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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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김생민의 영수증’이라는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지난 8월 19일부터 정규 편성 되어 매주 토요일 저녁 10시 45분부터 딱 15분만 방영하는 프로그램이다. 개인의 이름을 타이틀로 거는 방송은 참 오랜만인 듯 하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비롯해 주로 라디오 방송을 제외하면, 일반 정규 방송에서는 더욱 생소하다. 길고 짧은 방송 분량을 떠나 자신의 이름을 건다는 것은 진행자의 상당한 내공을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다. 나름 이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전부터 팬이었다. 우리의 인연(?)은 지난 2016년 겨울, 우연한 계기로 현재 프로그램의 시초가 되었던 한 라디오 방송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그우먼 ‘송은이 김숙의 비밀 보장’이라는 개인 라디오 방송이었다. 당시 김생민은 50분 내외의 라디오 방송 가운데 게스트로 출연해 자신만의 생활 속 절약 노하우를 짤막하게 소개하는 코너를 담당했다. 그마저도 일주일에 한 번 또는 비정기적인 출연이 전부였다. 그러다 차츰 그 코너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얼마 전부터는 자신의 이름으로 개인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개인 라디오 방송으로 시작 한 ‘김생민의 영수증’은 공중파 방송에 정규 편성이 확정되기에 이른다.
라디오 방송 시절 청취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방송 활동을 하면서 ‘근검절약’을 실천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고, 과장되지 않은 그의 솔직함과 위트 있는 멘트들은 많은 청취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현재 그의 방송은 시청자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영수증들과 사연을 모아, 그들의 소비습관을 점검하고 ‘근검절약’의 선배로서 조언을 하기도 한다. 그가 방송 중에서 시청자들을 칭친 할 때 쓰는 “그뤠잇(Great, 대단한)”이나, 소비 습관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종종 사용하는 “스튜핏(Stupid, 멍청한)” 이라는 말들은 이미 그의 독창성을 살리는 그 만의 최대 무기가 되었다. 또한 그가 라디오 방송 중 자주 했던 “돈은 안 쓰는 것이다”라는 말은 새롭게 시작한 정규 방송의 캐치프레이즈가 되기도 했다. 근검절약을 말 하는 그의 모습이 전혀 궁색해 보이지 않는다. 그의 진정성과 ‘근검 절약’이라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일상 속에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주제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그의 재치 덕분이다.
물론 최근에 유명세를 타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이 그저 재미있다 라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인기를 그저 우연한 계기로만 생각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실제로 그는 십 수년 간 근검절약을 실천해 왔다고 한다. 그러한 사실은 그의 지인들은 물론 이전에도 여러 방송들을 통해 많이 노출이 되기도 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그런 그의 생활 습관이 왜 이제야 유명세를 타게 되었던 것일까 하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리포터' 또는 영화 예고편을 맛깔 나게 소개해주는 사람으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방송을 시작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첫 째, 그에게는 고유의 강력한 컨텐츠가 있었다. 이 것 하면 그 사람, 그 사람 하면 이 것하고 대중들에게 바로 인식되는 그 무언가가 그에게는 있었다. 바로 '근검절약'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의 컨텐츠가 강력한 힘을 얻게 된 것이 비단 그가 연예인이기 때문 만은 아니다. 물론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그의 컨텐츠에 힘을 실어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적어도 방송을 통해 공개 된 그의 생활습관과 그의 동료들이 밝히는 그의 '멘탈'은 진짜다. 그런 의미로 나는 그가 ‘영수증’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반인으로 같은 주제로 책을 썼어도 분명 성공했으리라 생각한다. 그가 충분한 내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이름으로 방송을 한다는 것과 책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닮은 구석이 많다.
둘째, 자신이 정한 주제로 그는 사람들과 ‘꾸준히’ 소통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꾸준히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꾸준히 한다’는 말에는 두 가지 숨은 뜻을 담고 있다. 일단은 '시작했다'는 것과 한 번 시작한 일을 '오래도록 했다'는 점이다.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시작을 못하는 사람은 꾸준히 할 가능성이 아예 없고, 시작은 했는데 꾸준히 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일을 잘 할 가능성이 없다.
그렇다면 나의 컨텐츠는 무엇일까? 나는 어떠한 단어로 스스로를 정의 내릴 수 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한 과정이 바로 연구원 과정을 시작하며 줄곧 나의 개인사를 돌아보고 그 이후로도 수 많은 과제를 통해 얻고자 하는 단 하나의 해답이었다. 어떤 주제로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오랫동안 기억시키고 싶다면, 우리는 우선 스스로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당연한 이치다. 어떤 사람은 그러한 밑그림이 없어서 고민이고, 또 어떤 사람은 너무 많아서 고민이다.
이래저래 고민할 일만 많다면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볼 용기를 가져봐야 한다. 사고의 전환이다. 어차피 자신만의 컨텐츠가 없는 사람이라면 무엇을 해도 지금처럼 아무것도 안 하는 것 보다는 나을 것이다. 밑져야 본전인데 고민을 적게 하고 엉덩이를 써서 일단 움직여야 한다. 이건가 싶은 것만 보여도 그냥 고민하지 말고 잡아채고 딱 삼 일만 해보고 잊어버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문제는 밑그림이 너무 많은 사람이다. 자신의 컨텐츠가 너무 많은 사람은 실제로 무엇 하나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재주 많은 사람이 밥 굶는다는 오래된 명언이 이를 증명한다. 이런 사람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람은 좀 덜 움직이는 것이 낫다. 생각나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습관을 줄이고, 가급적이면 덜 중요한 일들을 하나씩 덜어내는 습관이 중요하다. 삶의 우선 순위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수 많은 좋아하는 것들 사이에서 길 잃은 아이처럼 방황하지 말고, 자신이 잘하는 것에 ‘오래도록’ 몰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흔히 좋아하면 잘하게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취미로만 삼을 일이라면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업으로 삼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라면, 자기가 잘하는 일을 ‘오래도록’ 하는 것이 프로의 세계로 가는 정도(正道)가 아닐까 한다. 좋아한다고 반드시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잘하면 결국 좋아하게 된다.
“너나 잘하세요”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이런 말을 듣지 않으려면 나부터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