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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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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5일 05시 08분 등록

주말에 시간을 내어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에 있는 홍룡사(虹龍寺)라는 절에 다녀왔다. 원래는 통도사를 가려고 했으나, 시간도 넉넉하지 않았고 통도사 가는 길에 홍룡사를 가르키는 적갈색 문화재 안내 이정표에 이끌려 무작정 홍룡사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홍룡사가 자리 잡은 상북면 대석리는 양산 시내에서 차로 15분 정도면 여유 있게 도착하는 곳이다. 대석리 초입에서 보이는 작물을 모아서 내다 파는 구판장이 영락없는 시골 마을이다. 구판장을 지나 홍룡사 초입이 시작 되는 곳부터는 꽤 높은 오르막길이 이어졌는데 행렬이 많지는 않았다. 특별할 것 없던 풍경을 지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길을 걷기 시작하니 차를 타고 올라올 때는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시선을 사로 잡았다.

 

제일 먼저 나의 시선을 사로 잡았던 것은 주차장 한 켠에 있던 거대한 범종 모양의 화장실이었다. 크기가 작지도 않다. 처음에는 놀이기구인줄 알았다. 하나 둘 그곳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따라 자세히 살펴 보니 화장실이었다.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어느 사찰을 가도 볼 수 없었던 아주 특이한 화장실이었다. 주차장 옆으로는 개울이 흐른다. 수원지를 알 수는 없지만 수량이 꽤 되어 보였다. 가족 단위의 피서객들이 더위를 식히러 나와 어른들은 개울가에서 발을 담그고 아이들을 개울물에 온 몸을 던지며 송사리처럼 이러 저리 바빴다. 그렇지, 저렇게 놀아야 애들이지 싶을 만큼 정말 열심히도 놀았다. 아이들은 흐르는 물가에서 온 몸을 던지며 놀 듯이 하루를 보내고,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구경하듯 자신의 하루를 흘려 보낸다. 개울가나 바닷가에서 온 몸을 내던지는 대신 발만 담그고도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즈음부터 우리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 4월의 황사가 모두 걷히고 날씨는 좋았고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여름이 가기 전에 피서를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이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장 초입부터 홍룡사 입구까지는 가파른 경사가 약 800미터 정도 이어진다. 차로 홍룡사 입구까지 올라 갈 수도 있다. 홍룡사(虹龍寺), 그 한자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무지개와 용이 있는 절이다. 어떠한 사연인가 하니, 이 곳에는 높이 약 20여 미터 남짓의 폭포가 있는데, 이 곳 폭포수가 상중하 3단으로 기묘하게 떨어지며 일으키는 물보라 사이 사이로 가끔 무지개가 보이는데 그 모습이 황룡이 승천하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홍룡사는 신라시대 673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건 당시는 낙수사(落水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원효대사는 이 곳에 89암자를 지어 약 1천명의 대중을 가르쳤다고 하는데 이들 모두가 원효대사의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이곳 주변의 산을 천성산(千聖山)이라고 부른다.

 

 홍룡사는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타 절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10년대에 통도사 승려 법화가 중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절터는 크지 않지만, 그 안에서 대웅전과 무설전 그리고 홍룡폭포 바로 옆에 위치한 관음전 등이 옹기종기 잘 모여있어 전체 경내를 둘러보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사실 내가 홍룡사를 찾은 이유의 팔 할 이상은 이 곳의 폭포를 보기 위해서였다. 마음에 돌덩이 하나가 들어 앉아 마음이 무거울 때 폭포라도 바라보며 한껏 씻어 내리고 싶었다. 수량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낙수의 청량감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관음전과 폭포의 조화가 한 폭의 그림을 떠오르게 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압도하지 않고 둘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풍경으로 어우러져 있었다.

 

관음(觀音)은 관세음보살을 상징하며, 중국에서는 콴인, 일본에서는 콴논으로 불린다. 보살은 깨닫다라는 뜻의 보디(Bodhi)와 생명이 있는 존재를 뜻하는 사트바(Sattva)의 준말로 '깨달은 자'를 뜻한다. 관세음보살은 깨달음을 얻은 후 모든 괴로움과 윤회의 고통이 끝이 나는 피안의 세계 니르바나(열반)로 갈 수 있었지만, 이 세상 모든 생명들이 부르짖듯 소리치는 고통의 소리에 차마 열반의 세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모든 생명들을 니르바나(열반)의 세계로 보내고 난 뒤 자신이 마지막으로 그 곳으로 넘어가기로 다짐을 하게 된다. 고통의 세계에 기쁜 마음으로 내려와 머물게 된 것이다.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하는 사찰을 말하는데 홍룡사의 관음전과 홍룡폭포가 내려다 보는 곳에 불상 하나가 있었다. 눈을 감은 채 대웅전을 향해 가부좌를 한 상태로 앉아 있는 불상의 머리 위로는 연꽃이 앉아 있었다. 나는 생각 없이 들고 올라 간 테이크 아웃 커피를 두 손으로 가리며 서있다가 결국 한 쪽 구석으로 치우고는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며 마음 속으로 빌었다. 간절히 빌었다. 잠시 후 눈을 떠보니 사람 속도 모르고 불상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미소만 띄고 있고, 그 옆으로 홍룡폭포는 끊임없이 과과과과폭포수만을 토해내고 있었다. 입술을 이죽거리려던 찰나, 자꾸 듣다 보니 일정하게 들리는 폭포소리가 칭얼거리는 아이를 다독이는 어머니의 토닥거림 같기도 하고 아이를 재우기 위해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자장가 같기도 하여 그만 두었다. 듣기에 참 좋았다.

 

조셉 캠벨은 그의 강연집 『신화와 인생』을 통해 일상적인 삶의 맥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신만의 성스러운 공간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자신만의 성소(聖所)에서 우리는 일상의 번잡함을 잊고 일상에서 소비한 힘을 재충전하고 나날이 자기다워져 간다. 지쳐있을 때 자신의 힘을 북돋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그 사람의 성소다. 일상의 무게에 지쳐 사회가 부여한 자신의 임무가 돌덩이처럼 자신을 누르고, 그것에 깔린 자신의 존재가 깃털보다 더 가볍게 느껴질 때쯤 다시 한번 자신을 긍정하고 스스로를 토닥거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 곳 역시 그 사람의 성소다.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자신만의 성소가 분명한 사람은 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이번 주말 나만의 성소 한 곳을 더 발견한 것 같아 기쁘다. 불가에서는 모든 중생이 부처라고 설파한다. 우리 모두가 깨달음을 얻을 떡잎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것만으로 큰 위로가 된다.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홍룡사 폭포는 그렇게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위로는 힘이 되고, 다시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다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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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5 10:32:44 *.124.22.184

폭포 멋져요~  일요일 저녁이면 짜증을 낸다고 하던 것과는 다른 여유있는 모습인데요. ㅎㅎ

여행하면서도 칼럼글의 소재도 찾고, 정욱님은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잘 잡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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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6 14:05:37 *.216.233.131

주말에 그 좋은 상남동에 안나가고 대신 절을 찾았네요. ^^;

마음의 돌덩이는 씻겨 내려갔으면 좋겠네요. 토요일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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