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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20개월은 산다고 하더라고.”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런 것도 사는 이야기 중의 하나라는 듯,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이죠. 이건 마치 어제 술을 너무 마셨더니 기어 다닐 지경이야 하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느낌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라는 표현이 가장 적당하겠네요. 그런 전화를 받았습니다. 할 말을 잃었는데 정작 당사자인 친구는 계속 이야기를 합니다. 가끔 만났을 때처럼 별것 아닌 이야기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습니다. 평균 20개월은 살 수 있다는 친구를 만나러 지방을 갔다 왔습니다. 전화를 받은 뒤 6개월이 지난 시간 이었습니다.
체격이 좋았던 친구는 살짝 살이 빠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어서 조금은 안심이 되더군요. 나이가 들어서 시를 쓴다고 갖은 애를 쓰더니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고 등단을 한 게 올 초였습니다. 기분 좋게 당선 소감을 보내자마자 신장암 판정을 받았답니다. 일부는 폐로 전이가 됐다는 사실도 알게 되지요. 급하게 수술을 받고 한 달에 천만 원이 넘는 약을 먹어야 한다는데 임상실험 대상자가 되면서 약값 걱정은 덜었다고 합니다. 전화로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멀쩡하게 차를 운전하고 왔더군요. 맛있는 오리백숙으로 점심을 먹고 전망 좋은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했습니다. 카페를 운영하는 여자 분이 참하고 예뻤습니다. 나오면서 잘 마셨다고 한마디 해보려 했는데 이런, 친구가 뒤에서 먼저 선수를 날립니다. 그 안타까움이라니.
가까운 숲을 산책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뭐 특별한 이야기를 한 건 아니고요. 그냥 사는 이야기를 했지요. 그 친구가 사는 법은 이렇더군요. 한 시간쯤 되는 거리를 운전해서 출퇴근을 하고 조경기능사 자격증도 땄답니다. 그것뿐이 아니네요. 지게차 면허증 시험을 봤다가 떨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써 놓은 시를 모아서 시집 출간도 계획 중이지요. 압권은 한자능력검정 특급에 합격을 한 거지요. 특급 문제는 이게 글자일까 싶은 한자가 나온답니다. 지금까지 본 적 없고 앞으로도 볼일이 없는, 몇 번을 태어나도 한 번도 쓸 일이 없는 그런 한자들이죠. 그런 걸 따서 뭐하게,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지금 일하는데 필요하고, 앞으로도 쓸 일이 있을지 모르잖아. 그 말에 뭐라고 대꾸를 했느냐고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낄낄 대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돌아오는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때처럼 말이죠. 진짜 별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조용히 이런 이야기도 하더군요. 지난번엔 너무 힘이 없고 쓰러질 것 같아서 이렇게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저는 사는 게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말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냥 하루하루 헐떡이며 살아가는 사람이니까요. 그러면서 이게 제대로 사는 건가 고개를 갸웃대곤 했지요. 오늘도 내일도 또 하루를 살겠지요. 숨차게 일하고, 마음 상하고, 부딪치고, 생계 걱정을 하고, 피곤에 시달리고 하면서요. 때때로 벗어나고 싶은 그 하루들이 결국 나의 인생자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별 것 아닌 하루들, 그게 언젠가 마지막 시간이 되겠죠. 평균 20개월에서 6개월이 지난 그 친구가 하루하루를 그냥 그렇듯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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