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승훈
- 조회 수 1350
- 댓글 수 7
- 추천 수 0
처음 불려간 선도위원회
11기 정승훈
유초등시기 아들은 참 밝고 활기찬 아이였어요. 물론 그 이후도 그랬지만요. 양쪽 할머니들이 키워서인지 외동아이 같지 않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어요. 처음 유치원을 보내도 울지 않았고, 안 가겠다하지도 않았어요. 머리 손질하러 미용실에 가서도 힘들지 않았으며, 무엇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경우도 없었어요. 한마디로 까다롭지 않은 아이였죠.
초등학교 때도 선생님께 인정받고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어요. 많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걱정스럽지 않은 성적을 유지하던 아이였고요. 마침 내가 활동하던 시민단체의 영향으로 사교육은 하지 않았어요. 일찌감치 사교육 하는 비용으로 책을 사주자라고 정했기 때문이죠. 물론, 책이 모든 걸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도 이후에 알게 되었지만요.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도 사실 별걱정 없었어요.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공부든 무엇이든 그냥 보통은 하겠지 했어요. 하지만 웬걸 아예 공부를 안 하더군요. 독서는 말할 것도 없고요. 지금도 본인 스스로 "내가 배경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들은 초등학교 때 읽은 책이 다야." 라고 하고 있어요.
2013년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1년을 시민단체 상근간사로 근무 했어요. 나로서는 값진 경험이었지만 아들에겐 마냥 방치된 기간이었어요. 아들은 1년 동안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공부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어요. 급기야 학교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다 걸렸어요. 나는 학교에 불려갔죠. 선도위원회가 열리고 아들은 반성문을 쓰고 교내 봉사로 청소하고, 등교시간에 금연 피켓을 들고 서있는 처벌을 받았어요.
초등 때까진 학급회장에, 반분위기를 만들어주는 학생으로 선생님께 늘 긍정적인 피드백만을 듣던 나로서는 문제를 일으킨 부모로 학교선생님을 만나게 되는 자리가 참 불편했어요.
선도위원회에서 잘못한 학생과 학부모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하지만 교사는 재판관처럼 학생과 부모를 죄인취급 하는 모습을 보며 굴욕감을 느끼면서, 선도가 되기는 할까 싶었어요. 문제 상황이 발생한 것이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야하는 것이지, 잘못한 사람을 처벌하기만 하면 된다는 건지... 그 처벌도 교내봉사로 청소나 캠페인 참여 같은 것이던데, 문제의 본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더라고요.
선도위에서 아이들이 돌아가며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말하고 나가면, 부모들도 돌아가며 어떻게 할지 말하라고 하더군요. 한 어머니는 아들이 담배 피는지 몰랐다며 앞으로 잘 지도하겠다고 죄송하다고 했어요. 나중에 아들에게 들으니 그 어머니가 알고 있었으면서도 일이 커질 것 같아 몰랐다고 한 거라더군요.
교사들, 마치 부모가 잘 관리하지 않아서 담배 피는 거라 여기는 것 같아 "어느 부모가 담배를 펴도 된다고 하겠어요. 흡연의 폐해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관리해요."라는 말로 내 순서를 시작했어요.
2학년에서 처음으로 학교에서 담배 피다 걸려서 엄한 처벌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뭐라 할 말이 없었어요. 아들 말로는 담배 피는 아이들이 많은데 혹시 걸리면 서로 이르지 않기로 약속이 되어있다 네요. 결국 선도위에서 아이들이 느낀 건 학교에서 걸리지 않아야겠다가 아닐까 싶었어요.
같이 담배 피다 걸린 아이들 중에 2학기에 새로 강제 전학 온 아이가 그 중 한명이고, 또 다른 아이는 아들의 초등학교 동창이고 집에도 놀러오던 아이였어요. 아들에게 "자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 엄마께 죄송하다고 전해 달라."고 문자를 보냈어요. 같이 떡볶이도 먹으러 가고 했던 아이거든요. 담임교사는 그 친구를 문제아 취급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15살 철없는 아이일 뿐이에요. 기특하잖아요. 본인도 힘들 텐데 친구엄마 마음도 살피는 것이.
강제 전학 온 아이는 그전부터 담배를 피웠다고 해요. 그 엄마가 자기 아이 때문에 그런 것 같다며 미안해하는데, 담임교사는 "너 한 번 더 이런 문제 생기면 전학 시킬 거야." 으름장을 놓더군요. 그 어머니 손잡으며 “많이 힘드시겠다.” 위로해드렸지만, 저 역시 같은 처지라 맘이 아팠어요.
내가 옆에 있는 데도 교사 중 한 명은 우리 아들에게 "너, 내가 수업은 안 들어가지만 어떤 지 다 알아." 이러네요. 나 들으라고 그런 걸까요? 어찌나 속상하던지……. 아들 말이 담배 펴서 걸렸더니 인사를 해도 안 받는 선생님도 있고, 자기를 대하는 게 달라졌다고 해요.
학교생활의 단면을 보고 나니 부모는 더욱 자녀의 편이 돼 주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그 아이들이 과연 문제 아이일까 싶네요. 혹여 문제 아이일지라도 그렇게 취급하는 게 맞는 걸까. 그 아이들에게 정말 잘못했구나 생각할 수 있게 해서 고치고 해결하는 게 어른으로, 교사로 해야 할 일 아닐까. 어른인 나도 뉘우치기보다는 화가 나는 상황이 많던데, 부모가 옆에 있어도 이런데 없으면 어떨지 상상이 됐어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들 담임선생님이 끊임없이 “잘해보자. 너의 장점이 있잖니.” 어깨를 두드리며 웃으면서 다독이시더라고요. 이후에도 아들을 문제아 취급하지 않고 좋게 봐주시고 계속 관심을 가져주셨어요.
내가 학교 다니던 시대에 담배를 핀다는 것은 '날라리'들이나 하는 행동이었어요. 그런데 아들이 그랬다니... 미리 막지 못한 나 자신을 책망하고 아이를 나무라는 일보다 더 이상은 담배를 피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였어요.
우리 부부는 똑같이, “너를 믿었고 혹시 담배를 핀다고 해도 스스로 결단을 내릴 것이라 여겼고 특히나 학교에서 필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많이 실망했다. 그리고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너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 일로 의기소침하거나 반대로 자포자기해서 더 나빠지겠다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빨리 탄로가 나서 다행이다. 너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겠니.“.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걸 계기로 나아진다면 더 바랄게 없었죠.
하지만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더군요. 정말 이사라도 가야하나 싶고, 모르겠다 포기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남편이 그러더군요. ‘우리 아들 잘 헤쳐 나갈 거다. 걱정하지 마라. 이사 간다고 거기선 문제가 없겠냐. 행여 나빠진다고 해도 얼마나 나빠지겠냐. 그렇더라도 그건 아들 몫이다. 우린 지금처럼 아이를 믿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놓지 않아야한다. 만약 여기서 그만둔다면 그게 제일 큰 잘못일거다. 지금처럼 계속 이야기하고 사랑을 주면 돌아올 거다. 담배 피는 거 남자라면 학창시절 한번 씩 경험할 수밖에 없는 거다. 단지 그 시기가 너무 이르다는 게 걱정이다.’ 라고요.
저 역시 힘이 드니 신경 쓰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혁신학교가 있는 곳으로 이사 간다는 것도 결국 도피일 수 있겠구나 싶으며, 아이의 결정이 아닌 부모 뜻에 따라 전학한 것이 효과가 있긴 할까 했거든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피하고 싶은 일이 많겠어요. 그럴 때마다 피할 수도 없고 환경 탓만 할 수도 없으니까요.
아들에게 ‘대안으로 이사도 갈 수 있다. 친구, 학교도 새로운 환경으로 시작하는 거다.’ 라고 알려줬어요. 생각해보겠다고 했지만 결국 이사 안 가겠다더군요. 남편에게 "얼마나 큰 인물이 되려고 이러는 걸까?" 하며 웃었어요.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건, 아마 이런 경험이 있지만 차마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계실 부모님께 부모님만의 경우가 아니니 낙담하지 마시고, 행여나 포기하거나 지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서예요. 사실 나도 많이 망설였어요. 교육자로서 강의도, 상담도 하면서 자기 자식 하나 제대로 키우지 못하면서 무슨... 그래서 더욱 아들의 방황하는 모습을 내가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하지만 난 아들을 믿으려고 해요. 학창시절 부모가 바라는 모습이 아닐지라도 정말 멋지게 사회인으로서 자리할 거란 것을요. 아마 커서는 누구보다 이해심 많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지금의 방황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닐 거예요.
이 일을 계기로 나 자신의 자만을 미리 방지할 수 있었어요. 아마 아들이 중학교에서도 초등처럼 됐다면 "아이는 그냥 두어도 알아서 해요. 부모가 잘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저절로 돼요. 공부조차도요." 이랬을 거예요. 우리 아들은 참 나를 교육자로, 부모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내려놓게 만들어요.
사춘기 방황하는 아이, 부모님께선 절대 포기하시면 안돼요.
아이에게 부모는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한 사람이어야 하니까요.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792 | #칼럼 9-대화의 프로토콜, 당신에게 로그인하고 싶어요(이정학) [2] | 모닝 | 2017.06.26 | 1398 |
4791 | <뚱냥이칼럼 #25> 아이들과 노는 것이 힘들다고요? [2] | 뚱냥이 | 2017.11.27 | 1398 |
4790 | 14. 어느새 길이 된 '함정' 이야기 [3] | 해피맘CEO | 2018.06.11 | 1398 |
4789 | #21. 군대에서 시작하는 변화이야기 [2] | ggumdream | 2017.10.09 | 1399 |
4788 | #3. 마라톤 [3] | ggumdream | 2017.05.01 | 1400 |
4787 | 6월 오프수업 후기(정승훈) [4] | 정승훈 | 2017.06.20 | 1400 |
4786 | #22 - 치료약이 없는 바이러스 [2] | 모닝 | 2017.10.16 | 1400 |
4785 | #31.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1] | ggumdream | 2018.01.22 | 1400 |
4784 | 나 만의 특별과제 3 -새로 알게 된 것들 [2] | 박혜홍 | 2018.07.27 | 1400 |
4783 | 소년원 독서 강의를 앞두고 [2] | 정승훈 | 2020.08.08 | 1400 |
4782 | 인생을 바꾸는 한마디 [4] | 불씨 | 2020.05.31 | 1401 |
4781 | 함께 읽기 [2] | 앨리스 | 2014.12.01 | 1402 |
4780 | 겨울잠도 괜찮아 [1] | 녕이~ | 2014.12.01 | 1402 |
4779 | 칼럼#8 부동산투자는 인(仁)하지 못하다?(이정학) [3] | 모닝 | 2017.06.12 | 1402 |
4778 | 11월 오프모임 후기_이정학 | 모닝 | 2017.11.21 | 1402 |
4777 | Climbing - 17. 이사 갑니다 [1] | 書元 | 2013.08.11 | 1403 |
4776 | 나쁜 상사에게서 배웁니다 [5] | 송의섭 | 2017.07.24 | 1403 |
4775 | 또 다시 칼럼 #22 청소년회복센터를 아십니까? [2] | 정승훈 | 2018.10.15 | 1403 |
4774 | 11월 오프수업후기 | 디오니송스 | 2017.11.20 | 1404 |
4773 | 겨울에 닦는 여름 선풍기 [2] | 송의섭 | 2018.02.19 | 1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