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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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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2일 14시 44분 등록
사건의 발단은 큰 딸이 학교에서 본 영화였습니다. [내 이름은 칸]이라는 영화인데, 주인공 칸은 비록 자폐증이 있지만 천재적인 지적 능력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맑은 영혼을 가졌습니다. 주인공은 자폐증 때문에 세상에 늘 두려움을 느끼며 살지만, 우연히 캠코더를 통해 보는 세상은 TV속 세상처럼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평소에도 길을 걸을 때 캠코더를 들고 다닙니다. 제가 영화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요, 어쨌거나 이 영화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은 큰 딸은 주인공 칸을 흉내 내고 싶다며 집에 캠코더가 있냐고 물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희 집에도 캠코더가 있습니다. 2004년 결혼할 때 고향 친구들이 선물해 준 캠코더 입니다. 큰 딸이 집안 어디선가 이 캠코더를 찾아 냈습니다. 그리고 캠코더에 들어 있는 6mm 녹화 테이프를 재생시켰습니다. 오마이갓! 2004년 5월 16일, 저희 부부 결혼미사를 찍은 영상이 들어있었습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내 모습이 보입니다. 신부 화장을 하고 면사포를 쓴 13년 전 아내 모습이 캠코더 화면으로 보입니다. 제 눈에는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아 보입니다 (진짜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나옵니다. 하얀 양복을 입었습니다. 더군다나 얼굴도 하얗게 화장했습니다. 앙드레 김 선생님이 연상되는 제 모습에 큰 딸과 작은 딸이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대전 정림동 성당에서 혼인미사로 올린 결혼식 장면을 고향 친구들이 캠코더에 담아 주었습니다. 혼인 미사가 끝날 때 제가 안치환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내가 만일]
(김범수 작사/작곡, 안치환 노래)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붉게 물든 저녁 저 노을처럼
나 그대 뺨에 물들고 싶어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
그댈 위해 노래하겠어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나 행복하게 노래하고 싶어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그대 위해 되고 싶어
오늘처럼 우리 함께 있음이
내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너는 아니 워 이런 나의 마음을

기록의 힘은 강력합니다. 13년 전 영상에서 보이는 서른 한 살 젊은이는 배짱이 있었습니다. 하느님 제단 앞에서 아내를 위해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되겠다고 소리 높여 노래 했습니다.

인터넷으로 노래 가사를 찾아보았습니다. 노래 가사 만으로도 참 아름다운 시 한 편 입니다. 몇 번을 읽고 또 읽어 봅니다. 돌이켜 봅니다. 붉은 노을 물든 하늘처럼 깊게 살아왔는지 생각해 봅니다. 어린아이처럼 맑은 눈으로 세상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살아왔는지, 여름 한 낮의 열기를 식혀주는 소나기처럼 반가운 존재로 살아왔는지 생각해 봅니다. 지금껏 그렇게 살지 못했어도 어떻게 하면 앞으로는 노을처럼, 시인처럼, 소나기처럼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작은 딸 돌잔치를 준비하면서 구입한 통기타가 한 대 있습니다. 그때는 돌잔치에서 멋지게 기타치며 [내가 만일] 노래를 부르겠다고 아내에게 큰 소리를 쳤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둔 통기타를 꺼내 노래를 연습해 보아야 겠습니다.

13년전 노래 실력이 다시 살아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노을처럼 시인처럼 소나기처럼 사는 삶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앞에서 한 번 더 노래를 불러 보고 싶습니다. 마흔 네 살 아빠의 노래를 두 딸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최소한 반 백 년 인데, 어떻게 그 긴 시간을 함께 살아주실 수 있겠냐고 아내에게 물어보겠습니다. 가사 만으로도 아름다운 시가 되는 노래들을 몇 곡 골라 함께 연습해 보아야겠습니다. 분명 연습이 좀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6월 5일 월요일에 아내 김정은의 편지가 이어집니다.
IP *.91.26.207

프로필 이미지
2017.05.22 18:18:58 *.45.30.238

저역시 10년전 결혼식 촬영 동영상을 얼마전에 아이들과 함께 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부끄럽던지요.

 

"인연이 닿아 남편과 아내가 되고 부모와 자식이 되었으니 사랑할수 있을때까지 사랑하고, 사랑할수 없을때도 사랑하다보면, 사랑으로 인생을 채울수 있을것입니다." -구본형-

 

저는 기억력이 좋지 못해 수첩에다 적어 놓고 한번씩 꺼내어 봅니다. 정말 멋진 문장입니다.

 

참, 저역시 그때의 아내의 모습과 지금의 아내모습이 똑같습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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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3 19:39:46 *.62.203.161
감사합니다. 사부님 글을 아예 수첩에 적어놓으시는군요. 멋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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