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윤정욱
  • 조회 수 1374
  • 댓글 수 5
  • 추천 수 0
2017년 7월 3일 08시 07분 등록

지난 6 27일 드디어 전셋집 계약을 마쳤다. 매주 월요일 아슬아슬하게 북리뷰를 마치고 과제를 올리는 것 보다 적어도 10배는 더 큰 후련함이 몰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두 달 동안 거의 매주 주말마다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을 찾았던 것을 생각하면 그 정도의 후련함은 당연하다 싶기도 했다. 둘러본 집은 스무 곳이 넘었고, 계약이 거의 성사 될 무렵에 집 주인의 사정으로 무산되기를 한 번,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마음씨 좋아 보이는(?) 집주인과 계약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결혼 준비에 있어 살 집을 구하는 것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에 작지만 그래도 당분간 내가 살 곳이 생겼다는 것 만으로도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속이 다 시원했다. 물론 결혼할 사람과 크게 다투지 않고 잘 마무리 된 것 역시 덤으로 얻은 다행이다.

 

사실 이번에 집을 구하고 은행 대출을 준비하면서 라는 사람의 성향을 다시 한번 제대로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결혼할 사람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일단 적자(메모)’(). 부동산을 찾기 전부터 창원 시내의 주요 동네에 사는 직장 동료들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고, 집을 구할 때 알아둬야 할 것들에 대한 선배들의 조언을 노트에 빼곡히 적어뒀다. 처음 부동산 문을 두드리기 까지만 2주의 시간이 걸렸다. 그 뿐만 아니다. 내가 찾는 아파트의 세대 당 가능한 주차는 몇 대가 되는지, 난방은 어떻게 하는지, 관리비는 평균 얼마나 나오는지, 특히 마음에 드는 아파트는 전세 매물로 나온 리스트는 물론 최근에 실제로 전세가 얼마에 거래되었는지, 또 몇 건이나 거래 되었는지 까지 모두 적어서 갔다. 회사로 치면 꼼꼼한 실무자 스타일이지만, 상사로 두기엔 참 피곤한 스타일이다. 나도 잘 알지만 그래야 마음이 놓이는 성격은 어쩔 수가 없다.

 

결혼할 사람은 나와 정반대다. 대원칙 한 두 개를 정해두고, 나머지 세부적인 것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원칙이라 함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수리가 잘 되어 있는 깨끗한 집일 것, 그리고 둘째 벽지는 무조건 하얀 색일 것. 이 두 원칙에 벗어나는 집은 오래 둘러보지도 않았다. 집을 둘러 볼 때도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질문을 한다거나 따로 메모를 하는 법도 없다. 필요한 내용이 있으면 질문하듯 이런 것도 중요한 것 같지 않아?’라고 나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그러면 나는 어느 샌가 그 내용을 수첩에 적고 있다. 사전 자료와 메모를 중시하는 내가 실무자 스타일이라면 원칙과 직감을 중요시 하는 그녀는 전형적인 관리자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한 달 반 가까운 시간을 매주 공들여 찾아 본 집들 가운데 그녀의 원칙과 나의 수 많은 메모가 가리키는 최적의 장소 한 곳을 찾아 계약을 진행 하려는데, 알고 보니 집 주인의 명의 상 수용키 어려운 큰 하자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계약 마무리 시점에 우리를 설득하려 했던 모양이었다. 화가 났다. 단칼에 거절하고 하는 수 없이 내가 이것 저것 따져가며 차선책으로 봐둔 집을 그 다음 주에 찾았더니 그 집은 마침 하루 전에 계약이 되었다고 한다. 설상가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나 싶었다. 참 속상했다. 남들도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만큼 나름 오랫동안 준비했고, 신경도 많이 썼던 터라 허탈감이 밀려왔다. 지금까지 지나 온 과정을 다시 처음부터 밟아야 한다는 것이 제일 속상했다.

 

주말 동안 무기력해하던 내가 신경이 쓰였는지 그 동안 전셋집을 알아보는 것에 다소 소극적이었던 그녀는 마침 쉬는 날이었던 다음 날 월요일 혼자 집을 보고 오겠다고 했다. 초반에 과했던 열정이 꺼져 버렸던 탓인지 실무자는 관리자를 말렸지만,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관리자는 도통 실무자의 말을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반나절이 지났을까 관리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가 차선책으로 점 찍어 두었던 곳과 같은 동네에 새로운 집 한 군데를 봐뒀다며 저녁에 바로 같이 가서 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녀를 따라 저녁에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곳이 이번에 계약을 마친 나의 전셋집이었다. 나는 원래 시간에 쫓겨 급하게 내리는 선택은 잘 신뢰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집을 보자마자 나는 두 번 고민하지 않고 바로 계약을 서둘렀다는 점이었다. 집도 깨끗하고 직장과도 가깝고, 동네도 우리 둘 모두가 선호하는 곳이었다. 6층이라는 높이도 적당했고, 정남향에 정면에는 학교가 있어 다른 단지로부터 시야가 막히는 일도 없었다. 실무자가 그렇게 조사하고 찾을 때는 없던 물건이 관리자가 무심코 찾은 그 날 매물로 나온 것도 신기했지만, 평소에는 매번 소극적이었던 관리자가 왜 하필 그 날 그렇게 혼자서라도 집을 보러 가겠다고 나섰는지는 더 의문이었다. 어쩌면 실무자가 아무리 밤 새워 조사하고 메모를 해도 알 수 없는 관리자의 이라는 것이 정말 있는지도 모르겠다.

 

쇼펜하우어는 천재를 자신의 이해관계, 소망, 목적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버려두는 능력 또는 한동안 자신의 개성을 완전히 포기하는 능력 (철학이야기 본문 437p)’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자신이 타고난 성향이나 욕망이 의지라면, 그 의지의 유혹을 극복하고 자기가 인식하고 사고하는 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나를 항상 같은 모습으로 있게 만드는 중력과도 같은 자신의 의지습관의 당기는 힘을 뿌리칠 줄 아는 유연함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의지가 시키는 대로만 사는 것은 생명의 가장 낮은 형태의 모습으로 보았고, 혹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실무자와 관리자 양면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 어느 하나의 모습이 두드러지면 그게 그 사람의 성향으로 보일 뿐이다. 나는 무슨 일을 하던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많이 느끼는 편이다. 집을 구할 때조차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두 달 가까이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하지만 정작 지금의 전셋집을 구할 때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여자 친구의 직감이었다. 그냥 가볍게 한 번 해보고, 그냥 가볍게 한 번 알아보는 바로 그 깃털 같은 유연함 덕분이었다. 나의 의지가 시키는 대로만 살아서는 안될 것 같다. 어차피 의지대로 되는 일도 없다. 가끔은 잘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 놓고, 가볍게 그냥 해보는 연습도 필요하다. 관리자만 있는 조직도 없고, 실무자만 있는 조직 또한 없다. 그 둘이 함께 있어야 조직에도 여유가 생기고, 바로 그 여유가 조직 전체를 이끌어 가는 힘이 된다. 이 점은 개인도 마찬가지다. 이제부터라도 꼼꼼한 실무자로서의 부담감을 덜어내고 관리자로서의 여유유연함을 익혀야겠다. 우선 어깨에 잔뜩 실린 힘부터 빼보자.

 

IP *.75.253.254

프로필 이미지
2017.07.03 14:42:29 *.146.87.18

티올아~~ 일단!! 글에서 느껴진다 ㅋㅋㅋㅋㅋㅋ 유연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셋집 구하느라 아니, 정확히 구하기 전까지 너의 사전준비작업 수고했다!

그리고 최종 싸인까지 긴장하느라 수고했고... 집 구하고 계약하는 게 쉬운게

아니야ㅋㅋㅋ 얼마나 후련했으면 칼럼까지!!


관리자의 말씀을 잘 새겨들으렴. 그녀는 쇼펜하우어고 괴테며 니체야^^

프로필 이미지
2017.07.03 18:20:30 *.226.22.184

잘썻네...


우선 집구하느라 고생 많았어. 사실 남자에게는 집이 가장 큰 힘겨움이지. 이제 신혼물건과 여행계획이 남았어. 나중에 OFF 수업때 경험자의 이야기들을 잘 듣고 ^^


잘썻네 ㅎㅎ

프로필 이미지
2017.07.03 21:11:31 *.18.218.234

칼럼에 관리자님 종종 등장시키세요. 어깨에 힘이 자연스럽게 빠질 듯 한데? ㅋ

글이 완전 부드러워졌음.

프로필 이미지
2017.07.04 11:49:28 *.164.247.177

쉽게 바뀌지 않아. 그냥 하던대로 살아야 돼. ㅋ 관리자가 2명이면 부딪힘.

집들이 준비해줘. 관리자님의 직감을 한번 보고싶네요.

프로필 이미지
2017.07.04 14:50:06 *.75.253.254

관리자가 2명이 될 수는 없어요.. 적어도 저희 집에서는 ㅋㅋ

하늘 아래 태양이 두 개 일수가 없듯이..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52 6월 오프수업 후기-우리의 신화는 시작되지 않았다 [4] 뚱냥이 2017.06.20 1382
551 6월 OFF수업 후기(송의섭) [8] 송의섭 2017.06.20 1625
550 6월 오프수업 후기 - 나만의 신화를 만들기 위해 떠난 여행 [3] 모닝 2017.06.20 1396
549 6월 오프수업 후기 (윤정욱) [3] 윤정욱 2017.06.20 1319
548 6월 오프모임 후기_이수정 [3] 알로하 2017.06.20 1330
547 6월 오프모임 후기(김기상) [2] ggumdream 2017.06.20 1376
546 [칼럼#9] 히파티아처럼 되기를 희망한다. (정승훈) file [1] 정승훈 2017.06.25 1348
545 칼럼#9 아버지의 편지 file [1] 윤정욱 2017.06.26 1346
544 신부님께서 말씀 주신 교육에 대해서 [2] 송의섭 2017.06.26 1306
543 #칼럼 9-대화의 프로토콜, 당신에게 로그인하고 싶어요(이정학) [2] 모닝 2017.06.26 1399
542 (보따리아 칼럼) 우리 아이는 까막눈 [1] 보따리아 2017.06.26 1364
541 #9. 나는 오늘도 도를 닦는다. [1] ggumdream 2017.06.26 1413
540 #9 백치미의 미학(美學)적 고찰_이수정 [1] 알로하 2017.06.26 1370
539 <칼럼 #9> 국가대표 답게 플레이 합시다 [1] 뚱냥이 2017.06.26 1337
538 [칼럼 #10] 철학, 종교, 머시 중헌디 [6] 정승훈 2017.07.02 1393
537 (보따리아 칼럼)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생각은? [4] 보따리아 2017.07.02 1292
» 칼럼 #10 전셋집을 구하며 [5] 윤정욱 2017.07.03 1374
535 # 칼럼 10 같이 노는 사람 - 친구(이정학) [6] 모닝 2017.07.03 1480
534 #10 엄마와 딸 2–출생의 비밀_이수정 [5] 알로하 2017.07.03 1281
533 <뚱냥이칼럼 #10> 위대한 성인과 함께 살아가는 행운 [5] 뚱냥이 2017.07.03 1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