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모닝
  • 조회 수 1375
  • 댓글 수 4
  • 추천 수 0
2017년 5월 7일 23시 43분 등록

아버지

몇 일전 아버지와 함께 갔던 병원에서의 일이 지금도 머리 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아버지와 전 병원에 갔고 진료를 마친 후 진료실 밖에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얼마 뒤 간호사가 아버지 이름을 부르면서 보호자분을 찾았습니다.

순간 저는 .. 엄마는 같이 안 왔는데 어떻게 하지?” 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3초가 흘렀을까요 멍하게 있던 저에게 간호사가 오더니 보호자분 뭐하세요? 제가 불렀잖아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순간 저는 머리를 세게 얻어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 내가 보호자구나, 내가 아버지의 보호자

 

이제 제가 아버지에 보호자가 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보호자라니요 어떻게 이렇게 된 것일까요. 저는 당황스럽습니다. 아버지의 그 크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아버지는 그 시절 어느 아버지들과 비슷하셨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떨어져서 살아야 했고 그 이후에도 저는 중학교 때까지 거의 대부분 제가 밤 든 후에 집에 들어오시던 아버지의 인기척을 잠결에서 나마 어렴풋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말에도 대 부분 일을 하시기 위해 나가셨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아버지와 같이 놀았던 기억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아버지는 제게 어렵고 또 조금은 무서운 존재셨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발표시간에 아버지가 재미있는 유머로 가족들을 즐겁게 해주시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하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자 그날 담임선생님께서는 저를 따로 불러서 왜 아버지가 무섭냐고 물어보셨죠. 그때 저는 그냥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왜 그렇게 물었는지는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선생님도 놀라셨는지 저를 그냥 다독거려주시기만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등학생 무렵 어느 날 아버지보다 조금 커진 제 키를 보면서 마음 속에 조금씩 이젠 아버지와 동등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 무렵부터인가 저는 아버지께 말 대꾸도 하기 시작하고 갑자기 아버지 말씀에 버럭 화를 내고는 방으로 들어가버리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대학에 들어간 후 저는 더욱 더 기고만장해 졌던 것 같습니다. 그 후로는 일부로라도 더 아버지말씀을 안 듣는 척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큰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고 저 또한 어찌할지 몰라 제 동생만 탓하고 있었습니다. 사고만 치는 동생이 야속했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며 아버지와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새벽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아버지는 동생을 데리고 들어오셨습니다.

동생은 무슨 일이 벌어진 지도 모르고 넋이 나가 있는 듯 보였고 아버지는 약간은 진이 빠지신 듯 힘든 모습이셨습니다. 그래도 아무 말 없이 그냥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시면서 다 잘 끝났으니 쉬라는 말씀만을 하셨습니다.

 

그때 방으로 들어가시던 조금 어깨가 쳐진 아버지의 뒷 모습을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저는 그날 난 어른이 되려면 멀었구나란 생각을 하면서 여전히 아버지는 저의 보호막이자 저를 감싸 안고 있는 울타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 아버지의 울타리를 넘어서 홀로 서있다고 자만하고 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의 보호자가 저라니요. 저는 그날 그 순간 그 동안 저를 둘러싸고 있었던 아버지의 울타리가 이젠 너무나 완만해져서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렇게 꿈꾸어 왔던 가족을 지키는 진짜 어른이 되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렵고 외롭습니다. 아버지도 저와 똑 같으셨겠지요?

 

요즘 아이들은 제가 집에 들어가면 뛰어와 제 다리에 달라 붙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올려보며 조잘조잘 대곤 합니다. 이 아이들의 저를 보는 눈빛 속에는 마치 아빠가 동화 속에 나오는 엄청 큰 거인처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 아이들도 제가 자기들을 지켜주는 큰 울타리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고는 조금 있으면 높게만 느껴졌던 울타리가 만만한 높이라는 걸 깨 닫는 순간, 그 울타리를 훌쩍 넘어가 버릴 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엔 저도 몰랐네요. 저희들이 그 울타리를 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고 계셨을 아버지의 모습을요. 저도 아이들이 울타리를 넘어가는 순간을 무척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볼 것 같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IP *.129.240.30

프로필 이미지
2017.05.09 06:56:10 *.114.133.89

인디안 속담에 

' 다른 사람의 모카신을 신고 두 달 동안 걸어보지 않고서는 그를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되어 보지 않고는 부모 마음을 알 수 없겠지요. 

저도 모닝님도 부모가 되어서야 부모 마음을 알 수 있듯이

자식이 부모를 키우는 나무이기도 하지요. 

보호자란 보호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니. 

사랑할 수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지요. 




프로필 이미지
2017.05.10 06:34:10 *.124.22.184

은섭님에 이어 정학님의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니 아들에게 아빠와 딸에게 엄마는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요.

보호자라는 이렇게 받아드리다니... 전 왠지 부담감를 가지며 막내인 내가 왜? 이런 의구심도 있었거든요. ㅠㅠ

프로필 이미지
2017.05.10 21:49:42 *.106.204.231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늘 이렇게 서먹서먹하네요. 조금 더 다가가려고 하지만 거리가 쉽게 좁혀지질 않네요.

내 아이하고는 이런 관계가 되지 않도록 늘 다짐을 하는데 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프로필 이미지
2017.05.11 19:11:22 *.129.240.30

아버지와 아들은 언제나 어려운거 같아요. 저는 우리 아들들한테 안 그려려고 노력하는데..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느낄지는 모르겠네요 ^^. 아마 아버지의 영향이 컷던것 같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052 1주1글챌린지_아이와함께하는삶_08 [3] 굿민 2020.07.14 1340
5051 5월 오프수업 후기 (윤정욱) [4] 윤정욱 2017.05.22 1341
5050 칼럼 #14 시계 도둑은 말이 없다 [2] 윤정욱 2017.08.07 1341
5049 9월 오프모임 후기_모닝이 묻고 그들이 답한다(이정학) file [1] 모닝 2017.09.26 1341
5048 한 줄의 문장을 읽고 [3] 박혜홍 2018.05.06 1341
5047 또 다시 칼럼 #14 이제는 말한다 [2] 정승훈 2018.07.30 1341
5046 10월 오프수업 후기 박혜홍 2018.10.20 1341
5045 나의 의도대로 사는 삶_월든 file [3] 어니언 2020.06.07 1341
5044 봄날이 가고 있다. 내 삶도 어딘가로 가고 있다 file [6] 송의섭 2017.04.24 1342
5043 #4 시지프스의 손_이수정 [8] 알로하 2017.05.08 1342
5042 「신화와 인생」을 읽은 후, 이직에 관한 세가지 조언 [4] 송의섭 2017.05.15 1342
5041 칼럼 #15 보은(報恩)_윤정욱 [2] 윤정욱 2017.08.14 1342
5040 #19 개와 고양이에 관한 추억_이수정 file [8] 알로하 2017.09.18 1342
5039 #22 다시 홍콩에서…_이수정 [2] 알로하 2017.10.16 1342
5038 칼럼 #25) 개인이 즐거워야 회사도 즐겁다 (“개인” 편)_윤정욱 윤정욱 2017.11.13 1342
5037 데자뷔 [deja vu] 박혜홍 2018.12.03 1342
5036 그리스인조르바_지배받지 않는 자유, 온전히 누릴 자유 [2] 어니언 2020.07.06 1342
5035 8월 오프 수업 후기(이정학) [1] 모닝 2017.08.29 1343
5034 #19 - 소원을 말해봐(이정학) [5] 모닝 2017.09.18 1343
5033 여행과 책을 지나오면서 전문가에 관한 생각정리 file [1] 송의섭 2017.10.30 1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