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후회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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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사람인가? (5월 1주차 칼럼)
11기 정승훈
과거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고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들이 있다.
초등학교 때 엄마와 같이 시장을 다녀오며 엄마에게 물었었다. “엄마는 왜 성적표 받았는지 안 물어봐?” 그랬다. 엄마는 내 성적표에 관심이 없었다. 그 당시에 부모님 확인란이 있어서 도장을 가져가거나 사인을 받아 학교에 다시 제출했어야 했다. 나는 도장을 몰래 찍거나 아빠 사인을 연습해서 써갔다. 심지어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어른 글씨체를 흉내 내서 썼다. 엄마는 그 사실조차 모르고 계셨다.
내 질문에 당황한 엄마가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다가 “네가 알아서 잘할 거라 생각해서 그랬어.” 라고 대답하셨다. 물론 그냥 둘러댄 말씀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4남매 중 막내인 나의 성적에까지 관심을 가지실 여력이 안 되셨던 거다. 어린 마음에도 ‘아~ 이제 난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구나. 앞으로 엄마에게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 구나’ 하는 걸 느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이후의 나의 일은 내가 알아서 했다. 막내 같지 않다는 말을 듣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변경연 지원서에 개인사에 “어린 시절 큰언니가 예쁘다, 작은 언니가 예쁘다는 작은 어머니와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무도 나를 ‘예쁘다’ 하지 않았다. 이 일이 무의식중에 자리를 잡았는지 청소년 시기에 영화를 보던, 책을 보던 난 주인공보다 주인공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던 조연에 눈길이 갔다.” 이런 내용이 있다.
그런 줄 알았다. 외모에 큰 비중을 두지 않으니 상처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정받지 못함이라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몰랐다. 왜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 나를 평가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지도 몰랐다.
작년이었다. 몇몇 사람들과 많이 힘들었다. 그때는 그 사람 때문인 줄 알았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참 많이 원망하고 미워했다. 그러면서 난 그러지 말아야지 했다.
그 사람의 잘못을 찾고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내 생각에 동의하길 바랐다. 사람이 싫어지니 그 사람과 연결된 모임 자체도 싫어지더라. 그래서 한동안 모임도 멀리했다. 결국 그 사람들은 모임에서 배제되거나 스스로 그만두었다.
이후에 나는 여행도 다니고 그동안 못 보던 사람들도 만나면서 지냈다. 하지만 나의 외향적이고 사회 활동을 좋아하는 성향은 그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결국 다시 모임에 참여했다. 그 사람들이 없으니 모임이 즐겁고 만족스러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또한 모임구성원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 여겼다.
올해 초 변경연 연구원 지원을 하면서 나를 한 번 돌아보고, 다른 모임구성원 모집을 하면서도 연수에 참여하며 또 나를 봤다. 하지만 나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나보다. 모임 참가자 중 에니어그램 강사과정을 하시는 분을 통해 아들의 번호를 알게 되면서 신기했다. MBTI에서 미흡한 부분을 채우고도 남았다. 나의 분석적 능력으로 남편, 친정엄마 등등 다른 사람의 번호를 알게 되면서 이해가 되지 않던 행동들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내 번호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알아보려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더라. 다른 사람은 나를 머리형이라고 하는데 나는 아닌 것 같았다. 결국 내 번호 찾기를 포기하고 그냥 생겨먹은 대로 살자 마음먹었다.
변경연 활동을 하며 집이 아닌 공간을 찾고 있었다. 우연히 마을문고를 방문해서 책을 살피다가 봉사자가 부족한 걸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예전에 봉사했다는 것을 밝혔다. 당연히 봉사자로 활동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래서 그러마 하고 승낙했다.
교회에서 회계를 담당하시던 분이 몇 달간 해외업무를 가게 돼서 그 일을 할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나이 드신 분들께서 PC사용이 힘들다 하셔서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 했다.
내가 활동하는 시민단체에서 4차 산업과 관련된 강좌를 시작한다고 했다. 평소 관심 있던 내용이라 시간을 쪼개서라도 들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신청했다. 이왕 듣는 거 사회자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고 담당자에게 이야기했다.
위의 세 가지 모두 난 내가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거나 시작하려고 마음먹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에니어그램의 유형 중 2번이라고 여겼다. 작년에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은 전형적인 3번이었다. 아마 그래서 나 스스로 3번은 거부하고 있었나보다.
에니어그램 지도사 과정 중이시던 분이 나의 행동이 왜 그려려고 했는지 내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하셨다. 3번을 거부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수희향 선배님의 책 [운을 경영하라]를 3번을 봤다. 그랬더니 거기에 답이 있었다. “자신보다 능력이 떨어진다고 여겨지는 이들과 하향평준화 되는 걸 꺼려한다.” 맞다. 내가 많은 사람들과 만나면 우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살핀다. 다름을 인정해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잘 안 맞는 사람을 꺼리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능력의 높고 낮음을 내가 가리고 있었던 거다. 모든 모임에서 구성원들을 나보다 부족한 점이 있다고 여기고 싶은 마음에 나에게만 있는 것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물론 드러내놓고 하진 않았다. 그런지조차 몰랐다. 무의식적인 생각이었다. 그동안 자존감을 높게 만들었다고 믿었던 자격증과 학위들은 결국 나의 ‘성공을 지향하는’ 마음을 채워주는 것들이었다.
나의 열심 또한 그들의 필요나 도움에 기여하려는 것도 있지만 좀 더 나의 속 깊은 곳에선 문고봉사는 공간을 좀 더 편하게 활용하고 싶어서였고, 교회업무도 그걸 통해서 잘한다는 인정을 받으며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거였다. 강좌 사회도 돋보이고자 하는 마음과 강좌비용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모임에서 내가 잘한다는 말을 들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그걸 통해 난 인정받고 성공한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타인의 말에 민감했던 것이다.
새로운 모임에선 난 선임자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작년에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너무도 소름끼쳤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면서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 사람도 나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좋은 의도로 하는 행동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결국 모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상처를 주는 것은 모른 것이다.
변경연 커리큘럼이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난 지금 일주일을 앞서가고 있다. 이 ‘열심‘이 그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편한 나의 성격인줄 알았는데 이 역시 ’난 이렇게 잘하고 있어‘를 보여주고 싶은 거였나 보다. 동기들의 칼럼과 북리뷰를 보며 배우고 공감하기보다 나의 속도에만 열심이었다. 그래서 이제 그러지 않으려 한다. 좀 여유를 가지고 이 과정을 즐기면서 하려고 한다. 물론 책을 쓰겠다는 것도 ’과연 왜?‘ 를 다시 점검하는 기회로 삼으려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하루는 온전히 모든 것에서 벗어나 여유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교회 업무도 정중히 거절하고, 강좌 사회자는 정해졌으니 강의 스케치 부탁만 받아드리고, 문고 봉사도 더 이상 횟수를 늘리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모임의 구성원들에게 배울 점을 살피고 “참여자 각자의 장점을 살린 성장을 끌어내는 데 누구보다 적합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래서 다시 수희향 선배님의 책에서 해답을 찾아보았다. “마음을 나누고 함께 모은 이들과 이해관계나 최종 성과물에 상관없이 전적으로 과정을 즐기며 진행할 수 있는 협업 모임을 하나 만들어보자. 절대 최종 목표나 결과물을 정하지 말고,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로 인해 각 참여자는 어떤 성장을 하고 싶은지 등만 정해보자.”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며 다른 사람과의 비교와 평가에 연연해하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