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뚱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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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냥이의 하루 (17. 8. 4)
#1. 02시
두 눈은 깊은 잠을 청하지만, 나의 머리는 아직 한 낮이구나. 자야 할 시간과 같은 표정을 지으려 억지로 애를 쓸수록, 나는 더욱더 화창한 낮의 향연 속으로 들어간다. 깊은 밤 속 낮의 향연은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과 같다. 꿈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아프로디테에게 소식조차 전하지 못해 답답하기만 하다. 이렇게 나의 발목에 족쇄를 채운 것이 누구냐! 그래 ‘걱정’이라는 놈이로구나. 너는 어디서 온 것이냐? 어디서 온 것이 아니라면 나의 마음이 잉태하여 길고 긴 혈관을 돌아 뇌와 친구를 맺은 것이냐? 그것도 아니라면 이 세상 악마의 수많은 날숨 중 하나가 나의 귀를 유혹한 것이냐? 그래 좋다!! 얼마든지 오너라! 뿔이 난 파도와 분노한 바람이 싸우듯 내 너와 싸워 보리라! 지금 이 고통이 나의 가혹한 운명이라면 내 육신에 너를 담아 길들여 보리라! 어디 한 번 와 보거라! 나는 절대 과녁에서 피하지 않을 것이다!
# 06시 50분
별들도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무서워 줄행랑을 친지 한 참이 지난 시간이구나. 블라인드를 통해 들어오는 저 뜨거운 빛은 잔뜩 열이 오른 태양의 신, 아폴론의 얼굴이 아닌가? 결국 나는 아프로디테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구나. 아!! 원망스러운 큐피드여! 어찌 이리 가혹 하신 겁니까? 이 밤, 결국 ‘걱정’이라는 놈과의 결투로 인해 그녀와의 달콤한 열매를 맛보지 못하였으니 말입니다. 치명적인 향기에 목마르게 만들어 놓은 큐피드, 당신은 이제 나에게 원망의 대상일 뿐입니다. 나는 사랑의 화살을 맞은 것이 아닌 독사의 이빨에 물린 것이라 생각할 겁니다.
# 08시 10분
간 밤의 안부는 생략하고자 합니다. 나의 콩나물 벗들이여. 유황처럼 타오르는 나의 의지야! 배고픔에 굶주린 늑대같은 희망아! 어서 지하철의 엔진에 박차를 가하여라! 나에게 주어진 이 하루를 그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겠다. 누군가가 나의 1분 1초를 가져간다면 내 몸이 찢겨 나가고,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을 느끼더라도 다시 찾아올 것이다.
# 09시
도서관. 처음 이곳에 올 때가 생각난다. 육신이 정신을 간신히 설득하여 올 수 있었지. 어린 아이가 아비의 옷을 걸친 것처럼 어색했었지. 하지만 이제 이곳은 나에게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머니의 자궁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 안은 편안하고 고요하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 도서관이 주는 영양분은 불모지였던 나의 머리를 오아시스로 만든다. 도서관이란 자궁 밖으로 나가는 그 날, 나는 복낙원으로 들어갈 것이다.
# 11시 30분
요동을 치는구나. 나의 위여! 너의 처지를 비참하게 생각하지 마라. 그것이 너의 운명이다. 너에게 주어진 본분을 달게 받아들여라. 곧 너의 그 노한 마음을 가라앉혀 줄 것이다. 너와 나는 한 배를 탄 몸. 돛이 바람을 잔뜩 품에 안고 대양을 질주하는 것처럼 너의 품에 음식을 안겨 주리라. 마음껏 품을 준비를 하거라. 너는 ‘나’라는 범선을 움직이는 키로구나. 좋다! 식당으로 가자! 하늘이시여, 만약 배고픔이 큰 죄라면 저는 얼마든지 단두대에 내 두발로 오르리다. 그러니 나의 위를 용서하소서.
# 15시 30분
오늘 새벽, 기나긴 결투의 상처가 이제야 아파 오는구나. 내 분별력이 흐려진다. 내 두 눈이 희미해 진다. ‘졸음’아! 내 너와는 다투고 싶지 않다. 너와 원수를 맺는다면 나는 정말 기댈 곳이 없구나. 물론 너를 극복하고 완전무결한 ‘뚱냥이의 하루’가 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다. 자느냐 안 자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자는 것은 그저 잊는 다는 것. 밤새 나에게 뿌려진 재앙을 씻어 내는 것. 하지만 안 잔다면… 내 속의 굶주린 희망이라는 늑대를 배불리 먹일 수 있지 않은가. 아 어렵도다. 나에게 이런 고민을 주는 졸음아! 결국 너는 ‘걱정’이라는 놈의 노예더냐? 나를 기만하지 말아라! 결국 나는 이리 되는 것이구나. 나는 너의 달콤한 혓바닥에 취해 보련다. 지금만큼은 너는 걱정의 노예가 아니라 천사의 노래다. 그 달콤한 맛을 보겠다.
# 21시
거울을 본다. 부끄럽지가 않다. 오늘만큼은 ‘최선’이라는 나약함에게 권위를 주고 싶다. 함께 공부하는 나의 오랜 벗아. 금요일인 만큼 우리 둘에게 선물을 주자. 치맥귀신아! 만약 너에게 이름이 없다면 내 오늘부터 너를 천사라 부르겠다. 오늘 나는 치킨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하얀 다리부터 맛보겠다. 그녀의 날개를 볼모로 삼아 나에게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겠다. 맥주야! 오늘 너는 나의 광대다. 아니다. 내가 너의 광대가 되겠다. 나의 영혼에서 즐거움만 남기고 다 버리고 갈 것이다. 너는 어서 춤춰라. 아니다. 내가 춤을 추겠다. 우리 하나가 되어 치킨의 속살을 들여다 보자구나.
# 22시 30분
달빛아 너가 춤을 추고 있는 것이냐, 내 눈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이냐. 하지만 무엇이 중요하리. 즐거움에 춤추는 것은 매한가지인 것을. 달빛아, ‘뚱냥이의 하루’라는 책을 읽어 줄 수 있겠니? ‘나의 하루’가 내가 부끄러워 도망가지는 않겠지? ‘나의 하루’야! 오늘 너와 나는 죽음에게서 빌린 소중한 시간을 멋지게 되갚아 주었구나. 만약 너가 나와 생각이 같다면 너는 내일의 ‘오늘’로 다시 나에게 찾아와 다오. 너가 오는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오늘과 같이 어둠의 장막을 걷어 내고 빛으로 한자, 한자 책을 써내려 가자구나.
그럼 내일 꼭 볼 수 있기를 바란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