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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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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5일 00시 01분 등록

햇살 적당한 날입니다. 아름다움이 무르익는 시기. 여기저기 청첩장의 소식이 전해옵니다. 저도 말쑥이 차려입고 축복의 장에 나섰습니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 검정 정장을 입은 신랑. 해맑은 미소 속에 입장. 당당한 걸음. 그들의 앞날엔 어떤 미래가 펼쳐져 있을까요. 인생이 그렇듯 좋은 혹은 그렇지 않은 일들과 여러 만남이 엮어지겠지요.

주례 선생님의 말씀. 신기하네요. 처음 해봐서(?) 경황이 없었겠지만 이십 년 전 저의 그 자리. 하나도 기억나지 않더니 작금에서야 구절들이 가슴에 맺힙니다. 힘든 일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서로 양보하고 사랑과 신뢰로서……. 그렇지요.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입니다.


별것 아닌 것 가지고 다툼을 한 적이 많습니다. 반찬, 청소로도 언쟁을 하고 서로의 가족 문제로도 감정이 상합니다. 그런 상황들에 현명하게 풀어 나가는 것. 유지 비결이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상처가 곯거나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라야하니까요.

신랑, 신부의 퇴장. 친구들이 뿌려주는 하얀 꽃. 세월을 앞당겨 하늘에서 눈이 내립니다. 꽃을 닮은 여성. 히아신스, 목련, 안개꽃 등. 화사한 신부. 누군가의 시샘을 받듯 발그스레한 얼굴과 함박웃음. 신랑이 반할만도 합니다.


수줍은 아가씨. 남자를 만나 앞으로의 삶을 약속합니다. 젖을 물리며 기저귀를 갈고 아기의 옹알거림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일어날 겁니다.

노래와 율동 재롱떪에 키우는 보람도 느끼겠지요. 어버이날. 서툰 손으로 만들어진 색색의 색종이. 삐뚤삐뚤하지만 정이 뚝뚝 묻어있는 사랑해요 엄마 카드 문구에 왈칵 울음이 쏟아지기도. 그러다 서서히 잎을 하나둘 떨어뜨려갑니다. 아줌마로써 뱃살이 오르고 새치가 늘어나며 집안 대소사에 꺼지는 한숨을 쉬기도 합니다.

그녀의 그때처럼 어느새 커버린 자식. 자신의 배우자를 인사시킵니다. 손녀, 손자가 태어나고 커지는 주름살에 굽어진 허리와 절뚝이는 다리.

아이를 달래던 여인은 어느새 자식에게 몸을 가누는 신세가 됩니다.


언제였던가요. 아내에게 꽃을 선물한 기억은. 술에 취해 들어오던 늦은 밤이었습니다. 남자는 용케도 결혼기념일을 기억해 냅니다. 어떡하나. 문을 닫은 화원. 전시된 커다란 화분들. 행여나 누가 볼세라 두리번거리다 탐스런 열매가 달린 줄기를 꺾습니다.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내밀던 손에 어이가 없어하던 아내. 철이 없었지요. 무던히도 여자의 마음을 몰랐으니까요.


현재의 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요. 꽃집 앞을 기웃거립니다.

“한 다발 얼마예요?”

헉. 웬만한 고기값입니다. 주저하다 그녀가 좋아하는 꽃을 샀습니다. 프리지어. 향기에 취합니다. 좋아하겠지요.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며 짠하고 한 아름 안깁니다.

“오늘도 수고했어요. 사랑해.”

무뚝뚝한 남자의 세련되지 않은 멘트. 아내의 얼굴이 피어납니다. 하얀, 노랑, 연분홍. 색색의 물결은 몸과 마음을 다시 생기 있게 합니다. 오늘밤 어떤 꿈을 꿀까요. 인생의 꽃길은 아니지만 가만히 그녀의 손을 잡습니다.


화사하게 피었던 벚꽃이 진지가 오래. 순리대로 또 다른 꽃이 망울을 터뜨리지만 이어서 세상 바닥에 떨어지는 꽃잎들. 환호성을 지르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구둣발에 운동화로 모질게 밟고 걸어갑니다.

꽃이 집니다. 시간도 세월도. 사람이 있습니다. 그 꽃은 다시 한해를 견뎌 내년에 다시 시작하겠지요.


꽃이 진다고

꽃이 진다고

해서

봄이 질까요.

그대는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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