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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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오프 모임. 이번에는
세번째가 끝나자 마자 바로 다음 달 과제 주제가 발표되었다. 나+&.
아직 노안이 온 것도 아닌데,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버릇 때문인지 정작 주제는 못 본 채 건너 뛰고 과제 작성할 질문만 보고 글을 썼다.
이번달의 과제는 크게 ‘나를
다시 정의하기’와 ‘어린 시절의 나’이다. 분명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쓰는
것이었는데 나는 또 동생 얘기를 하고 있었다. 어릴 때는 동생을 질투하고 미워하고 싸우느라 사이가 안
좋았다. 지금은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지만 누구 말처럼 서로 별로 관심이 없고 관계의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이지, 정말 사이가 좋아서 잘 지내고 있는건 아닌 것 같다. 아직도
차별의 응어리, 동생에 대한 열등감과 그로 인한 상처 등이 남아 있어서 진심으로 사이가 좋아지고 잘
지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지난 해에 “죽기
10분 전에 하고싶은 말”을 생각하는데, 동생이 가장 먼저 떠오르자 무척 당황스러웠다. 10분 밖에 안 남은
그 소중한 시간에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웬수 같은 동생이라니… 맺힌 게 많아서 그걸 못 풀고 가면
한(恨)이 될까봐였을까? 그래서 나의 유서는 동생에게 쓰는 고백의 편지가 되고 말았다. “내 동생 빛돌아. 그동안 내 동생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사실 네가
나한테 잘못 한 건 별로 없는데… 너는 그저 우리 집의 장남으로 태어났고, 그래서 태어나자 마자 할아버지를 실망시켰던 나와는 달리, 온
가족의 사랑을 받았고, 집안의 기쁨이자 빛이었던걸… 질투 많은 어린 꼬마였던 나는 그게 이해도 안 되었거니와, 받아들일
수도 없어서, 그냥 너가 미웠고 어떻게든 널 이기려고 들었던 것 같다. 존재만으로도 사랑을 받았던 너와는 달리 난 어른들을 기쁘게 하는 일 – 재롱을 피우거나, 예쁜 짓을 하거나, 좀 더 자라서는 공부를 잘 하거나 –그런 짓을
해야만 사랑을 받을 수 있었거든. 점점 자랄수록 똑똑하고 공부 잘 하는 누나와는 달리 넌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외모를 가꾸는 일에는 누구보다 부지런해서 어느 자리에 가든 “아들
참 잘 생겼네요.”라는 말을 들어서 또 엄마를 기쁘게 했었지. 그러곤
꼭 따라 오던 말, “아들과 딸이 바뀌었네요. 아들이
공부를 잘 하고 딸이 예뻤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런 말이 칼과 같이 나를 아프게 했고, 그래서
난 또 네가 너무도 미웠지만 그 때는 몰랐었단다. 나만큼 너도 상처 받고 있었다는 걸… 너도 공부 잘 하는 누나랑 비교되면서 ‘공부는 못
하는 게 꾸미는 데만 열심인 애’라는 열등감 속에 아파하고 있었다는 걸… 언젠가 우연히 본 너의 편지함 속에는 내 고등학교 동아리 후배이자 사촌 동생의 친구인 그 아이한테서 받은 편지가 있더라. 아마도 사촌
동생이 나의 동생이라며 너를 그 애에게 소개시켜 줬었나 보더라. 그런데 그 애의 편지에는 공부
잘 하는 누나의 동생으로 살아야 하는 너의 열등감, 그래서 내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그녀를 거부했던
일에 대한 그 애의 아쉬움이 가득 담겨 있더라. 못난 누나는 그제서야 알았단다. 나의 성취에 대한
너의 폄하는 너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너의 몸부림이었고, 너 역시 상처와 열등감 속에서
힘 겨워하고 있었다는 걸… 하지만 비겁하게도 난 그냥 모른 척 했었다. 아니 너의 그 작은 상처보다
내 상처가 훨씬 더 컸고, 넌 그저 손톱 끝의 가시에도 투정하는 이기적인 아이라 생각해 버리고
말았어. 그래서 일지도 모르겠다. 공부 잘 한다는 게 별
의미가 없어진 대학 졸업 이후에는 내가 외모를 가꾸는 데 너무도 열심이 되었단다. 이제 너는 40대,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서 예전의 꽃 미모는 어디 가고 뱃살
두둑한 그저 그런 아저씨가 되었지. 그런데 나는 아직도 아들보다 못난 딸이 되지 않고자, 특히 너와 동행하는 자리에는 어떻게든 예쁘게 꾸미고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지. 그래서 “동생이 예뻐서 오빠는 좋겠어요”라는 말을 들어야만
마음이 놓인다. 이제 마지막을 앞두고 보니 그런게 참… 무슨
시간 낭비요, 에너지 낭비였나 싶다.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그런데 얼마전에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사람에게
쓰는 편지’라는 걸 보자, 난 너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나를
아프게 하고, 나를 울게 했지만 ‘너보다
잘 해야 한다’는 안간힘이 내가 공부를 잘하는 똑똑한 학생이 되고, 40대에도 30대처럼 보이게 외모를 가꾸고, 또 TV 퀴즈 프로그램에 나갈 용기를
갖는 원동력이 되었단다. 넌 몰랐겠지만 사실 지금의 나를 만든 70% 정도는
너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에서 나왔으니, 어쩜 너는 나의 가장 큰 스승이자 은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도 너에 대한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와 이유 없는 사랑을 볼 때면 아직도 너에 대한 미움이 시시때때로 폭발한다. 간혹
내가 뜬금없이 너에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낼 때, 다른 사람에겐 지나치게 쿨하거나 친절하면서도
유독 너에게만 딱딱하게 굴고 불친절할 때, 넌 내가 히스테리라도 부리는구나 하고 넘어갔겠지만, 사실은 아직도 너의 탄생을 질투하던 세 살 꼬마가 내 안에 남아 있어서 였던 것 같다. 10분 밖에 남지 않은 나의 소중한 시간을
왜 이런 뜬금 없는 고백으로 써버리고 있는지… 모두들 어이 없어 하는게 눈에 선하다. 인생에
대한 회한이나 멋진 유언을 남기는 걸로도 부족한 시간일텐데 말야. 그런데 빛돌아, 나도 이해가 안 가지만 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마도 며칠 전, 엄마 칠순 기념
가족 여행 얘기를 하다가 너에게 또 벌컥 화를 낸 게 미안해서 인가보다. 그야말로 넌 길 가다가
똥 밟은 기분이었겠지만, 그냥 아직도 가끔, 어릴
때 난 못 먹던 우유 먹고 자란 그 귀한 아들이 엄마에게 좀 소홀한 것 같다고 생각되면, 그냥
자동반사적으로 짜증이 나나 봐. 사랑받고 자란 네가 이해하길 바랄게. 그리고 내가 먼저 가니까 엄마는 네가 꼭 잘 보살펴 드리렴. 지금도
잘 하고 있지만 다시 한 번 부탁할게. 그럼 정말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빛돌아. 그동안 정말 미안했어. 그리고 나의 동생으로 참고 살아줘서 고마워. 남은 생은
나의 짜증받이를 끝내고, 행복하게 잘 살고… 우리 웃으면서 다시 만나자.”
작년에는 동생에게 말하지 못했다. 올해는 엄마에게 회사 그만 뒀다고 말씀 드리는 것과 함께 동생과도 화해를 해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