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뚱냥이
- 조회 수 1395
- 댓글 수 3
- 추천 수 0
‘배색’이란 두 가지 이상의 색을 배치하거나 알맞게 섞어 놓은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배색이 잘 되어 어울리는 것을 보고 우리는 흔히 ‘조화롭다’라고 표현한다. 색채학에서는 ‘색의 조화’를 색상, 명도 등 다양하게 구분하여 정의하고 있지만,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대부분은 ‘색상’의 관점에서 색의 조화를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색상의 관점에서 ‘색의 조화’는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반대색의 조화, 즉 보색의 조화다. 색상차가 큰 반대색상을 배색하여 상호 대비효과를 추구하며 이를 통해 강렬함과 화려함, 그리고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빨강과 청록, 노랑과 남색 등이 그 예이다. 두 번째는 유사색의 조화다. 유사색의 조화는 색상환-색의 변화를 계통적으로 표시하기 위해서 색표를 둥근 모양으로 배열한 것-배열에서 인접한 2가지 색상을 배색하여 공통성의 효과를 추구한다. 이를 통해 은은함, 수수함, 그리고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노랑/연두/초록, 파랑/남색/보라 등이 그 예이다. 이런 다양한 색의 조화가 있기에 우리의 눈과 마음이 한층 더 즐거운 것이다.
몇일 전, 모교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색의 조화가 주는 즐거움을 직접 목도했다. 봄비와 강한 바람이 꽃잎을 빼앗아 간 아쉬움 속에서 보석을 발견한 것이다. 개나리 꽃잎이 반쯤 떨어져 나간 가지에서 초록의 풀잎들이 당당히 그 모습을 들어내고 있었다. 샛노란 꽃잎의 위세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그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청록의 풀잎과 노란 꽃잎이 주는 ‘유사색의 조화’. 그것은 만개한 개나리꽃이 주는 감동의 몇 배는 더 강렬했다. 항상 보색이 주는 조화만을 생각하던 필자였기에, 그 ‘여린 강렬함’은 산뜻했다. 볼품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동안 느꼈던, 꽃잎을 잃은 아쉬움은 감사로 바뀌었다. ‘유사색의 조화’가 주는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었기 때문이다.
한 동안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돌아가는 길. 갑자기 부모님이 생각났다. 이번 주 월요일이 바로 어버이 날이었기에 오랜만에 부모님을 찾아 뵈었다. 함께 식사를 하며 서로의 근황과 건강을 묻는 그 자리에서 문득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날이 날인지라 깊은 주름, 아픈 몸, 굽은 허리 등 ‘나이 듦’의 증거만 잔뜩 보였기 때문이다. ‘나이가 왜 이리 드셨는지, 조금만 더 젊으셨으면…’ 하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 날을 생각하니, 스스로 한심하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초록의 풀잎과 노란 꽃잎이 주는 ‘유사색의 조화’를 좀더 빨리 느낄 수 있었다면, 어버이 날 그런 너절한 생각은 하지 않았으리라. 자식이 나이를 먹는 만큼 부모의 나이 들어감은 당연한 것이다. 물론 안타까운 건 사실이다. 부모와 더 오랜 세월 함께하고 싶은 것이 자식의 심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부모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쉬움과 안타까움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내가 더 잘 해야지… 아직 해 드린 것도 없는데…’
모든 아버지는 만개한 꽃잎이었다. 강렬함으로 시선을 강탈하였고, 화려하였기에 웅장했다. 모든 어머니들도 만개한 꽃잎이었다. 단아함으로 조화를 이루었고, 청초하였기에 매혹적이었다. 그런 두 분이 이제 70~80대가 되었다. 꽃잎이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부모는 볼품이 없지 않다. 절대 앙상하지 않다. 그렇기에 자식 입장에서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머물러 있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부모는 풀잎과 꽃잎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처럼 지금 모습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감동적이다. 비록 지금 허리가 굽고, 귀가 잘 안 들리지만 젊었을 적 영광의 기억과 그 에너지가 가슴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주름에는 치열했던 하루하루가 새겨져 있다. 부모는 손주들에게 자식이 못하는 당신들의 무용담을, 삶의 지혜를 그리고 세월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는 존재다. 그렇기에 지금의 부모님은 은은하고, 그윽하고, 더 포근하고, 더 깊다.
자식의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은 우리의 시선이 과거와 미래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내 아버지는 이랬었는데, 어머니는 저랬었는데 라고 생각의 기준을 과거에 두지 않았으면 한다. 언젠가 자식의 곁을 떠난다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지레 걱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의 부모님만 생각했으면 좋겠다. 모든 것이 적절하고 조화를 이룬 존재라는 것을 알면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사라질 것이다. 앞으로 ‘사랑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지금까지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진부한 표현의 사용을 재고해 보기를 바란다. 어버이 날이 지났지만 ‘아버지, 어머니! 지금 모습 그대로를, 그 자체가 아름답습니다.’라고 말해보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 본다.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땜에 내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 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 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 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에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 랑 한 다 정말 사랑 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 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 사람 그대 뿐입니다
- 노사연 <바램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