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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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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8일 06시 37분 등록

 사월의 어느 월요일과 화요일에 봄비가 내렸습니다. 꽃씨들을 멀리멀리 날려 보내기 위해서였을까요? 바람도 ‘쌩!’하고 불었습니다. 꽃들이 다 져 버리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순간 ‘뚝!’하고 비가 그치더군요. 참, 다행입니다.


 비가 ‘후두둑’ 쏟아졌던 화요일 오후,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어머니폴리스를 서는 날이었습니다. 얇은 옷차림에 투명한 비닐우산을 하나 들고 나갔습니다. 학교 주변을 돌면서 비를 맞으면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집으로 들여보내는 일을 했습니다.


 “어서 들어가. 감기 걸려. 비 그치면 다시 나와서 놀아.”


 갑자기 바람이 ‘쌩!’하고 불더니 우산대가 똑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가랑비에도 옷이 젖는다는데, 쏟아지는 비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습니다. 빗물을 뚝뚝 흘리면서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거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낄낄대는 두 아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엄마! 이 동시 진짜 재밌다!”
 정철문 시인의 첫 동시집 <자꾸 건드리니까>에 나오는 ‘후두둑 뚝!’입니다.


후두둑 뚝!


비 온다
후득후득 온다
막 온다
우산 없는 아주머니가
자기 손바닥만 한 핸드백을 머리에 얹고
이쁘게 뛰려고 막 뛰지도 못한다
골목을 질러가던 할머니가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나무처럼 서 있다
할머니가 나온 가게에서
뚱뚱한 아저씨가
엄마, 엄마, 뛰어나와서
어깨와 팔로 감싸고 들어간다
분식집에서 엄마 품에서
젖을 먹던 아이가
눈이 동그래져서 비를 쳐다본다
엄마야!


바람이 긴 팔을 휘둘러
내 우산을 가지고 가 버렸다
지그재그로 땅바닥을 득득 긁으며
우산이 달아난다
손을 뻗을 때마다
폴짝폴짝 재주를 넘어 달아난다
울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무처럼 서 있는데,
턱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물속처럼 눈을 뜨고 달려가서
우산을 콱 움켜잡았다
사람들이 쳐다보며
웃으며 간다
나무처럼 홀딱 젖었다
턱이 으드드드 떨린다
그래도 나는 우산을 가졌다


우두둑 비가 그친다


 큰아이가 하굣길에 보았던 재미있는 장면을 읊어줍니다. 세 살쯤 돼 보이는 아기가 자기 몸보다 더 큰 우산을 들고 아장아장 걸어가더랍니다. 갑자기 바람이 ‘쌩!’하니 불자 아기가 우산을 놓쳤는데, 그 우산이 하늘을 뱅글뱅글 한 바퀴 돌더니, 바람이 ‘뚝’하고 멈추자 그 우산이 아기 엄마 앞에 ‘툭!’하고 떨어졌답니다. 아기 우산이 꼭 부메랑 같았다고요.


후두둑 쌩! 툭!


비 오는 하굣길
세 살 꼬마 아이가
자기 몸보다 더 큰 우산을 들고 간다
쌩!
바람이 분다
아기가 우산을 놓친다
우산이 난다
새처럼 난다
나무에 걸릴 듯 말 듯 높이 난다
뚝!
바람이 멈춘다
우산이 빙글 돌더니
아기 엄마 앞에
툭!하고 떨어진다


우산이 꼭 부메랑 같다


 이번엔 작은아이 차례입니다. 하굣길 우산을 펼치는 순간에 바람이 ‘쌩!’하고 불어서 그만 우산이 홱 뒤집혔답니다. 뒤집혀진 우산을 들고서 어쩌지? 어쩌지? 고민하는데, 때마침 뒤집혀진 우산을 든 초등학교 3학년 언니가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걸 봤더랍니다. 지하주차장으로 가면 비를 안 맞겠다싶어서 그 언니를 좇아갔는데, 아차차 지하주차장에서 길을 잃은 겁니다. 어쩌지? 어쩌지? 하다가 그 날 처음 본 그 언니에게 길을 물어봤답니다. 언니는 110동 가는 길은 모르지만 111동 가는 길은 알고 있다고 했고, 작은아이는 그 언니를 따라서 111동으로 갔답니다. 1층으로 나와서 바로 옆 동인 110동으로 온 거지요! 작은아이는 비도 맞지 않고, 길도 잃지 않고, 3학년 언니도 한 명 알게 되었다고 연신 싱글벙글 입니다.


후두둑 쌩! 휴!


비가 온다
우산을 편다
갑자기 바람이 쌩!
우산이 뒤집혔다
펴 보려고 하는데
꿈쩍도 하지 않네
어쩌지? 어쩌지?
비가 계속 온다
바람이 계속 분다
어쩌지? 어쩌지?
뒤집혀진 우산을 든 언니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간다
나도 따라 내려간다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르는데
어쩌지? 어쩌지?
언니, 언니?
110동 가는 길 알아?
아니, 아니
110동 가는 길은 모르고
111동 가는 길은 알아
언니랑 같이 111동으로 나와서
110동 우리집 찾았다!


휴! 다행이다


 두 아이는 정철문 시인의 동시 ‘후두둑 뚝!’을 읽으면서 ‘후두둑 쌩! 툭!’과 ‘후두둑 쌩! 휴!’를 짓고서 좋아서 난리가 났습니다. 동시 속에 등장하는 아이는 비에 홀딱 젖었지만 자신들은 빗속을 막 헤쳐 왔다나요?


 하지만 비를 쫄딱 맞은 저는 잘 낫지도 않는다는 봄 감기에 걸려 내리 일주일을 앓았습니다. 콧물을 줄줄 흘려서 코 주위가 다 헐고, 오랜만에 항생제 처방도 받고 엉덩이 주사도 한 대 맞았습니다.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누워 떠올려 봅니다. 어릴 적에 비하고도 친구가 되고 바람과도 친구가 되었던 그 순간들을 말입니다.


 어느 덧, 완연한 봄날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바람이 자꾸 건드’립니다. ‘잎사귀가 자꾸 꼼지락’거립니다. ‘햇살이 곁에 와서 자꾸 꼬무락’거립니다. 마음이 둥둥 뜹니다. 아아, 안되겠습니다. 올봄엔 동시와 한판 신나게 놀아야겠습니다.


5월 22일 남편 유형선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IP *.202.114.135

프로필 이미지
2017.05.08 13:40:52 *.145.103.48

이제 내일이군요.

이제 "엄마의 글쓰기"가 세상빛을 보겠군요. 기대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7.05.11 12:14:40 *.202.114.135

앗@ 연대님! 기다리고 계신가요? 고맙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하진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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