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gum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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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道를 닦는다.
한때 조용한 산속에서 도를 닦고 싶었다. 물론 그때의 도는 道가 아니었다. 이를테면 무림의 고수가 되는 그런 허황된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읽었던 ‘영웅문’, ‘녹정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보통 도라고 하면 세상과는 멀어져 오로지 자연 속에서 스님과 같은 삶을 살면서 자기자신을 수련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도를 닦는다는 말을 사용할까? 도는 깨치는 것 아닌가. “닦다”라는 말은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무엇을 문지른다는 뜻이다. 수없이 자기를 문지르고 문질러 자기의 모습을 없애는 것에서 그런 표현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6월 한달 동안 <강의>, <논어>, <도덕경>에 대해 공부했다. 제자백가들이 추구했던 사상들이 언어와 추구하는 목표가 달라서 그렇지 결국은 도를 닦는 것이 아니였을까. 도를 닦는 방법과 도를 최종 목적지가 달랐을 뿐이다.
며칠 전 아이들과 심하게 싸웠다. 물론 싸웠다는 말은 말이 안된다. 내가 일방적으로 소리지르고 겁을 주고 회초리까지 드는 순간까지 오고 말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애들을 재웠다. 이른 새벽에 눈을 떠 자는 애들 얼굴을 봤을 때 내가 왜 그랬을까? 별일도 아닌데 하고 참을 수 없는 후회가 밀려왔다. 이렇게 귀여운 애들인데 내가 왜? 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그 순간 아! 나는 지금 도를 닦고 있는거구나. 그리고 그 도를 닦기 위해 산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내가 살고 있는 삶 속에도 도가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10살 아들, 6살 딸을 가진 아빠이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아이들이 잘 때 퇴근해서 잘 때 출근하는 아빠였고, 한때는 주말에만 만나거나, 한달에 한번 볼까 말까 하는 그런 아빠였다. 그때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만약 내가 육아를 전담하게 되면 정말 아이들하고 행복하게 재미있게 지낼꺼라고. 그 육아 뭐가 힘들다고 그러지.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런 내가 이제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같이 놀고, 읽고, 공부한다. 학교나 학원을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꼭 붙어다닌다. 아들은 이제 10살이라 자기 혼자 잘 놀고 잘 먹고 때로는 잘 대들기까지 한다. 벌써 아빠한테 반항할 줄도 안다. 나도 저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나야 뭐 부모님이 하라면 하라는대로 선생님이 하라면 하라는 대로 그렇게 남들이 이러저래해야 한다면 그렇게 해야한다고 철썩 같이 믿고 행동해왔던 존재였다. 거기에 내 자신이(self), 내 의지가 없었다. 그런 나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자기 목소리를 내는 아들놈이 대견해야 하는데 화부터 낸다.
이에 비해 6살 난 딸은 아빠 인형(?)이다. “아빠 딸? 엄마 딸?” 물어보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빠 딸”이라 할 만큼 나에게 의존적이다. 와이프가 내심 서운한 척 하면 여우 같은 딸은 그제서야 “엄마 딸도 해줄께” 라고 하거나 “엄마 딸 아빠 딸이지” 하고 뒤늦은 애교를 엄마에게 피운다. 나도 그동안 아이들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이 많다 보니 웬만하면 아이들이 해 달라는대로 해주는 편이었는데 이게 시간이 점점 지나갈수록 아닌 걸 알았을 때는 처음으로 돌리기엔 너무 어려웠다. 아들 놈은 어려서 겪은 남 다른 경험 때문에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고 다짐했던 적이 엊그제 인데 수학 점수가 60점을 받아오면 일단 내색은 최대한 안 하려 하지만 기분이 상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나머지 공부까지 한 내가 아들을 혼 내려하니 한번 쭈뻣한다. 그리고 “잘했어. 그런데 틀린건 왜 틀린건 알지?” 하면서 같이 틀린 문제를 풀어본다. 그런데 또 이게 화근이다. 이해를 못하는 건 둘째치고 앉아 있는 자세며 공부에 대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국은 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아~~~
얼마전에는 아들이 충격적인 말을 해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들에게 “지난번 공개수업 때 본 네 짝지 예쁘고 발표도 똑부러지게 잘하던데”라고 얘기하니 아들놈이 하는 말 “음…걔 국어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발표도 잘해. 진짜. 근데 아빠 난 왜 이렇게 잘하는게 하나도 없을까? 쓸모없는 놈일까?” 헙~~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진다.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어쩌면 고등학생 좀 빠르다 해도 중학생이 해야 할 말을 10살 아들이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적당한 말이 생각이 안나 “에이 그럴리가! 우리 아들 정리정돈 대왕이잖아. 그리고 레고 조립 대장이잖아.” 등등 온갖 것을 갖다붙여 최고라고 치켜세우면서 순간을 모면하지만 뭔가 모를 찝찝함이 남아있다.
딸은 또 그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 아침을 먹이는게 그렇게 힘들 수가 없다. 유치원 식당에서는 혼자서 그렇게 잘 먹는다는 아이가 집에만 오면 몇 번이고 소리를 질러야 몇 숟가락 뜨는 둥 마는 둥한다. 내가 옆에서 밥을 떠 먹여주어야 먹는다. 그리고 유치원 갈 때 입는 옷으로 한바탕 전쟁을 한다. 그냥 내가 주는 대로 입었으면 좋은데 꼭 치마를 입겠다고 고집한다. 치마도 자기 취향에 안 맞으면 절대 안 입는다. 그렇게 난 아침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내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런데 꼭 그런 시간이 되거나 아이들한테 화낸 일이 생각이 나 후회가 된다. 아! 왜 아이들한테 소리를 질렀지. 그리고 머리를 쥐어박았지…..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우리가 생각하기에 참 잘 자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어린시절에 부모님이 “공부해라” “뭐해라” 한적이 없다던데 난 벌써 수백번도 더 한 것 같다. 비록 공부해라는 안했지만 “책 좀 읽어라” “숙제 좀 해라” 수없이 얘기한다. 난 뭐지?
얼마전까지 아이들에게 회초리를 들었다. 물론 시늉만 하고 때린 적은 없지만 회초리는 정말 효과만점이었다. 뭔 잘못을 해 회초리 맞을까? 하면 만사가 오케이였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것이 아이들 교육과 정서상에 가장 안 좋은 것이라고 육아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얘기한다. 그 얘기에 난 정신차리고 얼마전부터 회초리 얘기는 절대 안한다. 그리고 아빠라는 이유에서 가해지는 어떤 식의 폭력(꿀밤, 어깨잡고 흔들기 등)도 행사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내가 좋아서 그리고 그렇게 하고 싶어서 지금의 생활을 택했는데 막상 이 생활이 닥치니 생각했던 만큼 아이들에게 잘 해주지 못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아이들은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그들을 위해 지금은 존재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아이들의 시선에서,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할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욕심, 내 기준으로 아이들을 대하다 보니 충돌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아이들이 성장하고 나 역시 아빠로서 남자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결국 도가 아니고 무엇일까.
이렇듯 우리가 생각하는 道는 멀리 있지 않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있다. 道를 닦기 위해 입산하거나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버리자. 내가 살고 있는, 생활하고 있는 이 환경 안에서 하루하루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도를 닦을 수 있는 것이고 또 득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육아의 도를 깨치기 위해 정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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