다.

두려움의 예방접종, 두려움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자.

 

9 책 한권이 생명을 받아 독자의 가슴으로 사무치게 날아가기 위해서는 작가 혼자만의 힘으로는 잘 안 되는 일이다.

지금은 이 세상에 안계신 분의 글이 내 마음으로 날아와 나로 하여금 떠나게 하니, 과연 생명을 받은 책이다. 나도 이렇게 영혼을 담은 그릇으로서의 책을 쓰고 싶다.

 

초판 서문: 아주 천천히, 달팽이처럼, 온몸으로

 

10 걷는다는 것은 땅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땅과의 교감이다. 흙은 생명이다. 그 힘은 끓는 마그마를 거쳐 용천을 타고 지상으로 분출된다. 그리하여 산이 되고 들이 되고 논과 밭이 된다. 그리고 길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일상 속의 비일상을 꿈꾸며 배낭 한 개 짊어지고 대문을 나선다. 일상에 지치면 오래 전 젊음이 시작될 때처럼 길로 나서고, 그 길에 지치면 다시 일상이 기다리는 그리운 불빛으로 되돌아온다.

 

11 일상은 우리가 매여 있는 질서이다.

 

11 여행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며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는 것이다.

제목만 늘어놔도 말이 되다니.

 

12 빠릿빠릿한 상인의 눈매

한 때는 그런 눈매를 가지고 싶었다.

 

12 마음 속의 더 먼 변경을 찾아 다시 떠나는 것이다.

 

12 오직 버리기 위해 떠난다. 소유한 것이 많으면 자유로울 수 없다. 매일 걸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배낭 하나도 무거운 짐이다.

나그네는 짐이 가볍다.

 

13 20년간 나를 지배해온 관습/ 평일 대낮의 자유/ 20년 만에 주어진 한 달 반의 여행

 

1장 매화향 가득하니 봄이다!

 

23 기차는 늘 시간 속을 달린다.

기차의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은 과거의 장면들이 스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때가 있다. ‘기차는 늘 시간 속을 달린다시적이고 마음에 와닿는 표현이다.

 

23 공간적 자유

24 나무는 참을 수 없이 간절하고 열렬해지면꽃이 된다. 그래서 이 봄에 가장 먼저 뜨거워지는 매화로부터 시작하려고 했다.

 

24 두 번째 인생은 절대로 바쁘게 보내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인생은 절대로 게으르게 보내지 않을 것이다. 좀 더 뜨겁고 신나게 보내야지. 춤과 노래에 능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남미에서 태어나면 좋겠어요.

 

24 배운 것을 통해 기여할 것이다.

 

24 내가 만족한 삶만이 이 땅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만족한 삶이 어떻게 기여와 공헌으로 이어질 지 그 연결고리를 고민해보자.

 

25 단언하건대 비효율적으로 한 달 반을 보내게 될 것이다

나의 최근 1-2년 화두였다. 쓸데 없는 것, 쓸모 없는 것에 대한 애정. 비효율적으로 한 달 반을 보내겠다는 선언, 귀엽고 멋지다.

 

25 인생이 전부 경제와 경영일 수 없는 것이다.

25 순수한 배움 자체가 즐거운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이 중요하다.

25 지리적 오지란 별로 없다. 마음의 오지가 더 넓다.

 

25 나를 위해 아낌없이 시간을 쓸 예정이다. 햇빛이 들과 밭에 내리듯이. 산과 강과 바다에 쾅쾅 쏟아지듯이. 거기에 무슨 효율이 있는가?

그러네. 쏟아지는 햇빛, 넘실거리는 파도. 거기에 무슨 효율이 있는가.

 

고흥반도(낙안읍성/ 임경업 장군)

 

32 마치 건물을 액자로 삼아 초봄의 아름다운 풍광이 그려진 듯 하다

33 참 편안한 무관심이다.

33 순하다는 것은 자신도 편하고 남도 편하게 해준다.

36 후손치고 선조의 덕을 보지 않는 것들이 없다. 죽은 껍데기 위에 새로운 생명이 자란다.

37 화강암이 가지는 억센 뼈다귀 맛과 부드러운 살 맛이 잘 섞여 있다.

 

37 자연 속을 거닐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피곤함이 사라지는 것은 내가 그들로부터 많은 에너지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힘보다 자연과 신의 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은 자연에 가깝다.

그렇구나. 보이지 않는 에너지. 그 에너지가 깃들 수 있는 통로로서의 느리게 걷기. 좀 더 자연을 자주 그리고 많이 접해봐야겠다. 그럴수록 신과의 교감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40 또한 천천히 지나며 동백나무의 살갗을 만져볼 수도 없고, 불현듯 코끝에 와닿는 달콤한 꽃향기를 맡을 수도 없다.

촉각과 후각은 속도가 놓치는 것

 

41 한국인은 산과 같다. 국토의 70퍼센트 이상이 산인데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둘기장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마음속으로 깊이 걸어 들어가면 산 남새가 난다.

이건 잘 와닿지 않음. 허리가 끊어진 반도에 갇혀 살아서인지 마음속으로 들어가면 금새 막다른 절벽이 나타나는 거 같은데. 물론 산이 많은 나라에서 사는 국민으로서 어떤 특징이 있긴 한 거 같은데 아직은 모르겠다. 네팔에 가면 한국인들 진짜 많긴 하더라.

 

42 옛날같지 않은 정신

 

42 기대 앉아 정신을 차릴 수 있는, 변하지 않는 기둥들을 향한 그리움을 풀 곳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람들이 늘 잊고 있는 것은, 변화는 변화하지 않는 것들과의 균형이라는 점이다.

오래된 단골가게를 가질 권리’. 신도시는 특히나 오래된 단골가게가 존재하기 어렵다.

 

43 바닷바람에 지워지고 말았다.

 

45 모든 잔인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들의 희생과 어려움 그리고 불행 위에 자신의 기쁨을 쌓는다는 것이다.

 

지리산 불무장등 무착대

 

47 지리산 속의 설악 같다.

어디지? 가봐야지.

 

49 떨어지든 올라가든 동양에서건 서양에서건 우리는 별이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고달파도 우리는 별인 것이다.

 

49 그것이 없으면 세상이 망하는 그런 엄청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행복하다.

회사 다닐 때 나의 목표는 내가 없어도 회사가 잘 굴러가게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휴가를 내고 여행을 갈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것을 목표로 일을 하니 일 잘하는 사람이 되더라.

 

49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임이 좋다. 별처럼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또 별처럼 빛나며 꿈꾸는 사람임이 좋다.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빛나리아.

 

52 그러나 근본을 잊으면 그것은 더 이상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변질이며 타락인 것이다.

역변을 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근본을 잊어서일까? 최근의 김문수와 홍준표를 보면 그들의 역변은 어찌 설명해야 할 지. 근본을 잊은 변화는 변질이고 타락이다라는 말은 그들에게 딱이다.

 

53 유혹도 수양에 도움이 된다. 사람 사는 곳에 어찌 진공 속의 결벽만이 득도이겠는가.

 

다압리 매화마을

 

57 늙은 모습이 아름답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여사의 늙은 모습은 진짜 아름답더라.

 

57 노욕에 지지 않고 작은 일에 역정을 내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오죽 좋으랴.

나는 왜 사소한 일에 분노하는가.

 

59 매화의 향기는 그러나 코로 맡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귀로 듣는 향기이다.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만큼 마음이 잔잔해져야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촉각과 후각은 속도감이 없을 때 가능하다. 마음의 속도 역시 느리고 잔잔할 때 향기를 느낄 수 있구나.

 

59 향기가 후각적 인지의 대상이 아니라 내면적 마음의 흐름에 실린다는 것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60 좋은 변화는 주변에서부터 핵심을 향하는 내면화 작업이다.

 

운주사

 

61 설화와 기원이 이 절만큼 간곡한 곳 또한 없다.

 

65 우리 사회는 휴식을 창조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휴식을 게으름과 소비로 인식한다. 한 개인이 이러한 사회적 시류에 반하여 살아가기는 어렵다. 그래서 사회의 전반적 수준 상승이 중요한 것이고, 지도층의 모범이 절실한 것이다.

65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하고 있는 사회는 쉬어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부가가치가 낮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몸이 고단해야 겨우 먹고 살 수 있다. 그들에게는 한 달쯤의 휴가가 일상적인데 우리에게는 이례적인 것이다.

 

66 휴식과 놀이를 창조로 인식하지 못하는 문화적 결핍은 기계적 번잡만을 양산할 뿐이다. 먹고살기는 하겠지만 미래가 없다.

 

69 이 봄이 마지막 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르신들은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어머님은 이번 김장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예감에 마지막 김장을 비장하게 하신 적이 있다. 동짓날 나에게 팥죽 쑤는 법을 알려주려고 오셨을 때 역시 비장하셨다. 물론 계절의 변화마다 그런 비장함도 반복되고 나의 노동도 반복된다. 오늘은 어머님이랑 정구지 무쳤다.

 

70 인생은 개인의 변천사다. 굽이굽이 후회가 있고 깨달음이 있다.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는 숨막히는 즐거움이 있고, 너무나 부끄러워 잊고 싶은 순간이 있다.

숨막히는 즐거움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2장 옛 사람의 마음에 취하다

 

적벽

 

74 그리고 옛사람들이 왜 술과 안주를 챙겨 달밤에 배를 탔는지, 그리고 그 일이 아주 그럴 듯한 놀이인 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담배 연기 자욱한 밀폐된 공간에서 술을 마시거나 얼큰한 김에 노래방에 가서 목놓아 노래 몇 곡을 불러보는 것이 고작인 우리들이 따라갈 수 없는 유희가 아닐 수 없다.

 

해남 두륜산 대흥사

 

83 먼 과거를 향한 시간과 먼 미래를 향한 시간이 각각 원의 둘레를 따라 거꾸로 흐르다가 먼 어딘가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그곳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 사라지는 그곳에 혹시 나지 않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영화 너의 이름은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 표현이다. 시간과 공간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묘하게 만날 듯 만나지 않을 듯한 새로운 차원의 공간.

 

강진


89 강진은 햇빛 찬란한 곳으로 영랑의 생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90 반쯤 벌어져 있는 상태에서 장렬하게 목이 꺾여 꽃봉오리 전체가 낙화한다. 비장하다.

꽃 하나를 봐도 아름다움을 뽐내는 모습도 다양하고 그 최후의 양상도 다양하다. 내게 어울리는 죽음은 무엇일까. 예전에 대부분의 작가들은 가슴을 부여잡고 피를 토하며 글을 쓰다 죽었지. ‘이기택, 어제까지도 자서전 집필밤 늦게까지 탈고 작업 후 운명’. 이게 내가 최근 본 가장 부러운 생의 마지막이었다.

 

90 강진다운 햇빛이 들길에 쏟아져 내리고, 들과 언덕은 벌써 놀라운 활력으로 가득 차 있다. 봄날은 힘을 주체하기 어렵다. 나른한 가운데 구석구석 온몸이 살아나는 듯하다.

청춘이 이러하지. 그래도 아직은 사그러 들지 않았다. 나도 다시 자연의 에너지로 충전해서 놀라운 활력을 찾아봐야지, 그러니까 햇빛을 받으며 흙길을 걷자.

 

91 고개를 끄덕거리며 잠시 조는 것 또한 한가로움 아닌가.

 

93 (혜장에 대하여) “정신에 환하고 입에 익어서 한 번에 수십수백 마디를 외웠는데, 마치 공이 언덕에서 구르고 병이 물을 쏟는 것과 같이 도도하게 그칠 줄을 몰랐다. 나는 크게 놀라 그가 과연 숙유宿儒라는 것을 알았다

청산유수, 푸른 산에 콸콸 흐르는 물과 같은 자연스러움과 부드러움. 내 중국어가 그랬으면, 내 글이 그랬으면.

 

95 좋은 사람을 만나 알고 지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다산초당

 

97 입고 있는 검은 바지에 햇빛이 쏟아져 봄볕을 쬐는 맛이 쏠쏠하다. 햇빛을 즐기며 기둥에 기대 앉아 바람소리를 듣는다.

빨래를 햇빛에 말려본 지 꽤 되었다. 햇빛에 바싹 말린 이불에서 나는 햇빛 냄새의 따듯함. 봄볕을 쬐는 맛, 좋으셨겠다.

 

97 한가함이다. 정신을 놓아두고 마음을 놓아둔 것이 얼마 만인가?

97 혼은 잠시 여유로운 산책을 하고 있는 것이다.

104 마당에는 솔방울을 태워 차를 달이던 바위가 놓여 있다.

104 총명하고 심지가 바른 선비 하나가 역시 이 시간에 이 곳을 거닐고 있었을 것이다.

 

104 “심서라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백성을 다스릴 마음은 있지만 몸소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지은 것이다

 

105 그가 정치판에서 멀리 물러나와 이곳에서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우리 역사는 위대한 학자를 한 사람 가지게 되었다. 그는 경전에 진력하여 18년 동안 230권을 저술하였다.

아니 그럼 한 달에 한 권을 쓴 건가??? 아 진짜 다산多産이네.

 

105 시의時宜에 적합하도록 힘썼다.

 

105 “역을 익히고 예를 연구하여 모든 경서에까지 미쳤는데, 한 가지를 깨달을 때마다 마치 신명이 말없이 깨우쳐주는 것 같아 남에게 고할 수 없는 것이 많았다

아버님이 남편한테 한 말, “침을 놓을 때 신명이 나야 한다.” 어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려면 그 분을 만나야 한다. 신명이 와야 한다. 접신해야 한다니까.

 

106 그의 공부는 신명의 도움을 받아 그 깊이를 알 수 없게 되었다. 몸과 영혼을 다하여 한 가지 일에 깊이 몰입하니 원래 총명한 사람의 깨달음이 그 끝을 알 수 없게 되었다.

한 인물의 소개가 이렇게 멋질 수가.

 

칠량 봉황리

 

107 남도의 봄은 동백과 바람이 말해준다.

109 가업을 계승하려던 생각을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109 자기 아버지는 40년간 옹기를 구워왔지만 누구도 그만한 전문인으로 대우해주지 않는다고 하며, 도자기는 예술이고 옹기는 예술이 아니라는 시각이 자기는 싫다는 것이다.

 

110 제대로 만든 숨쉬는그릇이 음식의 제 맛을 살려내길 진심으로 희망한다.

 

110 하나의 일을 아직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방황이다. 어떤 일에 깨달음을 얻어 밝아지면 자신이 곧 그 일의 미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일을 아주 잘하려면 타고난 재능과 각고의 노력과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통제가능한 것은 각고의 노력이다. 타고난 재능과 하늘의 도움은 나의 통제 밖. 그러니 매일 꾸준히 기계적인 습관을 들이자.

 

고금도 충무사

 

114 전라남도의 섬을 돌다 보면 충무공의 숨결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섬과 섬이 만나는 좁은 길목에서는 으레 그의 전략적 안배가 치밀했음을 보여주는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나라에 왜군의 발이 디딜 수 없도록, 그리하여 어느 땅이든 그들의 잔인과 포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애쓴 집요하고 세밀한 배려가 없는 곳이 없다.

 

115 보리는 아름다운 머릿결을 가지고 있다. 바람이 보리밭 위를 지나면 파도처럼 물결치는 초록빛 흔들림이 여간 곱지 않다.

 

115 따가운 햇살에 뭉클뭉클 살아나는 붉은 흙들의 건강한 발기를 보지 못하고 봄이 왔다고 하지 말다.

서산의 붉은 흙을 보고 흥분했었지. 그래서 서산간척지를 사고 말았지.

 

117 그때의 정황을 이야기해줄 만큼 우리는 아직 친해지지 않은 모양이다.

120 그에게서 최선을 다하는 한 인간을 보았기 때문이다(진린/이순신).

121 하루하루를 낭비하지 마라.

121 그 하루를 기록하여 그날이 그날로서 존재함을 잊지 않았다.

 

121 미래를 스스로에게 유리하도록 만드는 개척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만큼 확실한 승리는 없다.

 

마량의 밤

 

123 그렇게 얼고 녹고 다시 얼고 녹으면서 마침내 한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혹은 그녀가 또한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움이며 질투이며 욕설이며 상처이다.

 

124 그 남자는 4,000년 동안 여전히 그러고 있다. 아직도 돌려달라고 그랬다가 다시 무르곤 한다. 변덕스러운 것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다.

 

124 (토지의 월선과 태백산맥의 소화) 그녀들의 사랑은 모두 기다림과 그리움 속에서 온다. 함께 살며 몸을 맞대고 일상을 나누는 사랑은 아니다.

 

129 배에서 내린 말들에게 먹이를 주던 곳이라 하여 마량이란 이름을 얻었다 한다.

130 변화에 따라 흥망성쇠도 춤을 춘다.

 

131 아무 격의 없이 돈이 얼마나 많으면 그렇게 여행을 다니느냐고 부러워한다.

사실 여행은 돈의 문제가 아닌데. 선뜻 여행을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핑계와 변명이 돈인 경우가 많다. 여행은 마음, 시간, 건강이 우선되어야 하고 돈은 제일 마지막 실행조건일 뿐이다. 세계여행을 한 나의 말레이시아 친구의 책 제목은 그래서 再穷也要去旅行(아무리 가난하더라도 나는 여행을 할거야)였다.

 

131 예전에는 장날 하루 벌어 닷새를 먹고 살았다는데

사실 매일 일할 필요는 없다. 1 3개월 일해서 남은 9개월을 먹고 살고 놀 수 있는 삶이 꿈만으로 존재하지 않게 할 터이다.

 

134 맑은 햇빛이 좋고 바다가 좋고 필부들이 살아가는 일상이 좋다. 지저분한 거리와 어지러운 간판이 언제 깨끗해지나 하지만 살림살이라는 것이 늘 그렇게 지저분한 것 아니겠는가.

 

관산 방촌리


136 따지고 보면 실가닥처럼 가는 우연이 서서히 가닥을 풀어가다가 어찌할 수 없는 필연으로 변하는 것이 인간사 아니던가.

 

137 인종 4 1126년에 왕은 이자겸의 두 딸을 내치고 임씨를 맞아 연덕궁주로 삼았다.

139 얼굴이 허물어지도록 웃었다/ 동무란 말을 참 오랜만에 듣는다

139 언어도 이데올로기에 따라 변한다.

 

139 초록빛 잎과 붉은 꽃잎을 가진 동백나무 하나가 아군도 되고 적군도 된다. 인간의 어리석음에 끝이 없다.

 

3장 바다와 바람 그리고 길

 

장환 일몰

 

146 자기가 한 일에 즐거워하고 그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다. 실속은 하나도 없지만 실속이 뭐 그리 중요한가. 자신이 즐거운 것보다 더 훌륭한 실속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148 이 동상을 볼 때마다 아직도 우리가 앓고 있는 사상적 질환을 떠올리고 끔찍한 심정이 된다. 늘 속이 쓰린 사람은 24시간 자기의 위만 생각하듯이 사상적 질환에 걸려 있는 정치가는 정치적 생명이 위협받을 때마다 언제나 공산당과 빨갱이 그리고 현존하는 남북의 긴장 관계와 이 소년의 죽음에서 연상되는 잔인함을 걸고 넘어진다. 그래서 이 소년은 죽어서도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여기에 이렇게 서 있다. 우리는 초등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있을까?

나도 어릴 적 이승복을 생각하며 울었다. 공산당은 다 괴물인지 알았다.

 

148 같은 논리로 경제적 질환에 걸려 있는 사회는 자나깨나 돈만 생각한다.

148 그러므로 잘못된 가르침은 사회적 위협이다.

149 1킬로미터쯤 더 들어가면 커다란 모텔과 횟집이 나온다.

한국에 교회와 모텔과 횟집이 많은 이유에 대한 연구논문 없나? 특히 바닷가는 무조건 모텔과 횟집이다. 삼면이 바다인지라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 해안선이 횟집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150 참 일찍도 잔다.

야생적인 삶. 야행성은 도시적 삶이다. 나도 서서히 일찍 자야지, 그렇게 나의 야성을 깨워야지.

 

천관 초야

 

152 감각적 재간이 거의 없다.

153 전할 능력이 없다.

심상정이 변질된 김문수에 대해 말하길, “태극기 집회에서 박근혜 사수를 외치는 김문수와 함께 했던 대 선배 김문수를 연계해서 말할 능력이 제게 없습니다”. 그 표현이 어찌나 마음 깊이 와 닿았는지. 전할 능력이 없다, 말할 능력이 없다는 그 표현이 주는 무궁무진함 또는 막막함.

 

158 기녀 천관과 천관보살, 천관산, 지제산은 이런 맥락에서 서로 이야기 속에 얽히게 된 듯 하다. 후에 김유신이 천관을 위해 경주 오릉의 동쪽에 천관사를 지었다고 한다.

김유신과 말에 대한 이야기는 알았으나 천관에 대해서는 이번에 알았다. 언제 한번 천관산을 가서 실제 연관이 있었을 지 없었을 지 알 수는 없으나 사람들의 마음 속에 부활한 기생 천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159 자신의 이름과 인연이 있는 이 산을 운명적 귀착지로 삼았을 것이다.

나는 몽골리아나 이탈리아 가서 생을 마감해야 하나. 내 운명적 귀착지는 어딜까. 얼마 전 페이스 북 통해서 한 테스트에 오산이라고 나와서 슬펐다.

 

159 김유신이 세속적 성공을 거두는 동안 그녀 역시 버려짐을 통해 인생을 해석할 수 있는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쓰임과 버려짐. 버려짐을 통한 쓰임

 

159 그녀는 또 하나의 천관보살이 되어 마음의 평화를 찾았을 것이다.

 

159 이곳은 그리움의 산이다. 양근암과 금수굴이 서로 다른 등성이에 있어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이곳은 그리운 사람들끼리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 가득한 산이다.

 

천관산 장천오미

 

161 소나무는 탈속의 멋이 있어 세상을 떠난 은둔자의 허허로움이 있지만 위엄 또한 잃지 않는다.

 

162 수피가 뽀얗고 매끄러우며 군살이 하나도 붙지 않은 탄탄한 몸매를 지니고 있다. 나무 기둥 하나로 매끄럽게 오르다가 지상에서 약 2미터 되는 곳에서 허리를 틀고 우아한 팔놀림으로 가지를 뻗고 있다. 짙고 윤기 나는 초록색 잎사귀를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처럼 흔드는데 그 속에 빨간색 꽃이 많지도 적지도 않기 피어 있다. 밑에는 모가지째 떨어진 꽃들을 뿌려두고.

동백꽃 보면서 그 빳빳한 코팅지 같은 초록잎과 덩어리 째 떨어지는 꽃들, 까만 돌이나 흙을 배경으로 떨어질 때의 색깔의 대비 등 동백은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구나 느끼기만 했는데, 이렇게 멋진 묘사를!

 

163 그런 치유의 은밀한 장소와 시간 없이 어떻게 이 세상을 살겠는가?

유배지와 감옥에서 무수한 독서와 집필이 이뤄진 것처럼 의도적인 은밀한 장소와 시간은 치유와 변화를 위해 필수적이다.

 

163 이곳의 햇빛도 이 산을 떠도는 오래된 이야기도

163 오래오래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운 나무이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아내처럼.

167 장독대 옆의 일상/ ‘암시럽지도 않은일상의 꽃이다.

 

천관산 장안사

 

169 적어도 밥을 먹어야 할 시간에 굶는 사람이나 생물은 없어야 한다. 그것이 경제의 의미이다. 한 사람이 밥을 먹고 있다면 또 다른 사람도 밥을 먹을 권리가 있다. 이것이 평등이다. 평등만큼 같은 세상에 살고 있음을 유쾌하게 만드는 것이 없다.

 

170 내 생각에 꿈이란 지금의 자기 이외의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이다. 현실적 불만족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부러움의 표현이다. 그래서 꿈에는 슬픔이 깃들어 있다. 어쩌면 약간의 질투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이미 되어 있는 사람이 있거나 가지려고 하는 것을 이미 취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172 시작할 때와 같은 초심을 견지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조금 익숙해지면 타성이 붙게 되는데, 그러면 내용은 없어지고 형식만 남게 된다. 이때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불가에서는 이것을 발심이라고 부른다. 발심은 초심보다 어렵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개혁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개혁이 진부해질 때 원래의 개혁으로 되돌아가기가 더 어려운 것과 같다. 인간의 습성이 고려되지 않은 개혁과 혁명은 허구이다. 그것은 학살이거나 기만이거나 지나친 망상이다.

초심, 발심, 하심, 심인 모두 불교용어구나.

가지산 보림사

 

176 원효나 의상이 살았던 시대처럼 불교가 민간의 신앙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갈 때는 재래 신앙과의 제휴와 공존이 필요했을 것이다.

 

176 통일신라 이후에 창건하게 되는 사찰은 용을 몰아내고 그것이 살던 못을 흙과 숯으로 메워 그 위에 집을 짓게 한 것은 아닐까?

 

178 역사적 상상력 없는 역사는 오늘의 일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178 요석궁을 거니는 원효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야 비로소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이 바쁘면 절대로 그 공간에 존재했던 과거 인물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마음이 잔잔해야 매화 향기를 느낄 수 있고, 마음을 놓아야 원효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느리고 고독한 여행에서 가능한 순간이다.

 

179 상원사는 오대산에서 전란 중에 불타지 않은 유일한 절이 되었다(한암/공비토벌작전 중).

 

179 만법귀일의 화엄종 사상을 통일왕국의 주도 이념으로 정립했다. 왕은 곧 부처이고, 귀족은 보살, 그리고 백성은 중생이라는 불가의 위계와 질서는 강력한 통일왕조의 통치체제에 잘 부합되었다. 그러나 8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통일신라는 정치적 내분을 겪게 된다. 지방에서는 경제력에 기반을 둔 호족 세력이 등장하고 사회는 이에 걸맞은 새롭고 다양한 이념을 요구하게 되었다.

 

180 유능한 6두품 이하의 귀족

 

180 “문자에 의지하지 않고(不立文字) 경전의 가르침 외에 따로 전하는 것이 있으니(敎外別傳)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깨우쳐(直指人心) 본연의 품성에 이르러 부처가 된다(見性成佛)”는 선종의 가르침

 

181 깨우침의 능력

깨우침의 능력을 무엇으로 검증할 것인가. 검증할 수 없는 능력이야말로 대단한 능력이다. Priceless

 

181 심인

마음도장. 심인. 요새 적용된다면 매우 주관적이라 안된다고 하겠지.

 

183 “시끄러운 곳을 피하여 조용한 곳을 찾아서 공부해야 한다면 그것은 죽은 공부라고 단정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일을 하며 마음의 공부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184 알고 있는 지식을 소화하여 자신의 인생관과 관련시킨다.

 

185 아주 맑은 물에만 사는 고기들이 노는 물을 바가지로 휘휘 저어 떠먹은 것이 언제적 이야기던가?

 

189 지혜롭고 뜻 있는 훌륭한 사람이 어찌 저 아수라장을 거쳐 선량이 되고자 하겠는가? 피곤한 일이다.

 

189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남녀가 얼굴이 쭈그러들 때까지 만나게 되니 흉허물이 없다.

 

4장 아무 계획 없이 아무 목적 없이

 

192 상징을 빼면 인간의 정신은 빈약해진다. 땅끝의 아름다움은 여기가 반도의 끝이라는 생각 때문에 비장하고 단호한 정취를 갖게 만든다.

 

194 이어 송시열이 제주로 귀양 가다가 풍랑을 만나 잠시 보길도 머물며 바위에 새겨놓았다는 시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시가 바위에 새겨져 당시의 마음이 아직까지 전해진다. 영혼을 담은 바위.

 

197 나는 그러나 부를 마음대로 누리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 있다. 지나친 호사는 신의 뜻에 어긋난다. 마음은 호사로움으로 위로받을 수 없는 것이다. 마음 자체가 부식될 뿐이다.

 

197 위대한 정신은 검소하며 형식에 매이지 않는다.

 

보옥리 뾰족산

 

201 허리에 구름을 감고 있는 한라산을 보았다.

 

204 공기가 좋으면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말만큼 진실한 말은 없다. 건강은 믿는 만큼 지켜진다.

과신하면 안되고.

 

205 섬과 산들은 이미 어두워져 있지만 하늘은 회청색으로 아직 푸르다.

 

205 한라산 허리의 구름/ 하염없는 태만/ 그때 그 어둠의 농도

 

207 길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살며 만나는 어려움도 늘 그것이 최초는 아니다. 이미 누군가가 건너간 길이다. 지금 나뭇가지를 붙잡고 천애의 절벽을 발 밑에 두고 아슬아슬 건너가지만 내가 지나온 자리는 결국 나중에 길이 될 것이다.

 

208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나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롭다. 저 구름처럼 자유롭다.

208 창호지를 통해 햇빛이 비치는 것을 보듯 환한 명랑함에 즐거워진다.

창호지가 주는 조명발. 인공이 아닌 자연의 조명.

 

208 작은 갯돌들이 구르는 소리가 난다.

갯돌 구르는 소리 듣고 싶다. 보라카이의 어느 바다 위에 누웠을 때 부서진 조개껍질이 물결에 따라 차르륵 차르륵 냈던 소리가 지금도 꿈결처럼 기억에 남는다.

 

208 바다의 체취는 바람에 실려 온다. 그 속에는 미역, , 파래, 톳 같은 것들의 싱싱함이 담겨 있다.

 

209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아쉬움은 없다. 나는 오늘 하루를 아주 잘 보냈다.

언젠가 아들이 오늘 진짜 잘 놀았다!’하며 아주 만족해 한 적이 있었다. 그 목소리와 톤이 귀여워서 웃었는데, 너무 잘 놀아서 뿌듯하고 하루가 만족스러운 유년시절의 그 하루처럼, 남은 일상도 그렇게 채워보자.

 

210 처는 이곳 바다를 주방에서 풀어볼 것이다.

210 포장되지 않은 여백

 

완도 선착장

 

214 눈을 감고 누워 단번에 아침이 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218 시비의 기준과 이해의 기준

218 옳은 것을 지켜서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등급이다. 그 다음은 옳은 것을 지켜서 해를 받는 것이다. 그 다음은 나쁜 것을 좇아 이익을 얻는 것이며, 가장 낮은 등급은 나쁜 것을 좇아 해를 받는 것이다.

218 내가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하겠느냐

219 사람이 닦아야 할 도리를 이미 다했는데도 끝내 돌아가지 못한다면 이 또한 천명일 뿐이다.

드라이어로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시다니. 토닥토닥

 

장좌리 장도

 

222 내해와 외해의 일단이 관측의 범위 안에 있다. 방책이 여기에 세워진 이유를 알 만하다. 그리고 해상 관측이 꼭 필요한 곳에 이라고 불리는 관망대를 설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222 해적이 득세하고 신라인들이 잡혀가 노예가 되는 것에 분개한 장군은, 당나라에서 이미 무령군 소장이라는 직책에 있었지만 이를 버리고 귀국하여 흥덕왕에게 군사 1만을 빌려 이곳에 진을 설치하였다. 과연 해상왕다운 기개와 꿈이 있어 보인다.

 

224 국제적 인물답게 이름부터 다채롭다.

224 이 시기의 당나라는 중앙정부에 항거하던 번진과의 싸움으로 큰 혼란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장보고나 정년처럼 무술에 뛰어난 이국 청년들이 무예를 통해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224 장보고가 중국으로 건너간 9세기 초의 신라 사회도 당에 못지 않을 정도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골품제도 아래에서 한계를 느낀 많은 사람들이 좀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나라에서 영달을 꾀하기 위해 당으로 건너갔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그 옛날에 삶의 터전을 버릴 정도라니.

 

224 기근이 계속되자 굶주림을 참다 못한 백성들은 당으로 건너가 새로운 삶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25 백성들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여 자손을 팔아서 살았다.

주로 딸들이었을 것이다. 어린 딸들의 유년시절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226 국제 정세에 대한 높은 안목을 가지고 꿈을 구현한 인물이라는 점에 장보고의 위대함이 있다.

 

226 군대란 전쟁을 하기 위해 조직된 소비적 집단이다. 이런 집단을 해상무역에 투입시켜 해상제국을 건설했다는 것은 장보고가 대단한 개척자였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그는 당시 사회의 전통적인 패러다임을 넘어서 있었다.

 

226 노예무역선은 그 자취를 감춘다.

226 나당일의 3국무역은 물론 서방세계와의 중계무역도 독점하여 명실 공히 동아시아 무역의 패권을 장악하였다.

227 한국 역사 최초의 위대한 국제적 인물

 

229 자기다운 일을 함으로써 명성과 부와 힘을 가지게 되었던 사람들, 그리하여 정치적으로 변하게 되었던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정치에 입문함으로써 대개는 그 힘을 잃게 된다.

 

229 놀라운 재간과 뚝심으로 부를 일구어낸 부자는 멍청이가 되고, 학자는 그 명예를 잃게 된다.

반기문과 안철수는 가만히 있었으면 이미지만으로도 먹고 살았다.

 

230 바다를 누비던 사람들의 기개와 고함이 느껴진다.

역시 마음이 잔잔해져야 들을 수 있는 소리이다. 원효의 발자국 소리와 함께.

 

완도에서 녹동까지


232 꽃은 시간이고 그래서 날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청춘도 시간이고 그래서 날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순간을 즐겨야 한다.

 

236 저렇게 완벽한 위장술을 가진 놈이 어째서 잡혀 왔나 의아하다. 식탐 때문인가, 운이 나빠서인가?

 

236 심심하다는 것은 자기 속에 데리고 놀 자기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늘 밖에서 친구가 될 만한 것을 찾는다.

 

237 변화를 공부하고 싶으면 자연 속으로 들어가봐야 한다.

 

237 봄이 되면 산 전체가 피어난다. 그리고 겨울이면 산 전체가 웅크리고 있다.

237 인문학이 죽으면 경영학이 살아 있을 수 없다. 돈은 사람이 건강할 때 필요한 것이다.

 

하동 쌍계사


240 벚꽃은 함께 피어야 멋이 있다.

241 떼거리 정신을 부추겼고 확 폈다 확 가는 짧고 화려한 생애를 아름다움이라 불렀다. 벚꽃은 바로 그런 군국주의자들에게 이용당했다.

242 그는 늑대의 눈에서 푸른 불꽃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았다. (알도 리오폴드)

244 짧은 시간에 가능한 많은 것을 보아야 하는 사람들, 휴식도 일처럼 해야 하는 사람들이 벚꽃길을 달려들 간다.

246 가지고 다니다가 하루 일정 중 최고의 경치라고 느껴지는 곳, 양말을 벗고 탁족을 할 수 있는 곳에서 한두 잔 하면, 그것처럼 좋은 것도 없다.

247 우리의 놀이가 밤이 깊어질수록 야단스러워지는 이유는 어쩌다 한 번 쉬기 때문이다.

247 휴식이 휴식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47 자유시간이 턱없이 짧기 때문에 클라이맥스는 빨리 맛보아야 한다. 뜸을 들일 시간이 없다. 짧은 시간에 농축되어야 하기 때문에 진해야 되고, 따라서 야만적이며 과격한 몸짓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처럼의 휴식은 또 다른 노동이 되고 만다.

247 문화는 쉽게 말해 잘 노는 것이다.

247 문화는 본질적으로 스스로를 유한계급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문화사회란 그러므로 일하는 시간을 줄여 그 시간을 자아의 실현을 위해 투여하는 사회이다.

유한계급이라는 말에 죄책감이 실리는 것도 벚꽃이 그러했듯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겠구나.

 

목포

 

251 오늘 다시 북항에 가는 이유는 게를 삶아 먹기 위해서다.

세상에!!! 이런 이유라니. ‘북항에 가는 이유는 게를 삶아 먹기 위해서다’. 귓전을 때린다. 그 어떤 대단한 목적이 아니야, 게를 삶아 먹기 위해서래. 그리하여 나도 다음 주에 목포 북항에 가겠다. 순전히 게를 삶아 먹기 위해서.

 

253 목포 앞바다에 있는 섬들을 한 바퀴 도는 순환선을 탔다/ 젊은 남녀의 긴장

254 그 아이는 목욕탕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영혼이 놀고 있는 곳은 마법의 세계이다.

254 ‘양 어깨에 짐을 가득 진 당나귀같은 중년

254 일상의 걱정들과 정해진 일정들이 내적인 성찰을 방해한다. 사회화의 과정에서 습득된 지식이 어린 시절의 마법의 힘을 대체하게 된다.

 

255 “과학의 지식보다 길흉의 전조를 먼저 믿는 사람들, 지상의 말보다 하늘의 음성을 먼저 듣는 사람들

 

255 단지 인간이 일상을 살아가는 현실적 공간 못지않게 현실적인 또 다른 공간 하나를 가지고 있는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

 

255 어린아이들의 세계는 현실과 다른 또 하나의 현실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내부로 기어들어가 아무런 물리적 제약이 없는 정신의 세계를 넘나든다.

 

5장 아름다운 섬 이야기


흑산도

 

258 다산의 형인 손암 정약전은 이곳에서 15년간 유배 생활을 했다. 흑산도 근처의 물고기와 해산물 200여 종의 생태를 기록한 자산어보를 집필한 것도 길고 긴 유배 생활 동안이었다.

나라면 회나 먹고 있었을 것인데.

 

259 조용하여 새소리가 더욱 파랗다

이 표현은 왠지 오글거린다. 어떤 표현은 참 멋진 구사력이다 싶은 게 있고 어떤 표현은 오글거리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글을 쓸 당시의 감정이 표현에 제대로 실린 경우에는 멋지게 느껴지지만 행여나 글에 멋을 낼 욕심이 실렸다면 여지없이 오글거리게 되는 모양이다.

 

259 손암이 잠시 집을 비운 듯 하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듯 하고, 나 또한 지금에 속해 있는 것 같지 않다.

아 이 순간, 멋지다. 홀로 느리게 마음을 열고 한 여행이었기에 시간을 얼리고 과거의 인물을 느낄 수 있는 마법을 부릴 수 있었다.

 

261 청량한 공기가 콧속에 가득한 새벽을 맞고 싶다.

 

261 모래미마을에 와서 박찬식 씨 집을 찾으면 된다.

목포 북항에 게 삶아 먹으러 간 후, 흑산도 모래미마을에 가서 박찬식 씨 찾겠습니다.

262 최소화된 파괴/ 엄격한 조화의 원칙/ 주위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

262 빠르다는 것은 늘 되돌아올 수 없이 멀리 가게 만든다.

 

262 편리는 생명을 넘어설 수 없다. 이제 훌륭한 관광 자원은 훼손되지 않은 자연이다. 자연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과 어느 정도의 불편 그리고 예기치 않은 경이야말로 이제 어디서도 찾기 힘든 것이 되어버렸다.

 

265 결국 대마도에서 일본인들이 주는 밥을 거절하다가 굶어 죽은 그를 보면 충신은 결코 많을 수 없다는 다산의 말이 생각난다.

 

265 동백 같고 해송 같은 사람이다.

265 이곳 흑산도의 한쪽 구석 마을에 그렇게 살다 간 그의 숨결이 살아 있다.

 

266 나도 인생의 어느 부분인가에 솔잎이 깔리고 주위에 꽃이 가득한 그런 부드럽고 포근한 길이고 싶다.

 

266 아름다운 나무 가득하고 옆으로 작은 시내 하나 흐르는 그런 길이었으면 한다.

 

266 스스로 부드러운 흙일 수 있었기에 일상에 매인 사람들을 설득하여 일어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홍도

 

276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신비한 어둠, 사람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사랑의 공간 그리고 홀로 쉴 수 있는 비밀의 장소 없이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276 살아 있다는 것은 영혼이 육체 안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혼만이 단독으로 존재한다는 것, 즉 육체로부터 해방된 영혼은 곧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혼이 육체 안에 머물기 때문에 사람은 욕망과 정열을 가지고 있다.

 

276 중국인들은 사바娑婆라는 단어에 여자를 빠뜨리지 않고 겹겹이 넣어 놓았다.

시어머니를 뜻하는 중국어는 婆婆로 심지어 파도에 여자가 겹겹이 있습니다.

 

277 주민의 편의와 정서적 무감각 그리고 전체적 개발 구도를 가지고 있지 못한 행정적 무능력이 함께 섞여 있는 부끄러운 현장이다.

 

관매도


282 관매도를 사랑하는 교사들일 것이다.

283 견뎌내야 하는 것은 늘 자신의 몫이다.

 

284 통학길에 마주치는 예쁜 여학생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통학길에는 눈에 띄는 여학생이나 남학생이 많았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온 몸이 호르몬 덩어리였던 시절. 요새는 길 가면서 누군가에게 시선을 뺏기지도 주지도 않는다.

마음이 낙엽이 되었어.

 

285 그보다 훨씬 더 곤란한 일들도 많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는데 그때만큼은 같은 유리컵 세 개를 내놓을 만큼의 부유함이 참으로 부러웠다.

 

285 선택적 소비

 

285 부자는 죽어 혼이 아직 육체를 떠나기도 전에 즐거움에 지친 자식들끼리 돈을 더 가지려고 쌈박질을 하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286 한꺼번에 살 수 있으면 그대는 이미 위험하리만큼 부유한 것이다. 더 이상 바라지 말라.

 

287 길이 끊겼다는 당황스러움과 되돌아가야 한다는 머뭇거림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게 한다. 역시 길은 있었다.

 

290 좋은 경치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작년에 조직검사 한 다음 날 괌으로 여행을 갔는데, 그 푸른 하늘과 바다가 진짜 잿빛으로 보였다. 이후 암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서울 하늘은 미세먼지 나쁨으로 잿빛 하늘이었는데 오히려 내 마음은 날아갈 듯 청명했다.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는 눈은 마음에 있다.

 

진도 용장산성과 제주 항파두리

 

292 마당에 있는 우물

우물이 있던 외할머니 댁 뒷마당이 생각난다. 외삼촌이 등목을 하고 우물가에는 맨드라미가 있었는데. 어릴 때 우리 집에는 연못도 있고 빨래터도 있었는데.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그 공간들이 기억 속에 존재한다.

 

292 마루에 앉아 놀던 사람들이 그때는 그의 동생들이었는데 지금은 그의 조카들이라는 사실이 긴 시간의 흐름을 말해준다.

어느 순간 보면 시간이 콸콸 흘러 있다. 현재에서 과거를 돌이켜 볼 때 특히 그러하다. 미래도 멀지 않을 것이다.

 

295 삼별초는 고려의 하층민들과 일반 백성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단순한 군사 반란이 아니라 고려 백성들의 항몽 자주 운동이었던 것이다.

 

295 삼별초의 야생력이 박제된 듯 하여 답답했다.

 

295 나비는 그 부드러운 날개짓과 꽃잎 같은 모습 때문에 종종 시간 너머로 생각을 확장해가는 것을 도와준다. 그 팔랑거림을 따라가다 보면 700여 년 전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저 나비들은 그때 그들인지도 모른다.

사이판에 유난히 나비가 많았는데 그곳까지 끌려와 생을 마쳐야 했던 젊은 한국인들이 생각나서 마음이 아팠다. 나비를 보면서 왜 그런 생각이 들까 했는데 그 팔랑거림때문이었구나. 시간을 달리는 기차의 창 밖 과거의 장면들처럼. 우리가 매인 시간을 얼리기도 하고 과거로 보내기도 하는 그런 장치들이 일상에 존재한다.

 

296 1만 명이나 되는 진도인 포로 중에 섞여 있다가 후에 몸을 빼내 제주로 왔을 것이다. 그리고 제주인들 속에서 김통정을 닮은 아이를 낳았을 것이다. 제주인들이 가지고 있는 기개는 아마 그로부터 물려받은 것일 것이다.

 

297 ‘붉은오름은 그들이 최후를 맞이한 곳이다.

 

297 1948년 제주도 4.3사건이 일어난 후, 그해 11월부터 약 4개월간에 걸쳐 중산간마을은 초토화된다. 그동안 중산간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빨갱이가 되어 젖먹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98 잔인성은 이렇게 재생산되었을 것이다.

 

298 비극은 늘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미국 흑인의 비극은 그들을 해방시킨 링컨이 흑인이 아니라는 것에서 연유된다. 해방 후 우리 민족의 비극은 우리의 힘으로 해방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미군정이 시작되었고 국토는 나뉘었다. 일제의 경찰이 미군정 경찰로 옷을 바꾸어 입고, 친일파는 반공주의자가 되어 득세했다.

 

298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힘을 끌어내지 못하는 사람 역시 비극적이다.

 

298 하수인이 된다는 것은 몸은 몸대로 고되고 남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증오하게 되고 이를 견디기 위해 세속화된다.

 

300 친몽고파든 친일파든 친미파든 외부에서 힘을 빌려오는 경우에는 늘 외부에 종속된다. 그런 경우는 자기일 수 없다.

 

300 적응은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라는 것이다. 변화의 핵심은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새로운 상황을 창조함으로써 스스로 그 주인이 되는 것이다.

300 신이 허락한 대로.

 

한라산

 

302 내가 유일한 인적이다

303 ‘손을 뻗으면 은하수에 닿을만큼 높다는 한라漢拏

304 나라고 규정할 수 있는 테두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305 그때가 아니면 나오지 않는다. 자기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귀환

 

308 갑작스러운 장소의 이동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의 간격이 너무 짧아서였다. 한 달 반 동안의 일탈은 그에 상응하는 귀환의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렇기도 하지만 시간의 간격이 짧을수록 공간이동의 놀라움이 극대화 되어 나는 귀환의식 없는게 더 좋긴 하더라. 11월에 괌의 하늘과 바다를 보다가 한국 오니 눈 내릴 때의 풍경 보는 것도 좋았음.

 

308 변화는 상징과 함께 나타난다. 결혼식은 두 사람이 만드는 하나의 세계를 상징하며 장례식은 삶과 죽음의 화해이고 이승에서의 이별이다.

 

309 꿈은 일상과 유리되지 않은 에너지다.

꿈에 대해 잊고 살았는데 다시 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310 “유치한 행복에 젖은 사람들과 진정으로 자유로운 무리 사이에는 엄청난 심연이 존재한다.”

유치한 행복이란 타인에게 과시하는 것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는 사람들을 말하나?

 

311 영웅의 귀환의 어려움

 

311 귀환하는 영웅이 당면하는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이 만족스러운 체험을 하고 나서 왜 다시 덧없는 기쁨과 슬픔, 외설스러움과 범용한 삶이 존재하는 세상으로 돌아와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일본이나 중국 가서 차에 매력을 느껴 사오면 한국 오면 결국 믹스커피 마시고, 발리에서 일회용품 안쓰는 것에 감동 받았으나 한국 오면 일회용품 엄청 쓰게 되고

 

311 그러나 그들에게도 세상의 흥망에 책임이 있다.

 

311 나이 삶이 세상의 흥망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좋아서다. 내가 필부라는 것을 내 아내도 알고 있고 내 딸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의 어느 위대한 사람보다도 그들에게는 내가 훨씬 중요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312 신의 세계는 인간이 잊고 있는 부분이듯이, 영웅의 세계는 필부가 잊고 있는 세계이다.

 

312 구체적으로 주어지는 인생 역정을 통해 인간은 환히 빛나기도 하고 어둡고 침침한 별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312 바라는 대로 되는 세상은 아니지만 세상이 만들어주는 대로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같으면서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네? 회사에서 일할 때 쓸리지 않는 젖은 낙엽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회사를 버릴지언정 회사가 나를 버리게는 안하겠다라며 이를 악물고 버텼던 사람이 생각난다.

 

312 ‘양 어깨에 짐을 가득 짊어진 당나귀처럼 중년을 지내지는 않으리라.

312 동양에서 자유를 얻는 방법은 속박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313 도가는 철저히 물러나 마음을 비우고 외부의 사물에서 초월하여 격리를 즐긴다.

 

314 공자는 보수와 권위와 구태의연이 아닌 적극성의 상징이다. 그의 본질은 뜻을 세워 공부하고 배운 바를 실천함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314 그는 세상으로부터 되돌아와 자신의 본성이 원래 자연 속에 머무는 것을 좋아한다고 믿었다. “말하고자 하되 말을 잊었다라고 표현한 데서 그의 심리적 전환은 완성된다.

 

314 공자와 노자와 장자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아니고 우리의 삶을 서로 보완하는 한 사람으로 인식될 때,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도 자신으로 들어와서도 자유롭다.

모드의 전환을 자유롭게 하는 것. 다양한 역할과 상황에 따라 엄마모드, 아내모드, 작가모드 이런 식으로 처한 상황에 맞는 모드와 그에 어울리는 정신상태를 갖추자는 건가.

 

315 나는 속세를 떠난 스님이 아니다. 혹은 사회적 가치에서 자유로운 탈속한 인물도 아니다.

 

315 다른 사람들의 불운과 불행 위에 나의 행복을 쌓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변화라는 주제 속에 내가 담아내고 싶은 인생이다.

 

후기: 자연과 사람 그리고 변화

 

316 21세기에는 공해로부터 자유로운 나라가 선진국이 될 것이다. 자연에 관한 한 선진국은 잘사는 나라가 아니라 살 수 있는나라를 뜻한다.

 

317 인류가 신이 인간을 창조한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에 들어섰음을 강조하였다.

318 21세기의 화두는 자연과 사람이다.

 

319 인간이 서로에게 소외된다면 그것은 부정적 변화다. 삶은 기술이 아니다. 삶은 돈이 아니다.

점점 서로 간의 공감능력, 소통능력이 부족해지고 중재가 필요한 시대. 합의금은 더 이상 합의를 통한 결과가 아니다.

 

319 앞으로는 자연을 자연대로 유지하는 나라가 부러움을 살 것이다. 이것은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산수가 살아 있는 아름다운 나라를 의미한다.

 

319 “체제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평범한 인간들의 무관심에 의해 사회적 죄악이 방조되고 만들어진다는 것을 자각하는 사회야말로 위대한 사회다.

 

319 이때 휴식과 성찰은 소비가 아니라 창조로 인식될 것이다.

319 사람은 쉬고 있을 때와 자신의 내면과 만날 때, 가장 자유로운 정신력을 가지게 된다.

320 인간이 쉴 수 있는 곳은 자연뿐이다.

320 ‘보존이 곧 혁명

320 어디를 가나 만나게 되는 서러운 모습

320 이제 흙을 밟을 수 있는 곳은 산속밖에 없다.

 

321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위대한 정신들을 만날 것이다.

장보고 김통정 이순신 김유신

 

321 단점을 들어 장점을 줄이면 배울 것이 없다.

 

321 공자는 안회에게서 자기보다 나은 어진 행동을 보았다. 자공에게서는 뛰어난 언변을 보았고, 자로에게서는 그 용기를 높이 샀다. 그리고 자장의 의젓함을 칭찬했다. 이것이 공자의 위대성이다.

 

322 한국의 산수 속에서 한국의 인물을 보고, 그 인물 속에서 그를 길러낸 한국 산수의 힘을 느끼는 것, 이것이 내가 여행이라는 매력적인 휴식을 통해 즐기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휴식을 통해 정신적 지평을 넓혀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322 휴식은 자신에게 선사한 따듯한 시간이다.

 

322 휴식이 게으름이나 소비로 느껴지지 않을 때, 한 사회가 이에 진심으로 공감할 때, 우리는 훨씬 나아진 사회에 살게 된다. 우리가 좀 더 나은 사람 a better person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긍정적 변화인 것이다.

 

사진작가의 말: 익숙한 것과의 결별 그리고 떠남과 만남

 

323 외압에 휘둘리지 않는 삶

 

324 간절한 욕망만 남기고 나머지를 거세시켜 시간을 더하면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 필요한 것은 지루한 반복과 연마 그리고 변화의 이유를 지켜야 하는 당위의 힘이다.

 

324 일상의 잡다한 관심을 의미로 바꾸는 사적 관찰

 

326 풍경은 여행의 목표가 아니었다. 풍경으로 비롯되는 인간과 삶의 문제가 곁들여져야 보이는 것이 의미가 되고 실천의 해법으로 바뀌는 놀라움. 풍경의 완성은 사람이었다.

 

327 죽더라도 난파선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발견된 인간이 되고 싶었다.

 

328 인간 구본형의 치밀한 여행 가이드는 이래서 모두에게 유용하다.

 

내가 저자라면

 

저자는 역사학도답게 역사적 지식을 배경으로 한 역사적 상상력과 함께 남도여행을 더욱 의미 깊게 한 것 같다. 이순신, 장보고, 김유신, 천관 등의 이야기는 나도 그 시절 그 인물의 그 심정이 되는 것만 같아 뭉클했다. 그런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한 자연 속 매개체는 나비의 팔랑거림이기도 하고 고금도 충무사에 있는 고목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도 인물 나름이라 대흥사 부도밭의 경우는 불교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내가 따라잡기에는 너무 힘들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일단 어휘가 익숙하지 않다. 인용된 책이나 문구 등도 이해하기 어렵고 염불 외는 소리처럼 들렸다. 나와 같은 중생들은 불교의 교리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리는 관계로 그 부분은 공감하여 읽기 어려웠다.

 

그러나 칠량의 옹기 빚는 청년 이야기라든가 감자밭을 손질하고 있던 얼굴이 허물어지도록 웃은 위백규 선생의 6대손 노인이 들려주는 금수굴 이야기, 그와 함께 바라본 천관산의 이미지는 매우 친근하게 다가왔다. 자연의 산수는 과거의 위대한 인물들을 길러내기도 했겠지만 그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현장감을 즐기는 나로서는 남도의 자연과 함께 그 땅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을 것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배경으로 등장하는 산과 바다, 어둠의 밀도, 냄새의 농도 등도 함께. 자연과 역사가 현재의 그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의 일상에 분명 스며드는 어떤 조각이 있을 것이며, 나는 그 조각을 붙잡아 글을 쓰고 싶다.

 

기행문은 자칫하면 지루할 여지가 있다. 팔자 좋은 사람이 자연을 보며 읊은 어제 쓴 편지같은 느낌이 들 위험이 존재한다. 사실 나도 떠남과 만남은 일부러 밤 또는 새벽에 읽었다. 그 때 읽으면 감성이 어느 정도 풍부해져서 저자가 묘사한 자연에 대해 수용할 수 있는 더듬이가 살아 있지만 낮에 읽으면 자연의 묘사는 지루했던 까닭이다이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현지인 인터뷰를 통한 현장감을 높이고, 저자가 이미 시도한 자연 속 소품을 통한 시간여행을 좀 더 강화할 것이다.

 

언젠가 지나가는 길 가에 뜬금없이 놓인 돌멩이를 보며 그 돌멩이조차 예사롭지 않게 보였던 적이 있다. 자연의 어느 구석에서 시작한 돌멩이가 어쩌다 이런 신도시에 놓여 일종의 박물관처럼 어울리지 않게 놓여 있을까. 애초의 저 돌멩이는 산이나 바다 또는 나무를 보았을 터인데 어쩌다 지나가는 차량의 매연과 사람들의 소음에 시달리는 신세가 되었을까. 그 돌멩이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끄집어 내자니 나름 그 역사가 길다. 이렇게 여행 중 만나게 되는 자연 속 소품과의 인터뷰, 지금 현재 그 공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의 인터뷰, 그리고 나의 생각들을 버물려 소설 같은 기행문을 쓰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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