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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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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7일 09시 39분 등록

[일상에 스민 문학]

 

대한민국 시민 혁명 - 다이 허우잉 <사람아, 아! 사람아>  

 

 

L.jpg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저는 국사 성적이 제일 좋지 않았습니다. 입시를 앞둔 까까머리 고등학생은 성적을 올릴 요량으로 국사 선생님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선생님. 제가 국사 성적이 제일 좋지 않습니다. 국사 점수만 올리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하죠? 점심 시간에 시간을 좀 내주셔서 개인지도를 해주세요.”

 

그러면서 당시 가장 유명했던 입시 문제집인 <핵심체크 국사>를 내밀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난감하셨을 겁니다. 그래도 아무지체 없이,

 

그래. 점심시간에 오렴.”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식사를 10분만에 마치고 매일 교무실에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구석기, 신석기 시대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거의 40분가량 개인지도를 받았습니다. 이제 <핵심체크>의 거의 마지막 단원인 한국 근, 현대사편에서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 현대사를 보면,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우리 손으로 근대를 맞이하지 못했단다.”

 

저는 이해보다는 암기에 치중해야 했던 사춘기 소년이었지만, 우리가 우리나라의 손으로 근대를 맞이하지 못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울컥-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국사 선생님을 통해서 그렇게 우리나라의 근대사에 대해서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근대는 일본 강점기 통치 편의를 위해서 강제로 이식된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세계사 시간에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는 이렇게 배웠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세계사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왕이 백성 위에 군림하던 군주시대를, 시민들이 자신의 손으로 끝내고, 공화국 시대를 스스로 열었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까까머리였던 저는 프랑스의 역사가 부러웠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의 역사를 만들어내고, 그 역사를 자랑스러워했기 때문입니다.

 

대학 입시에 성공한 후, 국사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책 한 권을 선물해주셨습니다. 바로 다이허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먼저 눈을 끈 것은 번역자였습니다. 바로 신영복 선생님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신영복 선생님의 이 책에 대한 애정이 그대로 번역에 묻어있는 듯 합니다. 이 책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속에 흐르는 살아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줄이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같은 시대를 11명의 주인공이 독백조로 이야기하는 1인칭 서술이 지니는 독특함 또한 책이 지니는 미덕일 것입니다. 동시에 역사적 격동 속에서 얽고 얽히는 그들의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이 독자로 하여금 저릿한 마음을 지니게 합니다. 그러나 책의 미덕은 시대의 상황도 아닌, 사건도 아닌 `인간' 중심에 휴머니즘을 정직하게 담아낸 작가의 애정일 것입니다. 다이허우잉은 공산주의 시대의 사랑을, 국가를 위한다는 대원칙 속에 매몰된 개인의 가치와 개성과 감성을, 그리고 다양한 삶을 사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입시를 마친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읽고 그동안 못 읽은 이 책을 저는 대통령 선거 날, 다시 읽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 장을 덮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춧불 집회를 하나의 성숙한 시민혁명이라는. 그리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그런 의미를 찾아내고 싶다는 생각 말입니다. 정치인들이 더럽다고 느꼈을 때, 정작 정치권에서 머뭇거리고 우왕좌왕 했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성숙한 시민은 먼저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직접 길을 만들어냈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을 헌법 질서 내에서 평화적으로 한 역사를 시민들의 손으로 직접 이루어낸 것입니다. 그것도 피한방울 흘리지 않는 성숙한 시민혁명을 이루어 낸 것입니다.

 

이제 전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프랑스 혁명이 부럽지 않습니다. 그리고 국사 시간에 <핵심체크>시간에 고개를 숙였던 우리나라 근대사가 부끄럽지 않습니다. 바로 제가 속한 이 시대가 바로 후에 <핵심체크>에 찬란하게 기록될 역사의 한 페이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저를 가르치셨던 백윤기 국사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야겠습니다.

IP *.210.112.106

프로필 이미지
2017.05.30 07:27:20 *.148.27.35
촛불혁명은 우리민족의 위대한 역사로 남을꺼야. ^^*
프로필 이미지
2017.05.31 10:57:16 *.215.23.91

맞아요.


그것도 아주 멋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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