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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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은 큰 딸이 학교에서 본 영화였습니다. [내 이름은 칸]이라는 영화인데, 주인공 칸은 비록 자폐증이 있지만 천재적인 지적 능력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맑은 영혼을 가졌습니다. 주인공은 자폐증 때문에 세상에 늘 두려움을 느끼며 살지만, 우연히 캠코더를 통해 보는 세상은 TV속 세상처럼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평소에도 길을 걸을 때 캠코더를 들고 다닙니다. 제가 영화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요, 어쨌거나 이 영화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은 큰 딸은 주인공 칸을 흉내 내고 싶다며 집에 캠코더가 있냐고 물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희 집에도 캠코더가 있습니다. 2004년 결혼할 때 고향 친구들이 선물해 준 캠코더 입니다. 큰 딸이 집안 어디선가 이 캠코더를 찾아 냈습니다. 그리고 캠코더에 들어 있는 6mm 녹화 테이프를 재생시켰습니다. 오마이갓! 2004년 5월 16일, 저희 부부 결혼미사를 찍은 영상이 들어있었습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내 모습이 보입니다. 신부 화장을 하고 면사포를 쓴 13년 전 아내 모습이 캠코더 화면으로 보입니다. 제 눈에는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아 보입니다 (진짜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나옵니다. 하얀 양복을 입었습니다. 더군다나 얼굴도 하얗게 화장했습니다. 앙드레 김 선생님이 연상되는 제 모습에 큰 딸과 작은 딸이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대전 정림동 성당에서 혼인미사로 올린 결혼식 장면을 고향 친구들이 캠코더에 담아 주었습니다. 혼인 미사가 끝날 때 제가 안치환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내가 만일]
(김범수 작사/작곡, 안치환 노래)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붉게 물든 저녁 저 노을처럼
나 그대 뺨에 물들고 싶어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
그댈 위해 노래하겠어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나 행복하게 노래하고 싶어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그대 위해 되고 싶어
오늘처럼 우리 함께 있음이
내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너는 아니 워 이런 나의 마음을
기록의 힘은 강력합니다. 13년 전 영상에서 보이는 서른 한 살 젊은이는 배짱이 있었습니다. 하느님 제단 앞에서 아내를 위해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되겠다고 소리 높여 노래 했습니다.
인터넷으로 노래 가사를 찾아보았습니다. 노래 가사 만으로도 참 아름다운 시 한 편 입니다. 몇 번을 읽고 또 읽어 봅니다. 돌이켜 봅니다. 붉은 노을 물든 하늘처럼 깊게 살아왔는지 생각해 봅니다. 어린아이처럼 맑은 눈으로 세상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살아왔는지, 여름 한 낮의 열기를 식혀주는 소나기처럼 반가운 존재로 살아왔는지 생각해 봅니다. 지금껏 그렇게 살지 못했어도 어떻게 하면 앞으로는 노을처럼, 시인처럼, 소나기처럼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작은 딸 돌잔치를 준비하면서 구입한 통기타가 한 대 있습니다. 그때는 돌잔치에서 멋지게 기타치며 [내가 만일] 노래를 부르겠다고 아내에게 큰 소리를 쳤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둔 통기타를 꺼내 노래를 연습해 보아야 겠습니다.
13년전 노래 실력이 다시 살아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노을처럼 시인처럼 소나기처럼 사는 삶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앞에서 한 번 더 노래를 불러 보고 싶습니다. 마흔 네 살 아빠의 노래를 두 딸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최소한 반 백 년 인데, 어떻게 그 긴 시간을 함께 살아주실 수 있겠냐고 아내에게 물어보겠습니다. 가사 만으로도 아름다운 시가 되는 노래들을 몇 곡 골라 함께 연습해 보아야겠습니다. 분명 연습이 좀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6월 5일 월요일에 아내 김정은의 편지가 이어집니다.
IP *.91.26.207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희 집에도 캠코더가 있습니다. 2004년 결혼할 때 고향 친구들이 선물해 준 캠코더 입니다. 큰 딸이 집안 어디선가 이 캠코더를 찾아 냈습니다. 그리고 캠코더에 들어 있는 6mm 녹화 테이프를 재생시켰습니다. 오마이갓! 2004년 5월 16일, 저희 부부 결혼미사를 찍은 영상이 들어있었습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내 모습이 보입니다. 신부 화장을 하고 면사포를 쓴 13년 전 아내 모습이 캠코더 화면으로 보입니다. 제 눈에는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아 보입니다 (진짜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나옵니다. 하얀 양복을 입었습니다. 더군다나 얼굴도 하얗게 화장했습니다. 앙드레 김 선생님이 연상되는 제 모습에 큰 딸과 작은 딸이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대전 정림동 성당에서 혼인미사로 올린 결혼식 장면을 고향 친구들이 캠코더에 담아 주었습니다. 혼인 미사가 끝날 때 제가 안치환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내가 만일]
(김범수 작사/작곡, 안치환 노래)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붉게 물든 저녁 저 노을처럼
나 그대 뺨에 물들고 싶어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
그댈 위해 노래하겠어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나 행복하게 노래하고 싶어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그대 위해 되고 싶어
오늘처럼 우리 함께 있음이
내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너는 아니 워 이런 나의 마음을
기록의 힘은 강력합니다. 13년 전 영상에서 보이는 서른 한 살 젊은이는 배짱이 있었습니다. 하느님 제단 앞에서 아내를 위해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되겠다고 소리 높여 노래 했습니다.
인터넷으로 노래 가사를 찾아보았습니다. 노래 가사 만으로도 참 아름다운 시 한 편 입니다. 몇 번을 읽고 또 읽어 봅니다. 돌이켜 봅니다. 붉은 노을 물든 하늘처럼 깊게 살아왔는지 생각해 봅니다. 어린아이처럼 맑은 눈으로 세상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살아왔는지, 여름 한 낮의 열기를 식혀주는 소나기처럼 반가운 존재로 살아왔는지 생각해 봅니다. 지금껏 그렇게 살지 못했어도 어떻게 하면 앞으로는 노을처럼, 시인처럼, 소나기처럼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작은 딸 돌잔치를 준비하면서 구입한 통기타가 한 대 있습니다. 그때는 돌잔치에서 멋지게 기타치며 [내가 만일] 노래를 부르겠다고 아내에게 큰 소리를 쳤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둔 통기타를 꺼내 노래를 연습해 보아야 겠습니다.
13년전 노래 실력이 다시 살아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노을처럼 시인처럼 소나기처럼 사는 삶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앞에서 한 번 더 노래를 불러 보고 싶습니다. 마흔 네 살 아빠의 노래를 두 딸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최소한 반 백 년 인데, 어떻게 그 긴 시간을 함께 살아주실 수 있겠냐고 아내에게 물어보겠습니다. 가사 만으로도 아름다운 시가 되는 노래들을 몇 곡 골라 함께 연습해 보아야겠습니다. 분명 연습이 좀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6월 5일 월요일에 아내 김정은의 편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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