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gum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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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은 나를 찾기위한 방법
(책 읽기와 글쓰기, 낭송, 마라톤, 그리고 사물 다시 바라보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변화’는 늘 나의 키워드였다. ‘지금 이대로의 나는 너무 평범해. 성공하려면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해. 그러려면 변해야 돼. 변화가 필요해. 남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해’라는 말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뒤늦게 알았다. 그것은 ‘진정한 변화’가 아니라 남과의 경쟁에서 내가 더 우위에 있기 위한 부질없는 몸부림이었다. 높은 영어점수를 위해, 자격증 하나를 더 따기 위해, 상사의 인정을 받기 위한 노력이었다. 잘못된 변화이다 보니 성장없는 제자리 걸음이었다.
얼마 전 생애 처음으로 마라톤을 했다. 물론 그 전에 하프도 몇 번 해 보았고, 평소에도 하프 정도의 거리는 주기적으로 달렸고, 신체적으로 크게 무리가 없었기에 하프에서 조금 더 연습을 하고 마라톤을 참가하였다. 물론 마라톤 당일의 날씨도 있었고 여러 가지 주변 여건이 좋지 않아서 생각만큼 기록이 나와주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마라톤을 하면서 다짐한 것이 레이스 도중 절대 걷지 말자였다. 완주를 떠나서 나는 걷고 만 것이다. 마라톤은 하프와 달랐다. 단순하게 거리만 2배의 차이가 아니었다. 30km 즈음부터 한계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3/4을 뛰었고 이제 고작 10km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포기하고 싶었다. 극심한 허기에 먹은 바나나와 빵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배가 너무 아파 뛸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픈 배를 쥐어잡고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비록 5시간 5분으로 완주는 했지만 전체적인 레이스를 봤을 때 난 실패했다.
내가 이렇게 마라톤 이야기를 하는 건 실패의 경험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방법의 문제를 얘기하고 싶어서이다. 나처럼 아무런 마라톤의 지식없이 그저 달리는 단순한 운동이라 생각하면 완주는 할 수 있겠지만, 마라톤 즉, 달리기가 주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고통을 주는 것이 되고 마는 운동이 되는 것이다. 이제 나는 마라톤 방법에 대해 하나씩 배워가고 있다. 앞으로의 마라톤은 좀 더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변화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우리가 그토록 많이 변화를 바라고 변화를 위해 노력하지만 변하지 않는 이유는 수많은 이유로 점철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절실함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마라톤을 뛸 때 절실함이 없겠는가? 마라톤 참가자는 전부 완주와 자기가 목표로 하는 기록이라는 절실함을 가지고 도전한다. 그러나 일부는 실패하고 만다. 절실함만으로는 뭔가 부족하고 모자라다.
공부 역시 그렇다. 누구나 해야 하는 공부를 잘 하려고 하면 방법을 잘 알아야 한다. 우직하게 의자에 엉덩이를 박고 시간을 투자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 한 친구는 지독하게 우직했다. 정말 내가 봐도 공부밖에 없었다. 그런데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나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런데 누군가가 공부하는 방법과 목적을 가르쳐주었다면 아마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 변화를 위해서는 변화를 위한 방법과 그 목적을 잘 알아야 한다. 단지 마음의 준비, 자세 이런 것들만으로는 인간의 속성상 지속하기가 어렵다. 그런 기본적인 것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자신만의 변화 방법을 적용하면 좀 더 효과적으로 변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방법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우선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 구본형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5가지가 우리가 시작해야 할 것들이고 나 역시 그렇게 시작을 했다.
1번. 묘비명(마음을 열고 욕망이 흐르게 하라)
2번. 지능목록(그대 또한 잘하는 것이 있다)
3번. 진기한 조합(욕망과 지능을 연결하라)
4번. 일상의 자유(하루에 두 시간은 자신만을 위해 써라)
5번. 숙련과 기록(한번 시작한 일은 멈추지 마라)
그러나 나는 문제가 발생했다. 1번과 2번이었다. 1번과 2번만 명확하면 나머지는 일사천리이다. 변화를 위한 출발점이 1번과 2번인데 이것을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것의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이것의 답을 쉽게 발견한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아직 무엇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생각이 나질 않고 그냥 막연할 뿐이다. 그렇지만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나는 연구원이 되었다. 지난 칼럼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연구원 과정을 ‘나를 찾기 위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변화는 자기를 먼저 찾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나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4가지이다. 책 읽기와 글쓰기, 마라톤, 낭송 그리고 사물 다시 바라보기이다. 이번에는 그 중에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첫 번째 나 자신을 찾는 방법은 책 읽기와 글쓰기이다. 다행히 나는 직장을 그만둔 후 하루 2시간을 확보하라는 선생님의 말씀대로 지금까지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이 2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책읽기는 평소 원없이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너무나 재미있게 읽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읽은 독서는 잘못된 방법이었고 굉장히 비효율적인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 도서관을 이용하다 ‘독서토론 북리더 과정’이 있어 지원을 했고 현재 수업을 듣고 있다. 여기서 나는 그동안 나의 독서방법이 무엇이 잘못인지를 알았다. 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독서(讀書)를 독서(獨書)하면 독서(毒書)이다.” 나는 무릎을 쳤다. 그래 이거였어. 한 권의 책을 읽어도 그 책을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하고 해석해야 진정으로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실제 똑같은 한권의 책을 읽어도 10명이 읽고 난 뒤 생각은 다 달랐고 의견도 너무 다름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연구원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북리뷰가 책 읽는 방법의 정수인 것 같다. 잘못되었다면 내가 11기인데 그동안 많은 변화 있었을텐데 바뀌지 않은 것을 봐도 그렇고 정답은 아니지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그래서 난 요즘 책 읽기가 너무 즐겁다. 그리고 우리 도반들의 북리뷰를 보면 너무 즐겁다. 똑같은 책 1권을 읽었지만 난 8권의 책을 읽은 것과 똑같은 것이다. 그동안 쉽게 읽히는 자기계발서 위주의 독서였다면 늦었지만 고전도 읽고 있다. 100% 이해를 못하고 있지만 재미는 있다. 이러한 책 읽기를 통해서 아마 언젠가 머리를 스치는 ‘탁’하고 ‘이거야’하고 오는 무엇인가가 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다음으로 글쓰기이다. 글쓰기는 내가 언제 해보고 안해봤나. 기억도 나질 않는다. 아마 연애편지, 펜팔 이런 것이 다 일 것이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늘 하던 업무보고가 글쓰기의 전부였다. 업무보고는 최대한 줄이고 줄이고 줄이는 글쓰기다. 감정을 배제하고 최대한 객관적인 용어를 써야 했다. 그런 내가 지금 어찌됐든 글을 쓰고 있다. 왜 글쓰기를 시킬까 하고 많은 생각을 했다. 연구원 졸업을 하려면 책을 써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글을 써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최근에야 글쓰기가 나를 찾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부담이 많이 되지만 이렇게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일단 글쓰기는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완벽한 대화라고 생각한다. 글을 잘쓰든 못쓰든 그건 나중에 문제이고 일단 쓸려면 자기와 대화를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자기에게 끊임없이 물어보고 대답하고 또 물어보고 반복적인 대화를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에 대해 최진석 교수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글자는 영혼이 세상에 직접 강림하기 어려워 머릿속에서 저마한 후, 팔뚝을 거쳐 팔목을 타고 흐르다가 하얀 종이위에 떨어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응고된 것이다. 영혼의 세속화이다. 몸속에만 머물기 버거운 영혼이 밖으로 뛰쳐나온 것, 그것이 글이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이런것이구나를 단박에 알았다. 그래서 난 이제 글쓰기를 여전히 부담이 되지만 즐기려고 한다. 그렇지만 글쓰기 자세에 대해 선배 연구원들에게 얘기한 김용규 저자의 조언을 마음속 깊이 새기면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글을 쓸 때 습작을 습작처럼 쓰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습작을 최종본처럼 써야 합니다. 작가 지망생이라도 작가처럼 쓰세요. 습작이라고 생각하고는 단 한 편도 쓰지 마세요. 신문사에 보내서 내일 실릴 원고처럼 쓰세요. 최선을 다해서 쓰세요. 작가처럼 쓰면 작가가 됩니다. 작가처럼 쓰면 작가가 되고 지망생처럼 쓰면 지망생이 됩니다. 작가처럼 쓴다는 것은 내일 글을 보내면 영영 수정할 길 없는 것처럼 쓰는 것을 말합니다. 막연히 쓰지 말고 사실을 찾고 연구해서 쓰세요. 출간되고 나면 고칠 길은 없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테니스 선수 보리스 베커는 연습을 게임처럼, 게임을 연습처럼 합니다. 습작은 습작처럼 쓰고 작품을 작품처럼 쓰겠다 마음먹으면 영원히 작가가 될 수 없습니다. 작가처럼 쓰세요. 설사 작가가 아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