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gum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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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야기 #1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내가 표현한 말이면 좋겠지만 프랑스의 정치가인 탈레랑 페리고르가 커피에 대해 한 얘기이다. 커피를 말한 것 중에 내가 아는 한 문장으로 된 최고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매일 최소 커피 1잔을 마신다.(물론 못마시는 사람 빼고). 2016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 1인당 커피 소비량은 377잔(아메리카노 10g 1잔 기준)으로 조사되었다. 나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최소 2잔 이상을 마시니까 나는 거의 1년에 730잔을 마시는 꼴이다. 이렇듯 이제 커피는 우리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침투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커피를 한잔 안마시면 중요한 뭔가를 하지 않은 것 같고, 마음이 불안하기까지 하다.(나만 그럴수도 있다.)
내가 커피를 처음 마신 건 사관학교 때였다. 고등학교 때에도 교내에 커피 자판기가 있었지만 그때 커피는 몸에 해로운 것이라는 인식과 커피는 대학교가서 마시라는 어른들의 말씀 때문에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 사관학교 때 커피를 먹기 시작한건 우연이었다. 친구가 쉬는 시간에 가방에서 믹스커피와 우유를 꺼내더니 그걸 우유에 집어넣고 흔들어 나한테 한모금 마셔보라 했다. ‘달콤 쌉싸름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늘날로 치면 카페라떼를 마신 것이다. 그 뒤부터 나는 커피와 인연이 되어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커피는 단순히 마시는 음료 이상의 많은 그 무엇을 가지고 있는 ‘신의 선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커피에도 신화가 있다. 신화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것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커피의 기원에는 크게 2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에티오피아 양치기인 칼디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빨간 열매를 먹은 염소들이 잠을 안자는 등 이상행동을 해서 그것을 이슬람 승려에게 알렸고,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졸음을 방지해주는 등 정신수양에 도움이 되는 신비의 열매로 알려지면서 급격하게 사람들에게 퍼졌다.
두번째는 전형적인 신화가 가미된 것으로, 알라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정신이 아득해지는 졸음의 고통을 이기려 애쓸 때 천사 가브리엘이 전능한 자의 명을 받고 나타나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음료를 주고 갔다는 이야기이다. 그 음료는 메카에 있는 카바 신전(회교도가 가장 신성시 하는 신전)의 코너에 세워져 있던 ‘불랙스톤’만큼이나 검었다고 한다.(블랙스톤은 진실한 무슬림이라면 누누가 천상에서 하강한 유성처럼 추앙하는 대상물이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호메트에게 가져다 주었다는 이 비약이 바로 쓴 맛, 자극적이며 활력을 안겨다주는 ‘카베’ 혹은 ‘카와’로 오늘날의 커피인 것이다.
그렇게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아랍의 커피가 나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커피의 시작은 대부분 설탕프림커피 즉, 일명 봉지커피일 것이다. 이제는 원두커피를 즐겨 마시고 있는 나지만 가끔씩 달달한 봉지커피가 마시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생기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고급 스테이크와 와인을 먹다가도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삼겹살을 마늘, 된장과 함께 상추 위에 올려 크게 한 쌈을 사서 소주한잔을 먹고 싶어하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그마만큼 강력한 맛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커피에는 추억이 있다. 나역시 마찬가지이다. 힘든 사관학교 시절 커피는 나에게 큰 위안과 작은 기쁨을 안겨주는 그런 존재였다. 쉬는 시간만 되면 커피 자판기 앞으로 삼삼오오 모여서 커피를 뽑으면서 선배들의 뒷담화, 사고쳐서 선배들한테 엄청 깨진 무용담, 연애 이야기 등 이야기 삼매경에 빠지곤 했다. 정말 힘든 시기였다. 어려운 시기를 같이 해왔기 때문에서인지 믹스커피를 마시면 추억을 마시는 것과 같다. 믹스커피를 먹던 다양한 시절의 다양한 추억들이 하나 둘씩 떠오른다.
그러던 내가 얼마 전까지 직장생활을 하면서 제일 무서웠던 말이 커피한잔하자였다. 다들 그럴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사무실 커피는 믹스커피이다. 각종 공사현장과 건물주를 매일 만나다시피 하다 보니 커피는 일상적이었는데 그들이 내어놓는 커피는 믹스커피였다. 나는 5~6년 전부터 믹스커피를 먹지 않았다. 커피한잔에 들어 있는 프림은 지구를 몇바퀴를 돌아도 빠지지 않는다는 아주 이상하고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이야기 때문이다. 그 뒤부터는 주로 아메리카노나 드립커피를 먹었기 때문에 믹스커피는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내어놓는 커피를 안 마실 수는 없었다. 아주 고욕이었다. 그렇게 맛있고 즐겨찾던 믹스커피를 이젠 먹으면 속이 그렇게 거북할 수가 없다. 사람의 맛이란 그렇게 요망한 것이다. 이젠 이런 커피 자판기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음식점입구에 비치된 자판기도 빠르게 원두커피로 대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변화는 커피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예전의 화려한 명성을 자랑하고 지속될 것 같던 봉지커피 시장은 빠르게 급감하고 있고 아마 지금의 우리가 지금의 노인들을 대체하는 시기가 오면 봉지커피는 그야말로 역사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첫번째 인생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며 바쁜 시간 속에서 살아왔던 나, 아마 그것은 봉지커피와도 같은 것이다. 화려했지만 이젠 붙잡을래야 붙잡을 수 없는 것이 되었고 그렇게 보내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봉지커피 한잔하면서 추억할 수 있는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화려하게 나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두번째 인생을 두번째 커피와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