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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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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7일 02시 30분 등록

2017 8 5일 토요일 낮이었다. 일요일인 다음 날에는 예비 처가 댁 사람들과 거창에 당일로 계곡에 다녀오기로 했던 터라, 선물이라도 좀 사서 가자는 마음에 근처 마트에 들렸다. 선물을 사는 것 외에도 며칠 전에 5년 넘게 차고 다니던 메탈 시계 줄이 끊어진 바람에 수리도 함께 맡기고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계곡 나들이는 예비 장인 장모는 물론 외가댁 식구들까지 함께 온다고 해서 며칠 전부터 신경이 쓰였는데, 그냥 무난하게 새로 나온 골프공 세트를 사기로 마음 먹었다. 주말 낮 시간대의 마트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했고, 그 틈바구니를 뚫고 미리 봐둔 물건을 골라 계산대에서 계산을 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바로 옆 건물에 위치 한 또 다른 대형 마트 지하 1층 시계방으로 갔다.

 

그런데 아뿔싸! 방금 전까지 손에 들고 있던 시계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황급히 걸어온 길을 되돌아 가며 물건을 계산했던 계산대까지 갔다. 길에 떨어진 시계는 없었고, 계산대 직원에게 물어보니 분실물 보관하고 있는 것은 없다며 고객센터에서 CCTV 확인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고객센터 직원은 CCTV 확인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연락처를 남겨두면 연락을 준다는 것을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그래야 더 빨리 확인이 될 것 같았다. 비싼 시계는 아니었지만 나는 물건을 자주 사는 편도 아니기에 정이 들어버린 시계라 빨리 찾고 싶었다. 줄이 끊어진 시계를 누가 가지고 갈 리도 없다는 확신도 있었기에 금방 찾을 줄 알았다.

 

30분 가까이를 기다렸는데 고객센터에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살짝 짜증이 밀려왔다. 그 앞 의자에서 보란 듯이 팔짱을 끼고 앉은 내가 그 분들도 적잖이 신경이 쓰여 보였다. 그리고는 한 담당자가 와서 하는 말이 CCTV를 확인했는데, 단정지어 말씀 드리기가 어려워 고객님께서 직접 보안실로 가셔서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더 큰 짜증이 밀려왔다. 나는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붙들어 매고는 보안실까지 안내를 하는 담당자를 기다렸다. 분명 보안실에서 CCTV를 확인 한 사람이 있었을 텐데 나를 보안실로 안내하는 사람에게 까지는 그런 내용이 인수인계가 잘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무전으로 계속 왜 보안실을 와야 하냐, 무슨 일이냐 그런 소리를 반복한다. 내가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화를 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죄 없는 3층 안내 직원만 발을 동동 구른다.

 

이윽고 보안 안내 직원이 내가 있는 3층 매장으로 왔고, 나를 1층 보안실로 안내해주었다. 그 곳에 도착을 하니 이미 관련 영상이 준비가 되어 있었고, 보안실 팀장 쯤으로 되어 보이는 사람이 바로 준비 된 CCTV 영상을 보여주었다. 내가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는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분명 은색 시계가 있었다. 계산을 마치고 카드를 돌려 받은 내가 시계를 두고 물건만 챙겨서 가는 모습도 분명히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다음 계산 순번을 기다리던 노부부의 차례가 되었다. 계산하려는 물건들이 하나씩 찍히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할아버지가 자신이 산 물건 더미 하나를 나의 시계가 있는 쪽으로 슬쩍 던져 덮어 두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할머니와 함께 계산을 마친 물건들을 모두 한 아름에 안고 카트에 담는 것이 아닌가. 물론 방금 전까지 선명하게 계산대 위에서 보이던 나의 시계는 사라졌다.

 

피식 하고 웃음이 났다. 일단 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머리털 나고 처음 경찰서에 신고라는 것을 해 보았다. 내가 전화를 하자 마자 사건이 접수 되었다는 문자가 핸드폰으로 전달 되었고, 10분이 채 안되어서 보안실로 경찰관 두 분이 도착을 했다. 증거가 워낙 명백했고, 경찰관들도 크게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 노부부가 결제는 현금으로 했지만 포인트 적립을 본인 카드로 직접 했다는 점이었다. 신원 확인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경찰관 및 보안 관계자의 말을 전해 들었다. 그 자리에서 조서를 꾸미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을 오는 내내 두 가지 마음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물건을 두고 온 나의 책임도 있고, 어찌 되었던 일을 키우지 말자는 마음과 비싸지도 않은 시계 때문에 오랫동안 발이 묶여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 노부부를 괘씸하게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집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벌써 그 노부부의 신원을 확보해 서에서 조서를 꾸미고 있다고 한다. 그 와중에 대한민국 경찰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에서는 나에게 정식으로 형사 고발 조치를 할 것인지 약식으로 즉결심판에 회부를 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노부부 모두 예순 다섯이 넘은 분들이라며 말 끝을 끄는데, 나 역시 고민을 하다 식으로 처리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보였다.

 

그 이후로도 경찰서로부터 몇 차례의 전화를 더 받았고, 다른 수사관을 통해 그 노부부가 절도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다. 괘씸했다. 그냥 몰랐으면 모르고 넘어 갔을 일을 알고 나니, 내가 마치 정의의 사도라도 된 마냥, 사회 법질서 확립을 위해 정식 고발 조치를 하는 것이 맞는지를 두 시간 가까이 머리 싸매고 고민했다. 법 질서에 위반된 사항에서는 성별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동일한 잣대가 대어져야 하는지, 아니면 상황에 따라 정상 참작이라는 것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는지. ‘정상 참작이 허용되어야 한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형평성에 문제는 없는지? 점점 나의 고민은 산으로 가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약식으로 처리 되었으면 한다는 나의 첫 의견을 바꾸지 않았다. 내가 남 다른 이타 정신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 노부부가 내 주머니에 있는 시계를 가져 간 것도 아니고, 시계를 잘 간수하지 못한 나의 부주의함도 원인이 있었다고 생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다. 나 역시 그 옛날 무수히 많은 실수로 했었고, 이름 모를 누군가의 이해와 용서의 은혜를 받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고 마음 먹기로 했다.

 

앞으로 이번과 유사한 상황이 앞으로 또 나에게 발생하게 된다면, 그리고 또 한 번 그 상황을 판단 할 한 자루 칼(집행)과 방패(용서)를 가지게 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확신은 없다. 다만 한 자루 칼의 엄정한 날의 끝은 늘 나 자신을 향하게 해 나의 행동을 돌이켜 보며 경계하고, 행여 일어날 수 있는 누군가의 실수에 대해서는 무자비하게 상대방을 찌르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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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9 20:00:02 *.124.22.184

그래서 시계는 찾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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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0 11:59:34 *.36.142.101
ㅎㅎㅎ 저도 웨버님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시계는 찾았어??

'분노를 다스리는 붓다의 가르침'에서
내가 지금 받은 이익은 누군가의 손해가 돌아온 것이고, 내가 받은 손해는 이 번 생 혹은 전생에 받은 이익이 이제야 돌아온다고 말한게 기억나네~

개인적으로 나는 그래서 내가 이익을 보면 아이고 다음에 좀 손해보겠네
하고 마음 먹으니깐 맘이 편해지더라고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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