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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0일 07시 59분 등록

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저자 연구

지은이: 유발 하라리

1976년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레바논계 유대인 부모 사이에서 탄생. 2002,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전쟁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히브리 대학교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76년생, 41세이니 그동안 읽은 책의 저장 중 가장 젊다. 젊은 학자로 알고는 있었으나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쓴 석학인데, 나보다 좀 어리다. 이런 걸로 비교 안하고 살고 싶은데, 살짝 언짢아지려고 했다. 그가 <사피엔스>를 썼던 2011년에는 서른 다섯 살밖에 안 되었다. 나는 그 나이 때, 또 지금 뭐하고 있나 생각하며 언짢아하지 말고 그냥 그가 뛰어난 사람임을 인정하자. 그리고 정신 차리고 마음과 힘을 다하여 떨쳐 일어나자.

 

어려서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유발 하라리는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와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세계 역사를 공부했는데 특히 중세역사와 군역사에 관심이 많아 이들을 집중 연구해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의 연구는 다음과 같은 거시사(macro-history)적 질문에 집중되었다.

-       역사와 생물학에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 사이의 근원적 차이는 무엇인가?

-       역사에 정의란 있는가?

-       역사에는 방향이 있는가?

-       역사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은 행복해졌나?


그래서 답을 찾았는가? 그런 것 같다. 위 질문에 대한 그간의 연구의 결과와 답이 바로 이번주 우리가 읽은 <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사피엔스>는 그야말로 시대( 20만년 전부터 현재까지)와 공간(전세계)을 넘나드는 인간의 역사를 인류학, 사회학, 생물학과 결합하여 거시사(macro-history)적 관점에서 역사와 생물학과의 관계, 다른 동물과의 차이 등에 대한 답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에 정의란 있는가? 유발 하라리는 아니라고 한다. 2 8장의 제목이 역사에 정의는 없다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역사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은 행복해졌나?” 이 질문에 대해 유발 하라리는 역사에 정의란 있는가?’ 만큼 노골적으로 대답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그가 이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을 때, 7만년전 인지 혁명이 일어나 사피엔스가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을 때, 12000년 전 농업혁명이 등장해 정착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5백년 전 과학혁명이 시작되어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을 때, 2백년 전 산업혁명으로 사피엔스가 그 어느때보다도 부유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이제 4차 혁명으로 또 하나의 세상을 시작하려고 하는 지금. 우리는 점점 행복해졌나? 아직 끝까지 읽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예상되는 답은 아니다이다.


그러면 이에 대한 나의 답은? 누구보다 긍정적인 나지만 나 역시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런데 4 19장의 제목이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이다. 혹시 뒷 장에 반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 답은 다음주에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미뤄두자.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한국의 독자들에게

6 이제 인간은 과학을 통해 자연선택을 대체하고, 유기체가 아닌 생명을 만들기 시작할지 모른다. 과학은 자연선택으로 빚어진 유기적 생명의 시대를 지적설계에 의해 빚어진 비유기적 생명의 시대로 대체하는 중이다. ~ 몸과 마음은 21세기 경제의 주요한 생산물이 될 것이다.

벌써 그렇게 되고 있다. 그런데 몸은 비유기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되겠지만 마음도 인간이 만들 수 있을까?

 

10 한국은 행복도에 대한 조사에서도 멕시코, 콜롬비아, 태국 등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나라보다 뒤처져 있다. 이는 가장 널리 통용되는 역사법칙의 어두운 한 단면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 2015, 전 세계 모든 지역 사람들은 놀라운 신기술에 접근할 수단을 가지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술은 우리에게 그것으로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유전 공학, 인공지능 그리고 나노기술을 이용해 천국을 건설할 수도 있고, 지옥을 만들 수도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한다면 그 혜택은 무한할 것이지만,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면 인류의 멸종이라는 비용을 치르게 될 수도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할지의 여부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이것이 우리가 AI 등 과학기술의 발전을 보며 가장 불안한 부분인 것 같다. 모두가 모르고 불편할 때는 차라리 괜찮은 것 같다. 그런데 유전 공학, 인공지능, 나노기술 등을 이용해서 지옥이 아니라 천국을 건설한다고 해도 내가 그 안에 살 수 없게 될까봐, 나만 뒤처질까봐 더 불안한 것 같다. 인류의 멸종은 오히려 나중 이야기. 그래서 아무리 똑똑한 체해도 어리석은 인간인 것 같다.

 

1부 인지혁명

1.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20 선사시대 인류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그들이 그다지 중요치 않은 동물, 주변환경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종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고릴라, 반딧불이, 해파리보다 딱히 더 두드러지지 않았다.

고릴라는 그렇다쳐도 반딧불이, 해파리보다도 주변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딱히 두드러지지 않았다니그만큼 자연친화적이었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22 불과 6백만년 전 단 한 마리의 암컷 유인원(꼬리 없는 원숭이)이 딸 둘을 낳았다. 이 중 한 마리는 모든 침팬지의 조상이, 다른 한 마리는 우리 종의 할머니가 되었다.

 

25 우리는 뻔뻔스럽게도 스스로에게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들 종은 덩치가 크기도 했고 작기도 했다. 일부는 무서운 사냥꾼이었고 일부는 온순한 식물 채집인이었다. 하나의 섬에만 사는 종도 있었지만 대륙을 방랑한 종이 많았다. 하지만 모두가 호모 속에 속해 있었다. 모두가 인간이었다.

 

29 인간의 아기는 무력하여, 여러 해 동안 어른들이 부양하고 지키고 가르쳐주어야 한다.

인간의 사회적 능력이 뛰어난 것도 이 덕이요, 특유의 사회적 문제를 안게 된 것도 이 탓이다. 혼자 사는 엄마는 줄줄이 딸린 자녀와 자신을 위한 식량을 충분히 조달하기가 어렵다. 애를 키우려면 가족의 다른 구성원 및 이웃의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인간을 키우려면 부족이 필요했고 따라서 진화에서 선호된 것은 강한 사회적 결속을 이룰 능력이 있는 존재였다. 게다가 인간은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교육을 받고 사회화할 수 있는 기간이 다른 어떤 동물보다 길다.

옛날부터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했구나. 그런데 옛날에도 그렇고 요즘 사람들을 봐도 드는 의문 하나. 이렇게 아이를 키우기가 어렵고 자신의 희생이 필요한 걸 알면서도 엄마들은 왜 줄줄이 아이를 낳는걸까? 단순한 성욕이나 번식에 대한 본능 때문인가? 남자들의 경우라면 이해가 되는데 자신의 남은 인생의 대부분, 특히 그 옛날에는 목숨을 건 출산까지 감수하면서 아이를 낳는 엄마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냥 선택권이 없어서 그랬던걸까?

 

30 중간에서 꼭대기로 단숨에 도약한 것은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던 다른 동물, 예컨데 사자나 상어는 수백만 년에 걸쳐 서서히 그 지위에 올랐다. 그래서 생태계는 사자나 상어가 지나친 파괴를 일으키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사자의 포식 능력이 커지자 가젤은 더 빨리 달리는 쪽으로 진화했고, 하이에나는 협동을 더 잘하도록 진화했으며, 코뿔소는 더욱 사나워지도록 진화했다.

이에 비해 인간은 너무 빨리 정점에 올랐기 때문에, 생태계가 그에 맞춰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인간 자신도 적응에 실패했다. ~ 인간은 최근까지도 사바나의 패배자로 지냈기 때문에, 자신의 지위에 대한 공포와 걱정으로 가득 차 있고 그 때문에 두 배로 잔인하고 위험해졌다. 치명적인 전쟁에서 생태계 파괴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참사 중 많은 수가 이처럼 너무 빠른 도약에서 유래했다.

이를 개인에 적용해도 그렇다. 사람 개인으로서도 너무 빨리 변하거나 정점에 오르면 이에 맞춰 (본인이나 주변인 등이) 적응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맘은 급하지만 서두르지 말자. 나에게도 주변인에게도 그리고 환경에도 적응할 시간을 주자.

 

31 먹이사슬의 최정점으로 올라서는 핵심단계는 불을 길들인 것이다. ~ 이제 인간은 빛과 온기의 믿을 만한 원천이자 배회하는 사자에 대항할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를 가졌다. ~ 하지만 무엇보다도 불이 하는 최고의 역할은 음식을 익히는 일이다. ~ 침팬지는 날것을 씹어 먹느라 하루 다섯 시간을 소모하지만 사람은 익힌 음식을 먹는 데 한 시간이면 족하다. ~ 화식은 창자를 짧게 만들어서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게 해주었고, 의도치 않은 이런 변화 덕분에 네안데르탈인과 사피엔스는 커다란 뇌를 가질 수 있었다. ~ 인간은 불은 길들임으로써 무한한 잠재력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 가장 중요한 점은 불의 힘이 신체의 형태나 구조, 힘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것이었다. ~ 불을 길들이는 것은 앞으로 올 일에 대한 신호였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인간에게 불을 줬다는 프로메테우스를 가장 중요한 은인으로 여긴다. 용기,, 속도, 날개, 날카로운 발톱 등 유용한 선물을 다른 동물들에게 다 줘버려, 인간 차례가 되자 남은 게 없어서 아테네 여신에게 얻어다 줬다는 불. 결국 그 불로 인해서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무래도 인간 역사의 아이러니를 잘 알았던 것 같다.

 

40 만일 네안데르탈인이 살아남았다면, 그래도 우리는 스스로를 다른 종과 동떨어진 존재라고 인식할까? 어쩌면 우리 조상들이 네안데르탈인을 전멸시킨 이유가 바로 이것인지 모른다. 그들이 우리가 무시하기에는 너무 친숙하고 관용하기에는 너무 달랐다는 것.

저자가 처음에 인류와 사피엔스 용어를 정의하고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등을 사피엔스의 사촌이라고 칭했을 때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동안은 호모 에렉투스à네안데르탈인’, à …… à호모 사피엔스등의 일직선으로 진화했다고 알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들이 사피엔스의 조상이 아니라 고릴라 침팬지 보다 좀 더 가까운 친척 즉 사촌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피엔스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멸종했다고 한다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들도 사피엔스처럼 진화했을까 아니면 침팬지처럼 과거의 습성 그대로 번식해서 침팬지와 인간 사이의 뭔가로 남아있을까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전멸시켰다고 한다 바로 그들이 우리와 너무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짐승 같은 바로 그 모습 때문에여기에서부터 이 책에 지속적으로 나오는 사피엔스의 우리와 그들의 구분이 시작된다

 

41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만 있는 고유한 언어 덕분이었다.

말은 이렇게 중요하다. 과거에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현대에 세상을 더 잘살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과거에는 언어 자체가 중요했다면 현대에는 어떤 언어를 하느냐가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2.     지식의 나무

44 인지혁명이란 약 7만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무엇이 이것을 촉발했을까? 우리는 잘 모른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이론은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사피엔스의 뇌의 내부 배선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전에 없던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지식의 나무(창세기에 금단의 열매 즉 선악과가 열리는 에덴동산의 나무) 돌연변이라고 부를 수 있다. 왜 하필 그 돌연변이가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사피엔스의 DNA에 등장했을까? 우리가 아는 한 그것은 순수한 우연의 산물이었다.

인간이 세상을 정복하고 지구를 지배하고 드디어 유기체가 아닌 생명을 만들기 시작할지 모르는시점에까지 도달한 것이 모두 우연한 유전자 돌연변이때문이라고…? 뭔가 무책임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더 고민해봐야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으니 일단은 받아들이자.

 

46 인간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소문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는 무엇보다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협력은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개별 남성이나 여성이 사자와 들소의 위치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보다는 무리 내의 누가 누구를 미워하는지, 누가 누구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지, 누가 정직하고 누가 속이는지를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47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 사피엔스가 약 7만년 전 획득한 능력은 이들로 하여금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수다를 떨 수 있게 해주었다.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작은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사피엔스가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심지어 오늘날에도 의사소통의 대다수가 남 얘기다. ~

언론인은 원래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었고, 언론인들은 누가 사기꾼이고 누가 무임승차자인지를 사회에 알려서 사회를 이들로부터 보호한다.

경험자로서 매우 공감한다. 학교나 회사를 다니면서 밥을 같이 먹고 밤 새워 공부를 같이하고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것만으로 친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뭔가가 부족하다. 같이 뒷담화를 할 사람, 특히 욕을 할만한 공동의 적이 있을 때 급속도로 친해지는 경험을 몇 번 했다. 안타깝지만 친해지려면 남 걱정같이 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53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해서 이 결정적 임계치를 넘어 마침내 수십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 수억 명을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아마도 허구의 등장에 있었을 것이다.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공통의 신화를 믿으면 성공적 협력이 가능하다. 인간의 대규모 협력은 모두가 공통의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 신화는 사람들의 집단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현대 국가, 중세 교회, 고대 도시, 원시부족 모두 그렇다. 교회는 공통의 종교적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로 만난 일 없는 가톨릭 신자 두 명은 함께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거나 병원을 설립하기 위한 기금을 함께 모을 수 있다. 둘 다 신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믿기 때문이다.

집단적 상상, 집단적 무의식. 비슷한 개념이 그간 책을 읽으면서 계속 등장하고 있다. <신화의 힘>, <사피엔스> 등의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평생 모르면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종교와 인간의 문화에 대해서 집단적 (무의식이 반영된) 허구적 상상이라는 개념을 알게된 지금. 아는 게 힘인지 모르는 게 약인지 잘 모르겠다.

 

57 그 모두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믿게 만드는 것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활동들이다. ~

효과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이야기를 하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남들이 그 이야기를 믿게 만드는 게 어렵다 역사의 많은 부분은 이 질문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어떻게 한 사람이 수백만 명에게 신이나 국가에 대한 특정한 이야기, 혹은 유한회사를 믿게 만드는가? 그러나 일단 성공하면, 사피엔스는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 서로 모르는 사람 수백 명이 힘을 모아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강이나 나무, 사자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고 치자. 그랬다면 국가나 교회, 법체계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59 거짓말과 달리 가상의 실재는 모든 사람이 믿는 것을 말한다. 이런 공통의 믿음이 지속되는 한, 가상의 실재는 현실세계에서 힘을 발휘한다. 슈타델 동굴의 조각가는 사자 남자 수호령의 존재를 진지하게 믿었을지 모른다. 마법사 중 일부는 사기꾼이지만, 대다수는 여러 신과 악마의 존재를 진지하게 믿었다. 대부분의 백만장자는 돈과 유한회사의 존재를 신봉한다.

과거에 더 심하긴 했지만 사실 요즘에도 위대한 예언가나 사업가와 사기꾼은 한 끗 차이인 것 같다.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그냥 사기꾼인데도 그 자신이나 내부 추종자들은 진지하게 위인으로 믿고 따르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사기꾼에게 속거나 이용당하지 않도록 정신 차리고 살아야겠지만 내가 사기꾼이 되지 않기 위해서도 정신 차리고 살아야겠다.

 

62 사피엔스는 인지혁명 이래 행태를 신속하게 바꾸고 새로운 행태를 유전자나 환경의 변화가 없이도 미래 세대에 전달할 수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가톨릭 신부, 불교의 승려, 중국의 환관처럼 아이를 갖지 않는 엘리트가 계속 등장했던 것이다. 이런 엘리트의 존재는 자연선택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에 모순된다. 사회를 지배하는 계층이 아이 낳기를 기꺼이 포기했으니까 말이다. ~

가톨릭 교회가 10여 세기 동안 살아남은 것은 교황에서 교황으로 독신주의 유전자를 물려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신약과 가톨릭 교회법의 이야기들을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63 일대일 결투라면 네안데르탈인이 사피엔스를 이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수백 명이 맞붙는다면 네안데르탈인에게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사자가 어디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공유할 수 있었지만, 픽션을 창작할 능력이 없어 대규모의 협력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없었다. 급속하게 바뀌는 외부의 도전에 맞게 자신들의 사회적 행태를 바꿔 적응할 수도 없었다.

 

67 인간은 교역망이나 대중적 축하행사, 정치제도 등의 질서 있는 패턴을 함께 창조한다. 혼자서는 결코 만들 수 없었던 것들을 말이다. 우리와 침팬지의 진정한 차이는 수많은 개인과 가족과 집단을 결속하는 가공의 접착제에 있다 이 접착제는 인간을 창조의 대가로 만들었다.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71 고칼로리 식품을 탐하는 본능은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오늘날 우리는 고층 아파트에 살며 냉장고에 먹을 것이 가득하지만, 우리의 DNA는 여전히 아프리카 초원 위를 누빈다. 그래서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 통을 발견하면 한 숟가락 푸욱 떠서 먹고 점보 콜라로 입가심까지 하는 것이다.

너무한다. 몇 천년, 몇 만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 때 DNA가 내 몸을 지배하고 있다니지난 겨울에 붙은 뱃살을 아직도 못 빼고 있다. 여름을 맞아 빨리 빼야 한다고 저녁은 요거트만 먹고 말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밥을 떠서 비비고 있었다. 얼마 안 남았다. 빨리 정신 차리자.  

 

83 인간 공동체의 지식은 고대 인간 무리의 그것보다 훨씬 크지만, 개인 수준에서 보자면, 고대 수렵채집인은 역사상 가장 아는 것이 많고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

그 시대에 생존하려면 누구나 뛰어난 지적 능력을 지녀야 했다. 하지만 농업과 산업이 발달하자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기술에 더 많이 의존할 수 있게 되었고, ‘바보들을 위한 생태적 지위가 새롭게 생겨났다. 별 볼 일 없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으며, 물품을 배달하거나 조립라인에서 단순노동을 하면서 그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되었다. ~ 이들은 뱀이 숨어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풀밭에서 나는 아주 미세한 소리까지도 귀 기울여 들었다. 또 과일과 벌집, 새둥지를 발견하기 위해서 나뭇잎들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이들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소리를 내지 않고 이동했으며 가장 기민한 방식으로 앉고 걷고 달릴 수 있었다. 신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 사용한 덕분에 마라톤 주자처럼 건강했다. 그들의 신체적 기민성은 요즘 사람들이 요가나 태극권을 수십 년간 수련해도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었다.

고대 수렵채집인까지 갈 것도 없다. 나보다 1~2세대의 어른들만 봐도 생존을 위한 지식 농사 또는 인간 관계 등 을 더 많이 갖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대학에서 배운 신문방송학, 경영학 지식들은 학위를 얻고 직업을 구하는데 큰 도움이 됐지만 실제로 삶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84 오늘날 풍요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평균 40~45시간 일하며 개발도상국에선 평균 60시간, 심지어 80시간씩 일한다. 이에 비해, 지구상의 가장 척박한 곳에서 살아가는 수렵채집인, 예컨데 칼라하리 사막 사람들은 주 평균 35~45시간 밖에 일하지 않는다. 이들은 사흘에 한 번 밖에 사냥에 나서지 않으며 채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하루 3~6 시간에 불과하다. 평상시에는 이 정도 일해도 무리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었다. 칼라하리보다 더욱 풍요로운 지역에 살았던 고대 수렵채집인들은 식량과 원자재를 획득하는 데 이보다 더 적은 시간을 썼을 것이다. 이에 더해 이들에게는 가사노동의 부담이 적었다. 접시를 씻고 진공청소기로 카펫을 밀고 마루를 닦고 기저귀를 갈고 청구서를 납부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

덕분에 남는 시간에 이들은 가십을 나누고,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하고, 지어낸 이야기를 하면서 한가롭게 보낸 수 있었다. 물론 호랑이에게 물려 가거나 뱀에게 물리는 일도 가끔 일어났지만, 자동차 사고나 산업공해에 대처할 필요는 없었다.

여기에서부터 마지막 질문의 답에 대한 힌트가 보인다. 과연 21세기에 풍요의 사회와 개발도상국의 중간 정도에 있을 것 같은 한국에 사는 우리는 고대 수렵채집인들보다 행복한가?

 

90 애니미스트는 인간과 다른 존재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다고 믿는다. 그들은 말이나 노래, 춤이나 의식을 통해 이들 모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다. 사냥꾼은 한 무리의 사슴에게 말을 걸어 그중 한 마리에게 스스로 희생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사냥에 성공하면 사냥꾼은 죽은 동물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다. 누군가 병에 걸리면, 샤먼이 병을 일으킨 정령과 접촉해 달래거나 겁을 줘서 쫓아버릴 수 있다. 샤먼은 필요하다면 다른 정령의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소통행위의 특징은 말을 거는 대상이 국지적 존재라는 점이다. 우주적인 신들이 아니라 특정한 사슴, 나무 시냇물, 유령이다.

말로 모건이 쓴 <무탄트 메시지>에 등장하는 호주 원주민 부족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호주 원주민 부족이 아니라 아메리칸 원주민 인디언의 습성을 묘사했다는 의견도 있기는 하다. 어쨌든 고대 수렵채집인뿐만 아니라 근/현대를 살고 있는 사피엔스들도 이런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인간은 참 많이 변하고 발전한 것 같지만 참 또 많이 비슷하다.  

 

101 하지만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인류 역사의 6~7만 년을 그 시기에 살았던 인류는 중요한 일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일축하고 싶어질 수 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중요한 일을 많이 행했다. 특히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주변 세계를 크게 바꿔 놓았다. ~

이야기를 지어내 말할 줄 아는 사피엔스의 방랑하는 무리들은 동물계가 이제껏 만들어낸 것 중 가장 중요하고 가장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4.     대홍수

104 최초의 인류가 호주까지 여행을 한 것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하거나 아폴로 11호 탐험대가 달에 착륙한 것 못지 않다. 이것은 인류가 어떻게 해서든 아프로아시아 생태계를 떠나는 데 성공한 최초의 사례다. 사실 대형 육상동물이 어찌어찌 해서 아프로아시아에서 호주로 건너간 첫 사례이기도 하다. ~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 선구자들이 그 신세계에서 저지른 짓이다. 최초의 수렵채집인이 호주 해안에 발을 들인 순간은 호모 사피엔스가 특정 대륙에서 먹이사슬의 최상층부로 올라가고 이후 지구라는 행성의 연대기에서 가장 치명적인 종이 된 순간이었다. ~

이전에도 인간은 획기적인 적응과 행태를 조금 보여주었지만, 그것이 환경에 끼친 영향은 무시할 만했다. ~ 반면에 호주 정착민들, 보다 정확하게는 정복자들은 현지 생태계에 적응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생태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꿔버렸다. 호주 해안 모래밭에 찍힌 인간의 첫 발자국은 곧바로 파도에 씻겨버렸다. 하지만 침입자들은 내륙으로 진격하면서 결코 지울 수 없는 발자국을 남겼다.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다. 요즘에도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호주까지 가려면 몇 일 또는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는데, 그 옛날에 배를 타고 어떻게 몇 달씩 항해를 해서 호주까지 갈 수 있었을까? 이보다는 오히려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선물했다거나 아틀라스가 땅을 어깨에 들어메고 있다는 것이 더 그럴 듯 하다. 이것 역시 우연의 산물인가?

 

106 오늘날 무슨 일이든 기후변화 탓으로 설명하는 것이 일반화되기는 했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지구의 기후는 결코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기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역사상 모든 사건은 모종의 기후변화를 배경으로 일어났다.

 

107 뉴질랜드의 첫 사피엔스 정착자인 마오리족이 그 섬에 도달한 것은 약 8백년 전이었다. 그로부터 2백 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곳의 대형동물 대부분이 멸종했고 모든 조류 종의 60퍼센트도 멸종했다. 북극해 랭겔 섬(시베리아 연안에서 2백 킬로미터 북쪽)의 매머드도 이와 유사한 운명을 맞았다. 매머드는 지난 수백만 년간 북반구 대부분 지역에서 번성했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에는 유라시아로 다음에는 북미로 퍼져나가자 매머드들은 계속 후퇴했다. 1만 년 전이되자 랭겔 섬을 비롯한 북극해의 외딴 섬 몇 곳을 제외하고는 지구상에서 매머드를 단 한 마리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랭겔 섬의 매머드는 몇천 년간 더 번성하다가 약 4천 년 전 갑자기 사라졌다. 인간이 섬에 처음 도착한 바로 그 시기에 말이다. ~

역사적 기록은 인류를 생태계의 연쇄살인범으로 보이게끔 만든다. ~ 만일 호모 사피엔스가 호주나 뉴질랜드로 내려가지 않았다면 그 곳에 아직도 유대목의 사자, 디프로토돈, 대형 캥거루가 살고 있었으리라고 믿을 이유는 충분하다.

그런데 정작 (호주 또는 하와이 에서) 뉴질랜드에 사피엔스가 처음 도착한 것은 겨우 8백년 전이라고 한다. 물론 인도네시아에서 호주까지 보다 호주에서 뉴질랜드까지가 좀 더 멀기는 하다. 그래도 45000년 전에 호주에 인간이 살았는데, 800년 전까지 그 근처의 뉴질랜드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111 그런데 왜 이런 수고를 무릅썼을까? 도대체 왜 스스로 시베리아로 유배를 갔을까? 일부 무리는 전쟁, 인구 증가의 압박, 자연재해 때문에 북쪽으로 내몰렸을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예컨대 동물성 단백질 같은 긍정적인 이유로 북쪽으로 이끌린 집단도 있었을지 모른다. ~ 매머드는 한 마리만 잡아도 엄청난 양의 고기(기온이 낮기 때문에 얼렸다 나중에 먹을 수도 있었다)와 맛있는 지방, 따뜻한 모피, 귀중한 상아를 제공하였다. 숭기르의 유적이 증언하듯, 매머드 사냥꾼들은 북쪽 동토에서 단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번성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 무리는 매머드와 마스토돈, 코뿔소, 순록을 쫓아 더 멀리 퍼져나갔다.

기원전 14000년쯤 이 중 일부가 사냥감을 쫓아 시베리아 북동부에서 알래스카까지 가게 되었다. 물론 이들은 자신들이 신세계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 12000년쯤 지구 온난화로 얼음이 녹고 좀 더 쉬운 통로가 열렸다. 새로운 통로를 이용해서 인류는 떼를 지어 남쪽으로 이동했고, 대륙 전체로 퍼져나갔다. ~ 이들은 곧 극히 다양한 기후와 생태계에 적응했다. ~

기원전 10000년이 되자 인류는 미 대륙 최남단의 티에라델푸에고 제도에까지 정착했다.

인류의 이런 진격전은 호모 사피엔스의 뛰어난 창의력과 적응력을 증언한다.

 

115 인지혁명이 일어날 즈음 지구에는 몸무게 45킬로그램이 넘는 대형동물 약 2백 속이 살고 있었다. 농업혁명이 일어날 즈음 이들 중 남은 것은 약 1백 속에 지나지 않았다. 호모 사피엔스는 바퀴, 문자, 금속도구를 발명하기 한참 전부터 지구 대형동물의 절반 가량을 멸종으로 몰아갔다.

인간에 의한 환경 파괴 및 동물 멸종 위기는 최근의 것인 줄만 알았는데, 이미 몇 만년 전부터 인간은 다른 동물과 환경을 파괴해 왔다. 이것이 현재 인간이 저지르고 있는 환경 파괴의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아주 옛날부터 저질러 왔던 잘못을 반성하고 더 이상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심각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117 수렵채집인의 확산과 함께 벌어졌던 멸종의 제 1물결 다음에는 농부들의 확산과 함께 벌어졌던 멸종의 제2 물결이 왔고, 이 사실은 오늘날 산업활동이 일으키고 있는 멸종의 제3의 물결에 대한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우리 조상들이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았다는 급진적 환경보호운동가의 말은 믿지 마라. 산업혁명 훨씬 이전부터 호모 사피엔스는 모든 생물들을 아울러 가장 많은 동물과 식물을 멸종으로 몰아넣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 만일 우리가 이미 얼마나 많은 종을 절멸시켰는지를 안다면, 아직 살아남은 종들을 보호하려는 의욕이 좀 더 생길 것이다. ~ 바다의 대형 동물들은 육지의 대형동물들에 비해 인지혁명과 농업혁명의 피해를 상대적으로 덜 받았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종이 산업공해와 인간의 해양자원 남용 탓에 멸종의 기로에 서 있다. 사태가 현재와 같은 속도로 진행된다면, 고래, 상어, 참치, 돌고래는 디프로토돈, 땅나무늘보, 매머드의 선례를 따라 망각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세상의 대형동물 중 인간이 초래한 대홍수에서 살아남는 것은 오직 인간자신과 노아의 방주에서 노예선의 노잡이들로 노동하는 가축들뿐일 것이다.

 

2부 농업혁명

5.     역사상 최대의 사기

120 이 모든 상황은 대략 1만년 전 달라졌다. 이때부터 사피엔스는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몇몇 동물과 식물 종의 삶을 조작하는 데 바치기 시작했다. 인간은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씨를 뿌리고 작물에 물을 대고 잡초를 뽑고 좋은 목초지로 양을 끌고 갔다. 이런 작업을 하면 더 많은 과일과 곡물과 고기를 얻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인간이 생활하는 방식의 혁명, 즉 농업혁명이었다.

 

122 온갖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인류를 먹여 살리는 칼로리의 90퍼센트 이상이 밀, , 옥수수, 감자, 수수, 보리쌀처럼 우리 선조들이 기원전 9500년에서 3500년 사이에 작물화했던 한 줌의 식물들에서 온다. 지난 2천 년 동안 주목할 만한 식물을 작물화하거나 동물을 가축화한 사례가 없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이 수렵채집인 시대의 것이라면, 우리의 부엌은 고대 농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좀 허무해지기도 하고, 초연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1만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먹기 위해서 살고 무엇보다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비슷한 것을 먹고 있다. 물론 요즘은 가공 식품을 많이 먹고 있지만 그 가공식품이라는 것도 어차피 원 재료는 자연에서 가져와야지 아예 없는 재료에서 가공해서 만들 수는 없다. 인간은 과거와 너무도 다르게 발전했지만 근본적인 의문은 계속 남는다. 정말 인간은 좋은 방향으로 발전했나? 그래서 더 행복해졌나?

 

124 농업혁명은 안락한 새 시대를 열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농부들은 대체로 수렵채집인들보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 수렵채집인들은 그보다 더 활기차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고 기아와 질병의 위험이 적었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어찌보면 자유인에서 스스로 노예의 길로 들어선 것 같다. 그렇다면 현대인은 어떤가? 별로 날 것도 없다. 우리도 각종 문명의 이기를 즐기기 위해서 스스로 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125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의 기본적 기준에 따르면 밀은 지구 역사상 가장 성공한 식물이 되었다. 북미의 대초원 지역 같은 곳에는 1만 년 전 밀이 한 포기도 없었지만 지금은 수백 킬로미터를 걷고 또 걸어도 밀 이외의 다른 식물을 볼 수가 없다. ~ 어떻게 이 잡초는 그저그런 식물에서 출발해 어디서나 자라는 존재가 되었을까? 밀은 호모 사피엔스를 자신의 이익에 맞게 조작함으로써 그렇게 해낼 수 있었다. 1만 년 전까지 이 유인원은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상당히 편안하게 살고 있었으나, 이후 밀을 재배하는 데 점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2천년도 채 지나지 않아 전 세계 많은 지역의 인간은 동이 틀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밀을 돌보는 것 외에는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되었다. ~

고대 유골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농업으로 이행하면서 디스크 탈출증, 관절염, 탈장 등 수많은 병이 생겨났다. 새로운 농업노동은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사람들은 밀밭 옆에 영구히 정착해야만 했다. 이로써 이들의 삶은 영구히 바뀌었다. 우리가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다.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

밀을 이런 관점에서 본 건 처음이지만 강아지, 고양이 등 집에서 키우는 동물이나 가축을 볼 때면 비슷한 생각이 들곤 했다. 때에 맞춰 식사를 제공하고 운동을 시키고 청소도 해주고 목욕도 시켜준다. 과연 우리가 동물을 기르는 것인가, 아니면 동물이 우리를 길들이는 것인가?

 

128 그렇다면 밀은 영양실조에 걸린 중국 소녀를 비롯한 농업종사자들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사람들 개개인에게 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 종에게는 무언가를 주었다. 밀 경작은 단위 토지당 식량생산을 크게 늘렸고, 그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129 농업혁명의 핵심이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 하지만 이런 진화적 계산법을 왜 개인이 신경을 써야 하는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호모 사피엔스 DNA 복사본의 개수를 늘리기 위해 삶의 질을 포기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 거래에 동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130 사람들은 풍요로운 시절에는 아이를 좀 더 많이 낳았고 궁핍한 시절에는 약간 덜 낳았다. 인간은 다른 많은 포유동물과 마찬가지로 번식을 조절하는 호르몬과 유전자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다. 풍족한 시절에 여자아이는 사춘기가 일찍 오고 임신 가능성이 조금 높아진다. 어려운 시절에는 사춘기가 늦게 오고 번식력이 떨어진다. ~

영구 정착촌에 살면서 식량공급이 증가하자 인구가 늘기 시작했다. 방랑하는 삶을 포기하자 여성은 매년 아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으로 현대 우리나라의 저출산을 설명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지금은 어려운 시절이라 사연적 시스템이 번식률을 낮췄다고 할 수 있을까?

 

133 기원전 8500년 여리고의 평범한 사람은 기원전 9500년이나 기원전 13000년의 사람에 비해 더욱 힘들게 살았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세대는 전 세대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살았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서 여기저기 작은 개선이 일어났을 뿐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일련의 개선이 합쳐져서 농부들의 어깨에 더 무거운 짐으로 얹혔다. 각각의 개선은 삶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치명적인 계산오류를 범했을까? ~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추가로 노동을 더 하려고 결정할 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러면 일을 더 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수확량이 많이 늘어날 거야. 흉년 걱정을 할 필요가 더 이상 없을 거야. 아이들이 배가 고픈 채로 잠자리에 드는 일도 없을 거야.’ 그것은 이치에 닿았다. ‘일을 더 열심히 하면 삶이 더 나아지겠지.’ 계획은 그랬다. ~ 하지만 그들은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다. 추가로 생산된 밀은 숫자가 늘어난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책 뒷부분에도 당시를 살고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가장 모른다는 표현이 나온다. 현대에 적용해봐도 맞을 것 같다. 지금의 발전과 개선이 우리의 삶을 좀 더 낫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있는지우리는 그렇다고 믿을지라도 100년쯤 뒤, 미래인은 어떻게 볼까? 왜 그렇게 미련하게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는 않을까? 지금 내가 기원전 8500년에 여리고의 사람을 미련하다고 생각하듯이

 

134 그렇다면 왜 계획이 빗나갔을 때 농경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사회를 바꾸는 데는 여러 세대가 걸리고 그때쯤이면 자신들이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구 증가 때문에 돌아갈 다리가 불타버렸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134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 중 상당수는 돈을 많이 벌어 35세에 은퇴해서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유수 회사들에 들어가 힘들게 일한다. 하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면 거액의 주택 융자, 학교에 다니는 자녀, 적어도 두 대의 차가 있어야 하는 교외의 집, 정말 좋은 와인과 멋진 해외 휴가가 없다면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들이 뭘 어떻게 할까? 뿌리채소나 캐는 삶으로 돌아갈까? 이들은 노력을 배가해서 노예 같은 노동을 계속한다.

맞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스스로 노예의 삶을 선택하고 그렇게 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설령 깨닫는다 할지라도 빠져 나오기에는 너무 늦었거나, 빠져 나올 용기가 없거나, 빠져 나와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몰라서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합리화하면서

 

135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들 중 꼭 있어야만 하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

불과 10년 전만 해도 SNS, 스마트폰 없이도 잘 살았고, 20년 전에는 휴대전화, 디지털 카메라 없이, 노트북 없이도 잘 살았다.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옷과 가방과 구두들. 지난 몇 년간 한번도 안 입고 안 신은 옷들이 반 이상을 될 것 같은데 왜 못 버리고 방 하나를 그들에게 양보하고 있는 걸까? 왜 짐 때문에 큰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살까? 바쁘다고 미루지 말고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찾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136 우리는 시간을 절약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인생이 돌아가는 속도를 과거보다 열 배 빠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에는 불안과 걱정이 넘쳐난다.

 

146 산업적 육류 농장의 송아지. 출생 직후 어미와 분리되어 자기 몸보다 그리 크지 않은 우리에 가둬진다. 송아지는 여기서 일생을 보낸다. 평균 약 4개월이다. 결코 우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며 다른 송아지와 놀지도 못하고 심지어 걸을 수조차 없다. 이 모두가 근육이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근육이 약해야 부드럽고 즙이 많은 스테이크가 된다. 이 송아지가 처음으로 걷고 근육을 뻗으며 다른 송아지들과 접촉할 수 있는 것은 도살장으로 가는 길에서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소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종 가운데 하나다. 이와 동시에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한 동물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맛있다는 이유로 송아지 스테이크를 선호하고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가방과 구두를 더 비싼 값에 구매한다. 나는 송아지 고기는 먹지 않지만 가방이나 구두는 있는 것 같다. 그게 더 나쁠 수도 있다. 반성하자.

 

147 하지만 양치기가 아닌 양 떼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다수의 가축화된 동물에게 농업혁명은 끔찍한 재앙이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이들의 진화적 성공은 무의미하다. 아마도 좁은 상자 안에 갇혀서 살을 찌우다가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가 되어 짧은 삶을 마감하는 송아지보다는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한 야생 코뿔소가 더 만족해할 것이다. 만족한 코뿔소는 자신이 자기 종족의 마지막 개체라는 데 아무 불만이 없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6.     피라미드 건설하기

미래의 도래

151 농경시대에는 공간이 축소되는 동안 시간은 확장되었다. 수렵채집인은 다음 주나 다음 달에 대해 생각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농부들은 미래의 몇 해나 몇 십 년이라는 세월 속으로 상상의 항해를 떠났다.

 

152 흉년이나 흉작은 늦든 이르든 오게 마련이었다. 나쁜 시절이 오지 않을 것이란 전제하에 사는 농부는 오래 살지 못했다.

그 결과 농업의 도래와 함께 비로소 인간의 마음속 극장에서 미래에 대한 걱정은 주연배우가 되었다. 비가 내려야만 논밭에 물을 댈 수 있는 지역에서 우기의 시작은 걱정의 시작을 의미했다. ~ 농부들이 미래를 걱정한 것은 단순히 걱정할 이유가 더 많았을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많은 밭을 일구고 관개용 수로를 더 파고 더 많은 씨를 뿌릴 수 있었다. 근심하는 농부는 여름철 수확개미만큼이나 정신없이 바쁘게 일했다. 자녀들과 손주들이 그 열매에서 기름을 짤 수 있도록 땀 흘려 올리브나무를 심었고, 오늘 간절히 먹고 싶은 식량을 겨울이나 내년을 위해 참고 비축해두었다.

농사의 스트레스는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대규모 정치사회 체제의 토대였다. 슬프게도 부지런한 농부들은 그렇게 힘들여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그토록 원하던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슬프게도 얻지 못했다. 모든 곳에서 지배자와 엘리트가 출현했다. 이들은 농부가 생산한 잉여 식량으로 먹고 살면서 농부에게는 겨우 연명할 것 밖에 남겨주지 않았다.

이렇게 빼앗은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 근대 후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90퍼센트는 아침마다 일어나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땅을 가는 농부였다. 그들의 잉여 생산이 소수의 엘리트를 먹여 살렸다. , 정부 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사색가……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이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개미와 베짱이같은 이야기가 만들어졌던 것은 아닐까?

 

155 신화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농업혁명 덕분에 밀집된 도시와 강력한 제국이 형성될 가능성이 열리자, 사람들은 위대한 신들, 조상의 땅, 주식회사 등등의 이야기를 지어냈다. 꼭 필요한 사회적 결속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의 본능이 늘 그렇듯 달팽이처럼 서서히 진화하고 있는 동안, 인간의 상상력은 지구상에서 유례없이 거대한 협력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갔다.

 

157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진 제국과 로마 제국에 이르는 모든 협력망은 상상속의 질서였다. 이들을 지탱해주는 사회적 규범은 타고난 본능이나 개인적 친분이 아니라 공통의 신화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163 우리는 사람을 귀족평민으로 구분하는 것이 상상의 산물이라는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사상 또한 신화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인간이 서로 평등하다는 것인가? 인간의 상상력을 벗어난 어딘가에 우리가 진정으로 평등한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세계가 있단 말인가? 모든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평등한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믿음이 신화이든 아니든 이 세상에 실제로 모든 인간이 평등한 곳이 있을까? 우리는 경제를 배울 때 가장 기본적인 전제로 모든 조건이 완벽히 통제될 때라든가 완전한 세상에서는…’ 등의 가정을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히 통제되는 완전한 세상이 어디 있는가? 그래서 경제가 예측하기 어렵고 마음대로 안 되는 것 같다. 사람도 세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165 “우리는 다음의 진리가 자명하다고 본다.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르게 진화했으며, 이들은 변이가 가능한 모종의 특질을 지니고 태어났고 여기에는 생명과 쾌락의 추구가 포함된다.”

맞는 말인 것 같긴한데이런 선언문을 가지고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167 자연의 질서는 안정된 질서다. 설령 사람들이 중력을 믿지 않는다 해도 내일부터 중력이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은 없다. 이와 반대로 상상의 질서는 언제나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화에 기반하고 있고, 신화는 사람들이 신봉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상상의 질서를 보호하려면 지속적이고 활발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런 노력 중 일부는 폭력과 강요의 형태를 띤다. 군대, 경찰, 법원, 감옥은 사람들이 상상의 질서에 맞춰 행동하도록 강제하면서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 하지만 상상의 질서는 폭력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 일부 있어야 한다.

 

176 달러화, 인권, 미국은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수십억 명이 공유하는 상상 속에 존재한다. 한 개인은 누구라도 그 존재를 위협할 수 없다. 만일 나 혼자 달러나 인권, 미국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해도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런 상상의 질서는 상호 주관적이며, 이를 변화시키려면 수십억 명의 의식을 동시에 변화시켜야 한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대규모 변화가 일어나려면 정당이나 이념운동, 혹은 종교적 광신집단 같은 복잡한 기구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복잡한 기구를 만들자면 서로 모르는 많은 사람을 협력하게 만들어야 하고, 그런 일은 오로지 그들이 뭔가 신화를 공유하고 있을 때만 일어난다. ~

상상의 질서를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우리가 감옥 벽을 부수고 자유를 향해 달려간다 해도, 실상은 더 큰 감옥의 더 넓은 운동장을 행해 달려나가는 것일 뿐이다.

유발 하라리는 현재 사회를 유지하는 시스템을 상상이라고 불러서 많은 독자들을 혼동, 심지어는 반발하게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상상을 믿음과 합의라는 단어로 대체하면 어떨까?

 

7.     메모리 과부하

179 지금까지 법률가 벌이 발견된 예는 없다. 벌들에게는 법률가가 필요 없다. 벌들은 벌집의 헌법을 잊을 위험도, 위반할 위험도 없기 때문이다. 여왕벌이 청소부벌들에게 먹이를 제대로 주지 않아도 이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일 일은 없다.

 

181 인간의 뇌는 특정한 유형의 정보만을 저장하고 처리하도록 적응했다. 고대 수렵채집인이 살아남으려면 수천 종의 식물과 동물의 형태와 속성, 행동 패턴을 기억해야만 했다. ~

하지만 농업혁명에 뒤이어 유달리 복잡한 사회가 등장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정보가 중요해졌다. 바로 숫자다. 수렵채집인은 많은 양의 수학적 자료를 다뤄야 할 일이 없었다. 숲 속에 있는 나무에 달린 과일의 개수 따위를 외워야 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따라서 인간의 뇌는 숫자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데 적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커다란 왕국을 유지하려면 수학적 데이터가 핵심적이었다. 법을 제정하고 수호신에 대해 지어낸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세금도 걷어야 했다. ~

문제를 처음 극복한 것은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살던 고대 수메르인이었다. ~ 기원전 3500~3000년 어느 시기에, 익명의 수메르 천재들이 뇌 바깥에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시스템을 발명했다. 대량의 수학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맞춤 시스템이었다. 덕분에 수메르인들은 인간의 뇌에서 비롯되는 사회질서의 제약에서 벗어나 도시, 왕국, 제국의 출현에 이르는 길을 열었다. 수메르인이 발명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은 쓰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나무에 달린 과일의 개수 따위를 외울 필요는 없었을지 몰라도 수렵채집인도 수확물을 분배하거나 다음날 먹을 식량을 남겨두거나 하기 위해서 숫자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수렵채집인이 살던 때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도시, 국가가 형성되면서, 특히 세금 징수 및 기록을 위해 숫자가 절실하게 필요해졌다는 데는 동의한다.

 

192 관료제에서는 모든 것이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을 위한 서랍이 하나, 결혼증서를 위한 서랍이 하나, 세금 기록용이 하나, 소송용 서랍이 하나, 이런 식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뭔가를 찾을 수 있겠는가? ~ 그래서 사람들은 서랍을 추가하고 지우고 재배열하는 일을 영원히 계속한다. 그런 서랍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그는 사람으로서 생각하기를 중간하고 서기나 회계사로서 사고체계를 다시 장착해야 한다. ~ 서기와 회계사는 인간이 아닌 방식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캐비닛에 파일을 분류하듯이 사고한다. 이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그들의 서랍은 뒤죽박죽이 될 테고, 자신이 속한 정부나 회사, 조직이 요구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을 것이다. 문자체계가 인간의 역사에 가한 가장 중요한 충격은 정확히 이것, 즉 인간이 세계를 생각하는 방식과 세계를 보는 방식이 점차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자유 연상과 전체론적 사고는 칸막이와 관료제에 자리를 내주었다.

정말 저자가 서기와 회계사가 인간이 아닌 방식으로 생각한다고 표현했을까? 물론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하지만 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195 쓰기는 인간의 의식을 돕는 하인으로 탄생했지만, 점점 더 우리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다. 컴퓨터는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말하고 느끼고 꿈꾸는지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에게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잇는 숫자 언어로 말하고 느끼고 꿈꾸라고 가르치고 있다. 게다가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공지능 분야는 오로지 컴퓨터의 이진부호에 기반을 둔 새로운 종류의 지능을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다. <메트릭스> <터미네이터> 같은 SF 영화는 이런 이진부호가 인간이 씌운 굴레를 벗어 던지는 날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이 반항적인 문자체계를 다시 통제하려고 하자, 그 체계들은 그 반응으로 인류를 쓸어버리려고 한다.

 

8.     역사에 정의는 없다

196 인류는 어떻게 자신들을 대규모 협력망으로 엮었는가? 그런 망을 지탱할 생물학적 본능이 결핍된 상태에서 말이다. 간단하게 답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상상의 질서를 창조하고 문자체계를 고안해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발명품을 통해서 생물학적으로 물려받은 것에 의해 생겨난 틈을 메웠다.

더 간단하게, 아니 그동안 우리가 배운 대로 말하면 인간이 사회/국가 시스템과 문자체계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대규모 협력망으로 엮일 수 국가 등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이렇게 정리해보니 매우 큰 통찰력이 필요한 깨달음은 아닌 것 같다.

 

199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위계질서는 자연스럽고 정당한 데 비해 다른 사회의 그것은 잘못되고 우스꽝스러운 기준을 근거로 삼는다고 주장한다. 현대 서구인들은 인종 간에 위계질서가 있다는 생각을 비웃으라고 교육 받는다. ~ 하지만 많은 미국인과 유럽인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의 위계질서는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 하지만 대부분의 부자가 부유한 이유는 그저 부잣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이고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이 평생 가난하게 사는 것은 그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

물론 사회적 차별이 형성되는 데는 타고난 능력의 차이도 한 몫 하지만, 능력과 성격의 다양성은 보통 상상의 질서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첫째이자 가장 중요한 점은, 대부분의 재능에는 육성과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재능을 타고났더라도 그것을 키우고 갈고 닦고 훈련할 환경이 되지 않으면 재능은 잠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모든 사람이 능력을 배양하고 가다듬을 기회를 동등하게 누리는 것은 아니다. 그런 기회를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는 그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상상의 위계질서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달려 있다. ~

둘째, 다른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정확이 같은 능력을 개발했더라도 이들이 똑같이 성공할 가능성은 적다. 게임에 적용되는 규칙이 각기 차이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 경제라는 게임은 법적인 제약과 비공식적인 유리천장으로 조작되게 마련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논의되고 있는 수저 계급론과 일맥 상통한다. 현대 사회는 귀족, 평민 등으로 구분되는 계급이 공식적으로 사라졌고, 인종이나 민족 등으로 차별하는 것을 부당하다고 여기지만 돈에 의한 차별은 너무도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있다. 오히려 과거의 대놓고 차별이 더 순수했던 것 같은 느낌도 든다.

 

206 역설적이게도 유전적 우월성 (면역의 관점에서)이 사회적 열등성으로 번역되었다. 아프리카인들은 유럽인들보다 열대 기후에 더 잘 적응한다는 이유 때문에 유럽인 주인의 노예가 되는 운명을 맞았다.

 

206 19세기 초 대영제국은 노예제를 불법화하고 대서양의 노예무역을 중단했으며, 이후 몇 십년에 걸쳐 노예제는 미 대륙에서도 점차 불법화되었다. 이것은 노예를 소유한 사회가 자발적으로 노예제를 추방한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이다.

 

208 흑인들은 악순환에 빠졌다. 그들은 지능이 떨어진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이미 백인들이 차지해버린 직업을 구할 수 없었는데, 그들이 열등하다는 증거는 백인들이 차지한 직업을 가진 흑인이 드물다는 바로 그 점이었다. 악순환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흑인에 대한 낙인 찍기가 심해지면서 이것은 인종을 차별하는 짐 크로 법(1876~1965년 시행되었던 미국의 인종분리법)’과 규범으로 제도화되었다. 흑인은 선거에 참가할 수도, 백인학교에서 공부할 수도, 백인 가게에서 물건을 살 수도, 백인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수도, 백인 호텔에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이 모든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는 명백했다. 흑인은 천하고 게으르고 악하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백인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

그들은 흑인이 선거에서 투표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흑인은 무지하고 부도덕하기 때문이었다.이러한 두려움은 소위 과학적 연구에 의해 정당화 되었는데, 학자들은 흑인이 실제로 교육 수준이 낮으며 다양한 질병에 걸리는 일이 많고 범죄율이 훨씬 더 높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런 연구가 간과한 점은 이런 사실들이 흑인에 대한 차별의 결과라는 점이었다.).

다른 시대, 사회의 모순에 대한 인식과 개선 방안은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우리가 속한 시대와 사호의 잘못된 점은 인정하기도 개선을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그냥 원래부터 그렇게 했었고, 그게 전통이고, 변화가 싫어서 그렇겠지. 특히 모순된 시스템으로부터 이득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개선(변화)할 이유가 전혀 없고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인지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거나 알더라도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경우도 많다.

 

210 1958년 미시시피대학교에 지원한 흑인학생 클레넌 킹은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되었는데, 판사가 미시시피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흑인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판결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싶지만 겨우 6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211 부당한 차별은 시간이 흐르면서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심해질 수 있다. 돈은 돈 있는 자에게 들어오고, 가난은 가난뱅이를 방문하는 법이다. 역사에서 한번 희생자가 된 이들은 또다시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역사의 특권을 누린 계층은 또다시 특권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사회정치적 차별에는 논리적, 생물학적 근거가 없으며, 우연한 사건이 신화의 뒷받침을 받아 영속화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훌륭한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것이다.

 

212 현대 유럽에서 계급제도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알려진 모든 인간사회에서 최고로 중요한 위계질서가 하나 존재한다. 바로 성별이다.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스스로를 남자와 여자로 구분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곳에서 남자가 더 좋은 곳을 차지했다. 적어도 농업혁명 이후로는 그랬다.

특히 성별로 인한 구분/차별은 생물학적인 차이라는 뒷받침을 받아 더 그렇게 믿게 되는 것 같다.

 

214 남녀의 구분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나 미국의 인종차별 시스템처럼 상상의 산물일까? 아니면 생물학적 뿌리가 깊은 자연스러운 구분일까? 정말 자연스러운 구분이라면 여자보다 남자를 선호하는 것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도 존재할까?

남녀 간의 문화적, 법적, 정치적 차이 중 일부는 성별에 따른 명백한 생물학적 차이를 반영한 것이다. 출산은 언제나 여성의 일이었다. 남자는 자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사회는 이런 보편적인 핵심 사실 주변에 생물학과 거의 관련 없는 문화적 개념과 규범을 층층히 쌓아올렸다. 많은 사회가 일련의 속성을 남성성과 여성성에 결부시키지만, 대체로 생물학적으로 분명한 근거는 없다. 예컨대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민주사회에서 자궁을 가진 개인은 독립적인 법적 지위를 가지지 못했으며 평의회 의원이나 판사가 되는 것을 금지당했다.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사업을 하거나 철학적 논의에 참여할 수도 없었다. ~

현대 아테네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오늘날 아테네에서 여성을 투표에 참가하고, 공직에 선출되며, 연설을 하고, 보석부터 빌딩, 소프트웨어에 이르는 모든 것을 디자인하며, 대학에 다닌다. 자궁때문에 남자보다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할 일은 없다. ~ 정치 참여에 법적 제한은 없으며, 대부분의 그리스 사람들은 여성이 공직에 근무하는 것을 매우 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도 출산과 육아가 여성에게 가장 큰 한계를 지은 것 같다. 여성의 가장 큰 기쁨이자 권리라는 말로 슈거 코팅된 채로……

 

216 ‘자연은 가능하게 하고 문화는 금지한다는 기준이다. 생물학은 매우 폭넓은 가능성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사람들에게 어떤 가능성을 실현하도록 강제하고 다른 가능성을 금지하는 장본인은 바로 문화다. 생물학은 여성들에게 아이를 낳는 능력을 주었고, 일부 문화는 여성들에게 그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을 의무로 지웠다. 생물학은 남자들끼리 성관계를 즐길 수 있게 했고, 일부 문화는 그런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을 금지했다.  

정말 그저 문화의 문제일까?

 

218 남성성과 여성성을 규정하는 법과 규범, 권리와 의무는 대부분 생물학적 실체보다 인간의 상상력을 더 많이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하지만 남자man’여자woman’는 생물학적 범주가 아니라 사회적 범주를 지정한다. 물론 대부분의 인간사회에서 대다수의 경우에는 남자는 남성이고 여자는 여성이지만, 남자와 여자라는 사회적 용어는 많은 것을 담고 있으며 이것은 생물학적 용어와는 관련이 희박하다.

 

219 여자란 두 개의 X염색체와 하나의 자궁, 많은 에스트로겐 호르몬을 지닌 사피엔스를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떤 상상의 인간 질서에 속하는 여성 구성원을 말한다. 그녀가 속한 사회의 신화들은 그녀에게 독특한 여성다운 역할(아기를 키운다), 권리(폭력으로부터 보호), 의무(남편에게 복종)를 부과한다.

생물학이 아니라 신화가 남녀의 역할, 권리, 의무를 규정하기 때문에, ‘남성성여성성의 의미는 사회에 따라 크게 달랐다.

 

222 남성은 자신의 남성성을 잃을까 봐 끊임없이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역사를 통틀어 남성들은 오로지 남들에게서 그는 진짜 남자야란 말을 듣기 위해서 기꺼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거나 심지어 목숨을 바쳐왔다.

정말? 진짜라면 정말 미련하기 짝이 없다.

 

223 남성적이라고 평가받는 속성들은 여성적이라고 평가받는 속성에 비해 더 높은 가치를 부여받고, 여자다움의 이상을 구현한 구성원은 남자다움의 이상을 구현한 구성원에 비해 얻는 것이 더 적다. ~ 젠더는 이상한 경주와 같아서, 어떤 주자들은 아무리 경쟁해봐야 겨우 동메달만 딸 수 있다.

스스로 남성성과 여성성 모두 강하게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일부만 동의한다. 남성적이라고 평가받는 속성들, 즉 경쟁심, 성취감, 승부욕 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 높은 가치를 부여받는 것 같다. 성공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삶. 좋은 자질들이고 그로 인해 지금의 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들만 추구하게 되면 너무 힘들고 피폐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여성성, 관계 추구, 사회성 발달, 아름다움에 대한 표현 등. 이 자체만으로는 사회적으로 얻는 것이 별로 없을지 모르지만 남성성에 여성성을 더할 경우에 개인적으로 훨씬 행복하고 아름다움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3부 인류의 통합

9.     역사의 화살

235 모든 문화는 나름의 전형적인 신념, 규범,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들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환경의 변화나 이웃 문화와의 접촉에 반응해 스스로 모습을 끊임없이 바꾼다. 스스로의 내부적 역동성으로 인해 변이를 겪기도 한다.

 

237 또 다른 예는 현대의 정치질서다 프랑스 혁명 이래 세계 모든 곳의 사람들은 점차 평등과 개인의 자유를 근본적 가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두 가치는 서로 모순된다. 평등을 보장하는 방법은 형편이 더 나은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이외에 없다. 모든 개인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면 필연적으로 평등에 금이 간다. 1789년 이래 세계 정치사는 이 모순을 화해시키려는 일련의 시도록 볼 수 있다.

 

238 오늘날 세계는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 모순은 모든 인간 문화에서 뗄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사실 이것은 문화의 엔진으로서, 우리 종의 창의성과 활력의 근원이기도 하다. 서로 충동하는 두 음이 동시에 연주되면서 음악작품을 앞으로 밀고 나아가듯이, 우리의 생각과 아이디어와 가치의 불협화음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고, 재평가하고, 비판하게 만든다. 일관성은 따분한 사고의 놀이터다.

일관성을 따분하지만, 불협화음, 모순 등은 우리 삶을 피폐하게 한다. 때로는 다수 개인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다.

 

238 인지부조화는 흔히 인간 정신의 실패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핵심자산이다. 만일 사람들에게 모순되는 신념과 가치를 품을 능력이 없었다면, 인간의 문화 자체를 건설하고 유지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 인지부조화를 이겨낼 힘이 없다면 문화 건설이 아니라 생존 자체가 불가했을 것 같다.

 

245 호모 사피엔스는 사람을 우리와 그들로 나눠서 생각하도록 진화했다. ‘우리란 누구든 내 바로 주위에 있는 집단을 말했다. ‘그들이한 그 외의 모든 사람이었다. 사실 어떤 사회적 동물도 자신이 속한 종 전체의 이익에 이끌려 행동하지는 않는다. ~

하지만 인지혁명을 시발로, 호모 사피엔스는 이 점에서 점점 더 예외가 되어갔다.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협력하기 시작했다. 이들을 형제친구라고 상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형제애는 보편적이지 않았다. 건너편 골짜기 어딘가, 혹은 저 산 너머 어딘가에는 여전히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야만인들은 낯설고 위협적이었으며, 오로지 이집트에 필요한 땅이나 천연자원을 이들이 가지고 있을 때만 흥미로운 존재였다. 흥미의 크기는 필요의 크기에 비례했다. 사람들이 창조한 모든 상상의 질서는 인류의 상당한 부분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247 ‘우리 대 그들이라는 이분법적 진화적 구분을 처음으로 어찌어찌 초월했고 인류의 잠재적 통일을 내다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상인, 정복자, 예언자들이었다. 상인들에게는 세계 전체가 단일시장이었으며 모든 인간은 잠재적 고객이었다. 이들은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경제질서를 세우고 싶어 했다. 정복자들에게는 세계 전체가 단일 제국이었고 모든 인간은 잠재적 신민이었다. 예언자들에게는 온 세계에 진리는 하나뿐이었으며 모든 인간은 잠재적 신자였다. 이들 역시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질서를 세우려고 노력했다.

지난 3천 년간 사람들은 이런 지구적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 점점 더 야심 찬 시도를 했다.

너무나도 방대하고 어려운 소재를 다뤄서인가? 그냥 우연의 산물”, “어찌어찌 초월등 너무 단순하게 넘어가는 게 많은 것 같다. 책 한권에 20만년 인류의 삶과 역사를 담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다. 하지만 보다 이해가 가는 설명을 찾았더라면 어땠을까?

 

10.  돈의 향기

248 스페인 사람들이 금에 열광하는 이유가 뭐냐고 원주민들이 묻자 코르테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와 내 동료들은 금으로만 나을 수 있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대답을 생각해냈을까? 정말 마음의 병이 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 병은 금으로 나을 수는 없었을 것 같다.

 

253 일부 사회에서는 중앙집중적 물물교환 시스템을 만들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전문 재배자와 제작자에게서 물품을 다 받아둔 뒤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것이다. 이런 실험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한 것은 옛 소련에서 시행되었지만, 비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원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다던 것이 현실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으로 일하고 가능한 한 최대로 받아낸다로 바뀌었다. 이보다 온건하고 성공적인 실험이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잉카 제국이 그랬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회는 많은 수의 전문가를 연결시키는 좀 더 쉬운 방법을 찾아냈다. 돈을 개발한 것이다.

 

256 사람들이 항상 돈을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항상 돈을 원하기 때문이고, 그것은 곧 당신이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모든 것과 돈을 교환할 수 있다는 말이다. ~

이상적인 형태의 돈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게 해줄 뿐 아니라 부를 축적할 수 있게도 해준다. 세상에는 저장이 되지 않는 귀중한 것이 많은데, 가령 시간이나 미모가 그렇다. 어떤 것은 짧은 시간만 저장이 가능하다. ~ 내구성이 더 좋은 것들도 있지만,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비싼 시설이 필요하며 손이 많이 간다. ~ 돈은 그것이 종이든, 컴퓨터 비트든, 혹은 별보배고둥 껍데기든, 이런 문제를 해결해준다. 별보배고둥 껍데기는 썩지 않고, 쥐의 입맛에 맞지도 않으며, 불에 타지 않고, 금고에 넣어둘 수 있을 정도로 작다.

부를 이용하려면 단순히 저장해두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 ~ 돈은 부의 전환과 저장, 이동을 쉽고 값싸게 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복잡한 상거래망과 역동적 시장이 출현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만일 돈이 없었더라면 상거래망과 시장의 규모와 복잡성, 역동성은 매우 제한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족, 친구, 동네 커뮤니티 등 아주 작은 공동체에서 물품 교환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피엔스가 왜 돈을 만들었는지 단박에 알게 될 것이다. 처음 몇 번은 좋은 마음으로 나의 물품이나 시간, 서비스 등을 나누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왠지 손해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문제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교환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느끼게 되는 것. 역시 돈으로 지불하고 받는 것이 여러모로 깔끔하다.

 

264 국경과 문화를 초월하는 단일 화폐 권역의 등장은 아프로아시아의 통일을 위한 기초, 결국에는 지구 전체를 단일 경제정치권역으로 통합하는 기초를 놓았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했고, 각기 다른 통치자의 지배를 받았고, 각기 다른 신을 숭배했지만, 모두 금과 은, 금화와 은화를 신뢰했다. ~ 16세기 미 대륙에서 침략자들이 발견한 금과 은 덕분에 유럽 상인들은 동아시아에서 비단, 도자기, 향신료를 살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경제성장의 바퀴를 돌릴 수 있었다. ~ 만일 중국인들이 코르테스와 그 일당이 앓았다는 심장병에 똑같이 걸리지 않았다면, 그래서 금이나 은으로 하는 결제를 거부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중국인, 인도인, 무슬림, 스페인인의 문화는 서로 크게 다르며 의견을 같이 하는 부분이 적은데도 다들 금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이 별보배고둥이나 달러, 혹은 전자 데이터를 믿는다는 사실은 우리 또한 그것들을 믿게 만들기 충분하다. ~ 돈은 인류가 지닌 관용성의 정점이다. 돈은 언어나 국법, 문화코드, 종교 신앙, 사회적 관습보다 더욱 마음이 열려 있다. 인간이 창조한 신뢰 시스템 중 유일하게 거의 모든 문화적 간극을 메울 수 있다. 종교나 사회적 성별, 인종, 연령, 성적 지향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유일한 신뢰 시스템이기도 하다. 돈 덕분에 서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11.  제국의 비전

271 오늘날까지도 고대 누만시아인들은 스페인의 영웅적 행위와 애국심의 귀감이며, 젊은이들의 역할모델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들이 누만시아 사람들을 찬양하는 언어는 스페인어다. 스키피오가 썼던 라틴어의 후손인 로망스어 중 하나다. ~ 세르반테스는 <누만시아>의 대본을 라틴어로 썼으며 이 극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 모델을 좇았다. ~ 누만시아의 영웅적 행위를 칭송하는 스페인 애국자들은 또 대체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실한 신도이기도 한다. ~ 누만시아인들이 실제로 남긴 것은 폐허밖에 없다. 심지어 오늘날 그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도 오로지 로마인 역사가들 덕분이다. ~

우리는 약자가 이기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역사에 정의란 없다.

역사의 모순, 아픔이기도 하다. 저자도 유대인으로서 비슷한 아픔을 겪었을 것 같은데오히려 담담하게 쓰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는 유대인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독일인과의 과거 및 관계에 대해서 독일인들은 매우 조심하고 말도 안 꺼내는데 오히려 이런 것들에 대해 더 쿨하고 농담처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독일인들이 여러 번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이에 대해 잊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암튼 여러번 깜짝 놀랐었다.

 

291 인류의 모든 문화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제국과 제국주의 문명의 유산이며, 어떤 학술적, 정치적 외과 수술을 한다 해도 환자를 죽이지 않고 제국의 유산만을 도려낼 수는 없다.

 

295 21세기가 전개되면서 민족주의는 급속하게 입지를 잃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특정 국적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인류의 구성원 모두가 정치권력의 합법적인 근원이며, 인권을 보호하고 인간 종 전체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정치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

오늘날 세계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조각나 있지만, 국가들은 빠른 속도로 독립성을 잃고 있다. 어느 국가도 독자적인 경제정책을 실행하거나 마음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수행할 실질적 능력이 없다. 심지어 국내 문제도 자기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운영할 수 없을 지경이다. 국가들은 글로벌 마켓의 책략에, 글로벌 회사와 글로벌 NGO의 간섭에, 글로벌 여론의 감독에, 국제 사법제도에 점점 더 문호를 열고 있다. 국가들은 재정적 행태, 환경 정책, 사법제도에서 글로벌 기준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매우 강력한 자본, 노동, 정보의 흐름이 세계를 바꾸고 그 모습을 새로이 형성하고 있다. 국가 간의 경계나 국가의 의견은 점점 더 무시되고 있다.

우리 눈앞에서 형성되고 잇는 지구제국은 특정 국가나 인종 집단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옛 로마 제국과 비슷하게 이 제국은 다인종 엘리트가 통치하며, 공통의 문화와 이익에 의해 지탱된다. ~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제국을 선택하고 있다.

저자가 이 글을 쓰던 2011년에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그 몇 년 새 또 세상은 많이 바뀌어서 민족주의, 고립주의가 대세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한 유발 하라리의 의견은 무엇일지? 역시나 역사는 예측할 수 없는 2단계 카오스라고 말할까? 다음주에 한국에 와서 방송 프로그램 녹화하고 간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할지 궁금하다. 아니 그의 새 책 <호모 데우스>에서 언급하고 있지 않았을까?

 

12.  종교의 법칙

298 오늘날 종교는 흔히 차별과 의견충돌과 분열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개체다. 모든 사회 질서와 위계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취약하게 마련이다. 사회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다.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종교는 우리의 법은 인간의 변덕의 결과가 아니라 절대적인 최고 권위자가 정해 놓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러면 최소한 몇몇 근본적인 법만큼은 도전받지 않을 수 있었으므로, 사회의 안정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따라서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303 애니미즘은 인간을 세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존재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한편 다신교는 세상이 신들과 인간의 관계를 반영한다는 시각을 점점 더 키워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기도와 희생과 죄업과 선행이 생태계 전체의 운명을 결정했다. ~ 그 때문에 다신교는 신들의 지위뿐 아니라 인간의 지위도 격상시켰다. 옛 애니미즘 체계에 속하던 다른 불운한 존재들은 지위를 잃고, 인간과 신의 관계라는 위대한 드라마에서 엑스트라나 말없는 장식물로 전락했다.

 

309 기독교인들은 모든 인류를 겨냥해 광범위한 선교활동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 비의적 유대교 분파가 강력한 로마제국을 접수한 것은 역사상 가장 이상한 사태 전개로 꼽힌다. ~

이슬람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구석진 곳의 작은 분파로 시작했지만, 기독교보다 더 이상하고도 놀라운 업적을 이룩했다. 아라비아 사막을 벗어나 대서양에서 인도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제국을 정복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일신교 사상은 세계사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종교의 전파도 다른 많은 역사상의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이성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그냥 역사상 가장 이상한 사태 전개또는 더 이상하고도 놀라운 업적으로 밖에 말할 수 없는가?

 

310 일신론자들은 자신들이 단 한 분밖에 없는 신의 모든 메시지를 갖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종교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지난 2천 년간 일신론자들은 모든 경쟁상대를 폭력으로 말살시킴으로써 자신들의 힘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되풀이했다.

 

320 마음은 무엇을 경험하든 대개 집착으로 반응하고 집착은 항상 불만을 낳는다. 마음은 뭔가 불쾌한 것을 겪으면 그것을 제거하려고 집착하고, 뭔가 즐거운 것을 경험하면 그 즐거움을 지속하고 배가하려고 집착한다. 그러므로 마음은 늘 불만스럽고 평안에 들지 못한다. 이 사실은 우리가 고통 같은 불쾌한 경험을 할 때 매우 분명해진다. 고통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불만스럽고, 고통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즐거운 일을 경험해도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즐거움이 사라질까 봐 두려워하거나 더 키지기를 희망한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를 몇 년씩 꿈꾸지만 실제로 찾았을 때 만족하는 일은 거의 없다. 상대가 떠날까 봐 전전긍긍하는가 하면 좀 더 나은 사람을 찾을 수 있었는데 너무 값싸게 안주했다고 느낀다. 심지어 용케 둘 다를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리라. ~

만일 즐거운 일이나 불쾌한 일을 경험했을 때 마음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거기에는 고통이 없다. 당신이 슬픔을 경험하되 그것이 사라지기를 원하는 집착을 품지 않는다면, 당신을 계속 슬픔을 느끼겠지만 그로부터 고통을 당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슬픔 속에 풍요로움이 있을 수 있다. 당신이 기쁨을 느끼되 그것이 계속 유지되며 더 커지기를 집착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고 계속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결국은 집착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다. 집착하지 않고 그냥 놔두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을왜 이리 어려운지. 그래서 그렇게 목 놓아 소리지르고 울었나 보다. “ Let it go, let it go!”

 

321 어떻게 하면 모든 것을 집착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 이 방법은 우리 마음이 지금과 다른 어떤 경험을 하고 싶은가?”보다 지금 나는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온 관심을 쏟도록 훈련시킨다. ~

그 규칙들은 우리가 집착이나 환상에 빠지지 않으면서 실제 경험에 초점을 맞추기 쉽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 불이 완전히 꺼지면 집착은 완벽한 만족과 평온의 상태와 자리를 바꾸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열반이다. (열반은 문자 그대로 불 끄기란 뜻이다) 열반에 이른 사람은 모든 고통에서 해방된다. 이들은 실재를 극도로 분명하게 경험하며, 환상이나 망상에서 자유롭다. 이들도 분명 불쾌함이나 고통에 맞닥뜨릴 테지만, 그런 경험은 이제 아무런 정신적 고통을 일으키지 않는다. 집착이 없는 사람은 고통받지 않는다.

나는 불교의 많은 교리에 동의하고 인정한다. 그런데 아주 기본적으로 집착하지 않는다는 데 집착해서 결국 또 고통스러워 진다’, ‘모든 것을 버리고 세속을 떠난다등 회의적, 자포자기적 사고방식이나 때로는 그저 말장난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는 명언(?) 등 때문에 신뢰가 가지 않을 때가 많다. 내가 너무 모르고 많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것도 인정한다.

 

322 번뇌는 집착에서 일어난다는 것,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데 있다는 것,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도록 마음을 훈련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329 자유주의적 인본주의가 개개인의 최대한의 자유를 추구하는 데 반해,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는 모든 인간의 평등을 추구한다. 사회주의자에 따르면 불평등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최악의 모독이다. 인간의 보편적 본질이 아니라 주변적 속성에 특권을 부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일신론의 토대 위에 건설되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상은 모든 영혼이 하느님 앞에 평등하다는 일신론적 확신의 개정판이다.

 

329 전통적 일신론의 속박에서 벗어난 유일한 인본주의는 진화론적 인본주의로, 가장 유명한 예는 국가사회주의, 즉 나치다. ~ 나치는 다른 인본주의자들과 달리 인류를 보편적이고 영원한 무엇이 아니라 진화하거나 퇴화할 수 있는, 변하기 쉬운 종으로 보았다. 인간은 초인으로 진화할 수도, 인간 이하로 퇴화할 수도 있었다. 나치의 주된 야망은 인류의 퇴화를 막고 진보적 진화를 부추기는 것이었다. 나치가 인류의 가장 발전된 형태인 아리아인을 보호육성해야 하고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 정신병자 같은 호모 사피엔스의 퇴화된 종류들은 격리하거나 심지어 근절해야 한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

이후 생물학자들은 나치 인종이론의 정체를 폭로해왔다. 특히 1945년 이후 시행된 유전학 연구에서, 다양한 인간 혈통 사이의 차이는 나치가 제시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적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332 나치는 인간을 혐오하지 않았다. 나치가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인권, 공산주의와 싸운 것은 그들이 오히려 인간을 찬양하며 인류의 위대한 잠재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다윈의 진화론에 따라 자연선택이 작동하게 내버려두어서 능력 없는 자들을 도태시키고 가장 우수한 자들만 생존하고 번식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는 약사를 원조함으로써 적응하지 못한 개인의 생존을 허용할 뿐 아니라 번식할 기회를 주어 자연선택을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인간은 적응하지 못한 퇴화자들의 바다에서 필연적으로 익사할 것이며, 세대를 거듭할수록 인류의 적응력은 점점 떨어져 멸종에 이를지도 모른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334 세번째 밀레니엄의 여명기인 지금, 진화적 인본주의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전쟁이 끝난 후 60년간, 인본주의를 진화와 연관시키는 것은 금기였다. 생물학적 방법에 의한 호모 사피엔스의 업그레이드를 옹호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프로젝트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 하급 인종이나 열등한 집단을 멸절시키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많은 사람이 인간 생물학에 대한 우리의 해박한 지식을 이용해 초인간을 만드는 문제를 심사숙고하고 있다.

이런 저런 말로 포장하지만 결국 인간 개조 또는 호모 사피엔스의 업그레이드등에 관해 많은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기 어렵다는 것. 아마 나치 치하의 독일인들도 당시에는 본인들이 하는 일이 그토록 끔찍하고 잘못된 일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다. 아마도 본인들이 진심으로 인류의 퇴화를 막고 진보적 진화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다. 마치 현재 우리가 인류의 진보와 발전을 위해 생물학과 유전공학 그리고 인공 지능을 활용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듯이.

 

13.  성공의 비결

338 특정한 역사 시대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왜 하필 일이 그런 식으로 전개되었으며 다른 식으로는 전개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

사실 그 시대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 다시 말해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야말로 그 시대를 가장 모르는 사람들이다. 사후의 깨달음에 의해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정작 그 시대에는 전혀 명백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 역사의 철칙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는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벗어난 것인가, 아니면 최악의 위기가 곧 닥쳐올 예정인가? 중국이 성장을 계속해서 선도적 초강대국이 될까? 미국은 헤게모니를 잃을까? 일신론적 근본주의가 급증하는 것은 미래의 파도일까 아니면 장기적 중요성은 별로 없는 국지적 소용돌이일까? 우리는 환경적 재앙으로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기술적 파라다이스로 향하고 있는가? 어느 족이든 이를 뒷받침하는 훌륭한 주장이 존재하지만, 확실히 알 방법은 없다. 그러나 불과 몇 십년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이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은 명백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340 역사는 결정론으로 설명될 수도 예측될 수도 없다. 역사는 카오스적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힘이 작용하고 있으며, 이들 간의 상호작용은 너무 복잡하므로, 힘의 크기나 상호작용 방식이 극히 조금만 달라져도 결과에는 막대한 차이가 생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역사는 이른바 ‘2단계level two’ 카오스계다. 1단계 카오스는 자신에 대한 예언에 반응을 하지 않는 카오스다. ~

2단계 카오스는 스스로에 대한 예측에 반응하는 카오스다. 그러므로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시장이 그런 예다. 만일 우리가 내일의 석유 가격을 1백 퍼센트 정확히 예측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석유 가격은 예측에 즉각 반응할 것이고, 해당 예측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현재 가격이 배럴당 90달러인데 내일은 1백 달러가 될 것이라고 절대적으로 옳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예측한다면 어떻게 될까? 거래인들은 그 예측에 따른 이익을 보기 위해 급히 매입 주문을 낼 것이고, 그 결과 가격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 배럴당 1백 달러로 치솟을 것이다. 그러면 내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미래의 예언에 대해 믿지 않는다. 예언에 대비해서 그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결국 예언은 틀린 것이고 그 예언가는 사이비거나 실력이 없는 것이다. 그대로 둬서 예언한 대로 실행된다면불행한 사건일 경우, 왜 막을 수 있는 일을 막지 못했냐는 비난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341 혁명은 그 정의상 예측이 불가능하다. 예상 가능한 혁명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342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345 군비 경쟁은 참여하는 모든 당사국들을 파산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군사력의 균형을 실제로 바꾸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파키스탄이 첨단 항공기를 구입하면, 인도가 동일한 조치로 대응한다. 인도가 핵폭탄을 개발하면, 파키스탄도 그대로 따라한다. 파키스탄이 해군력을 확장하면, 인도가 그에 대응한다. 이 과정의 끝에 다다르면, 힘의 균형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동안 교육과 의료에 투자할 수 있었을 수십억 달러가 무기의 구입과 개발에 사용되었을 뿐이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미련하지?’라고 비웃을 수가 없어서 참으로 안타깝다. 결국 통일이 답인가?

 

346 역사상 가장 성공한 문화가 반드시 호모 사피엔스에게 가장 좋은 문화라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진화와 마찬가지로 역사는 개별 유기체의 행복에 무관심하다. 그리고 개별 인간은 너무나 무지하고 약해서, 대개는 역사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도록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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