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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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름은 꽤 흔한 편이라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에 다닐 때까지 동급생 중에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가 한 명씩은 꼭 있었다.
나는 그게 참 싫었지만, 그래도 “흔한” 이름
덕분에 삶이 달라졌거나 달라질 뻔 했던 일들이 있다.
에피소드1
초등학생 때 나와 같은 이름의 아이는 (아마도 학교측의 배려로) 한번도 같은 반이었던 적은 없었지만, 나는 입학할 때부터 그 아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같은 이름이라 반이 헷갈렸던 듯 하다. 그래서 그 아이의 엄마와 우리 엄마도 알고 지냈고, 나와 그 아이는 이름과 얼굴만 아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마주치면 인사는 하고 지내는 사이였다.
초등학교 4, 5학년때
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 때부터 저녁형 인간이 될 싹을 보여 저녁에 늦게 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걸 힘들어했었다. 아침밥을 먹는 것 보다는 10분이라도 더 자려고 했고, 어떻게든 딸내미를 아침을 먹여서 학교에
보내려는 엄마 때문에 자주 지각을 했었다.
어느 월요일. 그날도
나는 지각을 했다. 매주 월요일은 아침 조회가 있는 날. 전교생이
수업 전에 운동장에 모여 서서 조회를 했었다. 조회 시간에 늦는 경우에는 조회가 끝날 때까지 교문 옆에
서있는 벌을 받아야했다. 그날 나는 다른 지각생들과 함께 교문 옆에 잡혀 있었고, 멀리서 교장 선생님이 뭐라시는지 잘 들리지도 않는 훈화를 하는 걸 보고 있었다. 유난히 지루했던 훈화와 조회가 끝나고 우리반이 서 있는 곳으로 돌아갔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반 아이들이 날 보고 놀라는 것 같기도 했고, 피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 어떤 아이가 용기를 낸 듯 나에게 “너 안
죽었어?” 하고 물어봤다.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죽어?’ 물어본 아이도 나도 어리둥절해 있는데, 어디선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둘러보니 옆 반 아이들이 담임 선생님을
둘러싸고 모여서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옆 반의 “이수정”이 주말에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옆 반 친구들이 선생님과 함께 울고 있는 거라고. 유난히
길고 지루했던 교장선생님의 훈화는 그 아이의 죽음을 알리고 추도하느라 그랬던 거였고, 조회 시간에 나의
모습이 안 보였으니 우리 반 아이들은 당연히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슬프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한참을 멍하고 있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 그런데 왜 우리반에는 우는 애가 하나도 없지? 옆 반 아이들은 저렇게 슬퍼하고 있는데. 물론 우리반 담임 선생님은
죽은 아이가 내가 아니라는 걸 알고 계셨을테고, 그래서 슬퍼하지 않으셨겠지만, 반 아이들은 내가 죽었다고 착각했으면서도 눈물을 보이는 아이가 없었다.
그 때 나는 11년 인생에서
처음으로 “회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아 내가 잘못 살았구나, 나는 죽어도 울어줄 친구가 하나도 없구나.’ 뭐 그런 감정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저렇게 많은 친구가 진심으로
죽음을 슬퍼해주는 그 아이가 어린 마음에 살짝 부럽기도 했던 것 같다.
그 아이의 죽음을 계기로 나는 인생에 대해 크게 깨달았고 나의 삶은 그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고 한다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않겠지. 아쉽게도 인생 첫 회한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그 이후로 나의 삶이 달라진 건 없었던 것 같다. 우연을 도약으로 승화시키기에는 너무 어렸던 걸까? 조셉 캠벨은 그보다 한참 어린 일곱 살 때 봤던 공연 속의 인디언에 매료돼 인디언 신화에 관심을 갖고 세계적인 비교신화, 비교종교학자가 되었다는데…
비교하지 말자.
에피소드2
나는 내 이름이 흔해서 싫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다른 반에 나와 같은 이름의 아이가 있는 것도 싫었고, 그 아이와 이름이 같다는 것만으로 비교되는 것도 싫었다.
고등학교 때 화학 수업 시간이었다.
그 때는 선생님이 질문을 할 때 학생들의 이름이 아니라 번호로 부르는 일이 많았다. 보통은
날짜에 해당하는 번호를 불렀던 것 같다. 예를 들어 3일이라면 3, 13, 23…번
등으로. 그런데 그날은 질문을 하시고 대답할 학생을 번호가 아니라 다른 걸로 부르셨다. 그런데 반 아이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디스 크리스탈”이라는 말로 부르셨다. ‘뭐라는 거야?’ 우리 모두 멍하니 선생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나를 빤히 쳐다보시며 다시 “디스 크리스탈”이라고 불러서 나는 뭔지도 모르면서 일어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깨달았다. 아 크리스탈이 내 이름이구나. 그랬다. 나의 이름은 영어로도 번역이 되는 이름이었다. 실제로 내 이름 뜻이 크리스탈(水晶)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음(音)은 같으니 됐다.
그날 그 선생님이 왜 나를 크리스탈이라고 부르셨는지 모르겠다.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나는 나의 이름이 좋아졌다. 영어로 번역되는, 그것도 예쁜
뜻으로 번역되는 이름이 어디 그렇게 많은가. 흔하면 어떤가. 흔하긴
하지만 ‘좋은 이름이니까 그만큼 많은 부모가 그들의 딸을 “수정”이라 이름 지었겠지’라는 논리적 도출까지 가능해졌다.
이름을 좋아하게 되면서, 나는 스스로에 대한 사랑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언젠가 엄마에게 누가, 어떻게
나의 이름을 지었는지 물어봤는데, 나의 이름은 엄마가 직접 지으셨다고 했다. 원래 할아버지가 사주에 맞춰 좋은 이름을 준비했으나, 첫 손주가
딸인 걸 알게 되자 마자 다 소용없다며 버리셨다고 했다. 엄마는 오히려 더 좋아하셨단다. 결혼하기 전부터 예쁘다고 생각해서, 딸을 낳으면 지어주려고 생각해
놓은 이름이 바로 “수정(秀貞)”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엄마, 아빠에 의해 수정(受精) 되었고, 엄마를 통해 수정(秀貞)으로 태어나서, 화학 선생님의 수정(修整)으로 수정(水晶)이 되었다. 아직 수정(修正)할 것이 많지만 진정한
수정(秀貞)을 찾아 나의 기쁨으로 수정(綏靖)하며 수정(水精)처럼 살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