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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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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5일 09시 56분 등록

정신없이 대학원 과제를 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립니다. 대만에 사는 여동생이 카카오톡으로 전화를 했네요. '무슨 일일까?'하는 생각에 얼른 받았습니다. 예상대로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닙니다. 청주에 사시는 친정엄마가 아프니 저보고 한번 가보라는 것입니다. 엄마는 며칠 전부터 어깨와 등이 많이 아파서 다니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잘 낫지 않더랍니다. (엄마는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으신 적이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목디스크라며 도수치료를 권했습니다. 물리치료사가 일흔이 넘은 엄마를 거꾸로 매달기까지(?) 했다네요. 차도가 없자 병원에서는 디스크가 아니고 근육이 뭉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큰 마음 먹고 경락마사지도 받았답니다. 며칠을 그렇게 하고 나니 엄마는 그만 몸살이 났다고 하네요. 그 사이 남동생이 내려가 아버지에게 가격을 속이고(!) 엄마에게 안마의자도 하나 사드린 모양입니다. (아버지는 비싼 물건을 사는 것을 아주 싫어하시거든요.)


전화 통화를 하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엄마는 왜 이런 이야기를 한국(?)에 사는 나를 놔두고 외국에 있는 여동생에게 했을까?'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엄마에게 전화를 자주 하는 편이 아닙니다. 전화를 해도 용건 위주로 통화하는 경우가 많지요. 거기다 엄마는 내가 항상 바쁘다며 왠만한 일이면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여동생은 다릅니다. 수시로 엄마에게 전화해 이런저런 전화를 하는 것 같습니다. 좋게 말하자면, 저는 든든한 큰딸이고 여동생은 살가운 작은딸인겁니다. 엄마는 아마도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신것 같습니다. '아이고, 나는 아파도 같이 병원다닐 자식도 곁에 없구나. 내 인생이 뭔가. 삼식이 남편은 내가 아파도 자기 밥챙겨 먹는데만 신경쓰고 날 진정으로 위로해주지 않는구나. 70 평생 나는 무엇을 했나.'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을 왔습니다. 그즈음 여동생은 기숙고등학교에 다니느라 집에 없었지요. 얼마 후 남동생도 재수를 하느라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러니 우리 부모님은 거의 25년 동안 두 분이 생활을 하신겁니다. (잠시 남동생이 집에서 대학을 다니긴 했지만요.) 저와 여동생이 서울로 유학을 왔을 때 부모님은 좋아하셨습니다. 부모님 친구들 중 자식을 서울로 올려보낸 분들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다른 이야기를 하십니다. 술 기운에 취한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하더니 요즘은 가까이 사는 자식이 있는 친구들이 부럽구나. 내 친구 아무개는 술먹고 전화하면 아들이 재깍 데리러 오더라. 네 엄마가 가끔 그런다. 딸들이랑 백화점 다니고 목욕하러 다니고 그렇게 사는 것도 좋겠다고."


안타까운 마음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제가 사는 분당에 올라와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자고 했더니 이제 많이 나았다며 괜찮다고 하십니다. 너 바쁜데 신경쓰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이번 주말에는 시간을 내서 친정에 다녀와야겠습니다. 애들과 남편은 집에 두고 저 혼자 가야겠습니다. (함께 가면 번잡스럽고 엄마는 밥상 차리느라 정신이 없어요.) 아버지 몰래 엄마만 살짝 불러내서 맛있는 점심도 사드리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차도 한 잔 해야겠습니다. 엄마가 아버지 흉보는 것도 다 들어드리고 신나게 맞짱구도 치고 함께 아버지 욕도 실컷 해야겠습니다. 오리고기랑 사탕을 사서 요양원에 계신 외할머니도 찾아뵙고 근교로 차를 몰고 나가서 가을을 만끽하는 드라이브도 해야겠습니다. 참, 이탈리아에서 사온 멋진 스카프도 둘러 드려야겠네요. 인터넷에서 찾은 등과 허리근육 강화 운동법을 거실에 예쁘게 붙여 드리고 와야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친정엄마는 참으로 현명한 분입니다. 제가 결혼 문제로 아버지와 각을 세울 때 서로 화해를 하게 한 사람은 엄마였습니다. 또한 용감한 분입니다. 외할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초등학교 공부밖에 못한 엄마는 우리 삼남매를 출가시키고 중고등학교 과정에 도전하셨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활기찬 생활을 하는 분이기도 합니다. 엄마의 달력에는 교회 모임에, 봉사활동에 일정이 빼곡합니다. 작년 겨울 엄마 칠순 기념으로 일본 북해도 여행에 갔을 때, 석양을 비친 엄마의 굽은 등을 보았습니다. 등은 시간이 갈수록 더 굽어지겠지요. 엄마는 점점 더 작아질 것이고 언젠가는 요양원에 계시는 외할머니처럼 제가 누군지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 때를 대비해 지금부터라도 엄마를 자주 찾아 뵈어야겠습니다. 엄마와의 추억이 많으면 먼 훗날 엄마가 계시지 않아도 외롭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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