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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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1 of 2
정민 지음, 휴머니스트
19주차 (8/7~8/13)
티올(윤정욱)
1. 작가 분석
가. 정민 교수는 누구인가?
1960년 충북 영동 출생. 현재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문학의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살아 있는 유용한 정보로 바꾸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꼼꼼히 읽은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고전 문장로나 연암 박지원』을 펴냈다. 18세기 지식인에 관한 연구로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미쳐야 미친다』 등이 있다. 청언소품(淸言小品)에 관심을 가져 『마음을 비우는 지혜』, 『내가 사랑하는 삶』,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돌 위에 새긴 생각』, 『다산어록청상』, 『성대중 처세어록』, 『죽비소리』 등을 펴냈다. 이 밖에 옛 글에 담긴 선인들의 내면을 그린 『책 읽는 소리』, 『스승의 옥편』 등의 수필집과 한시 속 신선 세계의 판타지를 분석한 『초월의 상상』, 문학과 회회 속에 표상된 새의 의미를 찾아가는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등을 간행하였다. 『한시미학산책』의 자매편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한시 입문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를 펴냈고, 사계절에 담긴 한시의 시정을 정리한 『꽃들의 웃음판』을 출간했다.
나. 주요 저서 : 별도 정리
다. 한시(漢詩)란 무엇인가? : 별도 정리
라. 8기 연구원 정민 교수 집단 인터뷰 (2012년 4월)
변경영 8기 연구원 선배들이 2012년 4월 정민 교수를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했다는 기록을 보았다.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기 전 레이스 과정을 마치면서 구본형 사부로부터 주어진 미션이었다고 한다. 집단 인터뷰를 성사하는 과정부터 흥미진진했다. 8기 연구원 모두 레이스 (연구원 사전 준비 과정) 가운데 정민 교수의 한시미학산책에 대한 북리뷰를 마치고, 북리뷰를 올린 게시판의 링크를 정민 교수에게 직접 메일로 보내며 집단 인터뷰를 희망한다는 사실과 취지를 설명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이틀이 지났을까, 정민 교수로부터 확답을 받지 못한 8기 선배들은 급기야 정민 교수의 사무실로 직접 전화를 하게 된다. 이후 직접 전화를 받은 정민 교수로부터 극적으로 집단 인터뷰 승낙을 받게 된다. 당시의 인터뷰 후기가 게시판에 상세히 올라와 있다. 그 가운데 주요한 질문과 답변 몇 가지만 간추려 본다.
질문)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자기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정민) 예전에는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이었지요. 지금은 정보 자체가 아니라 판별해서 이용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이,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창조적인 시간을 더 늘이고 있나?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질문) 예전 선비들의 생활습관 혹은 가치관중에서 현대에 적용할 수 있는 좋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정민) 서양 역시 백과사전파가 나오면서 지식의 패러다임이 변했습니다. 이것은 도시화, 인쇄술의 발달 등에 힘입은 까닭이죠. 우리나라 북학파에게도 기존 가치가 무너진 충격 상황에서 어떻게 추스를까,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가 핵심질문이었고 그것은 현대와 똑같습니다. 삶의 본질은 변한 적이 없고, 물질적 기기가 발달했을 뿐입니다. 18세기의 갈등, 해결 프로세스는 본질적으로 현대와 같습니다. 원리를 갖고 적용하면 여전히 힘있는 대답, 정확한 대답이 되죠.
질문)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두 학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정민) 다산과 연암은 극과 극으로 다릅니다. 다산은 우리를 무릎 위에 앉혀 놓고 알아 들을 때까지 시시콜콜 설명하고 과정을 알려주고 관리합니다. 반면에 연암은 던져 놓고 빠집니다. 원리를 일러주고는 뒷짐을 지죠. 연암에 대해 대학원생에게 가이드라인을 일러주고 3~4주 읽히면 무섭다고 합니다. 다산이 정답을 해결하는 법을 알려준다면 연암은 질문을 던지는 법을 알려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 객관지성이라고 하는데 모든 이가 다른 답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까?
정민) 그렇습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30대, 40대의 대답이 어제와 오늘의 대답이 다릅니다. 객관지성은 이런 저런 것들을 객관화시켜 바라볼 수 있고, 저울질 할 수 있고, 누가 봐도 타당한 사유의 매커니즘 입니다. 균형 잡힌 양쪽의 시각을 갖고 있고, 균형 잡아 나가려는 태도와 내가 옳고 너희는 틀렸다는 태도는 다릅니다. 균형 잡힌 사유를 하자는 것이 객관지성이고, 이것이 인문학의 사유, 공부의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 한시를 연구하게 된 계기와 연구 과정 중에 슬럼프에 빠졌을 때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민) 공부의 과정은 필연적이지 않고 우연한 계기가 더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저의 전공이 국문과였는데 당시 국문과에서 한문학 논문을 주제로 한 것은 제가 처음이었죠. 당시 지도교수님이 운양 김윤식에 대해 박사논문을 써 보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렇게 연암을 만났죠. 그런데 연암은 참 어려웠습니다. 연암에게 붙들려서 10년을 보냈죠. 나는 한시에서 출발해 산문을 공부했고, 18세기 지식경영의 문제를 다루다 문화사적 비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저의 학문적 관심사가 흘러갔습니다. 특히 연암을 알게 되면서 사유의 변화가 생겼고 지금도 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질문하는 방법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질문의 경로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정민 교수님의 문장을 보고 감탄을 했습니다. 어떻게 훌륭하고 간결한 문장을 쓰시게 되었는지 찾아보니 『생각없는 생각』이라는 책을 추천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문장력이 좋아지려면 어떤 훈련을 하는 것이 효과적일까요?
정민) 『스승의 옥편』에서 말한 바 있습니다. 문장은 자르세요. 습관적으로 관용어절을 물고 들어가는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 도움이 됩니다. 남이 소리 내어 읽어주면 더 효과적입니다. 소리 내어 최소한 3번은 읽으세요.
질문) 삶의 균형을 어찌 맞춰야 할까요?
정민) 나도 오지랖이 넓고, 호기심이 많아 자주 옆길로 샜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여러 가지 충동이 모두 일관성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침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한시를 한 수씩 번역해 내 홈페이지에 올린 것이 오언절구 삼백수, 칠언절구 삼백수 해서 육백여 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약속은 주로 점심 시간에 잡습니다. 저녁시간에 술 먹자는 걸 제일 싫어합니다. 차를 두고 가는 것이 불편하고 무엇보다 내 생활의 리듬이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질문) 교수님은 후세에 어떠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정민) 필요한 것은 과정입니다. 결과는 내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즐거워서 한 공부였습니다. 자기와 만나고, 자기와 확인하는 것이죠. 내가 누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좌표 설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억되느냐 하는 것은 후세의 일이지 나와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열심히 살았다는 말은 듣고 싶네요.
마. 정민을 알고 나서, 욕심이 나는 책 몇 권
①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정민 저) : 대학원 제자를 독자로 상정하며 쓴 책. 논문작성법.
② 열하일기 (연암 박지원 저) : 박지원의 사유 엿보기. 질문하는 법에 대해 재고 할 것.
③ 생각 없는 생각 (정민 저) : 간결한 문장 쓰기
④ 스승의 옥편 (정민 저) : 나중에 확인
⑤ 고전문장과 연암 박지원 (정민 저) : 나중에 확인
⑥ 비슷한 것은 가짜다 (정민 저) : 나중에 확인
II.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문구들
# 1장 : 허공 속으로 난 길 (한시의 언어 미학) #
(17) 까마귀의 색깔 속에 감춰진 많은 빛깔을 관찰한 적이 있었던가? 연암은 이렇듯 시인에게 죽은 지식이나 고정된 선입견을 훌훌 털어버리고, 건강한 눈과 열린 가슴으로 세계와 만날 것을 요구한다.
(18) 생취나 생의가 없는 시는 결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사물의 심장부에 곧장 들어가 핵심을 찌르려면 죽은 정신, 몽롱한 시선으로는 안 된다.
(19) 말은 다함이 있어도 뜻은 다함이 없다. (言有盡而意無窮)
(19) 엄우는 ‘이치의 길에 빠지지 않고, 언어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고 덧붙인다. 언어에 끌려 다지니 말고 언어를 주재하라는 주문이다.
(20) 정작 시인이 전달하려는 의미는 문면에 있지 않고 글자와 글자의 사이, 행과 행의 사이, 혹은 아예 그것을 벗어난 공중에 매달려 있다. 마찬가지로 독자 또한 영양의 발자취에 지나치게 현혹되거나 그것만이 전부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시인이 쳐놓은 언어의 통발에 걸려들어서는 안 된다. 언어라는 감옥에 갇혀서도 안 된다.
(22) 한 편의 훌륭한 시는 독자에게 느껴서 알게 할 뿐, 따져서 납득시키려 들지 않는다. (중략) 이렇듯이 시는 독자로 하여금 읽는 행위가 끝나는 순간부터 정말로 읽는 행위를 시작하게 만들어야 한다.
(23) 시인은 사물의 몸짓을 언어로 전달하는 매개자일 뿐이다. 따라서 시는 함축을 귀하게 여긴다. 시인이 직접 다 말해서는 안 된다. 사물이 제 스스로 말하도록 해야 한다.
(28) 시인이 글자로 말하고 있는 지시적 사실은 시에서는 별로 큰 의미가 없다. 그 행간에 감춰진 울림, 언어의 발자취를 벗어나 허공에 매달려 있는 떨림이 중요하다.
(31) 중요한 것은 번드르르한 거죽이 아니다. 속 알맹이다.
(32) 사람들이 안목이 없어 나의 이 훌륭한 작품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탄식하고 원망하는 시인이 있다면 그는 이명증에 걸린 꼬마다. 남의 적절한 지적에도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는 사람은 코를 고는 버릇이 있는 시골 사람이다. 정작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명에는 쉽게 도취되면서, 자기의 코 고는 습관만은 좀체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è 연암 박지원의 이러한 비유가 새삼 나를 뜨끔하게 한다. 회사 일을 하면서 회의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복잡한 상황이 얽히고설켜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의견을 주장하기에만 급급할 때, 우리는 간혹 그 상황을 답답하게 여긴다. 자신의 주장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나를 답답해 한다. 연암 박지원의 비유처럼 우리는 이명증에 걸린 채 자신을 과대평가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2장 : 그림과 시 (사의전신론) #
(37) 화가는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경물이 직접 말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사의전신(寫意傳神)’이라 한다.
è 시인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사물을 통해서 상대방을 알 수 있도록 넌지시 보여줄 뿐이다.
(37) 절을 그리라고 했는데, 어느 화가는 물 길러 나온 중을 그렸다. 화제에서 요구하고 있는 ‘장(藏)’의 의미를 화가는 이렇게 포착했던 것이다.
√ “어지러운 산이 옛 절을 감추었네” (깊은 산 속에 물 길러 나온 중을 묘사)
√ “꽃 밟으며 돌아가니 말발굽에 향내 나네” (달리는 말의 꽁무니를 나비가 쫓는 그림 묘사)
√ “들 물엔 건너는 사람이 없고, 외로운 배 하루 종일 가로 걸렸네” (사공이 뱃머리에 누워 피리 부는 그림 묘사)
√ “춘화도” (외딴 집 섬돌 위에 남녀의 신발이 한 켤레씩 놓인 그림 묘사)
(41) 나타내려는 본질을 감춰두거나 비워둠으로써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그 본질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43) 한 편의 훌륭한 시는 시인의 진술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상을 통한 객관적 상관물의 원리로써 독자와 소통한다. (중략) “시는 의미해서는 안 된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 (중략) 시는 이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의경을 전달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è 시인은 외로워도 직접적으로 외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괴로운 일이 있어도 직접적으로 괴롭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저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가 혼자 날아가는 모습을 묘사하거나, 여름철 단장을 끊을 듯 애타게 소리치는 매미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대변한다. 시인은 새와 매미를 말할 뿐이지만 시를 읽는 독자는 시인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눈치 챈다. 시인은 자꾸 감추려고 하고, 독자는 자꾸 그것을 벗겨내고 들춰내려고 한다. 아름다운 다툼이다.
(46) “옛사람은 시를 지음에 뜻이 말 밖에 있는 것을 귀하게 여겨,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여 이를 얻게 하였다 (사마광)” 시인이 다 말해버려서 독자가 더는 생각할 여지가 없는 것은 시가 아니다.
(53) 시를 읽는 독자는 시인이 쳐놓은 언어의 그물에 걸려들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행간을 읽을 줄 아는 식견을 길러야 한다.
(59) 화가가 형상을 핍진하게 묘사하거나, 시인이 대상을 방불하게 묘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거기게 정신을 담는 일이다.
(59) 시인이 정을 머금어 이를 펴고, 경물을 대하여 마음을 움직이며, 물상을 그려냄에 그 정신을 얻게 된다면, 저절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정신의 향기 없이 표현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한다면, 성정의 천진함은 어느새 사라져버린다.
(66) 한 편의 훌륭한 시는 겉으로는 덤덤한 듯 하지만 하나하나 음미해보면 그 행간에 감춰진 함의가 무궁하다. 시인의 진실한 느낌이 없는 시는 아무리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해도 독자의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못한다. (중략) 예술과 기술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 제 2장 대표 시 (두보 – 강남에서 이구년을 만나) 46p
기왕의 집에서 늘상 보더니
최구의 집 앞에서 몇 번 들었나
강남 땅 풍경이 정히 좋은데
꽃 지는 시절에 그댈 만났네
# 3장 : 언어의 감옥 (입상진의론, 入象盡意論) #
(69) 월인천강 (月印千江) 이랬거니, 달은 나 있는 안변이나 너 있는 한양이나 가뭇없이 비출 것이 아니냐. 그래서 널 보듯이 달을 보고, 달 보듯이 너를 생각한다는 사연이다.
è 달이 그리움의 상징이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내가 있는 이 곳과 님이 있는 저 곳을 항상 비추고 있다.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이 같은 달을 보고 있다는 것은 달을 매개로 그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멀리 떨어진 상대방에게 연락하는 것이 너무 쉬워진 요즘 사람이 그리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해 달을 바라보는 마음을 우리가 얼만큼이나 이해할 수 있을까. 마지막 이 한 문장은 읽자 마자 나도 모르게 ‘아!’하고 탄식이 새어 나왔다.
(72) 본래 동양의 예술 정신은 다변과 요설을 싫어한다. 긴장을 머금은 함축을 소중히 여긴다.
(76)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 (書不盡言 言不盡意, 주역 계사上)”
(78) 옛 성인의 뜻은 어떻게 전달 되는가? <계사>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성인은 상(象)을 세워서 그 뜻을 다하고, 괘를 세워서 참과 거짓을 다하며, 문사를 이어서 그 말을 다한다” 여기에서 ‘인상진의 (入象盡意)’라는 말이 나왔다. 말로 뜻을 다할 수 없다면 형상으로써 뜻을 전달하라는 것이다.
(89) 경물 속에 몰입하면서 독자들은 마치 자신이 직접 숲 속을 거니는 듯한 흥취를 만끽한다. 벗과 헤어져 있음을, 봄이 떠나감을, 떠나감이나 헤어짐으로 인식치 아니하고, 꽃잎이 묻은 소매로 내가 꽃이 되고 봄이 되는 인식의 갱신에서 시인은 몰아의 희열 속으로 빠져든다.
(91) 시를 낱낱이 해부하여 파헤치고 나면, 남는 것은 언어의 시체뿐이다. 멀리서 바라보이던 은은하고 아름다운 산의 모습은 간 곳 없게 된다.
★ 제 3장 대표 시 (관사복 – 무제) 89p
둔덕 가득 흰 구름은 갈아도 끝이 없고
못 속의 밝은 달은 낚아도 자취 없네
# 4장 : 보여주는 시, 말하는 시 (당시와 송시) #
(96) 비평 현장에서 당시나 송시는 왕조 개념이 아닌 시의 취향 혹은 성향을 말하는 풍격 용어로 쓰인다.
(97) 당시를 두고 흔히 중국 고전시가의 꽃이라고 말하여 계절로 치면 봄에 해당한다고들 하고, 이에 비해 송시는 가을에 비긴다. (중략) 한편으로 당시와 송시의 차이는 보여주기와 말하기의 차이로도 설명한다.
è 본문에 당시(唐詩)와 송시(宋詩)에 대한 비유를 든 예가 있다.
“작약이나 해당화의 화려한 색채는 화려하게 성장한 미인의 우아한 자태를 연상시킨다. 이것이 당시다. 반면 눈 속에 피어나는 매화나 서리를 이겨내는 국화의 은은하고 그윽한 향기는 화장을 하지 않고 소복 입은 여인의 얼음 같은 아름다움을 떠올린다. 이것이 바로 송시다”
이 뿐만 아니다. 저자는 4장 본문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당시와 송시의 차이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당시와 송시의 차이를 비유적으로 설명한 표현들을 모아 보았다.
√ 당시(唐詩) : 봄, 화려함, 우아함, 해당화, 영묘(影描), 묘사적, 서정적, 경물 그 자체, 권필
√ 송시(宋詩) : 가을, 그윽함, 은은함, 국화, 포진(鋪陳), 사변적, 설리적, 제 3의 도
이러한 나열된 특징을 머리 속으로만 외워서는 둘의 차이를 체감하기 어렵다. 직접 시를 보고 그 감상이 자신에게 어떻게 와 닿는지를 경험해야 한다.
★ 당시풍(唐詩風) : 이안눌 – 집에 편지를 부치며 (奇家書, 107p)
欲作家書/設苦辛 집에 보낼 편지에 괴로움 말하려 해도 (情)
恐敎O殺/白頭親 흰머리의 어버이 근심할까 저어하여, (情)
陰山積雪/深千丈 그늘진 산 쌓인 눈이 깊이가 천 장인데 (景)
却報今冬/暖似春 올 겨울은 봄처럼 따뜻하다 적었다네 (情)
è 이안눌이 함경도 북평사로 가 있을 때 보낸 시라고 한다. 7언 절구다. 첫째 구와 둘째 구에서는 고향에 부치는 편지에 북방에서의 자신의 고생에 대해 말하고자 하나, 백발이 성성한 부모가 근심할 것을 걱정한다. 부모가 백발이 성성하다는 것은 자식의 나이 역시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렸을 때는 한 없는 내리사랑을 당연하게 받았다면, 부모의 머리에 흰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자식들 역시 부모를 걱정하기 마련이다. 셋째 구에서는 자신이 있는 곳의 풍경에 대한 묘사가 이어진다. 그늘진 산 속 깊이 눈이 쌓이길 그 깊이가 마치 천 장(丈)과 같다는 풍경 묘사는 북방에서 그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를 대신 말해준다. 그런데 결국 그는 편지에 부치기를 ‘이번 겨울은 마치 봄처럼 따뜻합니다’라고 적어 보낸다. 부모의 근심을 되려 걱정하는 자식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진다. 그의 거짓말을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시에는 효(孝)라거나 경(敬)이라는 글자는 한 자도 없지만, 그의 지극한 효심을 알 수 있다.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이도 저미는 감정을 시에 한 가득 싣는다. 이것이 당시(唐詩)다.
★ 송시풍(宋詩風) : 퇴계 이황 – 무제 (無題, 113p)
이슬 젖은 풀잎은 물가를 둘러 있고
조그마한 연못 맑아 모래조차 뵈지 않네
구름 날고 새 지남은 어쩔 수 없다지만
때때로 제비 와서 물결 찰까 걱정일세
è 여기서 퇴계가 말하고자 한 것은 사물 자체의 세계가 아니다. 맑고 일렁임이 없는 연못은 사실은 일체의 삿됨이 끼어들지 않은 순수무구한 마음을 상징한다.
(109) 송시는 이 시기 발달한 선종과 성리학의 영향으로 인생에 대한 철학적 음미를 내용으로 하는 경향이 짙다. 또 쓸데없는 수식을 배제하고 섬세한 관찰과 개성적 표현을 중시하였으며, 제재 상 일상생활에의 관심과 밀착이 두드러진다. 표현은 다분히 산문적이고 서술적이 되었다.
(112)
종일 봄을 찾았어도 봄은 보지 못했네
짚신 신고 산머리 구름 위로 가보았지
돌아올 때 우연히 매화 향기 맡으니
봄은 가지 위에 어느새 와 있었네
è (원문 생략) 원문을 두고 나의 해석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일 듯 하다. 나의 해석은 이렇다.
종일 봄을 찾았지만 봄을 볼 수 없었네
짚신 신고 산 꼭대기 구름까지 걸어보았지
돌아 오다 문득 매화꽃 향을 맡으니
봄은 그 가지 위에 이미 충분하였네
(114) 이때 시인이 표층에서 묘사하고 있는 외물은 시인이 전달코자 하는 내용의 표피에 불과하다. 그 안에는 깊고 유원한 사변의 세계가 자리 잡고 있다.
(115) 아무리 시의 겉모양을 갖추었다 해도 선동가의 연설이나 ‘삐라’를 시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가슴을 저미는 감미로운 유행가의 가사도 시와는 다르다. 시는 우선 시가 되어야 한다. 당시와 송시의 구분이나 참여니 순수니 하는 변별은 그 다음 문제다. 동시에 그것은 세계관의 문제이므로 좋고 싫음의 판단이 있을 뿐 우열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 5장 : 버들을 꺾는 뜻은 (한시의 정운미) #
한시(漢詩)의 매력은 제한 된 글자 수로 몇 번을 곱씹어도 새로운 맛을 내는데 있다. 말이 다한 그 자리에서도 그 뜻은 다함이 없이 새로운 맛을 낸다. 제한 된 글자 수에 많은 감정을 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해하는 상징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한 때 노란 손수건이 이별과 재회의 상징이 되었듯 한시에서도 이러한 상징물이 자주 등장한다. 바로 이러한 상징물을 이용해 한시의 맛을 한층 더해 주는 것을 정운미(情韻味)라고 한다. 한시의 언어 특성상 이러한 어휘들은 시가 언어의 함축을 더욱 유장하고 깊이 있게 해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그리고 특정 어휘가 정운을 머금는 과정에는 동질의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의 내적 교감이 전제된다.
√ 남포(南浦) : 이별. 이별의 장소.
√ 절류(折柳) : 꺾은 버드나무 가지. 이별. 이별의 신표. 재회를 소망하는 장치.
√ 추선(秋扇) : 가을 부채. 버림 받은 여인.
√ 의루(依樓) : 기다림. 그리움.
√ 저물녘 피리 소리 : 옛날을 그리워함. 가고 없는 벗을 향한 그리움.
√ 동리(東籬) : 은사를 자처하는 이들이 자신의 집 울타리를 가리키는 말. 세상을 피해 사는 고상한 선비의 거처.
(125)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하는 심정으로 버들가지를 꺾어주었고, 또 꺾이어 가지에서 떨어졌어도 다시 뿌리를 내려 생명을 구가하는 버들가지처럼 우리의 우정도 사랑도 그와 같이 시들지 말자는 다짐의 의미도 담겼다.
(137) 한시에서 ‘무제’를 표제로 내거는 것은 마땅히 붙일 만한 제목이 없어서가 아니다. 제목을 붙이지 않은 채 오히려 독자의 적극적인 독시를 요구하기도 한다. 또한 무제시는 이상은 (李商隱) 이래로 남녀 간의 애정을 다루는 염정풍의 분위기를 띠는 것이 보통이다.
★ 정지상 – 송인 (送人, 119p)
비 개인 긴 둑에 풀빛이 고운데
남포에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이야 언제나 마르려나
이별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보태나니
# 6장 : 즐거운 오독 (모호성에 대하여) #
(150) 어떤 면에서 시인은 이러한 언어의 모호성을 은근히 즐기는 사람들이다. 시 속에서 이러한 의미들은 오히려 풍부와 함축이 된다.
(155) 빗소리 듣느라 찬 밤 새우니 (聽雨寒更盡)
문 열자 낙엽만 수북 쌓였네 (開門落葉深)
(158) 한시에서 모호성은 흔히 문장 성분이 생략되어 그 여백을 채우는 과정에서 많이 발생한다.
(162) 시인은 제목으로 분위기를 잡아놓고, 정작 시 속에서는 독자의 예상을 외면하고 딴청을 부렸다. 여기에서 의미의 단절이 온다. 단절을 채워 제목과 본문을 잇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겼다.
★ 동방규 – 왕소군 (王昭君, 152p)
오랑캐 땅 화초야 없으랴마는
봄이 와도 봄 온 것 같지가 않네 (春來不似春)
저절로 옷 허리띠 느슨해지니
몸매를 가꾸기 위함 아닐세
# 7장 : 사물과 자아의 접속 (정경론) #
(175) 마음에 일어나는 정을 건네듯 사물에 보내면, 사물은 답이라는 듯이 흥을 불러일으킨다.
(176) 가슴에 자욱한 정을 품고 경을 바라보면 무심한 경물이 내 마음의 빛깔로 물든다. 정은 경에 의미를 불어넣는 배아인 셈이다.
è 마음이 울적한 날에는 무심히 바라 본 하늘 위 새조차 외로워 보일 수 있다. 길가를 배회하는 강아지를 보아도 괜스레 울컥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모두 자신의 마음을 그 대상에 의탁했기 때문이다. 모든 문학의 시초가 사실은 이러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한다. 처음에는 주변 사물의 풍경과 그에 따른 변화를 기록하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발이 닿는 대로 그것들을 채록 하기를 마칠 무렵, 지금까지 발품 팔며 노력했던 것 보다 더 넓고 아득한 한 세상을 발견했을 것이다. 바로 자신의 마음 속이다. 시시각각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누이는 풀잎처럼 매번 그 형태와 감정의 깊이가 변하는 자신의 내면 세계. 그 내면 세계를 들여다 보니 자신의 감정에 따라 주변 사물과 풍경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시(詩)가 태어나고, 문학은 그 살을 더해 나갔을 것이다. 정(情)을 머금어 경(景)에 투사하는 그런 시도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177) 정과 경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미묘한 줄다리기는 시 감상의 즐거움이다. 시인은 가장자리를 굳이 감추려 들고, 읽는 이는 경물 안에 감춘 시인의 정을 자꾸 들춘다.
è 참 맛깔 나는 비유다.
(179) 정수경생 : “경을 묘사함은 경 가운데 뜻을 머금고, 일 가운데 경을 보여주어야 한다. 섬세하며 맑고 담백해야지, 진부하거나 교묘하면 못 쓴다. 뜻을 묘사할 때도 뜻 가운데 경을 담아 의론을 분명히 해야 한다”
★ 이현 – 강천의 옛집을 지나다가 (過江川舊莊, 181p)
강가 비탈 가팔라 높았다간 낮아지니 (景)
행인 가고서야 물새가 울음 운다 (景)
세간의 근심 슬픔 언제나 다하려나 (情)
필마로 다시 오매 마음만 심란하다 (情)
(198) ‘시언지(詩言志)’, 즉 시가 뜻을 말한다는 말은 『시경(詩經)』 이래 가장 친숙한 시의 정의다. 시란 무엇인가? 품은 뜻을 말하는 것이다.
è 그렇다면 품은 뜻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시인의 정(情)을 드러내는 것이다.
(202) 진정한 시법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최후의 ‘현관(玄關)’이 있다. 그 현관 앞에 서려면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그 문을 여는 법은 아무도 일러줄 수가 없다.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제 손으로 직접 열고 들어가야 한다.
# 8장 : 일자사(一字師) 이야기 (시안론) #
(211) 시안(詩眼)이란 바로 한 편 시의 눈동자에 해당하는 자리다. 시의 힘줄과 뼈대가 바로 이 곳에 모여 있다. 이로 인해 전체 시는 갑자기 생동하는 활기를 띤다.
(213) 한 편의 시에서 시안은 어디에 있는가? 『여씨동몽훈(呂氏童蒙訓)』에서 반빈로는 7언시는 제 5자가 울려야 하고, 5언시는 제 3자가 울려야 한다고 했다. (중략) 5언시의 경우 2-3으로 끊어 읽고, 7언시는 4-3으로 끊어 읽는다. 이 때 제 3자와 제 5자는 이 둘의 경계에 놓은 글자다. 말하자면 두 개의 이미지를 하나로 묶는 자리다. 결합의 양상에 따라 의경이 달라진다. 이는 의미의 단위이면서 리듬의 한 매듭이다.
√ 일자사(一字師)의 미감 원리
① 의미의 중복을 피하라
② 여운을 남기고 호응을 중시하라
③ 시상(詩想)의 온유돈후를 중시하라
è 정지상과 김부식도 일자사에 얽힌 일화를 남겼다고 한다. 김부식이 하루는 이런 시를 지었다고 한다.
柳色千絲綠 (버들은 천 실이 푸른 빛이요)
桃花滿點紅 (복사꽃은 만 점이나 붉게 피었네)
그런데 홀연 정지상의 귀신이 나타나 김부식의 뺨을 때리며 그의 시를 이렇게 고쳤다고 한다.
柳色絲絲綠 (버들은 실실이 푸르고)
桃花點點紅 (복사꽃은 점점이 붉도다)
천(千)과 만(萬)이 반드시 특정 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많다는 의미로 쓰이기는 했지만, 곱씹어 볼수록 모호하면서도 아득한 맛이 있는 정지상의 일자사(一字師)가 더 나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231) 시인은 시안을 연마할 때 집착을 버려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시안은 시안을 감추는 ‘장안(藏眼)’의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사물을 꿰뚫어보는 혜안과 통찰력 없이 그저 남의 눈이나 놀라게 만드는 수사적 기교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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