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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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를 이용하여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왔다. 미국의 마블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II』 였다.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전작을 재미있게 봤던 이유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영화가 영웅(HERO)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영웅 영화는 아주 오래 전부터 만화나 영화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장르 가운데 하나다. 마블 사에서 제작한 아이언맨, 헐크, 캡틴 아메리카 등 많은 영웅 시리즈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 중이며, 이제는 각각의 개별 영화 속 주인공 영웅들이 한 영화에 대거 등장에 더욱 화려한 볼거리를 보여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왜 영웅이 등장하는 영화에 매력을 느끼는 것일까? 현실 속에서 이루기 힘든 초능력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이러한 영화의 가장 큰 핵심 줄거리는 평범한 개인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초월적인 힘을 얻어 세상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주제는 단순히 최근에 와서야 대중의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다. 우리의 『홍길동전』 이 그렇고 서양의 『아서왕 이야기』,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많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이와 유사한 범주에 속한다. 다시 말해 영웅을 소재로 한 문학은 평범한 수준을 넘어서 특정 지역과 시대를 뛰어넘어 아주 많이 인용되고 재 사용된 단골 소재인 것이다. 이 같은 평범한 소재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먼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주요 줄거리를 살펴보자.
자칭 전설의 무법자 스타로드, 그러나 현실은 우주를 떠도는 그저 그런 좀도둑에 불과한 피터 퀼. 뜻하지 않게 우주의 절대악 타노스와 로난의 타겟이 된 그는 감옥에서 만난 암살자 가모라, 거구의 파이터 드랙스, 현상금 사냥꾼 로켓과 그루트 콤비와 불편한 동맹을 맺고 일명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결성한다. 영화는 범상치 않은 화려한 과거를 지닌 이들이 펼치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의 1편은 이들이 어떻게 콤비를 이루게 되었고, 그들의 유쾌한 조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2편은 지구의 평범한 소년이었던 주인공(피터)이 어떻게 우주를 구하는 영웅이 되는지에 대한 모습이 신화적 요소와 함께 더욱 부각되었다. 2편에서는 강조 된 신화적 요소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아버지의 탐색’ 모티브이다. 스타워즈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 가운데 하나인 아버지의 탐색은 단순한 핏줄 찾기를 위함이 아니다. 이 모티브가 가지는 신화적 의미는 무엇일까.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를 찾는다는 것은, 우리의 개성과 운명을 찾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개성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고, 몸과 때로 마음은 어머니에게서 물려 받는다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 그 개성이라는 게 신비로운 겁니다. 개성이라는 것은 곧 우리의 운명이니까요. 그러니까 아버지 탐색으로 상징되는 이 운명의 탐색을 떠나는 거지요. (신화의 힘 307 페이지)”
영화 속 주인공인 피터도 마찬가지다. 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 그는 아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많은 신화 속 영웅들과 마찬가지로 주인공 역시 영웅적 삶을 떠나는 계기가 마련된다. 이것은 본인이 원해서 찾아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주인공처럼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다. 바로 어머니의 죽음이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아이는 어른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어머니가 그가 태어난 배경이자 그의 본성이라면, 아버지의 상징은 그가 찾아가야 할 신비이자 신화이다. 이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탐색하는 것과 같다.
영화 속 두 번째 신화적 요소는 ‘성인식’이다. 주인공은 마음 속으로 갈망하던 자신의 친아버지를 드디어 만나게 된다. 혈육의 재회의 정도 잠시 아버지는 우주를 정복하기 위한 야욕을 품고 자신의 야망에 아들을 이용하고자 한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무한한 힘과 영생의 삶을 약속하며, 자신과 함께 우주를 정복할 것을 종용한다. 예수와 석가모니의 영웅적 행동에도 항상 마귀의 유혹이 있었다. 주인공은 갈등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하고 이를 부정한다. 유혹을 극복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고통을 이겨낸다. 이것은 주인공이 진정한 자아를 회복하고 성인이자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영화 속 마지막 신화적 요소는 바로 ‘희생’을 통한 새 생명의 탄생이다. 친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주인공 피터는 모두를 대피 시키고 혼자서 희생을 감수하려고 한다. 희생은 영웅만이 드러낼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가치다. 그런데 이 때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영웅이 출현한다. 바로 피터의 양아버지 욘다다. 그의 희생으로 주인공 피터는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된다. 죽음(욘다)이 새로운 생명(피터)의 씨앗이 되는 순간이다. 이를 통해 주인공은 한층 더 성숙해지고, 더욱 영웅적 변모를 갖추게 된다.
신화를 통해 그리고 신화를 모티브 삼아 만든 영화나 소설 등을 통해 우리는 우리 안에도 영웅이 잠들어 있음을 느낀다. 이 사실만으로도 거칠고 힘든 세상에서 큰 위로가 된다. 그리고 이런 영화나 소설들을 보면서 이따금 내 안의 영웅도 언젠가는 깨어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기도 한다. 이것도 다행이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은 내 안의 영웅은 누가 깨워서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내 안에 영웅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은 타인이 알려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영웅을 직접 깨우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그렇다면 영웅은 어떻게 깨울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의 오늘 하루를 살펴보면 된다. 내가 영웅적인 하루를 보냈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영웅적인 하루가 없이 영웅적인 인생이 있을 수 없다. 잊지 말자.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는 영웅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