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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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결혼할 사람과 고향 안동으로 부모님을 뵈러 다녀왔다. 대학에 입학하고 대구에서 자취를 할 때에는 용돈이 떨어진다거나 뭐라도 제 아쉬운 일이 있으면 자주 집을 찾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직장을 구하고 나서는 전화도 줄고, 찾아오는 일도 줄었다며 두 분 모두 늘 아쉬워하셨다. 그런데 최근 결혼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로는 오히려 예전보다 자주 찾아 뵙게 되었다. 상의 드릴 일이 많아서기도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우리가 결혼을 하고 나면 더 자주 못 보게 될 거라는 논리(?)를 펴시며, 자주 아들과 예비 며느리를 소환 하셨기 때문이다.
두 분이 우리를 소환하는 방법에는 일종의 패턴이 있다. 먼저 주로 전화를
주도 하는 건 아버지의 몫이다. 진지하신 목소리로 몇 월 몇 일 토요일에 시간 비워두라고 통지를 하신다. 나는 일단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을 하고는 무슨 일 있으신지를 조심스레 여쭙는다. 그러면 아버지는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고 긴 설명을 하시지만
대부분의 경우 두 분의 시간이 비어있으니 와서 저녁 먹으면서 술 한잔 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나면
옆에 계시던 어머니는 큰 소리로 아버지를 다그치신다. ‘에헤이~ 별 소리 다하시네~ 뭐 하러 바쁜 애들을 자꾸 불러요. 욱아, 괜찮다. 안 와도 된다. 아부지가
그냥 보고 싶어서 그러시는 가보다. 볼 일 봐라~’ 여기까지
나오면 게임 끝이다. 나는 그냥 빙긋이 웃으며 일정을 잡는다. 두
분의 호흡은 늘 옳았고, 어머니는 결정타는 항상 묵직했다.
안동에 도착하자 마자 두 분이 좋아하시는 오징어회를 조금 사서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저녁 늦게까지 간병일이 있으셔서, 미리 회를 조금 덜어 두고 아버지와 낮부터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소소한 이야기들은 마치 파도가 치듯 잔잔하게 끊이지 않았고, 그 파도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처럼 우리의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메모를 하시는 아버지의 수첩을 발견했다. 이면지를 반쯤 접어서 클립으로 끼워 만든 간이 수첩에는
많은 기록과 메모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아버지의 수첩을 신기해하던 예비 며느리는 그 속에서 글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딸 에게!!’ 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아마 누나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지만 부치지 못한 아버지의 편지 같았다.
나는 호기심에 여자 친구에게 읽어 보게 하고, 아버지와 함께 가만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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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에게!!
인생 살이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기차 레일이 끝까지 안 만나듯이,
내가 먼저 조금만 양보하고, 이해하고, 배려
한다면, 인생살이에는 마찰 없이 앞으로 쭉쭉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에게 기분 나쁜 말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엎질러 진 물은 다 담지 못하듯이, 내가 한 말은 잘못을 느껴 사과를
해도, 상대방은 용서는 할 수 있으나, 그 말에 대해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부부 간에는 아무리 속이 상해도 해서 될 말이 있고,
해서 안 될 말이 있다. 언어에는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신랑에 대해 절대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의심하는 그 시간부터 불행의 씨앗이 싹 트기 시작한다. 남들은 다
그래도, 우리 신랑은 절대로 안 그렇다고 꼭 믿어야 가정이 행복하다.
신랑에게 10분만 투자하면
나에겐 많은 행복이 돌아 올 것이다. 신랑이 정장을 입고 외출을 할 때, 정장에 필요한 것들을 다 내어 놓고 입는데 도와주면 더 좋고, 옷을
다 입은 신랑 앞에서 넥타이가 바로 메어졌나 확인도 하고, 뒤로 돌아가서 뒷모습도 확인하고 우리 신랑
예쁘고 멋지다고 칭찬도 해주고, 마지막에 잘 접어둔 손수건을 꺼내 주면서 오늘 잘 다녀 오라고 인사를
하면 볼 일 보러 가는 신랑 기분 만점이겠지. 이렇게 베풀면 나도 좋고, 신랑은 더더욱 좋고, 가정에 행복은 자동으로 올 것이고, 일거 삼득이 되겠지!!
행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고, 나
스스로 노력하고 찾아야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옛 속담에 부뚜막에 소금도 넣어야 짜다고 했다. 가사일 조금 덜하고, 꼭 실천에 옮겨서 행복한 가정 이루어 나가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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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쓴 글을 예비 며느리를 통해 듣는 내내 아버지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나 역시 아버지의 진심이 느껴져 가슴이 짠했다. 아버지의 편지는
참 오랜만이었다. 아버지는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등록금으로 밭을 샀던 할아버지의 반대로
중학교 밖에 다니지 못하셨다. 누구보다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강하고, 손 재주도 좋으셨던 아버지는 그 날 할아버지와 무척이나 많이 다투셨다고 한다. 지금도 아버지는 어려운 책을 쌓아두고 읽지는 않으시지만
손이 닿는 범위 내에서는 꾸준히 글을 읽으시고, 좋은 글을 볼 때면 항상 메모해 두었다가 자식들에게
편지를 쓸 때 활용하기도 하셨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는 자식들이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가고, 취직을 하는 등 저마다 인생의 굵직한 변곡점을 지나갈 때 마다 늘 깨끗한 편지지에 정갈한 글씨로 손 편지를
써 주셨던 것 같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어두운 바닷가에서 표류하지 않도록 길을 비추는 등댓불과도 같았다. 이번 편지는 누나들에게 보내는 글이자, 이제 곧 한 사람의 남편이자
가장이 될 나에게도 하시고 싶었던 당부의 말씀이 아닐까 생각한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또 누군가의
남편이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기준을 겸허하게 받아 들이고, 모두의 행복과 안정을 각자의
편의 보다 우선시 하는 전환의 시기이다. 혼자 걸어와 도착한 그곳에서 새로운 문을 열고 이제는 누군가와
함께 길을 나서는 것이다. 함께 길을 나설 때 보조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듯 내가 먼저 조금만 더 양보하고, 이해하고, 배려 한다면 큰 마찰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는
아버지의 당부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