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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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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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5일 00시 00분 등록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2주 동안의 이탈리아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오니 자스민 화분이 잎을 축 늘어뜨리고 있더군요. 물을 흠뻑 주니 다행히 다시 살아났습니다. 남동생집에 맡겼던 열대어 구피들은 더 활기차져서 돌아왔습니다. 집에 쌓인 먼지를 걷어내고 냉장고에 식료품을 채우고 빨래를 세탁기에 돌려 널고 걷기를 반복하고 여행가방을 박박 닦아 넣어두고 나니 오늘입니다. 아직 시차를 극복하지 못해 몸이 천근만근, 밤에는 말똥말똥 낮에는 마취상태이긴 하지만요. 오늘 아침에는 제가 늦잠을 자서 아이들이 지각을 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여행 후유증이 꽤 크지요?


2011년 구본형 선생님과 7기 연구원들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을 여행했습니다. 제 인생 최고의 여행이었지요. 풍광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웠고 함께 한 사람들은 유쾌하고 살가웠습니다. 밤마다 모여서 와인잔을 기울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얼마나 달콤했는지요. 올해 다시 찾아갔으니 6년 만의 귀환입니다. 아시시, 시에나, 몬테풀치아노, 피렌체, 밀라노는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가이드 말이 이탈리아는 500년 전에도 이 모습이었다고 하네요. 미술관에 남아있는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 그림을 보니 정말 그렇더군요. 세월이 흘러도 변한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이 이탈리아의 매력인듯 싶습니다.


이번 여행은 철저히 자유여행이었습니다. 렌터카를 빌려 구글맵으로 목적지를 찾아다녔지요. 사전 예약한 숙소에 머물렀고 한 도시에 도착하면 둘러볼 곳을 직접 정했습니다. 수퍼마켓에 들러 장도 보고 끼니를 해결할 식당이며 메뉴도 직접 골랐지요. 우르르 몰려다니는 패키지 여행에 싫어 결정한 자유여행이었는데 사실 힘든 점도 많았습니다. 모든 것을 결정할 자유가 있었지만 자유를 누리기위해서는 신경써야 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다음부터는 패키지 여행을 가기로 했답니다. 하하하!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탈리아 사람들의 일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은 일보다는 삶, 성과보다는 개인(특히 직원)의 권리를 더 중요시 했습니다. 저희가 머문 B&B, 리조트, 레지던스에는 직원들의 근무 시간이 정해져있었습니다. 점심 식사 이후나 저녁 시간에는 자리는 비우는 경우가 많았죠. 24시간 풀가동을 하거나 근무 외 시간에도 연락이 가능한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몬테풀치아노에서 머물렀던 리조트의 시설은 한숨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을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스레인지는 성냥으로 불을 붙여야 했고 창문에는 방충망이 없어 하룻밤 자고 나니 온 몸에 모기 물린 자국으로 현란한 무늬가 남았습니다. 그뿐인가요? 에어콘을 사용하려면 전날 신청하고 별도의 비용을 내야했습니다. 모기가 많다고 호소했더니 뿌리는 모기약을 주고 가더군요.


사실 첫날 렌터카를 빌릴 때도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차에 큰 스크래치가 있었는데 저희가 그걸 확인하지 않고 덜컥 차를 타고 숙소로 온 것입니다. 저녁 때 수퍼마켓에 가려고 봤더니 뒷좌석 문쪽에 큰 상처가 있는 겁니다. 물론 렌터카 대여 서류에는 그런 내용은 없었지요. 다음 날 서비스센터에 수차례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시 렌터카 대여 장소로 돌아가 그 스크래치가 저희가 차를 빌리기 전에 있었던 것임을 확인했고 우여곡절 끝에 다른 차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더군요. 그게 끝이 아닙니다. 베네치아에서 렌트카를 돌려줄 때 유류대 87유로가 청구되어 있는 것입니다. 영어가 서툰 직원 설명으로는 첫날 우리가 사용한 렌터카의 유류대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첫날 1시간도 운행을 하지 않았거든요. 이건 뭐 바가지나 다름없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한국식당을 많이 다녔습니다. 대부분의 이태리 식당은 물과 음료, 봉사료, 자릿세를 별도로 받습니다. 그러니 점심 한끼를 해도 100유로 가까이가 나오더군요. 메뉴는 대부분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는데 영어 설명을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그렇게 주문을 하다보니 만족도는 떨어지고 끼니마다 파스타나 피자를 먹는 것도 고역이더군요. 외국여행하면서 한국음식을 싸가거나 한국식당을 찾아 가는 것을 촌스러운 일이라 여겼던 저도 이번엔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한국식당 사장님들께 이탈리아 여행의 불편함을 호소하니 이런 답변을 주시더군요. 


"여기 사람들은 불편한 것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아요. 저희집 가스레인지도 성냥써요. 방충망 같은거 거의 없어요. 한국사람들은 불편함에 민감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려러니 합니다. 대신 이 사람들은 인생을 즐겨요. 길고 긴 휴가를 가고 좋은 사람들과 와인을 마시고 노천카페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한국사람들이 일에 목숨을 거는 것을 이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해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합니다. '그렇구나! 왜 나는 불편함에 집중해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을까? 이탈리아 사람들의 불친절과 태만에 분개하며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는가?' 후회가 밀려옵니다. 제가 옳다고 믿었던 견고한 가치의 성을 다시 돌아봅니다. '내가 믿는 가치들이 과연 옳은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틀렸다 몰아세우는 편협함이 나를 옭죄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행은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누군가 먹었던 숟가락으로 밥을 먹고 누군가 덮었던 이불을 덮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죠. 그것이 싫다면 집에 머물러야 합니다. 여행자는 현지인들의 삶의 방식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숙한 여행자의 자세입니다.   


문요한 선배는 자신의 책 <여행하는 인간>에서 여행자를 6등급으로 분류합니다. 1단계는 둘러보는 여행입니다. 단체관광이자 투어죠. 2단계는 관찰하는 여행입니다. 자세히 살펴보고 기록하는 여행을 말합니다. 3단계는 체험하는 여행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과 어울리고 가슴뛰는 활동에 도전합니다. 4단계는 각성하는 여행입니다. 새로운 세계와 교류하면서 의식의 지평을 넓힙니다. 여행을 통해 지혜와 깨달음을 얻습니다. 5단계는 체득하는 여행입니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여행에서 배우고 깨달았던 것을 몸으로 실천하고 일상을 새롭게 봅니다. 마지막 6단계는 삶으로의 여행입니다. 여생과 삶이 하나가 되어 삶 전체가 여행입니다. 여행을 하지 않는 동안에도 여행자로 살 수 있습니다. 선배는 '삶을 하나의 여행이라 보고 삶을 여행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여행하는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번 여행을 통해 5단계와 6단계를 시도해보려 합니다. 여행에서 배운 것을 기반으로 일상을 항상 새롭게 바라보려 합니다. 또한 여행을 굳이 떠나지 않아도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보려 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당분간 여행은 가지 않아도 될듯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곳이 집이니까요!


그대는 몇 단계의 여행자인가요?  


[알림1] 수희향 연구원이 운영하는 1인회사연구소에서 한겨레 교육문화센터(신촌)에서 원데이 창직워크숍을 진행합니다. 자신의 기질에 맞는 창직을 꿈꾸는 분이라면 놓치지 마세요.

 http://www.bhgoo.com/2011/index.php?mid=free&document_srl=828820 

 

[알림2] 박승호 연구원이 일하고 있는 성천문화재단에서 '퇴근길 인문학 교술'을 개강합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 합리적인 가격으로 인문학 강좌를 향유하고 싶은 분에게 권합니다.

 http://www.bhgoo.com/2011/index.php?mid=free&document_srl=828576 

 

[알림3]한명석 연구원이 운영하는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 카페에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합니다. 알찬 3강과 더불어 2회 첨삭지도까지 해준다고 하니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http://www.bhgoo.com/2011/index.php?mid=free&document_srl=828440 


IP *.35.2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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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8 09:58:41 *.158.25.187

'여행자는 현지인들의 삶의 방식을 인정해야합니다.'


그렇죠? 비단 여행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도 비슷한것같아요.


그래도 무사히 여행 잘마치시고 돌아오셨으니 다행이에요. 이탈리아는 소매치기가 많기로 유명하잖아요.^^


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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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13:50:51 *.35.229.12

김산님, 항상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타인의 생각과 가치를 존중하는 성숙한 인간이 되기위해 노력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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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8 12:37:03 *.145.103.48

좋은 정보!

패키지로 가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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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13:52:01 *.35.229.12

이것저것 신경 안쓰려면 패키지가 좋지.

그런데 특정 테마가 있으면 자유여행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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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0 09:21:42 *.153.200.103

나처럼 널널한 사람은 여행도 마냥 널널한 것을 원하지만

재키처럼 평소에 촌음을 아껴  쓰는 사람은 패키지도 좋겠네요.


프로그램에  공부에 여행에....  보통 사람의 두 배는 사는 듯한 에너지에  늘 감탄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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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13:53:08 *.35.229.12

촌음을 아껴서가 아니라 이것저것 신경쓰기 싫어서 그런것 같아요.

올 가을에 제주 함덕바다의 푸르름을 보고 싶은데 짬이 날지 모르겠어요.

제주 잘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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