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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3일 00시 21분 등록

지난 주말에는 베트남 다낭에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세 살 아기부터 일흔 두살 노인까지 3대를 아우르는 여행이었는데요, 친정아버지 고희 기념으로 계획했던 여행이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지다 이번에 성사되었습니다. 삼남매가 모두 결혼해 아이를 둘 씩 두었으니 엄마, 아버지 부부에 삼남매의 각 네 식구를 합하니 14명 대가족이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날씨가 더워 고생은 했지만 이번 여행은 여러가지로 특별한 의미로 남았습니다.


사실 이번 여행은 기적같은 일입니다. 남들 다 하는 여행이 무슨 기적이냐 하겠지만, 저희 아버지는 가족여행을 가자고 하면 언제나 이런 말로 일축하셨습니다. "가족이 한 차 타고, 한 비행기 타고 움직이는거 아니다. 그러다 사고나면 대가 끊긴다." 저희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아시겠지요?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던 우리는 가족여행은 그림 속 풍경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어떻게 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여행지가 '베트남'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월남참전용사이십니다. 아버지가 군복무를 하던 시절, 베트남전쟁이 일어났고 아버지는 전쟁에 징집되어 통신병으로 복무했습니다. 그 시절 한국에서 베트남까지는 배를 타고 9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원래 일주일 정도가 걸리는데 태풍을 만나 이틀이 늦어졌다네요. 스무살이 갓 넘은 청년이었던 아버지는 50여 년이 지나 일흔이 넘은 노인이 되어 비행기를 타고 네 시간 남짓 날아 베트남에 다시 왔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베트남은 몰라보게 발전했다고 하십니다. 눈이 예쁜 베트남 사람들은 그대로였지만 여기저기 개발 붐이 일고 있고 생활수준도 많이 높아졌다네요. 아버지는 항상 언젠가 베트남에 꼭 가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뽀얀 속살을 드러낸 베트남 바닷게가 참 맛있었다는 말씀을 여러번 하셨지요. 그 시절 월급이 일반 회사원의 몇 배였다며 목숨과 맞바꾼 그 돈 덕분에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 살게 되었다고 하셨지요. 그러니 베트남이 아니었다면 이번 여행은 어림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안전염려증 환자이십니다. 이번 여행에서도 해프닝이 많았습니다. 베트남에 도착하자 외교부에서 이런저런 문자 메시지를 보내더군요. 그 중 '지카바이러스 모기 주의, 모기기피제, 긴소매, 긴바지 착용, 베트남 방문 우리국민 지카 감염 추가 확인'이란 문자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즉각 밤외출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간 남동생에서 모기약을 사오라고 야단을 하셨지요. 모처럼의 가족여행이 모기때문에 엉망이 될 찰라, 역시 아버지를 진정시키는(?) 사람은 엄마뿐입니다. 엄마 덕분에 밤외출 금지령이 풀려 호이안 야경 투어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왜 그러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70년 인생에는 불우한 사고들이 많았습니다. 6.25 전쟁 때는 아버지의 작은 아버지가 인민군으로 징집되셨습니다. 그후 생사를 알 수 없었는데 몇 해전 남북이산가족상봉 행사에서 북에 살고 있는 후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 참전동안에도 있었지요. 아버지는 퀴논이란 곳에서 군복무를 했는데 총기 오작동 사건으로 고향친구가 상이군인이 되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았습니다. 아차했는데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만 것입니다. 방직공장에서 엔지니어로 직장생활을 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근무가 끝나고 퇴근하려는데 다른 사람 담당이던 기계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냥 외면하고 가도 될 것을, 그 날 아버지는 오른손 손가락 세 개를 잃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공부를 많이 하신 분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도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아버지'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투박하고 촌스러우며 엄청난 구두쇠에 못말리는 안전염려증 환자이지만 저는 아버지를 이해합니다. 아버지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연민의 마음이 커집니다. 하루하루 쇠약해지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언젠가 아버지의 인생을 담은 소설을 한 편 쓰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기억이 더 흐릿해지기 전에 아버지가 살아온 날들을 모두 들어두었다가 한적한 곳에 가서 몇 달 살면서 소설을 완성하고 싶습니다. 그런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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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3 09:00:21 *.45.30.238

저희 장인 어르신도 베트남 참전용사이십니다.

결벽증이라 할정도로 하루에도 얼마나 자주 손을 씻으시는지, 그리고 거실에는 달력이 4개나 걸려있을정도로 꼼꼼하십니다.^^

그리고 남의 집에가서 잠을 못주무시기때문에 친지집을 방문하시거나 여행을 가더라도 당일치기로만 가능하십니다.

참, 또하나 정말 알뜰하십니다.^^

 

재경님의 글을 보며 왜 저희 장인어르신께서 그럴수밖에 없는지 좀더 이해할수있게되었네요.

 

베트남에서 돌아오신후 사진관을 운영하시다가 마흔 후반에 은퇴하시어 얼마전 일흔 세 번째 생신을 맞으셨습니다.

일찍이 은퇴하였고 딸만 4명을둔 가장으로서 남들에게 구두쇠라는 소리를 듣고 살수밖에 없었을것같습니다.

그 덕분에 딸들 대학까지 보내셨고 출가까지 모두 시켰으니 장인어른으로서는 '이만하면 내역활을 다했다'라고 여기실것같습니다.

 

재경님의 글을 보며 저도 구구절절 말이 많아졌네요.^^

 

오늘은 퇴근하며 이마트에 들러 장인어른이 좋아하시는 대패삼겹살과, 수박한통 사서 인사드리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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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4 14:27:24 *.35.229.12

아버님은 경목님같은 사위를 두셨으니 얼마나 든든하실까요.

구본형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추억이 많은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다."

장인어른과 많은 추억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게 잘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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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6 08:07:17 *.45.30.238

'장인어른과 많은 추억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게 잘 사는 길입니다'

 

장인어른과 제게 주어진 남은 삶을 살아가며

무엇이 중요한지를 잊지 안게해줄 소중한 말씀이 될것같습니다.

 

깊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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