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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2017년 9월 1일 11시 26분 등록

아침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 할머니가 손자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는 길인가 봅니다. 킥보드를 탄 너댓살 남자 아이는 신발이 불편한지 울음 반 고함 반으로 낑낑거리고 있습니다. 할머니 들으라고 그 소리는 점점 커집니다. 옆에 있으니 귀가 아플 지경입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태연합니다. 성격이 느긋해서가 아니라 아이와의 승강이에 지쳐서 그런듯 합니다.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어 감정을 싹 걷어낸 목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집에 가서 갈아신을래, 아니면 그냥 갈래. 네가 결정해" 이런 말을 반복해도 아이는 반응이 없습니다. 공감이나 위로는 한 톨도 없는 건조한 할머니의 목소리와 아이의 처절한 울음이 엘리베이터 안을 가득 채웁니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걸음을 재촉합니다. 하지만 할머니와 아이의 잔상이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제가 이 상황에 마음을 빼앗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할머니에게서 저의 일면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번주엔 특히 그런 생각이 든 일이 많았네요. 


그는 저의 커리어 컨설팅 고객이었습니다. 이번에 나비프로젝트 3기를 모집하면서 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전직장을 좋지 않게 떠나고 구직활동을 하고 있더군요. 제가 컨설팅을 하면서 되도록 빨리 그 직장을 떠나라고 조언했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지나친 심사숙고형인 그는 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나비 3기로 들어와 전반적인 커리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고, 구직활동을 도와주겠다고, 그를 설득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경제적인 여력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수강료는 취업 후 후불로 지불해도 괜찮으니 이번에 꼭 함께 하자고 했습니다. 심사숙고하다 이번에도 또 기회를 놓칠까 안타까워서 그랬습니다. 그날 저녁 그에게 이메일이 왔습니다. 이메일을 읽다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습니다. 그는 제가 그에게 돈을 벌기 위해 연락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를 돕고자 하는 저의 마음보다 저의 적극성('종교단체 수장 같다'는 표현을 썼더군요)에 압도된 듯 했습니다. 저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그가 너무 야속해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그녀는 제 도움으로 지금의 직장에 입사했습니다. 벌써 2년 반 전의 일이네요.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고민상담을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늦은 저녁, 그녀와 마주 앉았습니다. '무엇이 힘드냐'고 물었더니 그녀의 큰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흐릅니다. 아직 주니어인데 회사에서 그녀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우고 있는 듯 싶습니다. 업무 특성상 퇴근 후에도 일에 대한 스위치를 끌 수 없는 상황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작은 회사에서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맡다보니 번아웃 일보직전까지 가있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종이에 하나씩 적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상황은 이해하지만 자신의 일이 어떤 의미이고 향후 어떤 커리어 비전을 가지고 일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결국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네가 지치고 힘든건 이해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 일을 하다가는 너는 전문가로 성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그 일을 오래할 수 없다."


반성합니다. 커리어 코치로 직장인들을 돕는다고 생각하고 일했지만 돌아보니 상대를 배려하기보다 제 가치관을 강요한 일이 많았습니다. 저는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게으른 사람, 소극적인 사람,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도와준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들에게 제 생각을 강요했습니다. 그걸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했습니다. 상대에 대한 진심어린 위로와 공감보다는 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이성적 결단만을 다그쳤습니다. 그래서 저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많은가 봅니다. 그러니 저는 엘리베이터 안의 할머니와 조금도 다른 인간이 아닙니다.


남편은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지. 당신의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도 많잖아. 당신의 그런 행동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말 도움이 되었다고, 정말 고맙다고 하는 사람이 더 많잖아? 그러니 자신감을 가져. 당신은 충분히 잘 하고 있어." 남편의 위로에도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아립니다. 저의 태도와 철학을 다시금 돌아봅니다. 이렇게 센티멘탈해지는 것은 절기 탓일까요? 높고 맑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기는 가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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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35.2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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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1 12:39:32 *.8.191.103

역지사지라고는 하지만 내 눈높이에 맞지 않으면 모든 것을 쉽게 부정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회사에서 일하면서 답답하고 분노가 치솟는(?) 일들을 많이 느끼고 잘못된 방법들로 표현을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최근 들어 그런것들이 결국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만 악화되고 일은 더 지지부진해지고 서로간에 상처만 받는 결과로

귀결되는 상황에 이르면서 마음을 반쯤 접고 바라보기로 했더니 한결 편해지는것 같습니다.

물론 좋은 과정을 통해 좋은 결과를 낳는게 좋겠지만 때론 나쁜 과정이지만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도록 제 마음을 양보해 보려고 합니다.

화창한 가을로 들어가는 하늘을 보며 쉼호흡 하면 오늘을 즐기고 싶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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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2 20:41:19 *.35.229.12

저도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바로볼 필요가 있는것 같네요.

위로와 응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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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2 14:33:10 *.39.102.67

공감이 부족했다기보다는, 열정이 많았던 듯~

멋진 남편이야. 형님한테 좀 배워야겠다. 재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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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2 20:40:27 *.35.229.12

그러네. 난 가끔 너무 열정이 넘쳐서 문제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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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5 09:01:30 *.158.25.187

상대가 준비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것이라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것같아요.

아직까지는 그분에게는 때가 아닌가봅니다.

그런데 말이죠. 시간이 지나면 그분도 분명 재키님의 진심을 알게되실거에요.

저는 재키님의 진심을 아는데 말이에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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