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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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에 태어난 나는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다. 그 때 우리 동네에는
유치원이 없었고 동네 친구들 중에도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그때는 다들 그렇게 유치원에 다니지 않고, 놀다가 학교에 들어가는 줄로만 알았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동네 친구가 아닌 학교 친구들 집에 놀러다니다 보면 거실 벽에 유치원 졸업사진
액자를 떡하니 걸어 놓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70년대 말이었지만 다들 유치원 정도는 나왔고, 그 외에 미술이나 피아노를 배운 친구들도 있었다. 부천보다 훨씬
시골이라 생각했던 목포에서 자랐던 친구도 유치원에 다녔고 사각모를 쓴 유치원 졸업 사진이 있다고 했다. 이미 고등학생이나 되어서 유치원에 안 다녔던 게 뭐가 그리 서운하고 안타까웠겠냐만, 사각모를 쓴 졸업사진과 어설픈 화장을 한 채로 춤을 추고 연극을 하며 재능을 뽐냈다는 재롱잔치의 기억은 그때까지도
내가 못 가졌고, 못 해본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에 대학을 졸업하면서 드디어 나도 사각모를 쓴 번듯한 졸업 사진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 또 하나의
부러움이었던 재롱잔치의 추억은? 이미 때를 놓친걸 어쩌랴, 이번
생에서의 재롱잔치는 틀렸나 보다. 차라리 아이를 낳아 그들의 재롱잔치에 참여해서 행복한 기억을 만드는
게 빠를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 또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40년이 넘게 나의 재롱잔치도 내 아이의 재롱잔치에 참여할
기회도 갖지 못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재롱잔치에 집착하는 걸까? 사실 대부분의
엄마 아빠는 아이의 재롱잔치를 즐거운 기억이라기 보다는 억지로 참여해야하는 재미없고 지루한 시간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하기야 아이들이 며칠 연습한다고 해봐야 얼마나 잘할까. 자기 자식이야
못해도 귀엽고 넘어져도 사랑스럽겠지만 남의 애들이 못하는 것까지 참고 보는 건 고역에 시간 낭비라 느껴질 수도 있겠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집착하는 건 다른 사람의 – 그 다른 사람이 내 아이라 할지라도 – 재롱잔치를 보는 게 아니다. 바로 내가 재롱잔치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거였다. 음악가나 무용가 등 예술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 한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 오르는 일은 많지 않다. 특히 성인이 된 후에는 더욱 그렇다. 유치원 때의 재롱잔치는 예술가가
아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에게는 거의 유일하게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 오르고, 가족의 축하와 꽃다발을
받는 시간이 아닐까 한다. 그보다 먼저 무대에 오르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연습하고 무대에 오르기 전
잠시 동안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설레임의 시간인 것 같다.
“인생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질량보존의 법칙’ 같은 실제 과학 법칙에서 만들어진 신조어
같은데, 우리의 삶에서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희로애락의 총량(總量)은 정해져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에게 비슷하다는 거다. 그래서 어렸을 때 고생을 별로 안 해본 사람은 결국 나이 들어서 못했던 고생을 다하기 때문에 결국 그 총량은
누구에게다 비슷하다고 한다. 파생어로 ‘행복 총량의 법칙’, ‘지랄 총량의 법칙’ 등도 있다고 한다. 나는 여기에 더불어 욕망의 총량도 비슷하다는 “인생 욕망총량의
법칙”을 추가하고 싶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표현과 창작의
욕망이 있다. 독서, 와인,
운동, 영화감상, 여행, 사진 등 다양한 취미를 섭렵한 끝에 책을 쓴 어떤 작가는 각종 ‘소비적
취미’를 마스터한 끝에 결국 ‘창작의 욕구’를 느꼈고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책을 썼다고 했다. 나 역시 다양한 취미를 소비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썼지만,
소비의 결과로 창작물을 만들거나 나 자신을 표현하는 데는 별로 노력을 들이지 않았다. 이렇게
드러내지 못하고 묵혀왔던 창조와 표현의 욕망이 마흔을 넘어 터져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쓰겠다며
매주 북리뷰와 칼럼을 쓰며 글쓰는 연습을 하고 있고,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드디어
무대에서 풀고 있다.
그동안 취미로만 해왔던 벨리 댄스를 지난해부터 공연, 대회
참여 등을 통해 무대에 오르며 표현의 욕망을 조금씩 충족하고 있다. 첫 공연 때 예뻐보이라고 했던 화장이
귀신같이 되고, 연습한 것만큼 잘 못해서 제대로 흑역사를 창조했다며 후회도 했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 ‘그런 흑역사의 시간을 보냈기에 좀 더 자연스러워지고 예쁜 무대를 만들 수 있게 되는게 아닐까?’라고 합리화하며 나를 위로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나의 첫 대회에 가족을 초대했다. 물론
내가 춤추는 걸 보러 오라며 직접 부른 건 아니고, 대회가 열리는 양구에 있다고 하는 땅을 보러 가자며
간접적으로 초청했다. 대회를 보러 온 가족들의 반응은 아이들의 재롱잔치를 보러 온 부모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평소 무용에 대한 관심이나 흥미가 없어 “보는
눈”이 없는 가족들에게 내 앞의 참가자들의 춤은 그저 경박스럽게 배를 흔드는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는 한 두명 보다가 이내 졸기 시작했고, 동생은
전화기에서 눈을 떼지 않았으며 조카 역시 내내 게임만 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내 순서에서는 잠을 깨고
게임을 멈추며 집중해서 보고 동영상도 찍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 순서가 끝난 뒤에는 이제 가겠다고 했다. 그래도 엄마는 내가 제일 예쁘고 보기 좋았다는 칭찬을 잊지 않으셨다. 일흔이
넘은 엄마의 눈에도 역시 당신 자식이 최고로 예쁘게 보이셨나 보다. 마흔이 넘어서 한 재롱잔치는 나뿐
아니라 엄마를 위해서도 보람이 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일곱살 때 못했던 재롱잔치를 하며 표현의 욕망을 충족하고 있다. 조만간 창작의 욕망도 충족할 수 있을거라 기대해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때까지도 표현과 창작의 욕망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드디어 60, 70이 넘어 노인복지회관 등에서 배우는 춤이나 작문 수업 등을 통해 공연을 하고 책을 출간하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 부모님이나 주변 노인들이 70이 넘어 요상한 옷을 입고
엉성한 춤을 춘다고 해서 부끄러워하거나 주책이라고 하지 말자. 그들에게도 아직 총량을 채우지 못한 욕망이 남아 있다. 일곱살 아이의 재롱잔치를 보는 부모의 마음으로 참가해서 지루하더라도 조금 참고 보고, 끝난 후에는 우리 엄마(아빠)가
가장 예쁘고 잘했다며 칭찬을 한다면, 욕망의 총량을 다 못 채우더라도 덜 아쉬운 생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