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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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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9일 09시 28분 등록

[일상에 스민 문학] 막말의 정치학 


- 김애란 <침묵의 미래>



얼마 전 한 유명 제약회사의 회장님이 자신의 차량을 운전하는 수행 비사에게 욕설과 폭언을 퍼부은 녹취록이 공개되었습니다. 옛 운전기사들이 한 언론사에 녹취파일을 건네 세상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5분이 조금 넘는 음성 파일을 듣는 동안 세상의 모든 오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새끼” “인마가 다반사였고 애비가 뭐 하는 놈인데” “생긴 건 뚱해가지고같은 모욕적 언사가 줄을 지었습니다. “너한테 돈을 지불하고 있는 거야” “월급쟁이 새끼가 꼭 양아치 같애라는 말도 더해져있었습니다.

 

대기업 사주뿐만이 아닙니다. 한 여성 정치인은 초등학교 학교 급식을 담당하는 조리사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문제를 두고는 인터뷰 과정에서 인격비하 발언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조리사에 대해 미친X’ ‘그냥 밥하는 동네 아줌마들이라고 말한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인간의 건강을 위해 병을 치유하는 약을 만드는 존경받는 경영자의 막말과 국민을 대변하여 정책을 입안하는 국회위원의 언어 사용을 보며 한숨이 나왔습니다. 만약 제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면 아마도 전봇대에 부딪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 제가 조리대에서 일을 하는 입장이었다면 당장에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에 그 일을 놓아버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김애란의 <침묵의 미래>라는 단편을 읽었습니다. 이 단편소설은 2013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감동의 깊이가 그렇게 깊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아마도 출간된 당시는 제가 경제적으로 너무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침묵의 미래>는 특별한 줄거리가 없는 묵시록과 같은 작품입니다. 소설의 화자는 막 없어져 버린 언어의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소수언어박물관이라는 가상공간에서 전시된 한 언어입니다. 그 언어의 영혼은 최근에 숨을 거둔 한 노인(그러니까, 노인도 소수의 언어입니다)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주인공은 그 노인을 떠나보내면서 스스로도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 다른 언어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자기 자신도 소멸해 가는 묵시록입니다.

 

소수언어는 흡입 장치에 의해 다시 수집되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자원으로 재활용되기 위해 공장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이 소설은 언어가 한 공동체에 있어서 정신적 가치를 포함한 총체로서 존중되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하나의 상품으로서 도구화 되는 현실을 냉정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이 화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어느덧 언어의 마지막을 말을 듣는 영매를 경험하게 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서 언어의 존재와 죽음을 만나도록 이끌어줍니다. 결국 작가 김애란은 한 때 인간의 삶이 깃드는 자리였던 언어가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라는 언어의 종말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말이 사라지고 이야기가 빛을 잃으며 소통의 필요성을 의심받는 이 시대를 아프게 진단합니다.

 

제약회사 회장님과 국회의원은 잘못된 언행이 큰 파문을 일으키자 방송 카메라 앞에 나와 사과를 했습니다. 솔직히 얼마만큼의 진심이 담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분들께 김애란의 <침묵의 미래>를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말의 가치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내 첫 이름은 오해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나를 점점 이해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내 이름이었거나 내 이름의 일부였을지 모르는 그 단어를 좋아했다. 나는 복잡한 문법 안에 담긴 단순한 사랑, 단수이자 복수. 시원이자 결말, 거의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노래였다. 하루치 목숨으로 태어나 잠시 동안 전생을 굽어보는 말이었다

- 김애란 <침묵의 미래> (p.33) 


침묵의 미래.jpg


IP *.210.11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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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30 23:06:26 *.158.25.187

오늘 파산수업을 읽었습니다.

이말씀을 드리고싶습니다.


많이 힘드셨죠?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글감사히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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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3 13:28:37 *.215.23.91

아이고- 지금에서야 글을 읽었습니다.

뭐. 그래도 늘 제 주위에는 책이 있고, 클래식 음악이 있어서 그럭저럭 보낼 수 있었습니다. 

참. 부끄러운 책을 읽어주셔서 감사말씀 전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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