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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9일 13시 04분 등록

마음의 씨앗

11기 정승훈

 

박복자 옆에서 잘못 어슬렁대다간 뼈도 못 추려. 내가 심리학과 교수야. 사람 속 꽤 뚫어보는 게 내 전공이지. 박복자가 당신을 끝까지 거둬줄 것 같아? 절대 아니야. 그 여자는 당신을 쓰고 버릴 거야. 내 말 명심해.”

 

요즘 뜨고 있는 <품위있는 그녀>라는 드라마의 대사다. 박복자라는 악역에게 당하기만 하던 여자가 악역편의 사람에게 작정하고 하는 말이다. 아직 그 다음 편은 방송되지 않았다. 이 말을 들은 여자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되고 어떤 행동을 할까.

그녀는 아무리 심리학과 교수가 한 말이라도 박복자의 말을 믿고 행동해야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것이 자신에게 이로운 행동이다. 사람은 이성적 존재다. 과연 그럴까. 한 회사의 임원이며 집안의 가장인 어떤 남자가 사고로 뇌를 다쳤다고 한다. 다행히 뇌의 모든 기능은 정상이었다. 다만 감정만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 그럼 그 사람은 별 문제없이 살 수 있었을까. 처음엔 회사에 복직을 하고 회사와 가정생활을 잘 하는 것 같았다. 결국 그 사람은 회사를 그만두고 이혼을 했다. 감정표현을 못해서 일까. 아니다. 우리의 일상은 매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 남자는 오늘은 뭘 먹지하는 아주 사소한 것들조차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냥 결정하는 거지 싶다. 하지만 비오는 날이면 부침개가 먹고 싶고, 추운 날이면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어진다. 이 모든 결정은 감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드라마 속의 여자는 교수에게 들은 말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의심이 들기 시작하고 불안해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제 아무리 박복자가 신뢰를 주는 말을 해도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심지어 그녀의 모든 말과 행동이 예전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행동을 하게 된다. 심리학 교수가 한 말로 그녀의 마음엔 의심이라는 마음의 씨앗이 심어졌기 때문이다. 그 씨앗은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키워 자라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박복자를 믿어야 할까 말까를 고민한다.

 

지금도 전해오는 인디언 이야기 중 두 마리 늑대이야기가 있다. 나이 많은 추장이 손자를 데리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 안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단다. 그건 끔찍한 싸움이야. 두 늑대 사이에서 벌어지는. 한 놈은 악이야. 그 놈은 화, 질투, 슬픔, 후회, 욕심, 오만, 자기연민, 죄책감, 억울함, 열등감, 거짓말, 헛된 자존심, 우월감이며... 그리고 바로 네 자아야. 다른 놈은 선인데, 그 놈은 기쁨, 평화, 사랑, 희망, 평온함, 겸손, 친절, 자비, 공감, 너그러움, 진실, 연민이며... 그리고 바로 믿음이야. 똑같은 싸움이 네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 내면에서도 마찬가지야.”

이야기를 들은 손자가 추장에게 물어본다.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추장은 간단하게 대답한다.

네가 먹이를 주는 쪽

그녀는 이제 마음속 두 마리 늑대 중 어느 늑대에게 먹이를 주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나는 이성적이야아무리 부르짖어도 감정에 의해 뇌는 판단하고, 마음은 감정을 키운다. 그러니 이성적으로 생각해봐.” 라는 말은 절대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는 별 생각 없이 던진 한 마디에 마음의 씨앗이 심어진다.

 

어느 날 아들 친구 엄마로부터 아들이 선배에게 맞았다는 지난 이야기를 들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무슨 이유가 있어서 나에게 얘기를 안했겠지... 물어봐야겠다.’ 하면 된다. 그런데 감정적으로 기분이 나빠지면서 이성은 저 멀리 날아가고 두 마리 늑대만이 남아 서로 싸운다. ‘나에게 왜 숨겼을까. 그 엄마는 알고 있는데 나는 모르고 있었으니, 아들에게 관심 없는 엄마로 여기는 건 아닐까.’ ‘아니야. 걱정할까봐 얘기 안 한걸 거야.’ 집에 들어온 아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를 꺼낸다. 아들 역시 별일 아닌 듯 이야기하며 굳이 알릴 필요가 없어서 안했고, 벌써 다 해결됐다고 한다. 그나마 한 마리의 늑대에게만 먹이를 주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난 한 마리의 늑대가 죽을까봐 두 마리 다 잘 키우고 있다. ‘품위있는 그녀가 되면 이성적으로 한 마리의 늑대에게만 먹이를 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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