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승훈
- 조회 수 1501
- 댓글 수 7
- 추천 수 0
왜 나는 페미니즘이 싫을까
11기 정승훈
우수수 나뭇잎 지는 소리를
성근 빗소리로 잘못 알고서.
중 불러 문 나가 보라 했더니
시내 남쪽 나무에 달 걸렸다네. 송강 정철 <산사야음>
1980년대 후반의 일이다. 기말시험 문제에서 이 작품의 감상을 요구했다. 한 답안이 이랬다. “부르주아적 근성에 철저히 물든 정철의 봉건 착취계급으로서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다. 창밖의 일이 궁금하면 자기가 직접 문을 열어보면 되지 않는가? 그 쉬운 일도 하기 귀찮아 프롤레타리아 계층인 사미승을 부려먹고 있다.” <한시미학산책 602페이지>
이 답안을 쓴 80년대 대학생이 그려진다. 87학번인 나는, 왜 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한양대학교를 간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내가 본 한양대 대자보는 광주사태와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내용이었다, 처절했다. 아니 어떤 것은 끔찍했다. 그러니 한가하게 한시나 읽으며 시의 정서를 논한다는 것이 쓸데없이 보였을 거다. 2017년, 지금의 나는 이 대학생의 답안을 보며 모든 것을 하나의 시각으로만 보는 위험(?)과 답답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난 페미니즘이 싫다. 모든 것을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보면 이 세상은 온통 부조리한 일들로 넘쳐난다. 얼마 전부터 은유 작가의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라는 산문집을 필사하고 있다. 글쓰기 도움과 더불어 여자이고 엄마라는 비슷한 정서와 공감대가 있어 필사하려 마음먹었다. 몇 꼭지를 필사하며 ‘이런 표현들은 참 좋다. 소재들을 이렇게 이어가는구나.’ 알게 되었다. 그러다 여자라는 지점에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저자의 시선으로 풀어나간 글들이 불편했다. 더 이상 필사를 하지 않는다.
나는 원칙주의자다. 나만의 옳음이 있다. 그 옳음을 남들이 다르게 여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다행인지 난 나의 옳음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는 편이다. 어떤 옳지 않음은 직접 부딪혀서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어떤 옳지 않음은 그냥 둔다. 페미니즘이 그렇다.
여자로서 느꼈던 불편을 넘어 부조리를 겪으며 화를 내기도 했다. 건설 분야 경력사원 면접을 보며 “여자인데 지방 근무 가능해요? 야근할 수 있어요?“ 라는 물음에, 경력직 뽑는 것 아니냐 그렇게 안하고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지 않느냐며 할 수 있다고 답을 하면서도 분함을 느꼈다. 분명 본사근무 경력직 모집이었다. 여자라는 걸 알면서 왜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한 것인지, 결국 여성도 면접에 참여시켰다는 걸 알리려고 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냥 넘어갈 수 없어 그 당시 ‘여성부’의 신문고 같은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내 글을 보고 담당자가 연락이 왔다. 그 회사가 어디인지 물어보더라. 난 반대로 그럼 여성부에서 뭘 하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진위여부를 파악하고 시정조치 명령을 공문으로 보낸다는 대답이었다. 그 대답을 듣고 더 답답해졌다. 어차피 난 입사에서 탈락했는데 시정조치 공문이라고 해봐야 앞으로 면접에서 그러지 않겠다는 답변으로만 처리하면 끝이다. 회사는 자신들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앞으로 여자는 면접도 보지 말아야겠다고 여길 거라고 담당자에게 말하며 그냥 두라고 했다.
결혼을 하면 시집이란 또 다른 가족이 생긴다. 여자에겐 이 역시 불합리의 공간이다. 시어머니, 시누이, 같은 여자로 공감을 해주기보다, 그들을 통해 ‘여자의 적은 여자’를 몸소 경험하게 된다. 물론 그들의 고의적 의도는 아니다.
직장 내에서도 경리업무가 아닌 기술 전문직 여성으로, 같은 여자의 시기 질투가 더 힘들었다. 건설업이라는 분야에 여자가 적다보니 그들이 보기엔 남자직원들과 어울리는 모습도, 같은 업무 이야기로 소통하는 모습도 자기와는 다르게 대한다고 느꼈나보더라. 나중엔 윗사람이나 동료에게 대놓고 왜 나만 아끼고 챙기냐며 불만을 드러냈다.
이렇듯 세상살이 곳곳에 여자로 겪는 불합리와 부조리는 존재한다. 내가 겪은 것보다 더한 것들도 있고 반면 별스럽지 않은 일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고슴도치처럼 몸에 바늘을 세우며 지낼 필요가 있을까. 페미니스트들처럼 과한 행위를 하는 것도 맘에 들지 않는다. 후배 여자학우들의 페미니즘 관심도를 보며 속으로 ‘너희들이 얼마나 겪어봤다고...’하는 의아한 생각도 든다. 어쩜 그들처럼 나서지 못하는 ‘용기없음’의 구차한 변명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정책과 제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로스쿨 졸업하고 다시 여성학을 전공하더라.
과격하지 않고 목소리 크게 내지 않아도 되는 현명하면서 차분하고 효과는 더 큰 방법이 있을 것만 같다. 나는 그래서 과거의 여성을 기웃거리는 지도 모르겠다. 지금보다 더한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그 나름 노력하며 살았던 전 세계의 여성들. 그들을 알리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다. 그들을 통해 예로부터 남성만이 존재한 것이 아니고, 기록되고 알려지지 않았을 뿐 성에 국한되지 않은 삶을 살다간 사람(여성)이 있다는 것의 중요함을 알리는 거다.
매번 북리뷰 끝에 ‘내가 저자라면’이란 부분에서 ‘여성의 시’, ‘여성의 역사’ 등을 모아서 출판하고 싶다는 바람을 적은 것을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