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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망토
조금 일찍 회사가 끝난 어느 하루, 아이들과 모처럼 놀이터에 갔다가 더 놀고 싶다고 징징대면서 우기는 둘째만 일단 놔두고 첫째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다가 다시 둘째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놀이터로 향했다. 언제 어린이집에 같이 다니는 친구 아이가 왔는지 둘이서 미끄럼틀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친구와 있는 아이를 보니 갑작스럽게 장난끼가 발동하여 놀래켜주기 위해서 살금살금 뒤로 다가갔다. 그때 친구아이가 우리 아이에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있으면 우리 아빠 온다고 했다. 아빠 오면 그네 태워준다고 했는데 우리 아빠 엄청 힘 세다~!”. 그 말을 들은 우리 아이가 조금 샘이 났는지 뽀루뚱해져서 이야기한다. “우리 아빠는 엄청 크고 힘도 세서 그네는 한 손으로 밀어주고 그리고 음음…. 어쩔 때는 나 태워 주시고 막 날라 다니고 그래~ 몰랐지? 치”
아.. 이런 둘째가 내가 숨겨둔 망토를 본 것일까? 내 정체가 들통난 것 같다.라고 혼자 생각하면서 웃었다. 하지만 정말 가끔 나도 그런 망상을 한다. 혹시 내가 수퍼맨이 아니었을까? 갑자기 사고로 기억을 잃고 그냥 일반 지구인과 같이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조금 있으면 뭔가 갑작스러운 계시가 나에게 와서 이제 본 모습을 찾고 지구인들을 모험을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말이다.
요새 우리사회에선 온통 영웅 신드롬이다. 아마도 사회가 더 어려워서 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영웅적인 존재가 나타나서 지금의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주기를 원하는 것 같다. 얼마전 끝난 대통령선거도 조금은 그런 열망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리더이긴 하지만 초 인간적인 존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열망과 바램이 투영되는 듯하여 조금은 걱정될 때가 있다. 그리고 약간의 미담들이 너무 크게 포장되어 영웅시 될 때는 불안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우리 모두는 영웅을 원한다. 아마도 세상이 살기 힘들고 현실 속에서
느끼지 못하는 대리만족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빡빡한 현실 속에 내 힘으론 해결되지 못하는 일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출해 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정말 그런 사람들이 우리에게 영웅일까? 아니 그 전에 영웅이란 무엇일까?
조셉 캠벨은 ‘신화의 힘’이란 책에서 영웅이란
자기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친 사람을 일컫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진짜 수퍼맨으로 믿었던, 실제는 수퍼맨 역할을 했던
크리스토퍼 리브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이순간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이겨내고 장애를 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바로 당신이 슈퍼맨입니다!”
두 사람은 영웅에 대해서 초자연적인 힘을 이야기 하지도 않고 미래를 미리 보는 예지력을 조건으로 내걸지도 않고 있다. 영웅으로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는 누가 움직여 가고 있는가? 정말 영웅들이 이끌어 가고 있는 걸까? 우리 모두 그런 영웅을 기다리면서 영웅의 등장을 고대하고 있지만 어쩌 보면 우리 자신들이 진짜 영웅일 지 모른다. 아니 우리 모두 그것을 깨닫고 깨우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영웅 한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것은 단지 희망일 뿐이고 신화일 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내 삶은 한 사람 한사람의 영웅이 모여 바꾸어 나 갈수 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 겨울 새로운 영웅을 기다리지만, 본인 하나하나가 다른 사람에겐 영웅인 촛불을 든 수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결국 그 영웅들이 세상을 바꾼 것이다.
가족들을 위해 오늘 이 순간 열심히 사는 우리네 아버지가,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가,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오늘 봉사하고 희생하고 있는 바로 당신이 영웅이다. 자기 자신으로 인해 이 세상 어느 누군가 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영웅이란 말이다.
하늘을 날지 못해도, 손에서 거미줄이 안 나오고, 졸티가 어울릴지 않게 배가 나 왔어도, 바로 그 사람은 최소한 한사람에게만은 영웅이요 슈퍼맨이 아닐까 싶다.
우리 주위의 영웅들에게 오늘 따뜻하게 안아주자. 그리고 이야기하자~ 당신이 나에 슈퍼맨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