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gum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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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산행
제주도에서 2주일을 보냈다. 느낌이 어떠냐고는 묻지 말았으면 한다. 사실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집에 있을 때와 달라진 것은 많지만 그렇다고 2주일이라는 시간이 완벽하게 다른 생활은 아니였다. 다만 달라진 점은 집사람과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24시간 같이 지낸다는 것이다. 밥먹을 때, 놀러다닐 때, 수영할 때. 관광할 때, 이 모든 것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보니 좋은 점도 있지만 가족들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한다. 아무리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가둬보려 하지만 개인과 개인의 욕망과 행동이 충돌하는 것은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사실 내가 꿈꾸던 것은 ‘나만의 한 달 살기’가 아니었나 싶다. ‘나만의 한 달 살기’와 ‘가족과의 한 달 살기’는 그렇게 다른 것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러한 충돌과 단점들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는 것이 오히려 이 여행이 나에게 주는 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히려 그동안 떨어져 지내면서 몰랐던 가족들의 일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내가 이번 여행에서 기대한 것은 어이없게도 나만의 시간을 많이 갖는 아주 이기적인 생각임을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여행에서 책을 많이 읽으려고 가방에 잔뜩 싸가지고 왔는데 과정의 책도 여전히 시간 내 읽기가 제한되었다. 그게 마음대로 안되니 이 여행이 힘들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 무의식속에 자리잡고 있던 이번 여행의 의미를 내려놓았다. 그래서 남은 2주일이 희망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주에 가장 의미있는 시간을 꼽으라면 단연코 한라산 등반이었다. 내가 사는 경주도 75년만의 최고 기온을 갈아치울 정도로 뜨거운 여름이었지만 제주역시 마찬가지였다. 평균 30도 안팎이 기본이라고 하는데 제주주민들조차 올해 같은 불볕 더위는 이례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사는 서귀포는 전국에서 열대야가 가장 많은 날이며 심한 곳이라 한다. 이런 뜨거운 여름, 나는 여름 산행을 준비했다.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1950m)를 등반하는 것이었다. '은하수를 잡아 끌어 당길 수 있을 만큼 높다'라는 뜻의 한라산(漢拏山)에서는 사실 눈이 시리도록 맑은 설산과 호수 그리고 울긋불긋 붉그스레한 단풍숲이 연상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실 한라산은 겨울에 가는 것이 제 맛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 여름의 가운데에 한라산을 오를 계획을 했다. 원래 한라산은 제주도 여행에서 계획에 없던 것이었다. 한 여름인데다가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이라 6살난 딸이 10시간 가까운 산행을 할 수는 없는 터였다. 그런데 처가식구들과 일정이 겹치면서 급작스럽게 생겨난 산행이었다. 장모님과 나, 처형이라는 독특한 조합으로 한라산 산행을 했다. 30대 여자, 40대 남자, 60대 여자.
그리고 다들 급작스러운 계획이라 등산화, 등산복이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 그나마 제주도에서 운동하려고 가져온 마라톤화가 전부였다. 그냥 반바지에 티, 모자, 그리고 운동화로 무장을 했다. 다른 식구들은 이 여름에 한라산은 무리라고 말렸다. 사실 나도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여자 둘을 데리고 가다가 사고가 난다면 어떻게 하나하는 아찔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장모님의 뜻을 굽힐 수가 없었다. 이젠 다시 제주도 올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데 한라산은 꼭 가고 싶다고 하셨다. 그 뜻에 내가 감히 어찌 찬물을 끼얹을 수 있을까.
장모님은 식구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새벽4시에 일어나신 것 같다. 남은 식구들 아침식사를 준비하시고 5시 30분에 산행을 나섰다. 우리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코스인 성판악 코스로 정했다. 성판악 휴게소에 들러 그 유명한 김밥을 사서 등산을 시작했다. 아침에 먹는 김밥은 꿀 맛이었다. 산행을 하면서 김밥 두 줄을 뚝딱 해치우고 본격적인 등산을 했다. 사실 난 정적인 산행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그나마 나이가 들면서 등산이 좋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난 달리는 것이 더 좋다.
역시 한라산은 그동안 내가 다닌 산과는 달랐다. 경주의 한라산인 ‘토함산’과 ‘남산’을 다녀보았지만 과히 비교할 수 없었다. 일단 등산 초입길부터 중턱까지는 해를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수풀이 우거져있었다. 한 여름인데도 서늘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제주도의 삼다(三多)인 ‘돌, 여자, 바람’ 중 돌을 산에서 실감할수 있었다. 올라가는 곳마다 돌이었다. 사람들이 왜 등산화를 신으라고 하는지 알겠다. 마라톤화는 사람 발에 거의 유사하게 만들었고 한없이 유연한 재료이다. 이렇듯 유연한 재료이다 보니 발목이 쉽게 접질렸다. 미끄러짐 역시 다반사이고 극도의 긴장감으로 한 발 한 발을 내딛었다. 바닥이 돌만 아니면 사실 그렇게 험한 산은 아니였다. 왕복 9시간이라는 시간이 주는 압박감 외에는 없었다. 올라가다 보니 나는 사실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걱정되었다. 이거 진짜 장난 아니겠다는 생각이었다.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진 채 어느새 중턱을 지나 진달래대피소에 도착하였다. 안내판에는 이 곳 대피소를 13:00시까지 통과해야 정상에 등반할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아마 그 이후에는 입산을 통제하는 모양이다. 이곳 대피소에서는 그 유명한 육개장 사발면을 먹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 장소이다. 정말 휴게소 안에는 간단한 음식을 파는데 그 중에 단연 인기는 사발면이다. 그러나 한가지 특징이 있다. 여기서는 쓰레기를 되가져 가야한다. 국물은 버릴수 있지만 나머지 쓰레기는 각자 알아서 가져가야 한다. 내려올 때 사발면을 먹기로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우리는 마지막 등반을 시작했다. 중턱부터는 수풀이 없었다. 고사목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 고사목은 사실 소나무의 재선충에 의해 죽은 나무였다. 그런데 묘하게도 한라산의 풍경과 조화로웠다. 마치 나는 경주의 능을 보는 것 같았다. 삶과 죽음의 공존이라는 묘한 말처럼 한라산의 고사목도 주위의 살아있는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름의 향연들. 구름이 내 발밑에 있었다. 비행기를 제외하고 내 아래에서 구름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정말 장관이었다. 한라산 정상의 날씨는 변덕스러워 맑다가도 이내 흐려지고, 흐리다가도 맑아지는 변화무쌍한 곳이라고 하던데 내가 올라온 오늘은 날씨가 끝내줬다. 모든 것이 다 청명했다. 고지대라 그런지 한낮의 뜨거운 볕도 따사롭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오른 백록담 정상. 와우~~ 탄성이 절로 나왔다. 명산은 명산이었다. 그리고 그 보기 어렵다던 백록담도 맘껏 볼 수가 있었다. 다만 아쉬운건 메말라 물이 없다는 것이었다. 구름위의 정상에서 산신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면서 우리는 다시 내려오기 시작했다. 등산의 재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같이 산행을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도 그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번 산행에서 장모님과의 많은 대화를 기대했으나 한라산은 그게 안되는 곳이었다. 같이 산행을 하고 있었지만 거기에는 오로지 나 혼자만 있었다. 마치 마라톤과 같은 것이었다. 내려오는 길이 사실 더 힘들었고 특히 돌로 되어 있다 보니 잘못하다가는 낙상과 발목, 무릎이 접질려 지는 것이 걱정이 되다 보니 대화는 거의 불가능하였다. 오로지 앞만 보고 걸었고 거기에 다른 잡념이 끼어들 수 없었다. 우리는 사실 하루를 살면서 수 천 가지, 수 만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 등산은 이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우리 뇌의 피로를 해소하는데 가장 좋은 운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무작정 걸어 우리는 9시간 만에 내려왔다. 이제 나는 누구에게도 ‘너 한라산은 가봤냐? 백록담은 본적 있냐?’고 물어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이제 제주 여행 3주차이다. 이제 집사람은 직장으로 복귀하고 남은 건 세 식구, 아들과 딸, 그리고 나다. 과연 이번 주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