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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30일 23시 06분 등록

[뚱냥이 칼럼]


제자리에 놓으세요

 

 

손톱깎이를 찾으려고 집안을 뒤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손톱 깎을 준비를 하고 바닥에 앉으면, 내 옆에는 어김없이 2~3개의 손톱깎이도 함께 앉았다. 학교를 가려고 책가방을 꾸릴 때도 마찬가지다. 유독 그 날 수업의 책만 홀린 듯 사라져 있다. 우스갯소리로, 어머니를 범인으로 생각한 적도 있다. ‘설마, 어머니가…’ 물론 범인은 당연히 나다. 묘연한 책의 행방은 길을 한 참 나서야 머리 속을 스친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법칙은 웬만해서는 깨지지 않는다. 감히 만유인력의 법칙과 상대성 이론과 같은 위치에 놓고 싶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제자리에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건을 사용하고 항상 놓던 자리에 다시 놓기만 하면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당황할 필요도 없다. 어이없게 가족을 의심할 까닭도 없다.

 

제자리’. 제자리는 본래 있던 자리다. 본래는 본연의 상태이며, 그대로다. 그대로는 자연스러움이다. ‘제자리라는 것은 어딘가로 떠나지 않고 본연의 모습 그대로로 머무는 것이다. 제자리에 있다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밥 그릇과 국그릇이 화장실에 있다면? 수저가 칫솔통에 꽂혀 있다면? 변기가 머리맡에 있다면? 이것은 본연의 모습을 벗어난 부자연스러움이다.

 

그렇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제자리에 놓아야만 한다. 그리고 세상 만물은 각자에게 맞는 제자리가 있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과거는 과거에 놓아야 한다. 그것이 과거의 제자리다. 그것이 과거의 자연스러움이다. 과거를 현재에 머물게 한다면 집안을 뒤질 일로 끝나지 않는다. 집안이 발칵 뒤집힐 일로 이어질 수 있다. 홀린 듯 삶이 사라질 수 있고 길을 잃을 수 있다.

 

지금 그리고 현재, 눈에 담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하늘의 푸르름을, 꽃의 미소를, 구름의 변화를, 낙엽의 익음을,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웃음 보기에도 24시간이 모자라다. 들어야 할 소리도 너무나 많다. 나뭇잎이 바람과 하이파이브 하는 소리를, 새들의 지저귐을, 청소기 돌리는 소리를, 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를, 그리고 어머니의 찌개가 끓는 소리를 듣기에도 1주일이 부족하다. 느껴야 되는 것도 줄을 섰다. 부모님의 남은 시간을, 도반의 통찰을, 동료들의 정을, 사랑하는 이의 눈빛을 느끼기 위해 시간을 매어 놓고 싶다.

 

우리는 지금 그리고 현재, 사랑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과거를 사랑하지 말자. 지나간 시간의 어렴풋함을, 왜곡을, 아쉬움을, 거짓을, 아픔을, 상처를, 그리고 기억을. 과거가 머무는 곳은 과거여야 한다. 만약 과거에 발목이 묶여 있다면 한 번만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길 권한다. 그 곳에는 가족이란 가위가 있다. 벗이라는 커터칼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열쇠가 있다. 그들은 당신을 위해 끈을 잘라 줄 것이고, 끊어 줄 것이고, 지금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줄 것이다.

 

끊어져 나간 과거에 동정하지 말자. 과거는 그저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지금이라는 제자리에 머무는 것 뿐이다. 이것이 변화고 성장이다.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각자가 어울리는 제자리에 머무는 것. 그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된다. 혹시라도 마음 속에 남겨둔 과거가 있다면, 지금의 나를 위해 그리고 과거 자신을 위해 제자리에 놓기를 희망한다.

 

 

* 이 글을 2016 9 30일에 살았던 뚱냥이와 모든 이에게 바칩니다.

IP *.140.6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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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09:59:43 *.18.218.234

성한의 글이 아주 잠깐 헤매는 거 같더니 다시 제자리를 찾았나봐. ^^

손톱깎이에서 시작한 제자리에 대한 의문, 지금과 앞으로의 발목을 잡는 과거, 그걸 끊고 나아갈 지금의 촘촘하고 질긴 인연들. 흐름이 너무 좋다.  바느질 자국 보이지 않는 글. 진짜 그 분이 오셨구만. 


본인의 1년 전을 회상하며 쓴 글이라는 걸 알고 봐서 더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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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4 05:05:13 *.106.204.231

 그렇지. 세상만물은 저마다 제자리가 있지. 제자리에 벗어나면 혼란스러우니까. 성한이에게 과거는 과거에 있어야 하는데 가끔 소환되는 것이 우려된다.  그 과거가 제자리를 벗어나더라도 다시 회귀시킬수 있는 복원력도 필요할 것 같아.  추석 잘 보내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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