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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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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31일 10시 44분 등록

[일상에 스민 문학] - 교황님의 트위터 


사랑하는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님께 


수녀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편지를 올립니다. 오늘 아침에도 새벽미사를 다녀오자마자 아이들 등교와 출근 준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7시15분까지 버스를 태워야 하는데 집밖에 나가니 공기가 뿌연 것을 보고 아차, 마스크 챙겨오는 걸 잊었다 싶었지요. 아이에게 미안했습니다. 이렇게 전 늘 아마추어 부모입니다. 아침마다 저희 부부는 한바탕 전쟁을 치른답니다. 아침식사도 대충대충, 깨우는 것도 대강대강, 각자 출근도 겨우 시간에 맞추어 허둥지둥 거린답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는 모든 것을 아주머니께서 다 해주셨지만, 그 고마움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어려움이 닥치고 모든 것을 우리 부부 스스로 해결해야 하자,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법, 물건을 제자리에 두고 바로 찾아서 활용하는 법, 그리고 이렇게 편지도 이동 중에 지하철에서 핸드폰에 꾹꾹 눌러 쓰는 법까지 터득하게 되었답니다.

 

수녀님. 지난 봄에 잠깐 찾아뵙고 문자 한번 드리지 못했습니다. 수녀님과 헤어질 때만해도 바로 연락드리고, 바로 편지 보내야지, 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한 저의 무심함을 용서해주세요. 제가 수녀원에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재기중소기업개발원>에서 제 책, <파산수업>에 관한 강연을 부탁받았을 때였습니다. 그 곳에서는 파산하신 분들을 상대로 약 두 달 동안 합숙훈련을 전액 무상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재단을 설립하신 어르신도 젊은 시절, 사업에 어려움을 겪으셔서 한 때는 세상을 등질 생각까지 하셨다지요. 맨주먹으로 재기에 성공하여 재단을 설립하셨다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제가 서울역에서 수녀님을 처음 뵈었을 때, 이분께 연락해보라며 연락처를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인연으로 저는 강연을 하게 되었고, 그 길에 수녀원도 방문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흔쾌히 놀러 오라는 따뜻한 말씀에 얼마나 힘이 났는지 모릅니다.

 

<해인글방>이라고 써있는 수녀원 안뜰은 정겨워보였습니다. 목련꽃으로 만든 컵받침에 벌꿀 향기가 나는 양초가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테이블위에는 장미꽃잎이 정성스럽게 뿌려져 있었는데, 순간 저는, “헐-”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수녀님, 요즘 젊은이들은 이렇게 감탄 한답니다^^ 참 어색하죠? ㅋㅋ)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가 은은하게 퍼지는 가운데 수녀님께서는 저를 맞이해주셨지요. 저는 고작 <재기중소기업개발원>에서 선물로 받은 싱싱한 부추 세 다발을 수녀님께 드리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말이죠. 무척이나 민망했답니다. 하지만, 이 무거운 걸 여기까지 가져왔느냐며 저의 어깨를 토닥여주시는 수녀님의 따뜻한 손길에 순간 눈물이 찔끔 날 뻔 했습니다.

 

수녀님을 만나서 제일 신났던 것은 아무래도 책에 대한 말씀을 나눌 때였습니다. 제가 책을 내면서 제 인생의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게 된 이야기, 그리고 책을 통해서 만나게 된 향기로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나누었습니다. 저는 다른 분들께 도움을 줄 요량으로 책을 썼는데, 책을 통해 더 어려운 분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분들에게서 오히려 더 많은 위로와 도움을 받았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아기자기한 <해인글방> 구석구석을 소개해 주시면서, “여기가 가장 사진이 잘 나오는 포토존이에요”, 라며 소녀같이 해맑게 찡끗 웃으시던 미소를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 소매를 이끄시며, “레오나르도. 여기 보세요. 이게 여중생들이 그린 시화인데, 너무 예쁘지 않아요? 어쩜 이렇게 알뜰하게 그렸는지 몰라요.” 싯구를 담은 그림 선물들을 보여주시는 모습들이 어찌나 정겨웠는지 모릅니다.


수녀님. 가는 길에 그룹 빅뱅의 멤버인 지드레곤이 그려진 조그만 파우치를 저희 딸 헬레나에게 꼭 선물로 주라며 챙겨주셨지요. 그리고 또, 수녀님께서 직접 번역하신 <교황님의 트위터>라는 책도 선물해주셨지요. 오는 기차에서 이 책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습니다.

 

2013.03.17: 사랑하는 벗들이여,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저를 위해 계속 기도하여 주십시오. 교황 프란치스코.

 

묵상: 매사에 기도부터 청하시는 교황님의 그 모습은 겸손하고 아름답습니다. ‘기도 안에서 만나요.’ ‘기도해 드릴게요.’ ‘기도를 부탁합니다.’ ‘기도해 주심에 감사드려요.’ 살아오며 수도 없이 반복했던 이 말을 오늘은 새롭게 묵상해 봅니다. 아직 이렇게 살아서 기도하고 기도받을 수 있는 은총에 놀라워하며 저도 다시 기도의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은 갈망을 품어 봅니다. 언제 한번 온전히 제대로 기도다운 기도를 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요? 반백 년 가까이 기도를 하고도 기도에 대해서 잘 모르고 할 말이 많지 않은 제 모습이 딱하지만 오늘도 감사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기도: 주님, 하루의 시작과 끝을 언제나 기도와 함께할 수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수녀님. 오는 기차 내에 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글을 통해 수녀님과 저는 만나게 되었고, 책을 통해 소통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수녀님,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님 또한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소통하고 있지요. 결국, 우리는 말과 글을 통해서, 기도와 묵상을 통해서 하나가 됨을 생각해보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트위터를 통해 말씀하셨듯이, 저 또한 겸허하고 성실한 자세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제게 있어서 글은 또 하나의 기도가 되도록 진심을 담은 그릇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제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찬미와 감사, 참회와 소망의 언어가 되도록 오늘 하루도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수녀님을 위해서 기도드리겠습니다. 수녀님께서 아기자기하게 챙겨주시는 사랑과 관심에 늘 감사드리는 마음을 다른이에게도 꼭 베풀겠습니다. 


당장 오늘 점심 시간에 잠시 짬을 내서 회사 근처 성당 마당에 가서 두 손 모아야겠어요. 조만간 또 <해인글방>에 놀러가겠습니. 늘 건강하시길 기도드립니다. 

 

2017년 5월의 마지막 날에

정재엽 레오나르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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