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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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네 명의 조카 아이들은 남자, 여자 아이들끼리 나이가 비슷해서인지 1년에 몇 번 안 만나도 어색함 없이 같이 잘 어울려 놀았었다. 그런데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여자 아이들이 인사만 하더니 그 후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각자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화면을 보며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이고 웃기도 하는 걸 보면, 그 자리에 없는 친구들과 대화 중인 것 같다. 페이스북, 카톡 등 SNS로 시간, 공간적 제한 없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다.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또는 멀리 있는 친구와도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인간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할 것이라고 믿었었는데, 멀리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느라 정작 옆에 있는 사람들과는 소통이 소홀해진게 아닌가 싶다.
다행히도
어른들은 전화기를 모두 내려 놓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에 집중했다. 그런데 얘기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엄마가
이상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같았다. 동생의 말을 들어보면 딱 전형적인 사기꾼인 것 같은데, 엄마는 얼마나 좋은 사람인 줄 아냐며 도무지 자식들 말은 들으려 하지를 않는다. 동생은 그 사람이 엄마에게 안부 전화도 거의 매일 하며 어찌나 다정하고 상냥하게 구는지 자식들보다 훨씬
낫긴 하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나도 2~3주에 한번씩은
엄마와 밥을 함께 먹으며 소통을 한다고 했는데, 왜 나는 이런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던 걸까? 그냥 말만 했지 진정한 대화는 아니었던 건가?
몇
년 전에 다니던 회사 사정으로 잠깐 고객센터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대출, 해지, 계약 변경 등이 주 업무였는데 요즘에는 웬만한 금융 업무는
인터넷을 이용하거나 콜센터에 전화를 해서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 곳을 방문하는 고객들은 주로 인터넷이나 모바일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대출, 해지 등 대부분의 일반 업무는 10분 정도면 끝난다. 그런데 어떤 고객은 업무를 다 마치고도 이런
저런 얘기로 30~40분 이상 앉았다 가는 경우가 있었다. 대기
고객이 없을 때는 대화를 나눴는데 대부분 우리 엄마 또래의 6~70대 여성들이었다.
왜 대출을 하는지, 왜 갑자기 돈이 필요한지 – 보통은 자식 때문에 대출을 하는지라 자식 욕으로 시작하다가 그래도 결국은 자식 자랑으로 마무리를 하는 – 묻지도, 궁금하지도 않은 얘기를 30분 이상 이어 갔다. 얘기를 마친 후에는 날 보고 "우리딸" 같다거나, '우리딸도 이렇게 상냥하고 예쁘게 얘기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아쉬워하며 자리를 뜨곤 했다.
재미도
없는 지루한 얘기를 억지 미소를 띄우며 듣다가 우리 엄마 생각이 났었다. 엄마도 어디 은행 같은데
가서 바쁜 직원 붙잡고 그렇게 딸 자랑을 하고 계시지 않을까? 그곳 직원들도 지루함을 참아가며 억지로
맞장구 치고 듣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도 눈치없이
나는 단지
고객이라는 이유로 아무 관심도 없는 아줌마들 얘기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기도 하며 잘 들었었다. 그런데 왜 우리 엄마 얘기는 그렇게 들으려고 안 했던 걸까?
우리는
가족이기에 굳이 말 안 해도 그냥 알 거라고 생각했었다. 집중해서 듣지 않아도 다 이해하고 굳이 오버액션으로 반응하지 않아도 내
맘 다 알 거라고 믿었었는데, 가족 간의 커뮤니케이션이야 말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 있는 사람들, 딱 고객들에게 했던 만큼의 노력이면 될 것 같다.
그 사람들 이상하니까 이제 어울리지 말라고 수십 번 말하는 것보다, 왜 자식들 말은 안 듣냐며 원망하는 것 보다는 엄마의 외로움을 이해하는 다정한 안부 전화 한통이 엄마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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