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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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이다.
생리 기간이 끝나면서 뭔가 툭 하고 떨어졌다.
호르몬 탓일까? 금단 증세인지도 모른다.
허전했다. 아마 누군가 그리웠을 것이다.
매달 비슷한 패턴이다.
노래 몇 곡을 들으면서 흘리는 눈물이 답이다.
몸이 기억하는 것들이 있다.
때가 되면 그립다가 지나가는 것들이.
어젯밤, 한강에 나갔다.
구 선생님 계시는 절두산과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을 지나 당산철교 밑으로 한강을 따라서 양화대교, 성산대교까지 걸었다.
늦은 시각인데도 많은 사람이 불금을 즐기고 있었다.
성산대교 아래에는 트럼펫? 연주가 발길을 잡았다.
올려다본 하늘엔 슈퍼 문도 아닌데 커다란 달이 가득했다.
열일하는 ‘달님’이 떠올라 순간 빵 터졌다.
달님 대통령은 또 뭘 하고 있을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향했다.
목소리마저 끄는 유아인이 나오는 ‘시카고 타자기’를 ‘다시 보기’로 보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다녀오고 또 잤다.
자고 일어나서 화장실에 다녀오고 또 잤다.
뛴 것도 아니고 산책 삼아 2시간쯤 걸은 게 단데 그랬다.
먹는 것도 귀찮고 힘들어서 누워있었다. 잔뜩 흐린 데다 천둥에 비까지 내렸다.
저질 체력이다. 운동이랑 친하지 않은 이유다. 뭐가 먼저인가?
아이 둘 키우면서도 하루 외출에 이틀은 골골댔다.
자연스레 몸 쓰는 일을 사리게 됐다.
마흔을 앞두고는 주사위를 던졌다. 다시 살아보고 싶었다.
몸 쓰는 일을 10년쯤 하자고 했다.
1년을 채우지 못하고 9년 만에 접었지만, 학습지 교사를 했다.
차 없이 수업을 다닌다는 건 그냥 짐꾼인 거다.
어깨 몇 번 나가고, 팔 망가졌다. 종이 한 장도 무거웠다.
마음이 먼저 하는 건 맞다. 몸이 따라가긴 하니까.
그래도 체력이 갈수록 웃기고 앉았다.
노화인가?
**
2:30 배, 오렌지, 과채 주스(토마토, 당근, 포도), 호두, 아몬드
그냥 건너뛰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다. 세상 귀찮았다. 속도 더부룩한 느낌이었다. 배도 안 고픈데 먹지 말까? 왜 먹고 살아야 하나, 안 먹고 살 수는 없나, 한 끼쯤 거른다고 뭐가 문제인가, 에잇, 그래도 뭐라도 챙겨 먹자, 하기로 한 거니까 약속은 지키자, 그러고는 일어나서 오렌지를 깠다. 향긋한 향기에 침이 고였다. 그래, 먹고 살아야지, 맛있게 먹자 그랬다.
코코아 분말을 타서 마시는 물은 부담이 없어서 많이 마시게 된다. 덕분에 물 섭취가 늘었고, 뱃속은 부글부글하고, 화장실도 자주 다닌다. 덜 들어오고, 더 나가게, 이게 된다. 쫌 신기하다. 아니, 많이 신기하다. 명상도 빼놓을 수 없다. 깊은 호흡을 15분쯤 하고 나면 몸에 힘이 빠지면서 기운이 난다. 묘하다. 운동을 제대로 못 한 거 말고는 대체로 만족스럽다.
6:00 오렌지, 오이, 현미밥, 상추, 두부, 야채볶음(감자, 당근, 피망, 양파, 마늘)
까먹었던 천일염이 등장했다. 채소를 볶았다. 식욕은 별로였지만, 요리하는 동안 즐거웠다. 뽀얀 감자와 불그레한 당근, 초록 피망에 하얀 양파, 다채로운 재료의 색상과 향기에 눈과 코가 취했다. 얼마 만인지 알 수가 없다. 큰딸이 먹고 싶은 음식 1위는 ‘반찬’이다. 결혼을 정리하면서 반찬도 정리한 탓이다. 디톡스 핑계로 주방이 난리도 아니다. 귀찮아 죽겠다.
한 집을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것을 ‘셰어하우스’라고 한단다. 큰딸이 그랬다. 우리 집은 ‘셰어하우스’라고. 아이들한테 언제쯤 독립할 거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독립하라고 하며 던진 말이다. 두 딸과 나는 아무 때나 들락거린다. 여행도 각자 다니고 약속도 일과도 달라서 말 그대로 집만 공유하는 게 맞긴 하다. 청소는 내가, 빨래는 딸들이, 나머진 각자 알아서다.
5월엔 디톡스와 겸사겸사 나를 만나기 위해서 집을 지키고 있다. 딸들은 놀린다. 먹는 게 그게 뭐냐고, 사람이 되려고 그러냐고. 2주를 넘기면서 나도 조금 헷갈린다. 뭐 하고 있나 싶다. 이제 절반이다. 반환점을 돌면서 다시 시작한다. 만나고 싶던 나를 잘 만나고 있는지, 내 얘기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내게 최선을 다해서 집중하는지, 얼마나 간절한지 묻는다.
*
오늘은 살짝 외롭단다.
누군가 떠오르고 그립고 생각나서 심심하다고 한다.
그런 날도 있는 거라고 답했다.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그러니 그 외로움도 즐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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