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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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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3일 23시 01분 등록


***


그러니까 그때는, 죽으러 가는 길도 아닌데 상태는 다르지 않았다. 맥 놓고 있었으니까.

딸들은 걱정했다. 누워만 있다가 히말라야는 오르겠냐고, 걷기라도 좀 하라고.

날씨는 춥고 괜히 빙판길에 돌아다니다가 다칠까 봐 조심하고 있을 때였다. 몸을 사렸다.

혹시라도 못 돌아오면 얼마 안 되는 전세금 둘이서 나눠 가지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중국이나 네팔 어딘가를 떠돌거나 히말라야 산자락 어디쯤 머물지도 모를 일이었다.

인터넷을 뒤지고 책을 보고 얘기를 들어도 히말라야는 도무지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혼자서 배낭을 메고 공항을 옮겨 다니는 상상도 마찬가지였다. 그림이 안 그려졌다.

그냥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죽기밖에 더하겠나 싶은 맘으로 심호흡하고 공항철도를 탔다.


중국 상하이엔 공항이 2개다.

인천 공항은 푸둥 공항이랑, 김포 공항은 훙차오 공항이랑 짝꿍이다.

예약한 항공편은 갈 때는 훙차오, 올 때는 푸둥, 어쨌든 상하이에서 공항 노숙을 했다.

김포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도착한 훙차오 공항은 시골 간이역 느낌이 났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늦은 밤에 처음 만난 중국은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식당에 몰려 앉은 알지 못할 관계의 마작 대화는 알아듣지 못하니 음악 같았다.

대책 없는 노숙에 주섬주섬 짐을 꺼냈다. 손 시리고 춥고 참 딱한 시간이었다.

새벽에 소란스러운 움직임을 따라 바람 쐬러 나갔다가 검색대를 통과했다.


여기저기 뒤져도 아침에 출발인 환승 비행기가 확인되지 않았다. 터미널이 달랐던 거다.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한단다. 몇 명의 중국 천사와 스마트폰 번역기로 대화를 했다.

터미널2 가는 요금은 3원이었다. 어떤 천사는 돈을, 어떤 천사는 카드를 뽑아줬다.

10호선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공항은 진짜 공항이었다. 터미널1은 마구간이었다.


줄을 잘못 서서 되돌아오기를 여러 번 했다. 혼자 노느라 얼마나 바빴는지 모른다.

덕분에 공항의 소란스러움을 그리워하지 않게 되었고, 추위는 저 멀리 달아났다.

바리바리 싸 들고 화장실 다녀와서 정신을 차리려니까 게이트가 바뀌어 있었다.

깨알 천사들의 도움으로 쿤밍에서 마지막 환승을 하고 카트만두행 비행기에 올랐다.


자리에 앉으니 눈이 스르르 감겼다. 중국어는 감미로운 음악이었고, 영어도 마찬가지였다.

옆자리 남자들이 나누는 대화는 유럽이거나 홍콩쯤이었을까? 크고 부드러운 음악 소리였다.

폰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옆자리 남자가 집어줬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만 알아들었다.

그 옆의 홍콩 남자는 덩치만큼 거대하게 코를 골았다. 벗은 신발이 더 신경 쓰이긴 했다.


카드만두 도착하기 전에 미션으로 기내 화장실까지 다녀왔다. 이제 또 뭘 해봐야 하지?

꼼짝 않고 자리를 지키던 반경을 넓힌 거였다. 무서움이나 두려움도 그만큼 사라졌다.

이 생고생을 하고 싶어서 여길 왔구나, 했다. 착륙안내에 그제야 한시름 놓고 뿌듯했다.

딱 꼬집어서 뭐라 말하긴 마땅치 않다. 그냥 뭔가를 해낸 거다. 이걸 하고 싶었던 거다.


공항에서 만난 천사는 주황색 말라 꽃목걸이를 목에 걸어주었다. 당연히 부둥켜 당겼다.

네팔의 첫인상은 마냥 편했다. 이틀간 중국에서 떠돌던 긴장이 풀렸으니 당연했다.

차도인지 인도인지 차선도 없는 먼지투성이인 거리는 바퀴 달린 것 뒤범벅이었다.

자전거에 오토바이에 택시에 트럭에 봉고차에 버스에 온통 소란스럽고 정신없었다.


긴장하지 않아서 좋았다. 세상이 무너지든 폭탄이 터지든 이제 동행이 곁에 있으니까.

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면서 내 인생의 보너스는 시작되었다. 아 진짜, 히말라야라니.

문재인 전 대표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라고 했다. 우리의 가이드는 바로 그 가이드이고.

인사를 나누고 트레킹 일정을 안내받은 내 얼굴엔 부처님 미소만 가득했다. 나마스떼!


**


정오 : 당근 1개, 방울토마토 7개, 호두 5개, 아몬드 7개.


손바닥이 보이도록 양손을 펴서 모으면 1접시 크기가 된다. 왼손은 채소와 과일, 오른손은 현미와 콩류로 하루에 5접시를 먹으라고 했다. 운동도 하고, 명상도 하고, 3끼 중 2끼는 유동식이고, 1끼는 고형식으로 채소를 먼저 먹으라고 했다. 물도 많이 마시라고 했다. 먹을 게 이렇게나 많은데 제대로 먹지 않았다.


단식과 비교해서 가볍고 쉽게 여긴 탓이다. 글쓰기 부담으로 주객이 전도되어 디톡스에 소홀했다. 반성한다. 내 멋대로 할 거면 왜 했나. 먹는 거 챙기는 게 세상에서 젤 어려운 일인 거 몰랐나. 밥 챙기기 귀찮아서 엄마 하기 싫다고 하지 않았나. 엄마는 엄마고, 이건 내가 선택한 나의 식단이다. 정신 차리고 제대로 다시 시작해야겠다.


간식 : 두유


먹는 게 일인 무첨가 두유를 마시고 장을 보러 나가려고 했다. 진짜다.


6:00 오이 1개, 구운 감자 1개, 된장국.


반가운 손님이 집에 놀러 와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한낮의 거리엔 가벼운 차림들이 하늘하늘 알록달록 어느새 여름이다. 그래도 안 된다, 맛집이고 술이고 이것저것 턱도 없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다른 건 몰라도 참는 건 선수다, 버텨야 한다, 엄청 되뇌었다. 죽도 밥도 아니지만 먹긴 먹었고 살아있다. 덕분에 폭삭 늙었다. 석가탄신일, 만세!


큰딸은 스시 뷔페를 다녀왔다면서 케이크를 들고 들어왔다.

디톡스를 하긴 할 거냐고 물었더니 당연하다고 했다.

생일이라 어쩔 수 없다면서 내일도 약속이 있단다.

생일이 언제나 끝나려나? 생일이 끝나면 시작하긴 하려나?


*


디톡스 프로그램 체크 리스트


12시간 공복 유지

식사 전 채소 먹기

3·3·3 운동

7시간 이상 수면

아침·저녁 유동식

명상 15분

식후 30분 후 물 마시기

하루 1.5㎖ 마시기

배변

소변 (1시간 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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