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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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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4일 17시 16분 등록

중고 장터에서 가죽 소파를 구매했습니다. 용달비 포함 10만원, 거의 거저나 다름 없습니다. 2주 동안 인터넷에서 '잠복 근무'를 한 결과입니다. 근무 시간에도 30분마다 스마트폰으로 소파들을 검색해야 했습니다. 집에 들여놓고 보니 사용 흔적이 거의 없이 깨끗합니다. 오랜만의 횡재에 저희 부부는 행복하해며 맥주잔을 기울입니다.

 

문제는 다음날부터였습니다. 용달비를 아끼려고 혼자 소파를 들었던 저는 다음 날부터 허리를 펴지 못해 꼬박 일주일을 한의원 신세를 졌지요. 아내는 소파가 다칠세라 소파 패드와 쿠션을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소파가 10만원인데 패드와 쿠션은 20만원이 넘는 불편한 진실. 게다가 툭하면 소파에 올라 다이빙 자세를 취하는 아이들을 위해 이제 십 몇 만원의 유아 매트를 고르고 있습니다. 그 동안 쏟은 시간과 돈, 정력을 고려하면 저희는 한 달 째 소파와 씨름 중인 셈입니다. 이쯤 되면 저희가 소파를 깔고 앉은 걸까요, 아니면 소파가 저희를 깔고 앉은 걸까요.

 

우리가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소유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소유물은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는 이상으로 우리 자신을 소유하고 얽매어 버립니다. 평생 산속의 작은 오두막에서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았던 법정 스님은 '필요에 따라 살아야지 욕망에 따라 살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필요는 생활의 기본 조건이지만 욕망은 분수 밖의 바람입니다. 하나가 필요하면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가지면 그 하나의 소중함 마저 잃고 맙니다. 스님은 경험을 빌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필요에 따라 살아야지욕망에 따라 살지 말라야 한다

욕망과 필요의 차이를 구별할수 있어야 한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몇 사람이 오디오를 설치해 주었다. 한 일 년쯤 듣다가 또 변덕이 일어나 되돌려 주었다. 음악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 소유의 더미가 싫어서였다. 치워버릴 때는 애써 모았던 음반까지도 깡그리 없애버린다. 그렇게 한 동안 음악을 듣지 않으면 내 감성에 물기가 없고 녹이 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중략) 이제 내 귀는 대숲을 스쳐오는 바람소리 속에서, 맑게 흐르는 산골의 시냇물에서, 혹은 숲에서 우짖는 새소리에서 비발디나 바하의 가락보다 더 그윽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빈 방에 홀로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 충만하다.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가득 찼을 때 보다 더 충만해진 것이다. "

 

'텅 빈 충만' - 이 역설의 의미를 깊이 새겨 두어야겠습니다.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분에 넘치는 소유는 오히려 존재를 가로막지요. 물건을 새로 사들이고 한동안 지니다가 시들해지면 내다 버리는 순환에 갇혀 있는 한 맑고 투명한 존재의 충만감은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텅 비울 수 있어야 비로소 존재가 가득해집니다. 가녀린 촛불 하나가 빈 방을 가득 채우듯이요.

 

보통 깊이 있는 책은 어려워 잘 안 읽히고 읽기 쉬운 책은 깊이가 부족한 데 반해, 법정 스님의 책은 중학생도 읽을 만큼 쉽지만 그 깊이는 삶의 심연에 이릅니다. 바쁜 틈에 잠시 읽으면 시간이 멈추고 마음이 한없이 넓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글 또한 스님을 닮아 맑고 투명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청명한 이 가을, 텅 비어서 티 없이 맑았던 그가 그립습니다.

 

*오늘 소개한 책: <텅 빈 충만>, 법정, 샘터

 

 

[알림] 금주 목요일(9/7)부터 <퇴근길 인문학 교실>이 문을 엽니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동주의 시를 중심으로 우리 시를 감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구본형 선생님이 극찬하셨던 <우리가 정말 알야아 할 삼국유사>의 저자이자 시인인 고운기 교수님이 강의를 합니다. 다음 링크를 참조하세요.  

http://www.bhgoo.com/2011/index.php?mid=free&document_srl=82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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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5 08:39:46 *.158.25.187

빨리 허리가 나으셔야할텐데요.^^


글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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