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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뚱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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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4일 11시 25분 등록

상처는 추억을 닮아

 

 

#1. 2010 7. 군대에서 갓 전역한 청년에게 목표가 생겼다. 자신의 몸에도 복근이 존재하는지 확인하는 것. 매일 20Km 이상을 걸었다. ‘이 짓을 왜 하나후회하며 윗몸 일으키기, 팔굽혀 펴기를 쉬지 않고 했다. 아침에는 간단한 식사, 점심은 삶은 돼지 앞다리살과 샐러드, 저녁은 계란 2개와 바나나가 끝이었다. 손으로 뚝 떼서 버리듯 살이 빠졌고 잔근육이 올라왔다. 하지만 얻는게 있으면 잃는게 있는 법. 영양의 불균형이 초래한 대가는 컸다. 사춘기 때도 나지 않던 여드름이 오른쪽 볼에 올라왔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결국 뜨거운 여름, 자신을 하얗게 불태웠던 결실을 보았다. 그리고 피부를 잃었다. 오른뺨에는 그 여드름 상처가 거멓게 새겨졌다. 지금은 그 복근이 허벅지 어딘가에 있나, 종아리 어딘가에 붙어 있으려나.

 

#2. 1992년 여름. 제법 자전거에 자신감이 붙은 초등학교 2학년 꼬맹이. 또래 친구들과 내리막길을 질주하는 시합을 한다. 강한 승부욕이 참사를 불러왔다. 감당할 수 없는 속도에 그만 넘어진 것이다. 왼쪽 얼굴을 아스팔트 바닥에 갈았다. 왼쪽 무릎에서는 피가 철철 넘쳤다. 울면 안된다는 생각이 꼬마를 사로잡았다. 한 명이라도 괜찮아?’라고 묻는다면 울음을 터뜨릴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스스로 굉장히 호기롭다고 느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간다. 엄마를 보는 순간, 나라 잃은 한을 토해내듯 운다.

 

#3. 2005 5월의 어느 날. 과 대항 축구대회 4강전이 진행되었다. 지난 대회 득점왕과 우승을 거머쥔 21살의 청년이 다시 그라운드에 섰다. 너무나 쉽게 봤던 영문과에 전반에만 3골을 헌납했다. 후반 초반부터 청년의 발끝이 날카롭다. 몸을 던진 로빙슛으로 첫 번째 골사냥에 성공했지만 운동장에 왼쪽 정강이 부위를 완전히 갈았다. 몇 분 뒤 수비가 걷어낸 공을 슬라이딩 하면서 강슛, 골로 연결한다. 같은 부위를 또 바닥에 갈았다. 종료직전 기가 막힌 중거리 슛으로 3:3동점을 기어코 만든다.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두고 결승행 티켓을 잡았다. 하지만 왼쪽 정강이 살이 완전히 벗겨졌다. ‘인체의 신비전에서나 볼 법한 상태였다. 거의 한달 동안 병원신세를 졌다. 살이 까맣게 착색되었다.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며 내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오른뺨에 남은 상처에 몸을 만들던 27살의 내가 있었고, 왼쪽 무릎 상처에는 남자다워 보이려는 9살 꼬맹이가 있었고, 왼쪽 정강이에는 그라운드를 호령한 21살의 멋진 청년이 있었다.

 

우리는 흔히 아픈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상처가 꼭 아픈 것만 아니다. 내 몸 곳곳에 남은 상처에는 좋은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상처는 나를 행복한 시간여행자로 만들어 줬다. 아픈 기억 이상으로 좋은 추억이 있다는 사실. 그것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한 숨 고르기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약 700m 남짓.

이 길 중간 어디쯤 크로스핏 체육관이 있다. 회원들은 거기서부터 정확히 우리집까지 약 300m 거리를 뛴 걸음으로 왕복한다. 워밍업이라고 하기에는 뛰는 속도가 엄청나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사람, 체념한 얼굴을 사람, 살려 달라는 얼굴을 한 사람 등 각양각색의 표정을 볼 수 있다.

 

그들이 내뿜는 날숨 때문에 뜨거운 건지, 여름이라 뜨거운 건지 헷갈린다.

숨이 턱 밑까지 차 올라 터벅터벅 걷는 한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나름 눈 인사를 했는데, 인사를 받아주지 않은 것이 못내 서운하다. 너무 힘들어서 얼이 빠졌나 보다.

 

그 여성을 보니 그냥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면 그저 걸어 갔으면

야근에 지친 직장인, 공휴일도 모르는 자영업자, 미래를 꿈꾸는 취준생.

있는 힘껏 달리고 있는 이 모두가 얼마나 숨이 찰까.

잠시 쉬는 것이 힘들다면 이 여성처럼 천천히 걸어가 보면 어떨까.

 

그래서 한 숨 고르고 다시 뛰면 어떨까.

IP *.146.8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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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4 11:49:06 *.124.22.184

글을 보는 데 왜 성한이 몸을 상상하게 되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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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4 12:26:20 *.146.87.29

ㅎㅎㅎㅎㅎㅎㅎㅎ

그저 웃네요 ㅋㅋㅋㅋ

부끄 부끄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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