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의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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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출근을 하게 되면 제일 먼저 PC를 켜고 아웃룩을 클릭한 후 메일을 확인할 것이다. 지난밤을 건너온 메일을 분류해 보면, 해달라는 일들이 있고, 부서내 협조사항내지는 요청사항이 있고, 회사 공지사항 또는 공유사항들이 있고, 어딘가로 부터 날아든 광고성 메일들이 주류를 이룬다. 내가 처한 위치에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정리하고 처리한 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내용을 전달하는게 우리가 흔히쓰는 이메일이 아닐까, 가끔은 읽어볼 만한 내용도 도착하지만 대부분 딱딱한 편리성의 대명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에 반해, 이번주에 읽은 『구본형의 마지막편지』에 쓰여진 손편지들은 사람을 향한 정성과 구선생님의 정(情)이 곳곳에 스며 있었다. 세가지 정도로 느낌을 정리할 수 있었는데, 첫번째가 사람을 향하는 따뜻한 심장이 있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느려도 깊이를 가진 영향력이 배여있어 시간이 지날 수록 감사함이 익어간다는 것이고, 마지막 세번째로는 ‘나도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용기를 갖게하는 설득력이 '구선생님의 책 답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혹은 늘 설득의 강력한 수단이 되어왔다(마흔세살에 다시시작하다)’라고 하셨나 보다.
작년 11월, 우연한 기회에 아버지께 편지를 드린적이 있었다. 손으로 쓴 편지는 아니었지만, 정성스레 봉투에 담고 우표를 붙인 후 아버지께 보내드린 적이 있었는데, 『구본형의 마지막편지』 내용처럼 아버지께 편지를 써본적이 없었고, 생전 처음 해본다는 것은 어색한 일이었다.(P.83) 정말이지 쑥스럽고 어색해서 숨기고 싶은 마음이 들정도 였으니까. 그래도 꾹 참고 편지를 드렸었는데, 그 일은 시간이 지날 수록 두고 두고 가장 잘한 일이 되었다. 지난번 변경연 ‘나의 장례식’ 때 밝힌 것처럼, 아버지께 나의 진심을 이야기했고, 마음을 헤아려 드렸고, 서로 끄덕임의 시간을 가졌던게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었다.
왜 그렇게 가족들에게 마음을 밝혀 이야기하는게 어려운 것일까. 남들한테는 그렇게 해대면서…
어릴 적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제는 나이도 충분히 먹을만큼 드셨는데. 아직도 마음이 어려서 그런걸까?
아내와 가끔 이런 농담을 한다. ‘사랑한다 말하지말고, 고맙다고 말하지 말고, 감사하다는 말하지 말자. 말보다 서로에게 입금하자!’ 라고.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일들로 바빠 부모님께 입금을 하더라도, 이번만큼은 편지한통씩 써보시면 어떨지? 아니면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를 깔고 그 위에 빳빳한 용돈 올리시면 어떨지?
무엇을 택하든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보증한다.
처음이라 어색했던, 특별했던, 시간이 지나서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와의 편지를 공개해 본다.
편지를 공개하는건, 별거 아닌거 한번 보시고 꼭 해보시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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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2016년 11월 5일 작성]
이렇게 아버지께 편지를 보내는 건 처음이네요.
아버지와의 지난일을 돌이켜 보고 있어요.
가장 힘들었던 부분들,좋았던 부분들, 그리고 지금의 관계에 대해서.
우리집이 가장 힘들었을 때, 제가 모진 말 참 많이 했습니다. 모진 행동도 많이 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억울하고 힘드니까’ 하는 원망에서 비롯된 말과 행동이었던거 같아요. 그때의 상황으로돌아가 무기력하게 견딜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뵈니 마음이 울적하고 그렇네요. 힘든 시절 그때그러셨죠. "어떻게 좋은 기억 하나도 없냐"고. 왜 없겠어요. 있죠. 다만맞서기 위해서 그냥 없다고 이야기 했었습니다.
시골살때 퇴근 후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반갑게만나 자전거 뒷자리 올라타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 중학교 때 처음으로 카세트 테잎으로 ABC를 배우며 펜촉으로 영어를 써주시던 기억, 학교 들어가기 전한글을 가르쳐 주시던 기억, 공장형들과 줄넘기 시합 할 때 150개이상 뛰니까 그만 뛰라고 손을 저으며 잡아주시던 기억, 대학교 시험에 떨어져 마음이 무거웠을 때 위로해주시던 기억...
잊혀진 줄 알았는데 이제와 돌이켜 보니 하나 하나 그모습이 다가와 갑자기 눈앞이 뜨거워 지네요.
아버지께 글을 쓴다고 지영이에게 이야기를 해보니 "당신은 잊었고, 괜찮다고 생각한 부분일지라도, 아버지께는 그 시절 일들에 대해 괜찮다고 지금 잘 살고 있다" 고 말씀드려야 아버지 마음이 가벼워 지실 거라고 이야기하더라구요. 나만 괜찮으면 될 줄 알았는데, 그 마음 미쳐헤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채현이가 쫌 더 크면 아버지 모시고 여행가려고요. 막걸리 한잔 받아 놓고 '어려웠고 힘든 시절이 있었는데, 그게 더 굳건히 마음을 다질 수 있는 시기여서 제가 지금 여기까지 왔다'고. 그리고 '그 시절 미안해 하시거나 자책을 안하셔도 된다'고 꼭 말씀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 시절 저 또한 죄송했다고 말씀드리고싶네요.
채현이가 태어난지 어느덧 80일이 다 되어 갑니다. 아이의 칭얼대는 모습에서 웃어주는 얼굴에서아버지가 저를 바라봤던 모습을 느낍니다. 부모 입장에서 바라보는 자식을 향한 바램은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생각합니다. 제가 신경이 쓰이기는 하시겠지만 제 걱정은 조금만 하세요.
경기가 어려운데, 다행스럽게도회사일들은 넘쳐나 많아지고 있고, 최근에 바빳던 일들은 잘 정리되고 있고, 그러한 일들로 회사는 점점 더 좋아지고 커져가고 있습니다. 욕먹지않게 사장님 잘 모시고 처신 잘하고 있고요. 채현이도 무럭무럭 잘 자라주고 있고 지영이는 낮밤이 바뀐채현이 때문에 조금은 힘들어 하지만 기쁘게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엊그제 오랜만에 엄마께 전화드려회사일도 잘 되고 있고 채현이도 잘 크고 있다고, 이 모든건 엄마의'깊은 기도덕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한참을웃으시는데 그 넘어에 엄마의 안심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엄마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버지와는잘 안될거 같아요. 안되는걸 일부러 하면 어색하니까 아까 말씀드린대로 막거리 한잔 하는 걸로 하시죠.
저는 아버지 마음속 어딘가에 족쇄아닌 족쇄로 잠겨져 있는자책감이나 분노가 있으시다면 저와 함께 훌훌 털어버렸으면 좋겠어요.
결혼을 하면서 제 나이때의 아버지를 느끼면서 과거에 대한저의 미움이나 분노는 남아 있지 않아요. 그저 지금의 아버지 모습처럼 건강하게 소일거리 찾아 열심히일하시는 모습만 바라고 기도 드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제가 아버지 걱정이 앞섭니다. '추운날이나 더운날, 밖에서 일하시면 얼마나 힘드실까' 하고요. 저야 따뜻하고 시원한 곳에서 잘 지내니까 그 반대인 아버지생각이 자꾸 나더라구요. 엄마께 항상 말씀드리지만 건강이 최우선입니다.
앞으로의 제 계획은 회사 잘 키워서 제가 오랫동안 일하는곳으로 만드는게 1차 목표에요. 그리고 약간의 재주를 부려책도 한번 내보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남으로써 동생들을 신경쓰고는 있는데 완섭이나 효섭이 모두, 다들 자기 몫들 하니까 딱히 제가 할일은 없습니다. 참으로 감사한일이지요.
올 크리스마스때는 채현이 선물도 준비해 주세요! 내년에 세뱃돈 두요!
그냥 웃자고 한 소리입니다.
아버지! 여러모로많이 늦었습니다. 그리고 힘겨워 하셨던 모습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크게 웃으시는 그 모습이 뵙고 싶네요. 곧 찾아 뵐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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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문자로 답장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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