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뚱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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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오랜 만에 가장 좋아하는 모임에 나갔다. 정말 오랜만이다. 그들이 사는 인생을 들었고, 내가 그 동안 살아왔던 이야기를 주었다. 누구는 둘째 소식을, 누구는 결혼소식을, 누구는 연애를, 그리고 누구는 실패를 이야기했다. 그들과의 수다는 농구 한판을 끝내고 마시는 이온음료 같았다. 목마름을 잊게 해 주었고, 녹초가 된 나를 위로해 주는 듯 했다. 그런데 유독 신경이 쓰이는 한 친구가 있었다. 우리들의 퍼포먼스를 관망하는 건지, 아니면 거북해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원래 성격이 그렇지 않을 뿐더러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기에 위안이 되었다.
그 친구와는 과거에도 함께 잘 어울렸다. 한참 공무원을 준비하며 힘들어 할 때 술 한잔 기울이며 스트레스도 함께 풀었다. 너무나 감사했던 건 몇 해 후 당당히 공시에 합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5급 사무관으로 공직에 있다. 누가 봐도 자랑스러운 동기다.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정확히는 누가 누구를 평가 하겠냐만은 이 번 만큼은 예외로 두고싶다. 그렇다. 그는 달라져 있었다. 아니 틀려져 있었다. ‘공무원’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 또는 지방 공공 단체의 사무를 맡아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동의어로는 공직자. 영어로는 ‘Civil Servant’다. 시민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Servant. 공직에 있다고 해서 굽신 거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눈치를 봐야 한다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말과 행동이 거만해지고 눈빛이 변하면 안된다. 공직은 그런 것이다. 누군가의 위에 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공직자는 생명력을 잃게 된다. 그것은 이제 군림이고 제왕이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 계급을 붙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거만함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누군가의 가치를 보려고 하는 눈빛은 더더욱 없었다. 우리와는 다른 존재라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어 이질감이 들 정도였다. 초심은 없었다. 돌이켜 보면 그의 초심은 공직의 의미가 아닌 공직이 주는 안락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에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던 것이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할 때 왜 하려고 하는지가 중요하다. 시키는 일이니까 하고, 주어진 것이니까 하고 그냥 해야 되니까 하고… 그냥은 없다. 결혼은 왜 하는 것인가? 그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고 그 사람과 함께 미래를 그리고, 성장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적령기가 되서 하는 것이 아니다. 밥은 왜 먹는 것인가? 죽지 않기 위해 먹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공직자가 왜 되려고 하는 것인가? 시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국가에 이바지 하기 위해서다. 권력과 권위라는 보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 자신보다 더 큰 가치에 나를 놓는 것이 공직자가 나아가야 할 길인 것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왜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타인’이 왜 그것을 하려고 하는지 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 사람을 꿰뚫어 봐야 한다. 그의 생각을, 그의 삶을 통찰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만약 옳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면 손을 내밀어 줘야 한다. 말을 해 줘야 한다. 초심을 잃어간다면 각성 시켜줘야 한다. 그것이 ‘나와 너’가 성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2017년, 대한민국은 중대한 갈림길에 서있다. 위기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있었다. 부끄러운 일이며, 안타까운 사건이다. 대상자의 물러남이 아쉬운 것이 아니다. ‘탄핵’이라는 상처를 안게 된 국가가 안타까운 것이다. 민주주의의 뿌리가 가장 잘 내려졌다는 미국에서도 탄핵은 단 한차례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생각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던져야 한다. 왜 대통령을 하려고 하는지, 공직자의 수장이 왜 되려고 하는지, 그 진정성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거만하지 않고 국민과 함께 있어도 전혀 이질감 없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본인에게 보상을 주려는 사람이 아닌 국가에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자신이 약속한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갈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우리는 끝까지 후보자를 꿰뚫어 봐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그의 생각과 그의 살아온 인생을 통찰해야 한다. 3일 뒤면 19대 대통령이 탄생한다. 우리는 그 분의 행보를 끝까지 주시해야 한다. 투표라는 행위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닌 다시 한 시민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의 초심을 기억해야 하며, 각성 시켜 줘야 하며, 손을 잡아줘야 한다. 그것이 나의 성장, 그 분의 성장, 국가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일어나는 대한민국, 희망이 있다는 믿음이 생기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우리 모두 간절히 기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