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정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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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E.H.Carr는 계속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얘기하는 데, 내 머릿속에서는 나 개인의 이야기 뿐이다. 나의 과거는 나와 과거와의 소통은 어떠한가이다.
카아 할아버지 말씀대로 내 인생이야기를 역사와 대치해서 생각해 본다. 그렇게 하다보니, 내 이야기에 집중하고 그것을 기술하려고 하는 나는 역사가쯤 될 것이다. 나는 괜찮은 역사가는 아닌 듯하다. 내가 이야기를 쓰려고 골라잡은 것은 역사에서의 한 사건이 될 것이다. 그것이 진실인지 여부는 자료조사를 더 해야할 것이지만, 그것은 너무나 개인적이다. 조사를 한다해도 나올만한 것이 없다. 서로의 기억을 더듬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기술하려고 하는 사건의 때(상황)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을 피해가면 안될 것이다.
내가 기록하고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사건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중요하지 않을 것일 수 있다. 각자가 자신이 부여하는 의미만큼 그것의 중요성이 인식되기 때문이다.
만일 똑같은 강물 속에 사람은 두 번 다시는 들어설 수 없다는 철학자의 말이 옳다면, 한 역사가가 두 책을 쓸 수는 없다는 말도 똑같은 이치에서 진실이라는 대목을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역사책을 골라 읽을 때, 역사가도 조사하고, 그 역사가가 언제 집필했는지도 보아야 한단다. 그렇다면, 지금의 마구 이것저것으로 뒤덮혀 내게는 빛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과거도 다른 시점에서 다시 기술한다면 다른 의미로 다가 올 수 있을까? 현실에서 그것과 잘 소통하고 있나? 과거 찬란한 빛과 미래의 어떤 길이 내게도 보일까?
나는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그것에 집착하는 것일까? 입안에 남아서 아직 다 삼키지 않은 음식처럼 걸리는 것은 가족과 나와 얽힌 것들이다. 특히 엄마와 나의 관계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사건들이 어떤 역사가가 연구해 기록함으로써 그것이 중요한 사실이 인식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나는 내 과거의 것들을 기록하는 데 신중히 해야한다. 잊고자 하는 역사라면 기록하지 말까?
왠지 엄마와 얽힌 이야기들은 안타깝고, 짠하다.
자꾸 하나씩 이야기들이 더해지고, 그 이야기들을 하다보니 그것도 강도가 약해져 이제는 조금 밋밋하기도 하다.
지난 주말에는 집에 다녀왔다.
그전에 전화로 집에 못 내려간다고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했었는데, 하루의 여유가 생기니 마음이 바뀌었다. '가정의 달'을 이유로 휴가도 하루 받았겠다 안 갈수가 없었다.
집에 내려가려는 당일 날 아침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어머니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엄마, 집에 내려가려고 마음 먹었는데... 아퍼. 집에서 그냥 자야겠어.'
어머니는 혼자 사는 내가 제일 걸리는 것이 혼자 아픈 거라고 하셨다. 그런데 어쩌랴, 그건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다. 둘이 같이 아플 수도 없는 것이고.
통화도중에 어머니의 휴대폰 밧데리가 다 되었는지 끊겨버렸다.
걱정하지 마시라고 하고 싶은데, 다시 전화해도 전원이 꺼져있다고만 한다.
몇 시간을 끙끙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깨기를 반복하고는 그냥 약을 먹기로 결정했다. 약을 털어 넣고는 다시 시골집에 내려갈 궁리를 했다. 가족들이랑 저녁식사라도 하려면 그 시간에 맞춰가려면 기차를 타야 할 것 같았다. 예매하지 않아서 기차표는 보나마나 KTX만 남았을 거다. 백수 주제에 버스비의 2배나 드는 기차를 탈것인가 다시 그냥 집에 돌아올까, 아님 밤 늦게 있는 표 사서 내려갈까 고민도 잠시. 가족이랑 저녁먹자로 마음을 굳히고. 카드를 확 긁었다. 부모님께 내가 드리는 선물은 그냥 같이 밥 먹는 거다라는 맘으로.
그리고는 다시 기차에서 잠. 약기운인지 원래 기차가 수면제인지 잠이 솔솔 잘도왔다. 오전 내동 아픔으로 뒤척이며 잠을 잤었는데, 그래도 잠은 부족했나보다. 아님 약에 취했는지도. 차안에서 책 읽으려고 챙긴것들은 모두 휘리릭 저멀리다.
가족이랑 저녁 먹고는 또 잠. 이번에는 부모님이 주무신다. 9시 뉴스부터 주무신다.
난 진통제의 효과가 또 떨어졌나 아프다. 다시 몇시간 버티가다 한알 먹고 겨우 잠이 들었다. 그렇게 자고나니 잠이 또 부족하다. 눈 뜨고 있어도 몽롱하다.
새벽에 알람소리에 짜증이 났다. 새벽에 먹는 부모님의 아침식사에 같이 하지 못했다.
일요일 교회에가서도 정신은 몽롱하다. 집에 도착해서 또 잠. 왠지 그냥 잠이 쏟아진다.
아파서 그런건지, 편안해서 그런건지. 집에서는 잠만 온다.
가족들이랑 보내겠다고 집에 가서는, 밥 먹고 잠 잔 것 말고는 별로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아, 아니다. 어머니께 용돈을 받아왔다.
반대로 되었다. 어버이 날이라고 내가 선물도 드리고 용돈도 드려야 하는데, 반대로 되었다.
예쁜 옷 사주고 싶어하시는데, 옷은 됐다고 하니, 용돈으로 주시는 거다. 순순히 받았다. 매번 걸려하시니까 그냥 받는다. 골골한 나 힘내라고 한약 한제 해주려고 하신다는데, 안 먹는다니 그냥 용돈으로 주신다. 매번 한약이나 따순 옷 한 벌 해주시려고 하시는 데, 안 받아온 것도 미안해서 받는다.
어머니께서는 동생들에게 '정화가 어버이 날이라고 용돈 10만원 줬으니까, 니들도 10만원씩 내놔'라며 백수인 날 팔아서 동생들을 자극하셨다. 드리기는 커녕 받은 난 그 옆에서 침묵.
벌써 두 번째다. 지난번에는 어머니께서 주신 차비를 받아 내려왔다.
철들고 나서는 집에 뭐 해달라고 조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렸을 적엔 몇 번 졸라봤지만 결국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한번 얘기해서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더 이상 그것을 해달라 뭐라 하지 않았다. 내가 갖고 싶다거나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을 집에 말고 어디가서 얘기한단 말인가, 나의 가장 전능한 신이 내게 못해주겠다고 하면 그만인 것이다.
보채지 않아서 더 먹어야 할 젖 못 얻어먹은 큰 딸.
지금은 그것이 엄마와 나 사이에 서로 걸리는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엄마에게 뭐 해달라고 조르지 않아도 되는 성인이 되었고, 엄마는 그때보다는 뭔가를 더 해줄 수 있는 형편이 되었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확 피어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신다. 돈 없다고, 예쁜 옷을 사입지 않아서 피지 않는가, 먹는 것이 부실해서 혹은 아파서 힘이 없나 고민하신다.
엄마는 내가 짠하고, 그래서 나는 엄마가 짠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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