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뚱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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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곳에 있었다.
11기 [뚱냥이] 장성한
작년 말, 나는 용산구 보광동이라는 작은 동네에 가 보았다. 이태원 해밀턴 호텔 앞 삼거리에서 좁은 2차선 도로를 따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그 곳. 옛 81번 버스 종점이라는 별칭이 더 유명한 곳이다. 버스 차고지는 사라져 없었고, 종점 숯불갈비 등 상호명만이 그 곳이 그런 장소였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 마음 속의 고향 보광동. 나는 여기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보광동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 동네를 화려하게 주름(?)잡던 꼬마 장성한을 만났다. 떡볶이를 외상으로 먹으며 행복하게 웃고 있었던 나. 축구장으로 생각한 골목에서 땀에 흠뻑 젖은 나. (어른이 되어 본 골목은 정말 좁았다.) 과일가게 아주머니께 큰 소리로 인사하며 뛰어가던 나. 도복을 입고 합기도 도장으로 총총거리며 뛰어가던 나. 왜 이렇게 뛰어 다녔던지, 당최 걷지를 않는 꼬마 장성한이 보였다. 내 눈에 보이는 변화된 동네는 자연스럽게 ‘노후화 모델링’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동네 저 동네로 옮겨 다녔지만, 여전히 나는 그곳에 있었다. 그 곳에서 나는 행복했다. 나의 모든 것을 하얗게 불태우고 잠드는 ‘하루’ 더하기 ‘하루’의 연속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정신적 방황으로 ‘나’라는 인간이 퇴색되어 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곳에서는 나의 본질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행복이 결핍되지도, 오늘 하루에 대한 불안에 몰두하지도 않았다. 순간순간이 소중했고, 행복했다. 너무 어려서 인지하지 못했지만 아마 가장 살아있음에 감사한 시기였는지 모른다. 찰나의 무한성이라는 정의를 이제 나는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4월 26일, 부산 동서대학교 신입생을 위한 ‘창직형 창업캠프’를 준비하기 위해 경주로 내려갔다. 동서대 창의인재육성처가 지원하고 (사)한국창직협회가 진행하는 본 캠프에 합류하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기존 강사가 일정이 겹쳐 내가 강사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행사 진행자의 역할은 덤이었다. 협회장님께서는 나에게 많은 기대를 하셨다. 회사를 다닐 때도 사회자 및 사내강사 역할을 충실히 해왔음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정작 나는 두려웠다. 다시 무대에 오른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영영 이별이라고 단정짓고 있었다.
4월 27일, 공식적인 캠프가 시작되었다. 어찌 되었건 나는 무대에 올랐다. 인사를 하고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했다. 신기한 건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긴장감과 어색함을 풀어 주기 위해, 준비하지 않은 멘트들이 춤을 췄다. 아이스 브레이킹과 팀빌딩을 진행하면서 내가 두려워했다는 사실 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마이크가 ‘나’고 ‘내’가 마이크인 물아일체의 찰나가 이어졌다. 물론 ‘감’이라는 것이 있기에 많이 떨어져 있음을 자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이다. 무대 위에 있었고, 참가자들 앞에 서 있었다. 무대는 나의 본질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었다. 참가자들과 소통하며 에너지를 얻는 내가 있었다. 순간순간을 즐기고 행복해 하던 수많은 내가 있었다. 대학교 재학시절부터 회사생활까지, 가장 오랜 시간 머물렀던 그 곳. 너무 그리웠다. 내가 그 곳을 얼마나 보고싶어 했는지 깨달았다. ‘무대’가 오히려 나를 진정시켰다. 나를 위로해 줬다. 왜 이제 왔냐고 듣기 좋은 푸념을 했다. 캠프가 종료되고 집으로 돌아오니 눈물이 났다. 생각보다 못해서가 아니다. 공황이 오지 않은 안도감도 아니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을 다시 찾아서 행복했다.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다시 찰나의 무한성이 나에게 들어왔다.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욕망이 흐르는 곳, 그 곳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다. 그 곳이 어딘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개개인 모두는 그 곳에 있었다. 인지하지 못할 뿐, 있어야 할 그 곳에서 찰나를 즐겼고 행복감을 느꼈다.
행복은 몰입이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몰입은 ‘무언가에 흠뻑 빠져 있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하며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 ‘하늘을 날아가는 자유로운 느낌’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몰입은 잡념을 잊게 해 준다. 고민과 손잡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 자신의 모든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게 만든다. 그렇기에 몰입은 자신을 일에 대한 주인으로 만들고 자유를 선사한다.
과거를 한 번 돌아보자. 행복해 하던 내가 있었던 장소, 일, 사람을 떠올려 보자. 그 곳이 있어야 할 곳이다. 그 곳에서는 아무 걱정도 없이 그저 몰입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아지경’에 빠져 무한의 시간을 즐겼던 ‘그 곳’을 탐색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삶의 질은 물론 잃어버린 ‘나’를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 4월 26일은 실제 생일이었다. 34년을 살면서 가장 뜻 깊은 선물을 받아 행복했다. 생일선물은 ‘내가 있었던 그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