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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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에는 ‘차이나 타운’이 있다. 시선을 압도하는 화려한 간판과 다양한 중국 음식이 길가에 즐비하고 심지어 중국어로 쓰인 간판과 메뉴판도 일상인 바로 그 차이나 타운? 전 세계 대도시라면 하나쯤은 반드시 있다는 그 차이나 타운? 둘 다 아니다. 실은 자주 가는 나의 단골 중국집 이름이 바로 ‘차이나 타운’이다. 물론 전국에 동명의 중국집이 수 십, 수 백 곳은 족히 되리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도 맥 빠지면 안 된다. 이 곳은 나름 동네에서는 ‘간짜장’이 맛있는 곳으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주문하는 메뉴는 두 가지다. 간짜장 아니면 볶음밥이다. 아주 가끔 짬뽕을 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 가게 만의 특별함을 꼽으라면 마땅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 간도 심심하고, 갑자기 유명해진 어느 맛 집처럼 해물을 듬뿍듬뿍 넣어서 면을 다 못 먹을 지경도 아니다. 딱히 평가를 하기에 애매한 구석이 많다.
그런데 또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쁜 점도 많지 않다. 나는 식당에 가면 항상 눈 여겨 보는 것이 있다. 가게 내부와 주방의 청결 상태 그리고 소스통과 수저통이 얼마나 깨끗한지를 본다. 물론 시청 위생과 직원처럼 순서를 정해두고 하나씩 살펴본다는 말은 아니다. 그냥 대충 둘러보는데, 이상하게 그런 것들이 눈에 잘 들어온다. 손님들이 주로 앉는 가게 내부를 청결히 하는 것은 식당의 기본이다. 누구나 그렇게 한다. 그마저도 소홀히 하는 식당은 하(下)급이다. 갈 필요가 없다. 그 다음은 주로 가게 직원들만 사용하고 외부에서는 보기 힘든 주방까지 깨끗하게 쓰는 곳이다. 이 역시 식당의 기본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의외로 그렇지 못한 식당도 많다. 여기까지만 잘해도 중(中)급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은 소스통과 수저통이다. 안에 담긴 소스가 대체 언제 담겼던 것인지 상상조차 가지 않을 정도로 지저분하거나 소스 마개 부분이 넘쳐 흐른 소스가 그대로 굳어 붙어있는 곳들도 많다. 그런데 이 곳 차이나 타운은 모든 것이 깔끔하고 깨끗하다. 식초와 간장통은 항상 가득 차 있고 마개도 깨끗하다. 이런 식당이 내게는 상(上)급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나는 한 번도 이 가게가 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언제든 가면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다. 주말에는 끼니를 제 때 잘 챙기지 않는 나는 항상 애매한 시간에 이 곳을 찾는다. 오후 세 시, 네 시 정해진 시간도 없이 찾는다. 사실 규모가 큰 체인 식당은 관계가 없을지 몰라도 규모가 작은 식당을 이 시간에 찾는다는 것은 가게 입장에서는 난처한 일일 수도 있다. 점심 손님을 다 치르고 저녁 손님 맞이를 준비하거나 가게 직원들도 잠시 한숨을 돌리는 이른바 ‘브레이킹 타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곳은 내가 언제 찾아도 난처한 내색 없이 내가 주문한 음식을 뚝딱 만들어준다.
모든 식당이 쉬는 날 없이 매일 영업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장사를 하는 분들이라고 왜 쉬는 날이 아쉽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매일 같은 일을 무한대로 반복하는 그들의 꾸준함과 성실함이라고 생각한다. 일요일인 오후 세 시, 미루고 미루던 북리뷰와 칼럼 쓰기를 아침까지도 손 대지 못하고 빈둥거리다가 늦은 점심을 먹으러 이 곳 차이나타운을 찾았다. 사장님은 여전히 분주한 손놀림으로 손님들이 떠난 자리를 치우고 있었다. 다른 한 분은 배달 다녀온 그릇들을 포개어 들고 종종 걸음으로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순간 머리를 망치로 얻어 맞은 듯 얼얼했다. 문득 글쓰기를 한다고 오만 가지 힘들고 어려운 핑계를 대지만, 내가 저 분들 보다 정말 더 노력하면서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사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지 않은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북리뷰와 칼럼도 요령이 붙어 주말이 될 때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어도 이젠 조급하지도 않다. 책을 읽으면서 나를 더 깊이 들여다 보는 것이 아니라, 이 부분은 과제할 때 쓸 수 있겠다 쓸 수 없겠다 밑줄 긋기 바쁜 내가 보인다. 북리뷰와 칼럼을 통해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과제를 마치고 완성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것 같다. 혹자는 말했다. 구본형 선생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매일 해야 습관이 되고, 습관처럼 해야 실력이 붙고, 그렇게 쌓인 실력이 모여야 비로소 자신의 분야에서 대가가 될 수 있다”
지금 이 칼럼을 쓰는 중에도 이런 저런 마음이 올라온다. 의자를 좀 더 바싹 붙여서 당겨 앉아 지금 내 머리 속에 뒤엉켜 산발적으로 드는 생각들을 멋지게 정리해서 내가 생각해 둔 흐름에 맞게 잘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과 그냥 대충 한 편 써서 마무리하자는 생각이 서로 뒤엉켜 어지럽다.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하려는 마음 속 유혹이 크다. 초심(初心)을 잃은 듯도 하다. 그러던 와중에 낮에 본 차이나 타운 사장님이 나를 보며 따져 물으신다.
“너 지금 하는 거 그거 별거 아니야. 편하게 앉아서 책 보고 내용 정리하고, 일 주일에 글 한편 쓰는 것이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려워? 평생 더운 여름에 춘장 튀기고, 탕수육 튀겨 봤어? 인생은 구체적이야. 현실이지. 네가 그렇게 끙끙 앓고 또 어떨 때는 하기 싫어하는 것들이 이 세상에 어떤 유익함으로 돌아갈 것 같니? 내가 보기엔 아무것도 없구나. 너의 지적 허영이나 만족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뭐든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설, 추석 명절에 하루 빼고는 매일 가게 열고, 손님 맞을 준비하는 나 같은 중국집 사장보다 너는 네가 더 노력하고 있다고 자신 할 수 있니?”
사람들이 연구원 과정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물어보면 늘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태연한 듯 말하곤 했다.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그 말을 하면서 나의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불안한 마음이 남아 있었다. 나의 남은 연구원 과정이 그냥 이대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 불안이었다. 그러면서 더 노력하지 못하는, 아니 노력하지 않는 자신에 대한 불만도 있다. 생각이 많아지는 일요일이다. 갑갑한 마음을 풀러 이번 주말에도 차이나 타운에 가서 간짜장 한 그릇하고 와야겠다. 다시 가서 실전 인생 고수에게 한 수 배우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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